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훈
26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의 한 오피스텔 옥상에서 40대 어머니와 두 딸이 추락해 숨졌다. 외부 침입 흔적도,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극단적 선택에 무게를 두고 있다. 또다시 부모와 자녀가 함께 목숨을 잃는 참혹한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단순히 “가족의 안타까운 선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세상을 등지는 행위는 자살이 아니라 살인이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은 개인의 결정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삶을 펼쳐 나가야 할 아이의 미래를 함께 끊어버리는 행위는 그 어떤 사정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반복되는 이른바 ‘동반 자살’은 사실상 ‘아동 살해 후 자살’이다. 그럼에도 언론은 여전히 “가슴 아픈 사연”, “동반 선택”이라는 표현으로 사건을 포장하며 동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아이의 억울한 죽음을 지우고, 가해자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위험한 서사일 뿐이다. 이제 ‘동반 자살’이라는 말은 더 이상 쓰여서는 안 된다.
물론 이런 극단적 비극의 배경에는 가족 중심 문화, 경제적 불안, 양육 부담, 사회 안전망의 부족 같은 구조적 현실이 놓여 있다. “내가 없으면 아이도 살 수 없다”는 절망적 사고는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왜곡된 결과다. 따라서 국가와 사회가 제도적 개입과 지원 체계를 강화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도 아이의 생명을 빼앗을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분명히 말해야 한다. 아이를 죽음으로 끌고 간 행위는 부모의 선택이 아니라 명백한 범죄다. 사회는 안타까움 뒤에 숨어 동정하는 대신, 냉정하게 이를 비판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언론 또한 ‘동반 자살’이라는 표현으로 사건을 미화하거나 흐려서는 안 된다.
죽음을 선택할 자유는 개인에게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타인의 생명, 특히 아무 잘못 없는 아이의 미래까지 빼앗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아이와 함께한 죽음을 단순히 ‘가족의 비극’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넘어, 우리는 그것을 범죄로 규정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사회적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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