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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핵잠수함의 아버지 황쉬화, 고향에 영면

  • 화영 기자
  • 입력 2025.06.2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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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투데이] 중국 핵잠수함 개발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황쉬화(黄旭华) 중국공정원 원사가 29일 고향인 광둥성 산웨이(汕尾)시에서 영면에 들었다. ‘공화국 훈장’과 ‘국가 최고 과학기술상’을 받은 그는 중국 최초의 핵잠수함 설계 총책임자로, 생전에 “이 생은 조국을 위하여, 이 생은 핵잠수함을 위하여, 이 생은 후회 없이 살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문장이 그의 묘비 뒤편에 새겨져, 이른 더위 속 조용히 그를 배웅한 조문객들의 마음을 적셨다.


묘소는 산웨이 훙하이완(红海湾) 경제개발구 ㄴ내의 항일열사묘역 옆에 조성됐다. 삼각플라워가 무성히 피어난 자리, 푸른 노송과 측백이 둘러싼 작은 묘에는 황 원사의 유해가 조용히 안치됐다. 묘비 양옆으로는 자필로 쓴 시구와 생애를 담은 석판이 나란히 놓였다. 하나는 그가 핵잠수함 심해 실험에 직접 탑승해 성공을 거둔 뒤 적은 글귀, 또 하나는 평생의 연구 여정을 간결히 정리한 생애 요약이다.


황쉬화는 1926년 광둥성에서 태어나, 국립교통대학(현 상하이교통대학)에서 선박 제조를 전공했다. 1958년 중국 정부가 ‘국가 최고 기밀’로 핵잠수함 프로젝트를 승인하면서 그는 29명의 핵심 설계진 가운데 한 명으로 발탁됐다. 이후 30여 년간 고향을 찾지 않았고, 가족에게조차 자신의 업무를 알리지 못한 채 침묵 속 연구를 이어갔다. ‘가족에게도 편지를 쓸 수 없었던 세월’로 기록되는 이 시기는, 황 원사 스스로 “후회 없는 삶”이라고 말했던 삶의 핵심이었다.


황 원사는 올해 2월 6일 후베이성 우한에서 병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9세. 긴 세월 동안 중국에서조차 그의 이름은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한 사람의 과학자, 한 사람의 기술자가 한 시대를 어떻게 지탱해 왔는지에 대한 기억은, 이제 묘소 너머 그가 남긴 세 줄의 문장 속에 깊이 새겨지고 있다.


묵묵히 걸어온 과학자의 길, 말없이 감당한 시대의 책임, 그리고 조국이라는 이름 앞에 놓고 간 후회 없는 삶. 황쉬화의 묘소는 그저 한 사람의 안식처가 아니라, 중국 근현대 과학기술사의 조용한 이정표이자, 조국과 기술을 동시에 껴안았던 한 세대의 상징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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