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투데이] 백두산을 향해 뻗은 길목, 용정에서 화룡으로 이어지는 평야 한복판에 작은 교회들이 있다. 세월에 닳은 예배당의 종탑은 여전히 하늘을 향해 서 있다. 북간도의 교회는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선 민족이 나라 잃은 땅에서 신앙으로 세운 ‘민족의 성채’였다.
1900년대 초, 조선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은 가난과 추위 속에서도 먼저 예배당을 세웠다. 교회는 학교이자 회의장이었고, 때로는 항일운동의 본부였다. 명동학교 설립자 김약연 목사를 비롯해, 이회영·이상설·서일 등 수많은 인물들이 교회 네트워크를 통해 독립운동을 조직했다. 성경 공부와 민족교육은 늘 한 자리에 있었다.
길림성 화룡시의 명신교회는 그 상징적 장소다. 기자가 찾은 9월의 명신교회는 평일이었지만, 예배당 안에는 흰 머리의 노인 몇이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교회 관리인 박선화(75) 씨는 “이 교회는 일제 때부터 우리 조선족이 신앙을 붙들던 곳”이라며 “그 시절 예배는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조국을 위한 약속이었다”고 말했다.
교회는 신앙과 민족을 잇는 끈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은 예배 후 헌금함 아래에서 비밀 회합을 열기도 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성경책 속에 지하신문과 연락편지를 숨겨 전달하던 이들도 있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북간도 지역에는 1920년대 중반 기준으로 150여 개의 한인 교회가 있었다. 교회는 지역 공동체의 심장이자, 독립운동 자금과 정보를 전달하는 통로였다. 일본 경찰의 단속은 그만큼 혹독했다. 신앙을 이유로 잡혀간 사람도 적지 않았다.
지금의 교회는 한층 조용해졌지만, 그 자리는 여전히 신앙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용정시 명동촌 근처 ‘명동교회’ 예배당은 붉은 벽돌로 새로 단장돼, 조선족 학생들이 주말마다 모여 찬송을 부른다. 교회 옆에는 윤동주의 이름을 딴 ‘동주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명동교회 장로로 40년째 봉사 중인 김광호(82) 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신앙으로 민족을 지켰습니다. 믿음은 단지 하늘을 향한 게 아니라, 서로를 지탱하는 힘이었어요. 그게 우리 조상들이 북간도에서 남긴 유산이지요.”
지금 북간도의 교회들은 더 이상 독립운동의 비밀기지가 아니다. 그러나 그 신앙의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 매년 광복절이 다가오면 조선족 청년들과 한국인 방문객들이 함께 예배를 드린다. 찬송가 사이로 윤동주의 「십자가」가 낭독된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윤동주의 시가 울려 퍼질 때, 늙은 장로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신앙은 시대를 넘어, 민족의 기억과 맞닿아 있었다.
ⓒ 인터내셔널포커스 & www.dspdaily.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
‘청와대의 저주’는 미신이 아니었다
글|안대주 무기징역. 전직 대통령 윤석열에게 내려진 형량이다. 한국 헌정사에서 이보다 더 추락한 대통령은 없다. 흔히 ‘청와대의 저주’라는 말이 따라붙지만, 이번 사안은 미신의 영역이 아니다. 권력을 사유화한 결과가 어디까지 가는지를 보여준 정치적·사법적 결론이다. 윤석열은 끝까... -
야당이 된 보수의 기이한 충성심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다음 날, 국민의힘 대표 장동혁이 국민 앞에 섰다. 국민이 기대한 것은 사과였고, 최소한의 거리두기였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사법부에 대한 공격과 “계엄은 곧 내란이 아니다”라는 궤변이었다. 보수 정당 대표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될 ... -
왜 중국인은 설이면 해바라기씨를 까먹을까
[인터내셔널포커스]설이 오면 중국의 거실 풍경은 묘하게 닮아 있다. 상 위에는 진수성찬이 오르지만, 대화의 중심에는 늘 차탁 위에 놓인 해바라기씨 한 접시가 있다. 손에 쥐고 하나씩 까먹는 이 단순한 간식은, 수천 년이 흐른 지금도 중국 설날의 배경음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왜일까. 중국의 화가이자 산... -
숫양이 새끼를 낳는 날까지… 소무, 19년 충절의 기록
소무(蘇武)는 한나라 시기의 사신(외교관)이자, 오늘날까지도 충절의 상징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북해에서 양을 쳤다’는 유명한 일화 뒤에는, 개인의 삶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도 끝까지 국가에 대한 충성을 지켜낸 한 인간의 비극적이면서도 숭고한 선택이 담겨 있다. 소무는 한무제 시대에 태... -
국제사회가 묻는다, 미·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은 정당했는가
국제사회가 중동 정세의 긴장이 외교적 중재를 통해 전환점을 맞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던 시점에, 미국과 이스라엘은 2월 28일 이란을 상대로 합동 군사공격을 단행했다. 이는 단순한 군사적 충돌을 넘어, 가까스로 이어져 오던 외교적 흐름에 중대한 균열을 낸 사건으로 평가된다. 유엔을 비롯해 유럽과 중동... -
다문화 사회 20년… 지방의회엔 왜 이주여성이 없나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권은 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후보 명단에는 변화한 한국 사회의 현실이 충분히 담기지 않는다. 특히 이미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이주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은 여전히 미약하다. 우선 현실부터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