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은 영결이다
박태일
긴 봄 장춘에서
마산까지 공부하러 왔던 겨레 학생
세무서 공무원에 부동산업까지 겸한다는
아버지 뱃심을 닮아선지 활달했던 처녀
한족 유학생보다 배달말 못했던 영결이가
한국 온 지 석 달 자랑스레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선생님 한국 극에는 세 가지가 있어요 희극 비극 야동……
어느날 전자편지에 나 영결이다라 써 나를 웃기더니
졸업하고 고향에 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던가
사업하러 북경에 상해에 있다는 소식을 받았건만
여섯 해나 더 지난 오늘 연길도
십칠 층 아파트 밖 뜨거운 불빛을 내려다 보노라니
문득 나 영결이다…… 다시 웃으며 편지를 줄 것 같은 아이
장춘이나 길림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상해 어느 무역상 사무실 옆자리를 얻었을까
저 터가 영결이가 걸을 곳이다
영결이 아버지가 거쳐 왔던 길
딸에게 배달말을 가르치지 못한 아버지가
다시 아침을 쬐며 걸어갈 저 터 위로
연길은 내게 영결이다
스물넷 장춘 겨레 유학생
영결이가 웃다 떠들다 간 마산 연구실 창밖 한 장 어둠이
이곳 연길 밤까지 따라와
그림엽서로 포개진다.
박태일의 시집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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