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8(화)
 
 
■ 허길성
 
 1
 
 (전번기 계속) 1965년 7월 나는 꿈많고 랑만스럽던 북경공정병학원을 졸업함과 아울러 해방군 총정치부의 발령을 받고 심양군구로 배치되였다.
 
근무부서는 심양군구 공정병사령부였다. 그야말로 내가 배웠던것을 실제에 써먹을수 있게 되였던것이다. 그리고 당시 내가 근무하는 공정병사령부 기획실의 주요 업무는 전쟁대처용 산굴설계같은것들이였다. 그만큼 당시 동북은 산이 많았고 또 그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대이기도 했다.
 
나는 사령부 기획실에 출근하자 바람으로 중견으로 독립작업도 할수 있게 되였다. 기획실의 선배군인들은 나를 관심하기도 했고 믿어주기도 했다. 그들은 내가 매 한장의 설계도면을 그려낼 때마다 자기일처럼 기뻐하며 축하해주었고 간혹 부족하고 미비한 부분이 있어도 차근차근 가르쳐주는것으로 나를 이끌어주군 했다. 그리고 같은 부서는 아니였지만 사령부내의 여러 부서들에는 연변에서 간 군인들도 꽤나 있었는데 조선족군인도 몇명 잘되였다. 그러다보니 일요일이 되면 같이 거리구경을 가지 않으면 야외들놀이도 할수 있어 학교시절과 비교하면 생활이 다채로웠거니와 또 로임을 받으니 가끔씩 부모님한테 용돈을 보내주고도 어느 정도 여유로운 생활을 할수 있었다.
 
한편 고향의 부모님들은 내가 심양군구에 오게 되자 둘째형님한테 촉구하기도 하고 사처로 수소문, 결국 셋째형수님께서 한 처녀를 나한테 소개했다. 그 처녀는 개산툰화학섬유팔프공장 화험실에서 근무하는 송금자라는 이름을 가진 처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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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금자의 가정을 보면 부친은 개산툰화학섬유팔프공장의 로동자였고 어머니는 가정부녀였다. 당시 그녀는 6남매중 맏이로서 공장의 종업원대학에 졸업했으며 공장화험실에 출근하면서 공장공청단서기로 활약하고있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그 처녀와 거래를 하면서부터 가끔씩 꿈속에서 나타나군 하던 순자에 대한 련민의 정이 알게 모르게 점차 사라지는것이였다. 사람이란 새로운 사람한테 정이 들면 이전의 사람한테 남아있던 정도 그만큼 멀어지는 모양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기차표를 사려고 심양역에 갔다가 불현듯 그제날 문화학교시절의 동창생 한명을 만나게 됐다.
 
그날 내가 기차표를 사고 매표구에서 나와 뻐스를 타려는데 어떤 볶은 해바라기씨를 파는 한 남성이 나를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음을 감지할수 있었다. 나 또한 그가 어쩐지 낯이 익어보였다.
 
나는 뻐스를 타려다 말고 그 해바라기씨 장사군한테로 다가갔다.
 
“여보세요. 해바라기씨 10전어치만 주시오.”
 
나는 워낙 평소에 군입질을 하는 습관이 없는지라 해바라기씨를 사서 까먹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와 말을 걸려면 해바라기씨를 사는척이라도 해야 했다.
 
“저기 저…해방군동무 어딘가 얼굴이 익은데요?”
 
그는 해바라기씨를 팔 궁리는 하지 않고 나만 빤히 쳐다보는것이였다.
 
나는 그한테 담배 한가치를 권하며 물었다.
 
“댁도 혹시 군대에 갔었지 않았어요?”
 
“그랬는데…가만 있자. 어디서 봤더라? 옳지 해방군동무 혹시 무석에 있는 문화학교에 다니지 않았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손으로 무릎팍을 탁 쳤다.
 
“그래그래 맞아요, 맞아. 그럼 우리 한 학교에 다녔구만그래.”
 
