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투데이] 길림성 동부에 위치한 연변은 국내 최대 조선족 집단 거주지로 언어, 풍속, 가무, 예의 등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는 민족적 정서가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연변은 예로부터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된 곳으로, 상업 분야에서도 수많은 인재가 배출되고 있다. 특히 개혁개방 이후 많은 뜻있는 젊은이들이 시대의 기회를 포착하고 전국 각지와 각 분야에서 비범한 용기와 탁월한 비즈니스 지혜에 의존하여 연변 사람들의 비즈니스 전설을 창조했다.
고향의 뛰어난 민간 기업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2024년 후룬 글로벌 부자 목록'과 A주, H주 시장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총 8명의 억대 연변 출신 재력가를 발굴해 이번 '2024년 연변 8대 부자'를 구성했다. 이번에 후보에 오른 8명은 현재 총 232억 위안(한화 약 4조 5,353억 6,800만원) 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중 한 사람의 자산 가치는 100억 위안9한화 1조 9,549억 원원)이 넘는다.
이번에 채택한 자산 통계 규칙은 '후룬 글로벌 부자 리스트 2024에 포함된 기업가의 경우 리스트의 데이터를 직접 인용하고, 리스트에 없는 기업가의 경우 (기업의 최신 시가총액 * 지분율 + 지난 몇 년간의 귀속 순이익 + 지난 몇 년간의 지분율 감소로 인한 누적 이익) 방식을 채택하여 기업의 가치를 계산했다.
No.8 주셴밍(朱先明)
주라오류(朱老六) 식품의 주셴밍(朱先明) 회장은 1968년 연변 훈춘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향인 훈춘시 허난간장공장의 평범한 작업장 노동자였다. 1991년 주셴밍은 빌린 2,000위안(한화 40만원)을 창업 자본으로 사용하여 발효두부(腐乳) 생산을 위한 푸민간장공장을 설립했다. 1990년대에는 거의 모든 현에 발효두부 공장이 있었지만 품질은 천차만별이었다. 푸민발효두부가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품질을 왕처럼 고집하는 주셴밍의 고집 덕분이었다.
새 세기에 접어들면서 더 큰 발전 기회를 얻기 위해 주셴밍은 성도 창춘에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다. 가족에서 여섯째인 그는 회사 이름을 "주라오류"로 지었다. 2005년 발효두부 산업은 큰 개편을 시작했고, 주라오류는 우수한 제품 품질에 의존하여 산업의 변화 속에서 빠르게 성장하여 마침내 길림성 조미료 산업의 선도 기업으로 되었다. 주셴밍 가족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재산은 약 7억 위안(한화 1,368억4,300만원)이다.
No.7 쉬쑹산(許松山)
제약회사 노스랜드바이오(诺思兰德·Northland Bio) 회장 쉬쑹산(許松山)은 1960년 연변(延邊)에서 태어났다. 현지의 연변대학을 졸업한 후, 쉬쑹산은 교수로 남았다. 1989년 지린화학공업주식회사 산하의 직업병연구소 소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야타이그룹(亚泰集团) 부회장으로 근무했다. 2004년 쉬쑹산은 동생 쉬일산과 함께 베이징으로 건너가 제약회사 노스랜드바이오를 설립했으며 수년간의 혁신과 발전을 거쳐 현재 노스랜드는 유전자 치료제, 재조합 단백질 약물 및 안과용 약물의 연구 개발, 생산 및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혁신적인 바이오 제약회사로 성장했다. 쉬쑹산 가족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재산은 약 8억 위안(한화 1564억원)에 달한다.
No.6 신윈펑(辛云峰)
제팡커지(捷邦科技) 회장인 신윈펑(辛云峰)은 1973년 연길시에서 태어났다. 1990년대 중반, 중학교를 졸업한 후, 신윈펑은 홀로 남부 선전으로 가서 혼자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다가 한 전자 공장에 지원하여 영업사원이 되었다. 2002년 신윈펑은 다른 사람과 동업하여 주로 고무 노동보호용품을 생산하는 심천우사달 플라스틱 제품 회사를 설립했다. 2007년 신윈펑은 지분을 매각한 뒤 둥관에 제트본 테크놀로지를 차리고 제2의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 고무 노동보호용품 사업이었지만 2014년 회사 전환을 이끌며 정밀 기능 부품 분야에 진출했고 2018년 드론, 3D 프린팅, 충전기 등 신흥 산업으로 확장했다. 현재까지 제방커지는 업계 일류 수준의 고도로 맞춤화된 정밀 기능 부품 및 구조 부품 생산 서비스 제공업체로 성장했습니다. 현재 신윈펑이 보유한 자산은 약 9억 위안(한화 1,759억 4,100만원)에 달한다.
No.5 리쩌룽(李哲龙)
톈양신소재(天洋新材) 회장 리쩌룽(李哲龙)은 1963년 연길시에서 태어났다. 톈진대를 졸업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 연변도로버스공장 기술자로 일했고, 1986년 뛰어난 실력을 보여 연변변과학기술정보연구소 주임으로 발탁됐다. 1993년 회사를 그만두고 남하하여 창업한리쩌룽은 스자좡(石家庄) 징화학, 상하이 싼런(三仁)화공 등의 기업 설립에 참여했고, 이 기간 동안 자신의 자본 축적을 차근차근 완성했다.
