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케빈 워시는 이름만으로 시장을 흔든 인물이다. 월가 출신 금융 엘리트이자 연방준비제도 역사상 최연소 이사,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그는 차기 연준 의장 지명 소식만으로 금과 암호화폐 시장에 충격파를 던졌다. 강경한 통화정책 신념과 정치적 인맥을 동시에 지닌 워시는 이제 미국 경제의 향방을 좌우할 핵심 인물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현지시간 1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차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전 연준 이사 케빈 워시를 지명하겠다고 밝혔다. 현직 의장 제롬 파월의 후임이다. 그간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블랙록 고위 임원 릭 리더는 명단에서 제외됐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글로벌 금융시장은 즉각 요동쳤다. 금과 은 가격이 급락했고, 암호화폐 시장도 동반 하락세를 보였다.

하루 만에 6조5천억 달러 증발
이탈리아의 경제 탐사기자 주세페 치코마스콜로는 “단 하루 만에 전 세계 주식, 귀금속,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증발한 시가총액이 6조5천억 달러를 넘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SNS를 통해 지명 사실을 공개하자, 국제 금 시세는 장중 한때 약 13% 폭락하며 온스당 4682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는 달러 기준으로 기록된 사상 최대 단일 일간 하락폭이다.
공포는 암호화폐 시장으로도 번졌다. 비트코인은 장중 7% 이상 급락해 7만6천 달러 선까지 밀렸고, 2025년 고점 대비 약 40% 하락했다.
시장 반응이 이처럼 격렬했던 배경에는 워시의 통화정책 성향이 있다. 그는 과거 금리 인하가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달러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해 왔다. 고금리 환경에서는 미 국채 같은 안정적 수익 자산이 상대적으로 매력적이어서, 금이나 가상자산으로 향하던 자금이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월가 엘리트에서 백악관 핵심으로
워시는 1970년 4월 뉴욕에서 태어났다.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뒤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모건스탠리 뉴욕지점 인수·합병(M&A) 부서에서 근무하며 부사장 겸 집행이사까지 올랐다.
2002년 그는 월가를 떠나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합류해 대통령 경제정책 특별보좌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집행서기를 지내며 워싱턴 정가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같은 해 그는 에스티로더 창업자의 손녀 제인 로더와 결혼했다. 장인 로널드 로더는 공화당의 대표적 후원자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지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가문과 정치적 인맥은 워시가 공화당 정권에서 중용되는 배경이 됐다.
2006년, 부시 대통령은 당시 36세였던 워시를 연준 이사로 임명했다. 그는 연준 역사상 최연소 이사가 됐다. 재임 중 G20 회의에 연준 대표로 참석했고, 아시아 신흥·선진국을 담당하는 특사 역할도 맡았다.
‘강경 매파’에서 논란의 중심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워시는 벤 버냉키 연준 의장, 티머시 가이트너 뉴욕 연은 총재와 함께 위기 대응 핵심 그룹에 참여했지만, 리스크 판단에서 오판을 했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2011년 연준이 6천억 달러 규모의 국채 매입(2차 양적완화)을 결정하자 그는 강하게 반대했고, 결국 정책 노선 차이를 이유로 연준을 떠났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줄곧 ‘강경한 매파’로 분류돼 왔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그의 입장 변화다. 워시는 지난해 7월 인터뷰에서 “연준이 금리 인하를 거부한 것은 중대한 실수”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적 압박을 “옳은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미 언론은 이를 트럼프에게 보내는 일종의 정치적 신호로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워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준 의장 중 한 명이 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치켜세웠다.
중국 사회과학원 미국 문제 전문가 뤼샹은 “미국 거시경제의 핵심이 대통령 측근 네트워크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의 한 미국 변호사는 “월가에서는 워시가 취임할 경우 금리 인하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분석가들은 그가 대차대조표 축소와 금리 인하를 병행하는 정책 조합을 시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전 뉴욕 연은 총재 빌 더들리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정책”이라며 회의적 시각을 내놓았다.
정치 리스크라는 변수
2026년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워시의 통화정책이 실패해 경기 신뢰가 흔들릴 경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으로 직결될 수 있다. 하원 선거 지형은 이미 민주당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뤼샹은 “만약 상원 다수까지 잃게 된다면 트럼프의 권력 구조는 급격히 약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편집자 주
케빈 워시라는 인물은 단순한 경제 관료가 아니라, 통화정책과 정치 권력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그의 선택과 판단이 글로벌 시장에 미칠 파장은 이제 시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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