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운과 세파속의 민국 여성들 [시리즈④]
[동포투데이] 정령의 원명은 장위(蒋伟)이고 자는 빙지(冰之)이며 필명으로는 <빈지(彬芷)>, <종훤(从喧)> 등이 있다.
정령(丁玲)은 중국 현대문학 사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여류작가이며 여성혁명가이다. 그는 반제 반봉건의 격류 속에서 붓대를 들고 일본침략자 및 국민당 정부와 투쟁하였을 뿐만 아니라 혁명진영 내에서 남성주체의 양성 간(两性间) 계급모순에 대해서도 명철하게 통찰하면서 이른바 혁명이란 울타리 속에 숨겨져 있는 여성기시 경향과도 투쟁하여 왔으며 여성의 입장에서 혁명군체내에 깊이 뿌리가 내린 부권제 성별 차별과 끝없는 도전을 벌여오기도 했다.
1904년 10월 12일, 호남성 임례현 여시진 고풍촌(湖南省临澧县佘市镇高丰村)에서 태어난 정령은 민국 7년(1918년), 도원 제2여자 사범학교(桃源第二女子师范学校) 예과반에 입학, 이듬해엔 장사 주남 여자중학(周南女子中学)을 거쳐 다시 장사의 악운중학(岳云中学)에서 공부하면서 <5.4운동>의 영향을 깊이 체험한다.
1922년, 정령은 진독수, 이달(李达) 등 공산주의자들이 창립한 상해의 평민여자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공산주의와 접촉했으며 이어 구추백(瞿秋白)의 소개로 공산당이 세운 상해대학 중국문학부에 입학, 다시 그 이듬해 북경으로 가 북경대학 문학과정을 방청하는 것으로 문학수양을 쌓기에 정진한다. 그 시기 정령은 처녀작 <몽가(梦珂)>를 <소설월간>에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 때로부터 정령은 문학창작에서 두각을 내보이며 많은 문학청년들과 사귀었으며 많은 활약상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창작황금기에 들어갔고 대표작의 하나이며 문단에 강열한 반향을 일으킨 <싸싸 여사의 일기(莎菲女士的日记)>를 발표했으며 첫 단편소설집<암흑속에서(在黑暗中)>를 출판하기도 했다.
그 시기 즉 1930연대 초기는 정령이 소자산계급 민주주의 문학소녀로부터 프로레타리아 혁명 문학인으로 전환되던 단계였다.
1930년, 정령은 중국 좌익작가동맹에 가입, 첫 장편소설 <위호(韦护)>를 완수하면서 비로서 무산계급 혁명가의 시각으로 세상을 통찰하는 발걸음을 뗐다. 그 뒤 1931년 정령은 좌익작가동맹의 기관간물 <북두(北斗)>의 주필 및 공청단 서기직을 맡으면서 노신(鲁迅)의 문학기발을 추켜든 영향력이 있는 좌익작가로 성장했으며 그 이듬해 중국공산당에 가입한다.
1933년 5월 정령의 인생사상 특대 사변이 발생, 국민당의 반공책동과 부저항주의 노선을 비판하고 까밝히는 정령을 눈에 든 가시처럼 보아오던 국민당 군통국 특무들은 정령을 납치해 남경으로 끌고 갔다. 그러자 5월 17일, 상해의 <대미석간(大美晚报)>은 <정령 여사 실종(丁玲女士失踪)>이란 제목으로 이 특대뉴스를 터뜨렸고 이어 상해, 천진과 북평 등 대도시의 신문들에서도 앞다투어 게재했으며 이는 한동안 사회의 열점으로 되기도 했다. 5월 23일, 채원배(蔡元培), 양행불(杨杏佛), 호유지(胡愈之) 등 38명의 인사들은 연명으로 국민정부 행정 원장과 사법부장한테 전보를 보내 납치된 정령, 번자년(潘梓年) 등 문화계 인사들을 석방할 것을 촉구하였으며 6월 10일, 상해 문화계에서는 이들을 구출하기 위한 조직을 구성해 <정령, 번자년의 석방을 위한 문화계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노신은 양우회사에 정령의 작품집 <어머니>를 다그쳐 출판할 것을 촉구, 출판과 동시에 각 큰 신문들에 광고를 대폭 실어 선전할 것을 요구했고 중국 민권보장동맹의 송경령 주석 또한 국민당 행정원장인 왕정위(汪精卫-후에 친일파로 전락)한테 전보를 보내 정령과 번자년을 석방할 것을 재삼 촉구했으며 이에 바비다(巴比塞), 로맹 롤랑(罗曼·罗兰) 등 국제우호인사들도 적극 동조하고 호응해주었다.
1936년 9월, 정령은 공산당 조직과 민주인사 및 국제우호인사들의 노력으로 성공적으로 남경에서 탈출해 연안으로 갔으며 이는 섬북에 도착한 첫 좌익작가동맹의 유명작가로서 모택동과 주은래 등의 열정적인 환영을 받게 되었다.
1940년, 10월 19일, 연안에서는 노신서거 4주년 기념모임이 있었고 당일 정령, 서군(舒群), 숙군(萧军) 등의 발족하에 연안문예월회(延安文艺月会)가 설립되었으며 그 이듬해 이 월회의 간물 <문예월보>가 창간되면서 정령, 서군과 숙군이 윤번으로 주필을 맡았다.
그 뒤 정령은 중국문예협회 주임, 중앙 경비퇀 정치부 부주임, 서북전선 봉사단 주임, <해방일보> 문예부간 주필, 섬감녕변구 문예협회 부주석 등 직에 역임, 변구건설과 문예사업을 위해 탁월한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내가 하촌에 있던 시절(我在霞村的时候)>, <병원에서(在医院中)> 등 사상성이 강한 작품을 창작했으며 1948년에는 유명한 장편소설 <태양은 상건하를 비춘다(太阳照在桑干河上)>를 완수하기도 했다.
