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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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도 친중(親中)하면 조선족?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4.07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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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적지] 용정 3.13 반일의사릉
- 이민·국적
- 재외동포
2021.03.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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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조선족의 역사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3.0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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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용군과 만주독립군 활동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2.2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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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조선족학교 수는?
- 이민·국적
- 재외동포
2021.01.1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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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도문 보내라"
- 10913
- 정치
- 10922
2020.08.3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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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레 우물에 묻힌 옛 동네의 이야기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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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혁명에 이바지한 외국인 장군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8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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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진의(秦怡)-눈물겨운 김염(金焰)과의 결혼생활④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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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진의(秦怡)-눈물겨운 김염(金焰)과의 결혼생활②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0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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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살던 마을 와룡동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0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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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울령 저쪽에 고려마을이 있었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7.19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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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레 우물과 포대 그리고 장성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7.1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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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해변 일본군이 지켰더라면?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6.2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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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0주년 특별기획] 한반도 전쟁과 그것이 남긴 기나긴 여운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0.06.2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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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도 친중(親中)하면 조선족?
●김정룡(多가치 포럼 위원장) 지난 22일 SBS가 ‘조선구마사’라는 드라마(사극)를 방송하자 대한민국이 한바탕 떠들썩하게 비판에 들끓었다. 드라마 속에서 조선 기생집이라고 설정된 배경이 있는데 전형적인 중국식 가옥의 형태를 띄고 있고 식탁에는 중국 음식인 월병, 피단, 양갈비, 중국식 만두, 중국...-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4.07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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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적지] 용정 3.13 반일의사릉
[동포투데이]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지신진 합성리촌에 자리한 3.13반일의사릉에는 1919년 3.13반일운동에서 희생된13명의 의사가 묻혀있다. 약 500평방미터의 면적을 차지하는 릉원은 앞줄에 9자리, 뒷줄에 4자 리로 이뤄졌다. 14명 의사 중 한명의 묘소는 유가족에 의해 이장됐다. ...- 이민·국적
- 재외동포
2021.03.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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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조선족의 역사
● 김 규 조선족은 중국에 살고 있는 한민족으로 대개 조선시대 말부터 중국으로 이주하여 생활하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형성된 역사가 짧기에 여기서 잃어버린 역사 얘기를 하게 되면 대부분 조선족 지식인들이나 역사학가들은 실소를 금할 수 없을 것이다. 백여 년밖에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3.0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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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용군과 만주독립군 활동
● 김 규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조선의용군’을 검색해보면 만주에서 싸우던 독립군 부대라고 버젓이 나온다. 해서 만주에서 조선의용군 혹은 조선 의용대가 싸웠거니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조선의용군이 곧 조선독립군이고 만주에서 만들어진 조선독립군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2.2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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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조선족학교 수는?
