한나라 사신 장건(張騫)은 흔히 ‘실크로드를 연 인물’로 불린다. 그러나 그의 행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장건은 미지의 세계를 답사한 전달자라기보다 동아시아와 유라시아를 잇는 외교 질서를 구상한 전략가에 가까웠다.
기원전 2세기, 한무제(漢武帝)는 흉노(匈奴)를 견제하기 위해 월지(月氏)와의 외교적 연대를 모색했다. 이 구상을 실행할 인물로 선택된 이가 장건이었다. 그는 기원전 139년 장안(長安)을 출발해 서역으로 향했고, 억류와 탈출, 재파견을 거치며 10여 년 동안 중앙아시아 각국의 정치·군사·경제 현실을 직접 확인했다. 이는 무력 정복이 아니라 정보와 연결을 통해 국제 질서를 관리하려는 외교적 시도였다.
장건의 외교적 통찰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장면은 대하(大夏, 오늘날 박트리아) 체류 시기다. 그는 이곳에서 중국 촉(蜀) 지방에서 생산된 공죽장(筇竹杖)과 촉포(蜀布)를 발견했다. 대하 사람들이 이를 “신독(身毒, 고대 인도)에서 상인을 통해 들여왔다”고 설명하자, 장건은 단순한 교역 사실을 넘어 연결의 구조를 읽어냈다. 한나라가 인식하지 못했던 촉–신독–대하로 이어지는 남서 교통망이 이미 작동하고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는 장건이 단순히 ‘무엇을 보았다’고 보고한 데 그치지 않고, 어디와 어디가 어떻게 이어져 있으며 그 연결이 한나라 외교에 어떤 선택지를 제공하는지를 분석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흉노 세력권을 통과하는 기존 서역로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중국 남서부를 출발점으로 하는 또 다른 외교·교역 노선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한무제는 장건의 판단을 받아들여 촉 지방에서 서남이(西南夷) 지역으로 사신을 파견하고 군현을 설치하며 길을 열고자 했다. 그러나 곤명(昆明, 오늘날 윈난 서부) 일대 세력의 저항으로 사신들이 피살되거나 길이 차단되면서, 대하까지의 직접 연결은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장건이 제시한 ‘다중 경로 외교’라는 발상은 한나라의 대외 인식에 중요한 전환점을 남겼다. 세계를 중국 중심으로 단선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이미 존재하는 교류망 속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찾으려는 사고였다.
공죽장 역시 이 맥락에서 다시 보인다. 대나무 지팡이라는 평범한 물건이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했다는 사실은, 고대 국제 교역이 생필품 교환을 넘어 상징과 문화, 위계를 포함한 복합 네트워크였음을 시사한다. 장건은 이 물건을 통해 길의 존재뿐 아니라 문명 간 수요와 인식의 흐름까지 읽어냈다.
장건의 외교는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길을 ‘개척’하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연결을 이해하고 선택하려 했다. 이 점에서 장건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적인 인물이다. 복수의 공급망과 교통로, 네트워크가 중첩된 현대 세계에서 외교의 핵심 역시 새로운 길을 만드는 데 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연결을 먼저 읽는 데 있기 때문이다.
대하에서 발견된 공죽장 한 자루는 고대의 유물이자 장건이라는 외교가를 상징하는 단서다. 세계는 언제나 생각보다 먼저 연결돼 있었고, 외교가는 그 연결을 발견하고 설계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장건(張騫)은 이미 2천 년 전에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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