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로 평론가가 평가하는 김혁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김혁 1965년 중국 룡정에서 출생, 연변대학 조문학부 석사연구생, 북경 로신문학원을 졸업(수료).
열하홉살이 되던 해, 단편소설 “피그미의 후손”, “노아의 방주” 등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 그로써 문재를 인정받고 스무살 어린 나이에 “길림신문”의 기자로 파격 발탁되였고 그 후로 “길림신문”, “연변일보” 등 조선족의 주요 매체와 인터넷 미디어에서 25년간 언론인으로 활약했다.
십대에 데뷔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난 25년간 “마마꽃, 응달에 피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완용 황후”, “시인 윤동주”, “춘자의 남경” 등 장편소설과 “천재 죽이기”,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불의 제전”, “뼈”, “피안교” 등 중단편소설 수십편, 장편르포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다”, “주덕해의 이야기”, “한락연의 이야기”, “윤동주 평전” 등 인물전기, 평전, 장편역사기행 “일송정 높은 솔, 해란강 푸른 물”, 문화역사시리즈 “영화로 읽는 중국조선족” 등 역사문화연구저서 외에 시 수백수, 칼럼 200여편을 창작, 발표해 “쟝르를 초월하는 작가”, “조선족 다산작가”로 불리고 있다.
상술한 성과와 기여로 하여 윤동주문학상, 김학철문학상, 연변문학상, “해란강” 문학상, 자치주정부 “진달래” 문학상 등 각종 묵직한 문학상을 30여회 수상했다.
현재 중국작가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이사, 소설창작위원회 주임(위원장), 용정윤동주연구회 회장 등 직무를 맡고있다.
원로 평론가가 평가하는 김혁
전임 연변작가협회 주석이며 원로 평론가인 조성일 선생은 재중 동포 대형문학지 “장백산” 2014년 2월호에 게재한 글 “뒤에 난 뿔이 우뚝하다-작가 김혁 인상기”에서 김혁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사람들이 김혁이 누구냐고 물으면 소설가 하나의 타이틀로는 부족하다. 그의 문학은 소재나 형식, 그 어느 면에서나 문학예술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다. 그는 문학의 거의 모든 분야, 이를테면 소설, 시, 수필, 칼럼, 르포, 다큐멘터리, 아동문학…등을 섭렵하면서 글쓰기를 계속해 왔고 문학이라는 전당의 구석구석에 이름을 남겨 독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그는 소설가일 뿐만 아니라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아동문학가이고 지어 ‘이디어 뱅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소설가 김혁’이보다 ‘작가 김혁’이 더 잘 어울린다. 그는 다쟝르작가로,다면수로 우리 앞에 당당하게 서 있으며 그만큼 우리 조선족문학예술에 대한 기여가 다방위적이다.”
작가의 성장과 탐색
작가 김혁은 1985년에 데뷔하여 소설과 시를 발표, 신출내기 기자, 문학도로서의 습작기를 걸쳐 지난 세기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그야말로 맹렬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남에 비해 불운한 특유의 인생경력과 오래동안 언론사에 근무했던 언론인의 안광을 지녔던 관계로 애초의 작품부터 무거운 소재에 천착하게 되었다. 창작 작법을 잘 모르고 썼던 초기의 작품부터라도 그는 시종 그 “무거움”을 의식해 왔었다. 열아홉에 낸 두 편의 처녀작품 역시 중국 개혁개방 초기, 변혁기의 취업대기 청년들의 문제를 반영했고 거기에 제목이 종교색채까지 띠어 화제가 됐었다.
이 시기의 작품에서 작가는 자기 자신의 불우한 운명과 처절한 인생체험을 회피하지도 숨기지도 않고 자기 작품에 반영했다. 이 비정한 세계에서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성장기에 자기가 겪어야 했던 가혹한 체험들을 독자들에게 설파했으며 가슴속에 고여있는 한과 서러움과 괴로움을 이야기했다.
작가의 소설 “적”, “바람속에 지다”, “바다에서 건져올린 바이올린”, “천재 죽이기”, “불의 제전”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을 보면 그 소설들에 부각되고 있는 거의 모든 주인공들은 죄다 방황과 좌절을 거듭하고 근원적인 아픔에 시달리면서 죽어가는 비극적인 인물들이다. 작가는 이런 인물형상들을 통해 실존주의자들이 말하는 “불안의 정조” 속에서 비장한 혈투로 몸부림치는 사회의 저층에 깔린 인간들의 영혼을 보여주려 했고 자기의 실존을 위해 약속 없는 미래를 향해 힘겨운 행보를 하고 있는 “소인물”들의 불안과 실망, 소외와 고독, 아픔과 슬픔을 반영하려 했으며 나아가 빛에 가려진 어둠속 약자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의 역사적 의미를 이야기 하려 했다. 이 모든것은 남과 다른 작가의 불우했던 인생경력과 밑바닥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들이었다.
한편, 작가는 새 것에 부단히 도전하며 과감하게 새로운 실험을 한다. 작가는 국내외 문학사조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자기 나름의 개성적인 작품을 창출해 냈다. “천재 죽이기”, “신오감도”를 비롯한 초현실주의 계열시, 신사실주의 소설 “라이프 스페이스”, 황당파 소설 “바다에서 건져올린 바이올린”, 사이버 소설 “병독”, 판타지 소설 “불의 제전” 등 동포 문단에서 쟝르와 문체실험을 가장 많이 하고 가장 먼저 한 작가로 기록되고 있다.
김혁은 한국 작가 박경리를 흠모한 나머지 십여년 전, 사비를 팔아가며 그이를 찾아 한국 원주로 가기도 했다. 좋아하는 작가를 단 한사람 뽑는다면 단연 “중국 조선족 문학의 대부” 김학철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칼럼이라는 장르에 환혹되여 거의 일주일에 두세편꼴씩 수백편을 써 나가고 있는 것도 기자생활이라는 체질화된 문체의 작법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김학철 선생의 창작중에 가장 빛나는 다량의 잡문에 매료되여서 부터이다.
작가 김혁은 말한다. “김학철 선생은 나를 문학의 길로 인도해 주고 아픔과 상처를 보듬어 주며 노는 법을 일러주신 분이다. 나에게 있어 그 분은 너무나 아득해서 도저히 흉내낼수 없이 높은 경외의 대상이다. 그이의 넓이와 깊이의 사범(師範)은 내가 영원히 본받고 내가 궁극적으로 닿고저 하는 목표이다.”
김혁은 현재 김학철 관련 인물전기 집필을 마무리, 출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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