[동포투데이] 중국 조선족 교육의 기원은 1906년 연변 용정에 세워진 서전서숙이다. 그 후 연변의 서전서숙을 시작으로 하여 요녕, 길림, 흑룡강 등지에 조선인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하여 세운 사립학교들이 우후죽순처럼 일떠서기 시작하였다. 1949년 신 중국 ...- 이민·국적
- 재외동포
2021.01.1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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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도문 보내라"
▲2013년에 공개된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추정 사진. [동포투데이]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올해도 보내지 않는 것으로 전해져 큰 논란이 예상된다. 매년 9월 1일에는 도쿄도 내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일본 시민단체 주도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0913
- 정치
- 10922
2020.08.3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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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레 우물에 묻힌 옛 동네의 이야기
●김호림 “그게 무슨 말이냐”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이지 봉창을 두드리는 소리 같기 때문이었다. 용정은 1886년 조선인들이 지은 이름이지만 최초의 주민은 조선인이 아니었다고 한다. 동네 지명 역시 이 용정이 첫 이름이 아니라고 한다. 용정에 처음으로 조선인 마을이 생긴 것은 1877년 봄이었...-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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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혁명에 이바지한 외국인 장군들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중국 노농홍군이 강행한 2만5000리 장정에 참가한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외국인들도 있었다. 거기에는 저명한 외국국적 공산당원이 있었는가 하면 이름도 남기지 않은 ‘무명영웅’도 있었다. 또한 장정도중 홍군을 위하여 많은 유익한 일을 한 외국인 전도사도 있었다. 그럼 오늘 이 글에...-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8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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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진의(秦怡)-눈물겨운 김염(金焰)과의 결혼생활④
▲김염과 왕인미.ⓒ인터넷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왕인미는 1914년 호남 장사에서 태어났다. 당시 그녀의 부친 왕정권(王正权)은 일명의 교사로서 지식이 연박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 고귀한 것은 사상이 아주 개명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왕인미한테 몇 명의 언니가 있었지만 왕정권은 딸...-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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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진의(秦怡)-눈물겨운 김염(金焰)과의 결혼생활②
▲진의와 유명 영화배우 김염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이혼 후 진의는 다시는 결혼하지 않고 모든 정력을 쏟겠노라고 맹세했다. 하지만 맹세는 어디까지나 맹세에 그쳤고 실행은 아니었다. 그리고 진의의 그러한 맹세는 조선인 남자 김염(金焰)의 등장으로 크게 흔들렸다. 김염(원명: 김덕린) ㅡ 1910년 조선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0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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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살던 마을 와룡동
●김호림 창동학교는 8.15광복을 맞은 후 다시 와룡동에 부활한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서쪽 산비탈의 옛 터를 버리고 마을 북쪽의 평지에 따로 학교 건물을 세웠다. 김동욱옹은 어릴 때 새로 지은 이 창동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때 그가 학교를 내놓고 또 과외처럼 즐겨 다니던 곳이 있었다. 그와...-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0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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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울령 저쪽에 고려마을이 있었다
예전에 도문에서 훈춘으로 가려면 꼭 그 산마루를 넘어야 했다. 일명 까울령, 그 무슨 까마귀가 날아가다가 울음을 떨어뜨린 이름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산이 하도 가파르고 높아서 새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넘었을까. 까울령은 두만강 기슭까지 머리를 쭉 내밀고 장벽처럼...-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7.19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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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레 우물과 포대 그리고 장성
●김호림 마을 한복판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다. 반듯한 돌로 둘레를 쌓아올렸고 용두레를 잣아 드레 박으로 물을 퍼서 올렸다. “물이 많고 맑았는데 맛 또한 좋았지요.” 최흥수씨는 우물처럼 깊은 기억을 퍼서 다시 눈앞에 떠올렸다. 그는 이 우...-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7.1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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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해변 일본군이 지켰더라면?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1944년 6월의 노르망디 전역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일장 결정적인 의의가 있는 중대한 전역이었으며 영미동맹군이 상륙작전에서 성공하여 제 2의 전장을 개척한 전역이기도 했다. 하다면 당시 가령 노르망디 해변을 지킨 군대가 일본군이었다면 상황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6.2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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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0주년 특별기획] 한반도 전쟁과 그것이 남긴 기나긴 여운
●철 민 한 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 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양이 그립구나 철조망이 가로막혀 다시 만날 그 때까지 아ㅡ 소식을 물어본다 한 많은 대동강아 … 이 노래는 우리 민족 분단의 괴로움을 잘 반영한 노래이고 무려 70여 년간 불려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0.06.2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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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도 친중(親中)하면 조선족?