그랬다. 그는 무석에 있는 문화학교의 동창생이 틀림없었다. 다만 같은 반이 아니고 다른 반급이였기에 너무 익숙한 사이는 아니였을따름이였다.
 
헌데 그 친구를 볼라니 옷매무시나 얼굴모양새 같은것이 어딘가 말이 아니였다. 그래서 그의 생활사정을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가 그는 우리 문화학교 동창생중 운이 몹시 나쁜 친구였다.
 
그에 따르면 문화학교를 떠난 뒤 복건에 가서 1년간 산굴을 파다가 병을 얻게 되여 제대하게 되였는데 후에 국가보조금이 나오긴 하지만 체력로동은 거의 할수 없고 보다싶이 해바라기씨같은것을 팔면서 생계를 유지한다는것이였다.
 
나는 어쩐지 그가 몹시 측은해났다. 그리고 문득 그에 비해 내가 매우 행운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도 그럴것이 나도 그들처럼 산굴이나 파는 전쟁준비공사장에나 갔더라면 어떻게 되였겠는가! 대학을 졸업하고 심양군구 공정병사령부에 배치받기는커녕 병에 거리거나 사고로 크게 다쳐 장애가 생기고 지어는 죽을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자 크나큰 공포가 온몸에 엄습해오는것 같았다.
 
한편 나는 혹시나 하여 순자의 행방을 아는가고 그 친구한테 물었다. 이미 약혼까지 한 마당에 아직도 그녀한테 미련이 남아있어서 그런것이 아니라 그냥 그녀의 행방이 궁금해서 물은것뿐이였다. 그러자 그는 생각밖으로 순자의 행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동창생에 따르면 당시 나와 갈라진 후 순자는 역시 복건지구에 나가 위생병으로 근무, 그러다가 아버지인 왕륙삼정위가 힘써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인지 어쨌든 상해군의대학에 입학했다고 한다.
 
당시 그 동창생을 통해 순자에 대해 들은건 거기까지뿐이다.
 
후에 그녀가 어디에서 사업에 참가했고 어떤 남자를 만나 결혼했으며 또 자녀는 몇이나 두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미지수이다.
 
당시 나는 그제날 나와 순자의 로맨스는 한낱 철부지 청춘남녀의 사랑유희에 불과하며 이젠 나의 앞날과 그녀의 장래를 위해서도 순자를 철저히 단념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됐다. 그랬다. 그것이 우리 서로에게 보다 유리할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와 나 모두 로년에 들어선 지금에 와서 순자가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가 어딘가 궁금하기도 하며 또한 순자의 로년생활이 행복하기를 기원하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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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66년 중국의 대지에는 이른바 “전례없는 문화혁명”이 터졌다. 그것은 내가 심양군구에 배치받아서 1년이 채 되지 않아서였다.
 
나의 기억을 더듬으면 문화혁명초기 동북의 여러 지방에서는 대자보를 내붙이고 반란하고 투쟁하고 마스고 부시고 했지만 심양군구만은 지방의 문화혁명에 크게 참여하지 않은것 같았으며 우리는 각자가 자신이 맡은 업무에만 열중했다. 헌데 그러던중 북경으로부터 모원신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동북에 파견돼오면서부터 국방을 지켜야 할 해방군인 우리 심양군구도 이른바 “좌파지지”란 명목을 내걸고 문화대혁명이란 거센 소용돌이에 말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군구정치부 주임의 호출을 받게 되였다.
 
내가 정치부 사무실문을 열고 들어서자 정치부주임은 앉아있는 군인들한테 “이 동무가 바로 허길성이고 조선족동무요”라고 하며 소개하는것이였다.
 
알고 보니 그 군인들은 연변군분구에서 온 손님들로서 연변의 문화혁명에 조선족군인이 몹시 수요되기에 심양군구를 통해 조선족군인들을 물색하려던참이였다.
 
서로간의 인사를 나누고 그 군인들이 찾아온 의향이 밝혀지자 정치부 주임은 단도직입으로 “길성동무, 연변으로 나갈 생각은 없소”라고 묻는것이였다.
 
