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중동 전선이 단순 군사 충돌을 넘어 글로벌 핵심 산업 공급망을 뒤흔들고 있다. 이란의 공격으로 중동 주요 알루미늄 제련소가 타격을 입으면서, 반도체 핵심 소재인 ‘갈륨(Ga)’ 공급에도 연쇄 충격이 번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알루미늄 생산과 직결된 갈륨 공급 구조 특성상, 이번 사태가 오히려 중국의 전략 자원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전쟁이 ‘에너지’를 넘어 ‘첨단 산업 소재 패권’으로 확산되는 흐름이다.
3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최근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미국·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중동 내 주요 산업시설을 겨냥한 미사일·드론 공격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아랍에미리트(UAE) 글로벌알루미늄(EGA)과 바레인 알루미늄(Alba) 등 중동 대표 알루미늄 제련소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두 업체는 글로벌 알루미늄 공급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중국국제금융공사(CICC)는 해당 두 제련소의 생산능력이 세계 전체의 약 3.9%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알루미늄 제련시설 특성상 한 번 가동이 멈추면 복구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이다. 단기 충격을 넘어 중장기 공급 불안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현지 기업들도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UAE 글로벌알루미늄은 아부다비 공장이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고 밝혔고, 바레인 알루미늄 역시 시설 피해 규모를 평가 중이다. 이 과정에서 인명 피해도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더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해상 물류 불안까지 겹쳤다. 원자재와 완제품 운송의 핵심 통로가 흔들릴 경우 알루미늄 공급망 전반에 충격은 불가피하다.
에너지 가격 급등도 또 다른 변수다. 유럽의 경우 전력 가격의 약 60%가 천연가스 가격과 연동되는데, 최근 중동 긴장 고조 이후 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제련 비용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일부 유럽 제련소의 감산이나 가동 중단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이 같은 공급 불안은 곧바로 가격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알루미늄 수요가 경기 둔화로 일부 완충될 수는 있지만, 공급 측면 충격이 더 클 경우 단기 가격 급등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목되는 지점은 ‘갈륨’이다. 갈륨은 반도체, 전기차, 군사용 레이더 등에 필수적인 전략 소재로, 알루미늄 생산 과정에서 부산물로 추출된다. 즉 알루미늄 생산이 흔들리면 갈륨 공급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현재 갈륨 시장은 사실상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알루미늄 생산의 약 60%를 차지하는 동시에, 저순도 갈륨 생산에서는 99%에 달하는 압도적 비중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향후 전자제품 가격과 방산 산업,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다.
앞서 미국과 UAE는 갈륨 생산 확대를 추진하며 공급망 다변화에 나섰지만, 이번 사태로 계획 차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특히 갈륨은 단순 추출을 넘어 정제 기술이 핵심인 만큼 단기간에 공급망을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미국 역시 갈륨 의존도를 낮추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미 국방부는 첨단 레이더 등 군사 장비 생산에 갈륨이 필수적이지만 자체 비축량이 부족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일부 물량은 폐기물 재활용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중동 분쟁이 단순 지역 충돌을 넘어 글로벌 산업 구조를 뒤흔드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알루미늄과 갈륨으로 이어지는 공급망 구조 속에서, 지정학적 충격이 곧바로 첨단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원 확보 경쟁이 군사·외교 갈등과 결합되며 공급망 블록화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중동에서 시작된 이번 충격은 결국 미·중 전략 경쟁의 또 다른 전선으로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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