●김정룡(多가치 포럼 위원장) 지난 22일 SBS가 ‘조선구마사’라는 드라마(사극)를 방송하자 대한민국이 한바탕 떠들썩하게 비판에 들끓었다. 드라마 속에서 조선 기생집이라고 설정된 배경이 있는데 전형적인 중국식 가옥의 형태를 띄고 있고 식탁에는 중국 음식인 월병, 피단, 양갈비, 중국식 만두, 중국술이 올라 있었다. 그리고 OST(드라마 주제곡) 월아고-고쟁독주, 고산류수-고금독주에 사용되는 현악기가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4.07 07:43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4.07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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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적지] 용정 3.13 반일의사릉
[동포투데이]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지신진 합성리촌에 자리한 3.13반일의사릉에는 1919년 3.13반일운동에서 희생된13명의 의사가 묻혀있다. 약 500평방미터의 면적을 차지하는 릉원은 앞줄에 9자리, 뒷줄에 4자 리로 이뤄졌다. 14명 의사 중 한명의 묘소는 유가족에 의해 이장됐다. 조선인들이 항일무장투쟁의 길로 나아가게 된 계기로 볼 수 있는 용정 3.13반일운동은 조...- 이민·국적
- 재외동포
2021.03.16 09:00
- 이민·국적
- 재외동포
2021.03.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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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조선족의 역사
● 김 규 조선족은 중국에 살고 있는 한민족으로 대개 조선시대 말부터 중국으로 이주하여 생활하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형성된 역사가 짧기에 여기서 잃어버린 역사 얘기를 하게 되면 대부분 조선족 지식인들이나 역사학가들은 실소를 금할 수 없을 것이다. 백여 년밖에 안되는 조선족 역사에 그 무슨 비밀 같은 것이 있으며 잃어버린 것이 있을쏘냐고...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3.02 13:26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3.0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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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용군과 만주독립군 활동
● 김 규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조선의용군’을 검색해보면 만주에서 싸우던 독립군 부대라고 버젓이 나온다. 해서 만주에서 조선의용군 혹은 조선 의용대가 싸웠거니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조선의용군이 곧 조선독립군이고 만주에서 만들어진 조선독립군 백두산 독립군이나 만주 독립군이라고 생각하고 나아가서 항일연군에도 가담하지 않았나 혹은 항일연군에 속...-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2.2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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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기고
2021.02.2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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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조선족학교 수는?
[동포투데이] 중국 조선족 교육의 기원은 1906년 연변 용정에 세워진 서전서숙이다. 그 후 연변의 서전서숙을 시작으로 하여 요녕, 길림, 흑룡강 등지에 조선인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하여 세운 사립학교들이 우후죽순처럼 일떠서기 시작하였다. 1949년 신 중국 창립 이후 조선족 교육은 중국 정부의 민족정책하에 신속한 발전을 가져왔다. 특히는 1979년 개혁개방 이후...- 이민·국적
- 재외동포
2021.01.16 15:30
- 이민·국적
- 재외동포
2021.01.1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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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도문 보내라"
▲2013년에 공개된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추정 사진. [동포투데이]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올해도 보내지 않는 것으로 전해져 큰 논란이 예상된다. 매년 9월 1일에는 도쿄도 내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일본 시민단체 주도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도식이 40년 이상 개최돼 왔다. 과거 이노세 나오키, 마스조에 요이치 등 도쿄지사들은 재직 중 이 ...- 10913
- 정치
- 10922
2020.08.31 16:39
- 10913
- 정치
- 10922
2020.08.3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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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레 우물에 묻힌 옛 동네의 이야기
●김호림 “그게 무슨 말이냐”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이지 봉창을 두드리는 소리 같기 때문이었다. 용정은 1886년 조선인들이 지은 이름이지만 최초의 주민은 조선인이 아니었다고 한다. 동네 지명 역시 이 용정이 첫 이름이 아니라고 한다. 용정에 처음으로 조선인 마을이 생긴 것은 1877년 봄이었다. 조선 평안북도의 김언삼, 함경북도의 장인석, 박윤언 등의 식솔 열네 가구가 이곳에 초가를 짓고 화전...-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9 16:34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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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혁명에 이바지한 외국인 장군들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중국 노농홍군이 강행한 2만5000리 장정에 참가한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외국인들도 있었다. 거기에는 저명한 외국국적 공산당원이 있었는가 하면 이름도 남기지 않은 ‘무명영웅’도 있었다. 또한 장정도중 홍군을 위하여 많은 유익한 일을 한 외국인 전도사도 있었다. 그럼 오늘 이 글에서는 주로 4명의 외국인 공산당원을 소개, 이들로는 소련에서 온 이덕(李德), 조선에서 온 필사제(毕士悌)와...-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8 21:16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8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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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진의(秦怡)-눈물겨운 김염(金焰)과의 결혼생활④