2002년, 리쩌룽은 상하이에 톈양신소재의 전신인 톈양 핫멜트접착제 유한공사를 설립했다.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 그의 노력으로 톈양 신소재는 세계적인 핫멜트 접착제 재료 제조업체로 성장했으며, 제품은 건축 자재, 의류 및 섬유, 태양광 신에너지, 전자제품 등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리쩌룽과 그의 가족은 현재 약 10억 위안(한화 1,954억 9,000만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No.4 궈슈친(郭淑芹)
길림아오동(吉林敖东)의 부회장 겸 총경리인 궈슈친(郭淑芹)은 1963년에 태어났다. 18세에 아오동제약공장에 회계사로 입사하여 40년 동안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성실한 업무 태도와 뛰어난 업무 능력으로 궈슈친은 재무부 감독관, 재무부 부국장, 재무부 이사, 재무부 장관, 부총경리 등을 거쳐 2017년에는 길림아오동의 부회장 겸 사장으로 선출되어 공식적으로 길림아오동의 '이인자'가 되었다. 현재 궈슈친은 직간접적으로 총 5,894만 주에 달하는 길림아오둥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며, 연간 귀속 순이익을 계산하면 궈슈친의 현재 자산은 10억 위안(한화 1,954억 9,000만원)에 달한다.
No.3 쑨장타오(孙江涛)
선저우디지털(神州数字) 회장인 쑨장타오(孙江涛)는 1977년 연길시에서 태어났다. 상인 집안 출신으로 조상 3대가 장사로 살아온 영향으로 쑨장타오는 어릴 때부터 또래와 다른 사업 재능을 보였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지우개를, 중학교 때 스케이트와 우표를 팔았던 경험이 최초의 비즈니스 계몽이 됐다. 그럼에도 그의 학업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고, 고교 졸업 후 우수한 성적으로 베이징항공항천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캠퍼스에서 컴퓨터 기술 서적을 직접 집필해 졸업도 하기 전에 무려 70여만 위안(한화 1억 3,684만원)을 벌어들이며 유명인사가 됐다.
2001년 게임 캐쉬 충전 대행업체를 차린 쑨장타오는 돈방석에 앉았다. 2004년에는 선저우페이를 설립하고 지역 간 부가가치 통신 사업 허가를 성공적으로 획득했다. 2013년에는 선저우페이를 기반으로 선저우 디지털 금융 기술 그룹을 설립하여 현재 업계에서 잘 알려진 금융 기술 및 블록체인 기술 응용 서비스 제공업체로 발전했다. 현재 쑨장타오의 자산은 약 22억 위안(한화 4,300억 7,800만원)에 달한다.
No.2 리슈린(李秀林)
길림아오둥(吉林敖东)의 회장인 리슈린(李秀林)은 1953년 연변 돈화시에서 태어났다. 1972년, 의과대를 졸업한 리슈린은 당시 둔화사슴농장 수의사로 발령받았다. 1981년 둔화사슴농장은 아오동제약공장을 설립해 녹태고, 이화춘캡슐 등 사슴제품의 약을 생산하였지만 기술의 한계로 인해 제품의 품질은 볼품없었다. 1984년 리슈린이 공장장으로 취임하고 과학 기술 연구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상황이 개선되었다. 리슈린의 인솔하에 아오동제약공장은 주요 제품인 '안신보뇌액'을 성공적으로 개발했으며 1987년까지 아오동제약공장의 매출은 2천만 위안을 초과하여 지린성에서 손 꼽히는 제약회사로 거듭났다.
1993년 리슈린은 아오동제약공장의 구조 조정을 주도하고 길림아오동제약그룹을 설립했다. 이 그룹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자체 이익과 손실을 책임지기 시작했으며 불과 3년 후 리슈린은 길림아오동을 선전에 상장하도록 이끌었다. 상장 이후 길림아오동은 급속한 발전 단계에 접어들었고 결국 연변 현지 민간 기업들 사이에서 황금 브랜드가 되었다. 현재 리슈린은 길림아오동에서 총 약 3억 2백만 주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의 재산은 약 46억 위안(한화 8,992억 5,400만원)에 달한다.
NO.1 홍하오(洪浩)
Asymchem(凱萊英·카이라이잉) 제약그룹의 회장 홍하오(洪浩)는 1956년 연변 돈화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해외 유학파 박사인 동시에 이번 차트에서 가장 높은 학력을 가진 사람이다. 1977년 중국 수능시험 회복 후 첫 해, 우수한 성적으로 화서 의과대학에 입학한 홍하오는 졸업 후 중국 의과대학에 진학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조지아대에서 포스트 닥터 과정을 밟으면서 연구를 계속하였고 1994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카이라이잉 회사를 설립했다. 1998년 훙하오는 국가의 부름에 응해 저축한 돈 25만 달러를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왔고, 같은 해 톈진에서 켈라이잉 제약그룹을 설립했다.
바이오 제약 업계에서 다년간의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카이라이잉은 그의 리더십 아래 빠르게 성장하여 선도적인 글로벌 제약 CDMO 회사로 발돋움했다. 또한 홍하오는 2007년 연변에 투자하여 길림카이라이잉 제약·화학유한공사를 설립하여 중국 최고의 첨단 제약 중간체 및 API 공급업체로 성장시키는 등 수년 동안 고향에 적극적으로 기여해 왔다. 홍하오는 120억 위안(한화 2조 3,458억 8,000만원) 의 순자산으로 '2024년 후룬 글로벌 부자 리스트' 2038위에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