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림성 연변자치주 왕청진 쟈피구촌에 살고있는 리희태의 안해 유형숙은 꽃보다 아름다운 나이에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만나서 즐기는 신혼생활은 깨알이 쏟아지고 행복이 넘쳤을 것이다. 두분도 역시 더이상 바랄것 없이 살아갈 수 있었던 것만 같았다고 한다. 세상의 풍운조화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그런 생활을 2년 밖에 하지 못했다.유형숙은 왕청현병원의 간호사로 사업하다 1986년 1월에 류풍습관절염으로 하신 신경이 마비되면서 근육이 굳어져 버려 대소변은 물론 모든것을 남편의 손에 의지해야 했다.
공비로 치료를 받는다고는 하지만 자비로 내는 치료비가 엄청나 모아 두었던 저금이 거덜이 나고 빚이 산더미처럼 늘어만 갔다. 하지만 이런 역경속에서도 안해를 살리려는 책임감과 안해의 병이 꼭 나으리라는 남편의 신심은 꺾을 수 없었다.
안해의 병을 하루빨리 치료하기 위해 리희태는 안해를 업고 현병원은 물론 심양,안산,길림, 돈화,한국월툰병원 등 용하다는 병원은 다 찾아 다니며 병을 보였다.가는 곳마다 리희태는 쪽걸상에 앉아 새우잠을 자면서 병시중을 들었다. 욕창이 생길가봐 안해가 아침마다 일어나기 바쁘게 더운물로 안해를 목욕시켰고 반시간에 한번씩 돌려 눕혔으며 허리에 베개를 받쳐 주었다. 안해의 두 다리 근육을 풀어 감각을 되찾게 하기 위해 남편은 매일같이 안마를 해 주었다.
의무일군이였던 안해의 병이 조금이라도 치유될 수 있고 죽는 날까지 완치가 불가능하다 해도 안해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있다면 남편은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하였으며 어떤 방법이든지 불사할 각오였다. 안해의 병치료에 돈푼이 될만한 가정기물까지 다 팔아도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지만 힘든 내색없이 늘 밝게 웃는 남편이였다.
이렇게 안해의 병치료에 집 세채와 가정기물을 몽땅 밀어 넣고 세방살이를 하게 되자 1990년에 리희태는 처제의 도움으로 안해를 장모님과 나어린 딸애에게 맡겨놓고 단연히 한국으로 떠났다.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안해의 병을 치료하려는 일념으로 힘 드는줄 모르고 억척스레 일했다. 낮에는 일을 하느라 생각할 새가 없었지만 저녁에 자리에 누우면 안해가 걱정되고 딸애가 보고 싶어 눈물은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이렇게 6년동안 돈을 벌고 고향에 돌아온 리희태는 안해의 병시중을 들면서 뇌출혈로 쓰러진 장모를 자기집에 모셔다 여섯달 동안이나 대소변을 받아내면서 효성을 다해 장모가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이 미소를 짓고 하늘 나라로 가게 하고 처가집 조카 둘을 자기집에 데려다 6년동안 공부시키며 살뜰히 보살펴 주었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고 했다.
안해가 병상에 누운지 옹근 31년이 되던 2015년 1월의 어느날 점심때였다.밑반찬을 만들어 밥상을 갖추려고 하는데 자기 눈을 못 믿을 정도로 뜻밖에 안해가 조심조심 벽을 짚고 위생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기적같은 이 광경을 본 남편은 너무도 좋아 환성을 올렸다.
“31년동안 내등에 업혀 다니던 당신이 드디여 자기절로 위생실에 가는걸 보게 되였소. 여보, 용기를 내줘서 정말 고맙소. 이제 내가 조금만 더 시중들면 당신이 일어날수도 있을거요.” 남들앞에서 종래로 눈물을 보이지 않던 남편이였지만 이 순간만은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비록 병석에 누워있는 안해였지만 남편에게는 큰 힘이 되여주었다.
“결혼할 때 우리는 검은머리 백발이 되도록 사랑하자고 언약을 맺었고 둘 중에 누군가 불구가 되더라고 서로를 버리지 말고 마지막까지 돌보면서 함께 살자고 약속했습니다. 안해가 앉은뱅이라고 버릴수는 없었습니다. 부부로 맺어진 이상 안해는 내 몸이고 내살과 같습니다. 죽는날까지 내가 안해의 손발이 되여서 지켜주고 싶습니다. 내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
그는 안해의 간병을 하면서도 하나밖에 없는 딸한테 조금도 소홀하지 않았다.아버지가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 행여나 딸에게 상처가 될가봐 리희태는 힘들 때면 딸이 잠든 후에 밖에 나가서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딸 추연이도 돈을 벌어 어머니 병치료에 보태 주려는 일념으로 열심히 공부해 장춘외국어어학원 독일어 학과를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현재는 상해독일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아버지를 여러모로 돕고 있다.
경제생활이 급속히 발전하는 오늘날 외국나들이,연해도시 진출로 결혼도 쉽게 하고 이혼도 식은죽 먹기로 하면서 가족의 의미와 부부의 소중한 인연을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이 부부의 사랑이 메아리처럼 울려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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