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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에 중국을 울린 ‘꼬마 완쥔’ 진밍…전성기에 연예계를 떠난 이유

  • 김나래 기자
  • 입력 2026.09.10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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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 드라마를 기억하는 시청자들에게 진밍(金铭)은 여전히 ‘꼬마 완쥔’으로 남아 있다. 아홉 살에 충야오(琼瑶) 드라마에 출연해 단숨에 유명해졌지만, 정작 그는 가장 주목받던 시기에 연예계보다 공부를 선택했다.


1980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진밍의 인생이 달라진 것은 1989년이다. 충야오의 드라마 「완쥔(婉君)」 오디션을 거쳐 어린 완쥔 역에 발탁되면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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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중국을 대표하는 아역스타로 사랑받았던 ‘꼬마 완쥔’ 진밍의 성장 이후 모습. 진밍은 아역 전성기에 연기 활동을 줄이고 학업에 집중한 뒤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에 진학했으며, 졸업 후 다시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자료사진]

커다란 눈과 자연스러운 감정 연기로 주목받은 그는 이후 「설가(雪珂)」, 「망부애(望夫崖)」, 「청청하변초(青青河边草)」 등 충야오 작품에 잇달아 출연했다. 어린 나이에 중국을 대표하는 아역배우 가운데 한 명으로 성장하면서 앞으로도 배우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전망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그러나 진밍의 선택은 달랐다.


중학교에 들어간 뒤 연기 활동을 크게 줄이고 학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촬영할 때도 공부를 놓지 않았던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대학 입시를 자신의 우선순위에 뒀다.


특히 대학 진학을 앞두고는 연기 경험을 살려 예술계 대학으로 가는 대신 베이징대를 선택했다. 1999년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에 입학하면서 아역스타가 아닌 평범한 대학생으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선택은 적지 않은 관심을 모았다. 어린 시절부터 이미 연예계에서 성공을 경험한 사람이 스스로 활동을 줄이고 전혀 다른 전공을 택했기 때문이다. 진밍은 이후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부터 배우 이외의 삶과 가능성에도 관심이 있었다는 취지로 자신의 선택을 설명했다.


인터넷에서는 그가 충야오의 유명 드라마 「황제의 딸(还珠格格)」의 샤오옌쯔 역을 거절했다는 이야기도 오랫동안 전해졌다. 하지만 당시 제안 과정과 배역을 둘러싼 이야기는 여러 형태로 퍼져 있어 이를 확정된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데는 주의가 필요하다.


베이징대 졸업은 연예계와의 완전한 결별을 의미하지 않았다.


2003년 대학을 졸업한 진밍은 중국석탄광산문공단에 들어가 문화예술 현장으로 돌아왔다. 어린 시절처럼 드라마 촬영장만을 무대로 삼지 않고 공연과 노래, 방송 진행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광산 지역을 찾아 노동자들을 위한 공연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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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중국을 대표하는 아역스타로 사랑받았던 ‘꼬마 완쥔’ 시절을 형상화한 이미지. 진밍은 1989년 충야오의 드라마 「완쥔」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린 뒤 여러 작품에서 아역으로 활약했다. [자료사진]

이후 다시 영화와 드라마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2013년 방영된 무협드라마 「천룡팔부(天龙八部)」에서는 천산동로 역을 맡아 어린 시절 ‘꼬마 완쥔’을 기억하는 시청자들에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성인이 된 뒤의 진밍이 아역 시절과 같은 폭발적인 인기를 다시 누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아역스타의 실패’라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연예계 활동이 끊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따라 공부와 공연, 연기, 방송을 오가며 활동해 왔기 때문이다.


45세가 된 지금도 대중은 종종 그의 결혼 여부나 어린 시절과 달라진 외모 등에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진밍의 삶을 설명하는 데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사생활이나 신체 조건이 아니다.


아홉 살에 이미 유명해졌지만 그 인기에 자신의 인생 전체를 맡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장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시기에 공부를 선택했고, 베이징대에서 새로운 분야를 배운 뒤 다시 자신이 익숙했던 문화예술 현장으로 돌아왔다.


‘꼬마 완쥔’이라는 이름은 30년 넘게 진밍을 따라다니고 있다. 그러나 카메라 앞에서 울던 아홉 살 소녀 이후의 삶은 대중이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어쩌면 진밍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린 시절의 성공을 평생 붙잡기보다 스스로 멈출 때와 다시 시작할 때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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