▲김염과 왕인미.ⓒ인터넷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왕인미는 1914년 호남 장사에서 태어났다. 당시 그녀의 부친 왕정권(王正权)은 일명의 교사로서 지식이 연박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 고귀한 것은 사상이 아주 개명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왕인미한테 몇 명의 언니가 있었지만 왕정권은 딸들에게 전족(裹脚)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지어는 보모로 들어온 어멈까지도 발이 큰 여인이었다. 그리고 왕...-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3 10:37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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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진의(秦怡)-눈물겨운 김염(金焰)과의 결혼생활②
▲진의와 유명 영화배우 김염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이혼 후 진의는 다시는 결혼하지 않고 모든 정력을 쏟겠노라고 맹세했다. 하지만 맹세는 어디까지나 맹세에 그쳤고 실행은 아니었다. 그리고 진의의 그러한 맹세는 조선인 남자 김염(金焰)의 등장으로 크게 흔들렸다. 김염(원명: 김덕린) ㅡ 1910년 조선 서울에서 태어난 김염은 1912년 한의사이며 독립운동가인 부친한테 지명 수배령이 떨어지자 가족을 따라 중...-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07 19:37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0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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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살던 마을 와룡동
●김호림 창동학교는 8.15광복을 맞은 후 다시 와룡동에 부활한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서쪽 산비탈의 옛 터를 버리고 마을 북쪽의 평지에 따로 학교 건물을 세웠다. 김동욱옹은 어릴 때 새로 지은 이 창동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때 그가 학교를 내놓고 또 과외처럼 즐겨 다니던 곳이 있었다. 그와 또래들은 예배를 보는 날이면 학교 북쪽에 있는 교회당으로 반달음을 놓았다. “전 씨 성의 집사...-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06 21:02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0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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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울령 저쪽에 고려마을이 있었다
예전에 도문에서 훈춘으로 가려면 꼭 그 산마루를 넘어야 했다. 일명 까울령, 그 무슨 까마귀가 날아가다가 울음을 떨어뜨린 이름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산이 하도 가파르고 높아서 새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넘었을까. 까울령은 두만강 기슭까지 머리를 쭉 내밀고 장벽처럼 앞뒤를 가로막고 있다. “겨울이 되면 어떤 차들은 산길을 버리고 얼음 위로 달렸지요.”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7.19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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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9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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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레 우물과 포대 그리고 장성
●김호림 마을 한복판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다. 반듯한 돌로 둘레를 쌓아올렸고 용두레를 잣아 드레 박으로 물을 퍼서 올렸다. “물이 많고 맑았는데 맛 또한 좋았지요.” 최흥수씨는 우물처럼 깊은 기억을 퍼서 다시 눈앞에 떠올렸다. 그는 이 우물 근처의 동네에서 집을 짓고 살던 사람이다. 예전에 우물은 동네방네 소문을 놓았다고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7.1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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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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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해변 일본군이 지켰더라면?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1944년 6월의 노르망디 전역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일장 결정적인 의의가 있는 중대한 전역이었으며 영미동맹군이 상륙작전에서 성공하여 제 2의 전장을 개척한 전역이기도 했다. 하다면 당시 가령 노르망디 해변을 지킨 군대가 일본군이었다면 상황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이 전역에서 영미동맹군은 도합 288만 명의 군대, 1200척의 작전함정, 4126척의 상륙함정, 5000척의 운수선...-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6.27 10:11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6.2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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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0주년 특별기획] 한반도 전쟁과 그것이 남긴 기나긴 여운
●철 민 한 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 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양이 그립구나 철조망이 가로막혀 다시 만날 그 때까지 아ㅡ 소식을 물어본다 한 많은 대동강아 … 이 노래는 우리 민족 분단의 괴로움을 잘 반영한 노래이고 무려 70여 년간 불려 진 노래이기도 하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한반도에는 전쟁이 터졌다. 외세와...-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0.06.24 12:02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0.06.24 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