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오랜 역사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한 특수부대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활동했던 민족주의 무장조직의 이름을 부여하자 폴란드 정치권이 강하게 반발하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수여된 최고 국가훈장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폴란드 언론들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최근 행정명령을 통해 우크라이나 군 특수부대에 ‘우크라이나 반란군(UPA)의 영웅들’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UPA를 독립을 위해 투쟁한 저항세력으로 기념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러시아와 소련의 지배에 맞서 싸웠던 역사적 상징이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그러나 폴란드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폴란드는 UPA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3~1945년 볼히니아와 갈리치아 지역에서 폴란드계 주민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다고 보고 있다. 폴란드 역사학계와 정부는 이 과정에서 약 10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이를 ‘볼히니아 학살’ 또는 ‘볼린 대학살’로 부른다.
특히 폴란드 의회는 2016년 해당 사건을 공식적으로 ‘집단학살’로 규정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이를 일방적인 집단학살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UPA를 독립운동 세력으로 기리고 있다. 양국이 수십 년 동안 좁히지 못한 역사 인식의 간극이 이번 논란을 통해 다시 드러난 셈이다.
최근 취임한 카롤 나브로츠키 폴란드 대통령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매우 분노한다”고 밝히며 젤렌스키 대통령이 받은 ‘백수리 훈장’을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수리 훈장은 폴란드가 외국 정상에게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국가훈장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023년 안제이 두다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이 훈장을 받았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양국 협력을 강화하고 우호 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된 결과였다.
폴란드 대통령실도 우크라이나 측에 공식 입장 표명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은 대통령실 관계자를 인용해 “우크라이나의 설명을 기다리고 있으며 적절한 답변이 없을 경우 후속 조치가 검토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번 논란은 러시아의 침공 이후 가장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 온 양국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 문제의 민감성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폴란드는 전쟁 발발 이후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을 수용하고 군사·인도적 지원의 핵심 통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곡물 수입 문제와 역사 인식 문제에서는 반복적으로 갈등을 빚어왔다.
전문가들은 안보 협력이라는 현실적 필요 때문에 양국 관계가 급격히 악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면서도, 역사 문제는 언제든 정치적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잠재적 뇌관이라고 지적한다. 러시아와의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과거사를 둘러싼 기억의 충돌은 여전히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관계를 흔드는 변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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