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안 진달래
박태일
흥안령은 만주에서도 북녘
몽골 너른 사막으로 올라서는 디딤돌 거기
이른 적 없어도
연길 고을 북쪽에 흥안
흥안 있으니 아침
나는 흥안 길 버스를 탄다
말 떼도 앞세울 낙타 일족도 없이
대나무 젓가락 묶음같이 촘촘한 양회 아파트
아파트 사이를 따르면
흥안 너른 언덕 세 날마다 서는 3 6 9 흥안장
흥안령 고갯마루 먼 한 자리 옮겨 놓은 듯
홰에서 갓 날아난 달구 새끼마냥 나는
달달 장마당을 도는데
검은 흙바람 흥안은 어느 때 흥안인가
지금도 아홉 해나 옛
몽골 다리강가 으뜸 오름에 서서 나는
씀바귀 엉겅퀴 보라꽃 송이송이
소낙빈 양 뿌리는 하늘을 본 적 있으니
흥안령으로 만주로 내리벋은 들은
쓸쓸하지 않았는데
흥안령 오르기도 앞서
흥안장 돌아내린 나
그 길가에 몽우리 진달래
서너 묶음 꺾고 앉은 할머니
진달래 뿌리처럼 거친 몸매로
오가는 사람 쳐다보며 가지를 들어 보이는
이 흥안령 고갯길은 왜 쓸쓸한가
한 번도 머물지 못한 슬픔
한 번도 떠나지 못한 이별
할머니는 연길 둘레 어느 골짝에서
4월 14일 중국 진달래절을 맞아
눈 이쁜 소녀가 찾으리라 여긴 것인가
굽어도 더 굽을 데 없이 바닥에
붙어 든 진달래 꽃가지
남은 숨소린 양 망울망울 가늘다
아 흥안령 흥안령 찾지 마라
봄도 사월 흥안장 진달래 꽃행상을 아는가
다발째 고인 한 삶
나는 아직 흥안령에 오르지 못했지만
오늘 흥안장 언덕에서 만나 다시
헤어진 할머니 곰배 허리와
가는 진달래 꽃가지 한 길이
앞으로 내가 넘을 흥안령인가 싶어
이리 보고 한참
저리 보고 한참
건넌 쪽에 섰는데
흥안령도 흥안 3 6 9장
사람들 바삐 오가는 속에서
진달래 몇 묶음 힘겹게 팔락이는 웃음 보면서
나 또한 먼 아침 가까운
저녁을 생각했는데
진달래에
금달래에
다시 진달래
할머니 피었다 진 자리
이 봄 더욱 간 봄처럼
혼자 기억할 꽃동네 한 골목이
3 6 9 흥안장
흥안 언덕에서 펄떡거린다.
박태일의 시집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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