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이후 1년간 이어진 거친 외교 행보를 두고, 이는 개인 성향을 넘어 쇠퇴 국면에 접어든 초강대국이 보이는 전형적 반응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 일간 Financial Times는 21일자 칼럼에서 1956년 영국·프랑스의 수에즈 운하 사태를 사례로 들며 “지위 하락을 체감하는 강대국은 지도자가 이성적일지라도 과잉 행동에 나서기 쉽다”고 짚었다.
FT는 미국이 절대적 국력 면에서는 여전히 세계 최강이지만, 상대적 우위가 줄어드는 국면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특히 미국이 밀려나는 상대가 중국이라는 점이 과거 영국의 쇠퇴보다 더 큰 심리적 압박을 준다고 봤다. 영국은 패권을 같은 영어권·서구 민주 진영의 미국에 넘겼다는 자기 합리화가 가능했지만, 미국은 인종·문화·제도 면에서 전혀 다른 중국의 부상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FT는 트럼프의 공격적 외교를 이 같은 구조적 불안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례로 해석했다. 그린란드 발언, 카리브해에서의 무력 시위, 동맹국을 향한 압박 외교는 쇠퇴기에 접어든 강대국이 위신 회복을 시도할 때 흔히 나타나는 행동 양식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이런 경향은 트럼프 개인의 특이성에 국한되지 않으며, 다른 ‘보통의 대통령’ 아래서도 반복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수에즈 위기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선택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당시 영국 총리 앤서니 이든은 극단적 민족주의자가 아닌 교양 있는 외교가였지만, 지위 하락에 대한 불안은 결국 무력 개입이라는 오판으로 이어졌다. 프랑스의 알제리 전쟁, 영국의 유럽 통합 외면 역시 장기적 판단 착오로 남았다.
FT는 미국의 쇠퇴가 당시 영국·프랑스처럼 급격하지는 않다고 전제했다. 미국은 여전히 경제·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강국이다. 다만 제재의 효력이 예전 같지 않고,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중국과의 격차를 간신히 유지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대중(對中) 군사적 우위 역시 2000년대 초반과는 비교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FT는 이런 불안이 트럼프 이전부터 누적돼 왔다는 점도 짚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이미 미국은 ‘규칙 기반 국제 질서’에 불편함을 드러냈고,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대한 강한 반감이 그 단면이었다. 문제의 뿌리는 특정 지도자라기보다 미국이 느끼는 상대적 쇠퇴 의식에 있다는 분석이다.
FT는 흔히 인용되는 투키디데스의 말, “강자는 원하는 것을 하고 약자는 감내한다”는 명제 역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국은 전성기였던 2차 세계대전 직후, 힘을 과시하기보다 마셜 플랜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통해 질서를 구축했다. 미국의 공격성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시점은 힘이 정점에 있었을 때가 아니라, 우위가 흔들리기 시작한 이후라는 것이다.
칼럼은 “국가는 정점에 있을 때 관대해지고, 지위가 흔들릴 때 집착과 공격성이 고개를 든다”며,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 아닌 ‘여러 강대국 중 하나’라는 현실에 적응하기 전까지 불안정한 행보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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