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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일 시/흥안 진달래

  • 허훈 기자
  • 입력 2024.06.28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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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안 진달래

 

박태일

 

흥안령은 만주에서도 북녘

몽골 너른 사막으로 올라서는 디딤돌 거기

이른 적 없어도 

연길 고을 북쪽에 흥안

흥안 있으니 아침

나는 흥안 길 버스를 탄다


말 떼도 앞세울 낙타 일족도 없이

대나무 젓가락 묶음같이 촘촘한 양회 아파트 

아파트 사이를 따르면  

흥안 너른 언덕 세 날마다 서는 3 6 9 흥안장

흥안령 고갯마루 먼 한 자리 옮겨 놓은 듯

홰에서 갓 날아난 달구 새끼마냥 나는

달달 장마당을 도는데   


검은 흙바람 흥안은 어느 때 흥안인가

지금도 아홉 해나 옛

몽골 다리강가 으뜸 오름에 서서 나는

씀바귀 엉겅퀴 보라꽃 송이송이

소낙빈 양 뿌리는 하늘을 본 적 있으니

흥안령으로 만주로 내리벋은 들은  

쓸쓸하지 않았는데 


흥안령 오르기도 앞서 

흥안장 돌아내린 나 

그 길가에 몽우리 진달래 

서너 묶음 꺾고 앉은 할머니 

진달래 뿌리처럼 거친 몸매로

오가는 사람 쳐다보며 가지를 들어 보이는

이 흥안령 고갯길은 왜 쓸쓸한가 

한 번도 머물지 못한 슬픔

한 번도 떠나지 못한 이별 


할머니는 연길 둘레 어느 골짝에서 

4월 14일 중국 진달래절을 맞아 

눈 이쁜 소녀가 찾으리라 여긴 것인가

굽어도 더 굽을 데 없이 바닥에 

붙어 든 진달래 꽃가지

남은 숨소린 양 망울망울 가늘다


아 흥안령 흥안령 찾지 마라

봄도 사월 흥안장 진달래 꽃행상을 아는가

다발째 고인 한 삶

나는 아직 흥안령에 오르지 못했지만

오늘 흥안장 언덕에서 만나 다시

헤어진 할머니 곰배 허리와  

가는 진달래 꽃가지 한 길이 

앞으로 내가 넘을 흥안령인가 싶어  

이리 보고 한참

저리 보고 한참

건넌 쪽에 섰는데  


흥안령도 흥안 3 6 9장

사람들 바삐 오가는 속에서 

진달래 몇 묶음 힘겹게 팔락이는 웃음 보면서

나 또한 먼 아침 가까운  

저녁을 생각했는데


진달래에 

금달래에 

다시 진달래

할머니 피었다 진 자리

이 봄 더욱 간 봄처럼 

혼자 기억할 꽃동네 한 골목이  

3 6 9 흥안장

흥안 언덕에서 펄떡거린다. 

 

박태일의 시집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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