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자 지연·국경 이동·지원 인력 공백… 스포츠와 정치의 경계에 선 이란의 북중미 월드컵
[인터내셔널포커스] 2026 북중미 월드컵이 본격적인 열전에 돌입한 가운데 이란 축구대표팀이 경기장 안팎의 변수와 싸우며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다. 선수들은 세계 최대 축구 무대에 섰지만 비자 문제와 장거리 이동, 지원 인력 공백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 대회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란 대표팀은 14일(현지시간)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해 본선 일정에 돌입했다. 15일에는 뉴질랜드와 조별리그 첫 경기를 치른다. 그러나 대회 개막을 앞둔 과정은 다른 참가국들과 비교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선수단은 미국 입국 허가를 받았지만 일부 대표단 관계자는 비자 발급이 지연되거나 승인받지 못해 선수단과 함께 입국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축구협회 관계자와 운영 인력 일부가 현장에 합류하지 못하면서 대표팀은 완전한 지원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월드컵을 시작하게 됐다.
미국과 이란은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외교 관계가 단절된 상태다. 핵 문제와 경제 제재, 중동 안보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오랜 기간 이어져 왔다. 이번 사례 역시 스포츠와 국제정치가 완전히 분리되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해석되고 있다.

비자 문제와 멕시코 베이스캠프
대부분의 월드컵 참가국은 개최국 내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해 이동 부담을 최소화한다. 안정적인 훈련 환경과 회복 프로그램 운영은 현대 축구에서 경기력 유지의 핵심 요소로 꼽힌다.
하지만 이란은 미국 내 장기 체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고려해 멕시코 국경도시 티후아나를 사실상의 훈련 거점으로 선택했다. 티후아나는 미국 샌디에이고와 인접해 있지만, 조별리그 경기를 위해서는 미국 입국 절차를 반복적으로 거쳐야 한다.
특히 이란의 조별리그 일정이 모두 미국에서 열리면서 선수단은 경기 때마다 이동과 보안 검색, 입국 심사를 반복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월드컵과 같은 단기 토너먼트에서는 이러한 이동 자체가 또 다른 경쟁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동 부담과 지원 인력 공백
국제 스포츠과학 연구에서는 장거리 이동과 불규칙한 생활 리듬이 선수들의 회복과 집중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최근 월드컵 우승국들은 이동 동선을 최소화하고 동일한 훈련 환경을 유지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란 대표팀은 이동 문제뿐 아니라 지원 인력 공백이라는 과제도 안고 있다.
현대 축구는 선수와 감독만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전력분석관, 의료진, 체력 코치, 데이터 전문가, 장비 담당자, 통역사, 행정 스태프 등이 하나의 시스템처럼 움직인다.
그러나 일부 관계자가 입국하지 못하면서 이란 대표팀은 정상적인 지원 체계를 완전히 구축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회를 시작하게 됐다. 상대 전력 분석과 훈련 운영, 경기 후 회복 프로그램 관리 등 여러 분야에서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개최국 안보 정책과 FIFA의 딜레마
미국 정부는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대규모 국제 행사에 따른 안전 관리와 국경 보안을 강화해 왔다. 미국 측은 특정 국가를 겨냥한 조치가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란 대표단의 경우 양국 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행정 절차가 더욱 복잡하게 진행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국제축구연맹(FIFA)은 정치·종교·인종·국적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으며, 모든 참가국이 공정한 환경에서 대회에 참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국제 스포츠 행사는 각국의 주권과 입국 정책이 적용되는 영역인 만큼 FIFA가 모든 행정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도 존재한다. 이번 사례는 개최국의 안보 정책과 국제 스포츠의 개방성이 어디까지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스포츠는 정치의 도구가 아닌 연결의 언어
이란 팬들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일부 해외 언론은 미국의 입국 규정과 비자 심사 등의 영향으로 상당수 이란 팬들이 현장 응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대표팀이 티후아나에 도착했을 당시 현지 이란계 주민들과 교민들은 공항에 모여 선수단을 환영했다. 이들은 국기를 흔들고 응원가를 부르며 선수들을 격려했고 "정치와 스포츠는 분리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역사를 돌아보면 스포츠는 정치와 충돌하기도 했지만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도 해왔다. 1971년 미·중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된 '핑퐁 외교'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은 미국·캐나다·멕시코가 공동 개최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월드컵이다. 참가국도 기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확대됐다. 그만큼 이동 거리와 출입국 절차, 국가별 규정 등 새로운 과제도 함께 등장하고 있다.
이란 대표팀의 사례는 단순한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대형 국제 스포츠 이벤트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보여준다. 월드컵이 진정한 세계인의 축제로 남기 위해서는 선수들이 경기장 안에서만큼은 정치가 아닌 실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환경이 보장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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