“제가요?! 제가 연변에 가서 할일이 뭡니까?”
 
“허허 할일이 많지. ‘좌파지지’사업도 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또 전쟁준비로 파게 될 산굴들을 설계하기도 해야지 왜 할일이 없겠소? 연변이란 3국변경에 위치한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대라는것을 동무도 잘 알고 있지 않소?”
 
“예,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달갑게 가겠습니다. 아니 명령에 복종하겠습니다.”
 
“허허허…명령은 아니오. 그저 동무의 의향을 물었을 따름이였소.”
 
기실 나는 그 무슨 “좌파지지”보다는 고향이 연변이고 거기에 약혼녀가 있으며 또 오래잖으면 결혼도 해야 하겠기에 연변에 가겠는가 하는 제의를 달갑게 접수했다. 게다가 연변에서 많은 산굴을 파게 된다고 하니 내가 배운것을 직접 현장에서 활용할수 있어 호기심이 부쩍 동하기도 했다.
 
헌데 그 며칠뒤 연길에 도착해 형세를 알아보니 연변의 문화대혁명은 내지보다 한발 앞서고 있었다. 이미 대자보, 대변론 단계를 지나 물리적 충돌로 향해지는 단계에도 진입하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이거 잘못 오지 않았나 하며 나 자신의 선택에 대해 급기야 의심하게 되였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좌파지지”의 명목을 내걸고 연변에 나왔는데 나의 둘째형님 허길룡씨는 “좌파”들과 투쟁하는 “보황파” 조직의 일원이였고 그것도 그 조직의 “골수분자”였던것이다.
나는 아주 첩첩한 모순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번민끝에 나는 일절 정치투쟁에는 말려들지 않고 조심스럽게 눈치를 봐가며 산굴설계도를 그리고 또 산굴을 파는 현장에나 뛰기로 작심하였다.
 
나는 진짜로 한동안 자기가 맡은 업무에만 열중했다. 밖에서는 당시 주당위서기 겸 주장이였던 주덕해동지를 타도하느냐 아니면 보호하느냐를 두고 각 조직들의 갈등과 대립이 몹시 선명했고 부대내부에서도 밖의 사태를 두고 그 대처방안을 연구하느라고 의론이 분분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의론같은건 귀등으로 흘려보내며 그저 설계도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연구하는 작업에만 골몰했다.
 
하지만 어떤 일은 자기의 뜻대로 되는것이 아니였다. 특히 명령복종을 천직으로 삼는 군인으로서는 더욱 그랬다.
 
당시 우리 부대는 연길교 동북쪽의 하북구역(지금의 백산호텔 위치)에 주둔하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볼일이 있어 외출했다가 금방 귀대하자 부대수장이 나를 호출한다는것이였다.
 
부대수장은 사무실에 들어선 나한테 앉으라는 말도 없이 나를 이상하게 눈여겨보더니 입을 열었다.  
 
“오늘 연변대학에서 ‘8.27’조직의 모임이 있는데 허동무의 형님도 거기에 참가한다더군. 나 허동무를 생각해서 부탁하오. 허동무 자신을 위해서라도 오늘 가서 형님을 설복해 거기서 빠져나오고 또 그 조직에서 탈퇴하도록 하오. 이는 부탁이라면 부탁이지만 부대규정을 놓고 보면 명령이라고도 할수 있소.”
 
부대수장의 어조는 낮았지만 말그대로 명령이였고 위엄도 있었다. 그리고 나한테는 그 명령을 거절할 아무런 리유와 권리도 없었다. 하급은 상급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군사규률 때문이였다.
 