전국이 해방된 후 정령은 연안시절의 전우들과 함께 기세 드높은 국가건설에 투신, 자신의 원고료 전부라 할 수 있는 구 화폐 1600여 만위안을 국가건설에 헌납하였다. 그리고 1952년 <태양은 상건하를 비춘다>로 소련에서 스탈린 문예상을 획득, 상금으로 받은 5만루블을 전부 중화 전국민주여성연합회 아동 복리부에 기부했다.
1955년부터 1957년까지 중국에서 불어친 반우파운동 중 정령은 <반당 소그룹> 성원, 우파분자 등 누명을 쓰고 극좌 노선의 박해를 받았으며 선후로 흑룡강의 탕원 농장과 보천령 농장(宝泉岭农场)에 쫓겨가 무려 12년간이나 노동개조에 시달렸으며 이 기간 5년은 옥중생활을 겪기도 했다.
정령의 억울한 누명은 1976년 중국의 <4인방>이 분쇄된 뒤에야 벗겨지기 시작했다. 당시 산서의 농촌에 있던 정령은 자기와 남편의 밀린 노임이 발급되자 1만원을 내놓아 당지의 농촌건설에 쓰이도록 했다.
1984년 중공중앙 조직부에서는 <정령동지의 명예를 전면 회복시켜 줄데 관한 통지>를 발부, 다년간 그한테 가해진 억울한 죄명을 깨끗이 청산해주었으며 <정령 동지는 당과 혁명에 충실한 공산당원>이라고 긍정했다.
만년에 들어 정령은 <괴물세계(魍魉世界)>, <풍설인간(风雪人间)> 등 100만자에 달하는 작품을 창작, 또한 문학잡지 <중국>을 창간하고 주필로 있으면서 많은 청년작가들을 양성하기도 했다.
1986년 3월 4일, 정령은 북경 다복골목에 있는 저택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향년 82세였다.
부록: 정령의 가족 상황
남편 진명(陈明): 정령이 연안시절에 사귀고 결혼했던 남편으로 정령이 서거한 후 줄곧 정령의 유고(遗稿)를 정리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들 장조림(蒋祖林): 고급공정사, 저서로는 <나의 모친 정령> 등이 있음
딸 장조혜(蒋祖慧): 중국의 제1대 발레무극의 연출, 대표작으로는 <홍색낭자군(红色娘子军)>, <축복(祝福)> 등이 있음
손녀 호연니(胡延妮): 현재 미국 모토로라(摩托罗拉) 전자유한회사 주 중국대표임
ⓒ 인터내셔널포커스 & www.dspdaily.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
사료 왜곡 논란 부른 《태평년》의 ‘견양례’
글|안대주 최근 중국에서 개봉한 고장(古裝) 역사 대작 드라마 《태평년》이 고대 항복 의식인 ‘견양례(牵羊礼)’를 파격적으로 영상화하면서 중국 온라인을 중심으로 거센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여성의 신체 노출과 굴욕을 암시하는 연출, 극단적인 참상 묘사는 “역사적 사실을 넘어선 과도한 각색”... -
중국의 도발, 일본의 침묵… 결승전은 반전의 무대가 될까
“일본은 코너킥으로만 득점한다.” “선수들은 어리고, 쓸모없다.” “일본은 이미 끝났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 말이 사실이라면 좋겠지만, 문제는 축구가 언제나 말과 반대로 흘러왔다는 점이다. 이런 발언은 종종 상대를 무너뜨리기보다, 잠자고 있던 본능을 깨운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괜... -
[기획 연재 ①] 황제의 방종, 백성의 금욕
중국 전통 사회의 성 문화는 하나의 얼굴을 갖지 않았다. 그것은 계층에 따라, 권력의 높이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작동했다. 누군가에게 성은 권력의 특권이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지켜야 할 의무이자 족쇄였다. 이 극단적인 대비의 출발점에는 언제나 황제가 있었다. 중국 역사에서 황제는 단순한... -
[기획 연재 ④] 총과 권력이 만든 성의 무법지대
중국의 권력 질서는 단선적이지 않았다. 황제가 제도를 만들고, 사대부가 이를 해석하며, 향신이 지역 사회에 적용하는 동안에도, 제도의 균열은 늘 존재했다. 그 균열이 극대화될 때 등장하는 존재가 군벌이었다. 군벌은 법의 산물이 아니었고, 윤리의 결과도 아니었다. 그들은 오직 무력을 통해 권력을 획득했고, 그 ... -
서울에서 2년, 드라마가 말하지 않는 ‘한국의 계급’
글|안대주 서울에서 2년을 살고 나서야, 이 말을 꺼낼 수 있게 됐다. 현실의 한국 사회는 우리가 드라마를 통해 익숙해진 모습과는 크게 다르다. 회사의 해외 파견으로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머릿속은 한류 드라마의 장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재벌가와 상속자, 가난한 주인공의 신... -
“팬심을 넘어 산업으로”… K-팝 팬덤 문화의 또 다른 얼굴
글|이금실 한국의 K-팝 팬덤 문화는 더 이상 ‘열정적인 취미’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해외 거주 경험자들 사이에서는 이 문화가 고도로 조직된 감정 산업이자, 팬을 동원하는 정교한 노동 시스템이라는 평가가 확산되고 있다. 팬은 소비자이기 이전에 성과를 만들어내는 생산 주체이며, 이 산업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