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투데이] 중국 지린성 훈춘.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러시아와 맞닿은 이 국경 도시는 겉으로는 평범한 소도시처럼 보인다. 거리에 늘어선 ‘조선풍미’ 간판의 고깃집과 김치 가게, 저녁 무렵 삼삼오오 모여 숯불에 고기를 굽는 풍경은 활기를 더한다. 그러나 이곳의 일상에는 언제든 긴장감이 배어든다.
최근 필자가 찾은 훈춘의 한 조선족 고깃집. 주문을 받던 가게 주인 여성이 서툰 중국어로 불쑥 “동지(同志)”라는 말을 꺼냈다. 순간 공기가 묘하게 얼어붙었다. 기자가 조선어로 “나는 라선(羅先) 사람”이라고 농담삼아 응대하자, 그녀의 얼굴은 삽시간에 굳어졌고, 옆에 있던 남편은 주걱을 움켜쥔 채 황급히 자리를 피하라고 손짓했다. 국경 너머의 긴장이 식당 안에 스며든 순간이었다.
훈춘은 오래전부터 조선족의 터전이었다. 19세기 중엽 조선 북부의 기근과 전쟁을 피해 가족 단위 이주가 이어졌고, 이들은 봄에 농사를 짓고 가을이면 돌아오는 ‘춘경추귀(春耕秋歸)’를 반복하다 정착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망명객과 독립운동가들이 몰려들며 ‘경계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훈춘의 골목 곳곳엔 조선족 문화가 남아 있다.
그러나 이곳의 주방을 지키는 이들 가운데엔 조선족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신분을 감춘 채 건너온 북한 여성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은 끊이지 않는다. 1334km에 이르는 중조 국경은 철저히 관리되고 있지만, 얕은 강을 걸어서 건너거나 겨울에 결빙된 강 위로 차량이 다니는 일도 여전히 있다. 감시 장비와 드론이 배치됐어도 “구멍 없는 국경은 없다”는 말은 현실로 남아 있다.
과거엔 인삼 채취나 벌목 같은 경제활동을 위해 넘는 경우가 많았다면, 오늘날엔 생계가 이유다. 특히 여성들은 중국 농촌의 ‘신부’로 맞이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쌀 한 자루면 북한 아내를 얻는다”는 말이 돌던 시절도 있었다. 발각될 경우 본인뿐 아니라 북에 남은 가족까지 처벌받을 수 있기에, 그들은 더욱 조심스럽게 숨어 산다.
그러나 또 다른 현실도 존재한다. 연변 일대의 식당이나 호텔에는 북한 당국의 파견으로 합법적으로 일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관광업과 서비스업에서 ‘외화벌이 노동력’으로 동원된 이들은 같은 언어와 음식을 매개로 조선족 사회와 섞여 살아가지만, 여전히 정치적 감시와 제약 속에 놓여 있다. 합법과 비합법, 생존과 통제가 교차하는 국경의 풍경이다.
국경은 단순히 땅을 가르는 선이 아니다. 사람들의 삶을 나누면서도, 동시에 이어주는 경계다. 훈춘의 작은 식당에서 무심코 튀어나온 ‘동지’라는 말 한마디는, 이 땅에 스며든 이주의 흔적과 생존의 이야기를 드러냈다.
남는 질문은 우리 몫이다. 생존을 위해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는 이들을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 법은 냉정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국경의 긴장과 일상의 온기가 교차하는 훈춘에서, ‘법과 연민의 경계’가 다시 묻고 있다.
BEST 뉴스
-
전 세계 한글학교, 민화로 하나되다
△제14회 발표회(10.20) 개최식 기념촬영 © 지구촌한글학교미래포럼 [동포투데이]지구촌한글학교미래포럼(공동대표 박인기·김봉섭)은 20일 서울 강남구 한국전통문화원에서 제14회 발표회를 열고, 한국 민화를 주제로 한글학교 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논의했다. 이번 행사는... -
中 외교부, 희토류 수출 규제 관련 입장 재확인
[동포투데이] 중국 외교부가 희토류 수출 규제 정책과 관련해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10월 28일 정례 브리핑에서 궈자쿤 외교부 대변인은 “희토류 수출 관리 조치는 체계 규범화와 제도 완성을 위한 것으로, 국제 관행에 부합한다”며 “세계 평화와 지역 안정,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위한 국제 의무 이행이 목적... -
시진핑, 이재명에 샤오미 스마트폰 선물…“백도어 확인해보라” 농담
[동포투데이]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한국 이재명 대통령이 경주에서 열린 회담 자리에서 서로 선물을 교환하며 친선을 다졌다. 시주석은 이대통령과 부인에게 샤오미 플래그십 곡면 스마트폰과 전통 문방사우를 선물로 전달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스마트폰의 통신 보안 문제를 농담 삼아 묻... -
“중국이 아니라 변화가 두렵다” — 한국 내 반중 감정의 진짜 이유
[동포투데이]서울 명동의 한 카페. 28세 직장인 지수 씨는 휴대전화에 뜬 ‘중국 전기차, 한국 시장 점유율 15% 돌파’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곧장 ‘화나요’ 버튼을 눌렀다. “또 시장을 뺏긴다는 건가요?” 이런 반응은 요즘 한국 사회에서 낯설지 않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
트럼프-시진핑, 한국서 회담…양국 “소통은 유지, 결과는 미지수”
[동포투데이]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오는 10월 30일 한국에서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이후 양국 정상이 처음으로 마주 앉는 자리로, 미·중 간 대화와 분쟁 관리 채널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만남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
“아기만은 살려야”…오산 화재서 두 달 된 아기 이웃에 건넨 중국인 여성, 추락사
[동포투데이] 20일 새벽 경기도 오산의 한 상가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해 중국인 여성이 두 달 된 아기를 이웃에게 건네 탈출시키고 자신은 불행히도 추락해 숨졌다. 오산소방서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 35분께 오산시 한 5층짜리 상가주택에서 불이 났다. 5층에 거주하던 30대 중국 국적 여성은 불길이 ...
NEWS TOP 5
실시간뉴스
-
일본 보이그룹 광저우 팬미팅 취소… 다카이치 발언 후폭풍 중국 내 확산
-
다카이치 ‘대만 유사’ 발언 후폭풍… 中 “침략행위면 정면타격”, 日 내부도 강력 비판
-
“대만 문제 외부 개입 안 돼”… 국민당, 日 총리 발언 강력 경고
-
日 의원 “中, 유엔 승인 없이도 일본 군사 타격 가능” 발언 파문
-
日 전직 총리 3인, 다카이치에 일제히 경고… “경솔한 발언 말라, 대만은 중국의 일부”
-
中, 황해 한복판서 실탄 사격 훈련… 주변국 “왜 지금이냐” 촉각
-
中 해방군보 “일본, 대만해협 개입은 파국으로 가는 길”
-
中日 외교 갈등 격화…中, 日 대사 초치·강경 대응
-
일본행 경고 하루 만에… 중국 항공사들 일제히 ‘전액 무료 환불’
-
다카이치 대만 발언에 베이징 ‘불호령’… 중·일 관계 또 흔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