헌데 내가 과연 둘째형님을 설복해낼수 있을가? 그것은 형님을 설복하러 떠나는 나도 자신이 없었다. 그도그럴것이 형님은 연변일보사의 중견기자여서 이미 정치적 립장이 분명히 선데다 나 또한 그 시기 어느 조직이 원칙적이고 어느 조직이 비원칙적인가를 잘 식별할 능력을 구비하지 못했으며 도무지 뭐가뭔지 모르는 판이라 딱히 형님을 설복할 생각도 없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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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수장의 명령을 거역할수 없어 주둔지 대문을 나온 나였으나 어떻게 둘째형님을 찾아가야 할지 방법이 잠시 신통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달통되지 않는 걸음을 걷게 되는지라 한동안 나는 그냥 기계적으로 움직이기만 했다. 그러다가 길을 건너 연변일보사를 바라보는 순간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 군복을 입은채(당시 내가 군복을 입은채로 갔더라면 그 후과는 상상할수조차 없었을것임)로 그냥 갈수가 없었고 둘째형님네 집이 생각났다. 그랬다. 형님네 집에 가서 옷을 바꿔입고 가는것이 가장 융통성이 있는 방법인것 같았다.
 
내가 신문사뒤에 있는 연변일보사 주택구에 가서 형님네 집의 문을 열자 마침 형수가 있었다.
 
형수는 나를 반겨맞았다.
 
“형님은 어디 나갔어요?”
 
“오늘 연변대학에서 무슨 집단모임이 있는 모양이예요. 그 량반 참 답답하우. 혁명을 혼자 하는지?…쯧쯧쯧.”
 
그러고보니 부대에서 입수한 정보가 맞는 모양이였다. 그도그럴것이 해방군에서의 정보수집은 그때 그 시기에도 아주 정확하고도 빨랐던것이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내가 심양에서 연변으로 나올 때 부대에서는 벌써 나의 부모정황과 형제관계에 대해 손금보듯이 장악하고 있었으며 그중에는 연변일보사에서 기자로 근무하는 형님에 대한 정보도 들어있었다.
 
“외부에서 특히 우리 부대에서도 형님에 대한 뒤조사가 심하답니다. 그러니 형수가 설복해 형님더러 그런 정치풍파에 개입하지 말도록 했으면 합니다.”
 
“글쎄 말이우다. 헌데 그 고집을 누가 말린다우. 집안일엔 도끼등처럼 무딘 량반이 그런 일에는 왜 그리도 적극적인지…”
 
 형수는 장판을 닦으며 푸념을 늘여놓았다.  
 
그제야 나는 찾아온 사연을 말하고는 형님의 옷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형수는 제꺽 호응하며 “제발 생원이 좀 가서 그 량반을 설복해주우다” 라고 곱씹었다. 형수 역시 형님의 일에 대해 자못 근심되는 모양이였다.
 
형님의 옷을 입고나온 나는 곧추 연변대학으로 향했다.
 
내가 공원교 부근에 이르자 분위기는 자못 심각했다. 안전모를 쓰고 몽둥이를 든 사람들을 실은 트럭들이 가끔씩 오갔고 어느 3층집 창문에서는 누군가 아래에 삐라 뭉터기를 내리 살포하는것도 보이였다.
 
공원교로는 몇몇 할머니들이 건너다닐뿐 장정들은 별로 보이지도 않았다.
 
공원교를 건너자 걸려있는 표어들이 벌써 달랐다.
 
“주덕해동지는 당의 우수한 아들이며 조선족의 훌륭한 간부이다!”
 
“주덕해동지를 결사옹호한다!”
 
“‘8.27’조직의 무산계급 혁명사령부를 목숨으로 보위하자!”
 
……
 
내가 연변대학 정문가에 이르자 대문에는 건장한 청년 4명이 버티고 서있으면서 들어가는 사람들을 검사하는것이였다. 나한테도 례외가 아니였다.
 
“어디에서 오는 누구인데 누구를 찾아온거요?”
 
“예, 룡정에서 오는 허길성이란 사람인데 연변일보사에 출근하는 허길룡이란 사람의 동생입니다. 오늘 형님이 연변대학에 와있다고 해서요.”
 
“오, 허기자의 동생되는 동무로구만. 환영하오. 어서 들어가시오. 허기자는 지금 학교구락부에 있을거요.”
 
“8.27”조직의 골수간부인 형님에 대해 그들도 잘 알고있는 모양이였다.
 
내가 연변대학 구락부쪽으로 다가가자 구락부안에서는 연신 구호소리가 터져나왔다.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을 끝까지 진행하자!”
 
“위대한 령수 모주석 만세, 만세, 만만세!”
 
“주덕해동지는 당의 우수한 간부이며 동지이다!”
 
구락부 출입문에는 또 지키는 사람 2명이 있었다.
 
 “누구를 찾소?”
 
“연변일보에 출근하는 허길룡기자를 찾습니다. 전 그분의 동생입니다.”
 
“그렇소? 자 그럼 여기서 기다리오. 나 들어가 확인해 보겠소.”
 
 약 5분뒤 과연 둘째형님이 밖으로 나왔다. 형님은 나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면서 주위부터 살피는것이였다.
 
“너… 너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왔니?”
 
“형님, 사실은 우리 부대에서 형님을 설복해 ‘8.27’조직에서 나오라구 시켜서 왔소. 형님 아무래도 군대가 지지하는 조직에 참가하는것이 좋을것 같소.”
 
“그래 군대에서 시켜서 왔구나. 그러나 넌 이곳의 일을 너무 모른다. 그러니 그냥 돌아가거라. 못들은것으로 하겠다. 넌 그냥 이런 일에 참견말고 네 할일에나 열심히 해라.”
 
“그래도 형님…”
 
“더 길게 말 말구 그냥 돌아가거라.”
 
나는 더 이상 형님을 설복할수 없었다. 형수의 말과 같이 형님은 고집이 셌으며 나 또한 강경하게 형님과 맞서고도 싶지 않았다.
“어서 돌아가거라. 여긴 네가 오래있을 곳이 못된다. 네가 부대에서 온 사람이란걸 알면 크게 봉변을 당한다. 그리고 나한테도 좋지 않고…갈 때 조심해라.”
 
말을 마친 형님은 재차 주위를 살피는것이였다.
 
나는 형님과 길게 말을 나누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서는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저으기 긴장하여 자주 뒤를 돌아보군 했다. 마치 누군가 따라와 방망이로 뒤통수를 치는것 같은 착각이 생겨서였다.
 
이런 나의 긴장감은 공원교를 건너서야 비로서 풀리였다.
 
나는 다시 형님네 집에 들려 옷을 군복으로 갈아입은 뒤 부대로 향했다.
 
주둔지로 돌아온 나는 거짓회보를 하는수밖에 없었다. 즉 연변대학으로 찾아갔으나 형님이 다른 곳으로 일보러 갔기에 만나보지 못했다고 둘러댔다.
 
“그랬소? 동무의 말을 믿어도 되겠소?”
 
부대수장은 말은 그렇게 했으나 어딘가 나를 의심하는 눈치가 다분했다.
 
그때를 계기로 부대수장이 나한테 거리감을 두고있는 한편 감시를 붙이고있는것이 육감적으로 느낄수 있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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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가을, 나는 부모님의 독촉에 못이겨 장가를 가게 되였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신부는 개산툰 화학섬유팔프공장 화험실의 송금자였다.
 
우리의 결혼식은 너무나도 소박하고 단조로왔다. 문화혁명시기라 낡은 풍속을 타파하고 무산계급의 새로운 풍속을 수립한다면서 나는 양복 대신 그냥 군복차림이였고 신부 송금자는 파마머리를 하지 못했고 너울도 쓸수가 없었다. 그리고 단독으로 자동차를 쓰지 못하고 기차를 타고 개산툰에 가서 신부를 데리고는 다시 기차를 타고 룡정으로 와야 했다.
 
결혼한 뒤 우리는 신혼부부였지만 떨어져 살아야만 했다. 안해는 개산툰으로 돌아가 친정집에서 생활하면서 공장으로 출근해야 했고 나 또한 연길로 돌아와 부대생활을 계속 해야 했다. (연재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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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굽이굽이 인생길 하많은 사연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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