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말(晚清) 외교사의 전환점에는 두 인물이 서 있다. 중국 최초의 상주 외교사절로 근대 외교의 문을 연 궈쑹타오와, 체제 내부에서 대외 교섭을 총괄하며 현실 외교를 이끈 리훙장이다. 이상과 현실, 개척과 집행이라는 상이한 궤적은 서구 충격 속에서 방향을 모색하던 당시 중국의 고민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첫 상주 공사’ 궈쑹타오…근대 외교의 출발선 세우다
궈쑹타오(1818~1891)는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정식 파견된 주재 외교사절이다. 1876년 주영 공사로 임명됐고, 1878년에는 주불 공사를 겸임했다. 그의 파견은 1875년 ‘마가리 사건’ 이후 청 정부가 영국에 사과 사절을 보내는 과정에서 상주 공관 설치로 이어지며 이뤄졌다.
그는 단순한 외교 임무 수행을 넘어 서구 제도의 본질을 파악하려 했다. 영국 체류 기간 정치·교육·법률 체계를 면밀히 관찰하며, 중국이 배워야 할 것은 기계·무기 같은 ‘기물’이 아니라 ‘정치와 교육’의 제도라고 주장했다.
또 해외 화교 거주 지역에 영사관을 설치해야 한다고 건의했고, 청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싱가포르 등지에 영사 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국제법 번역을 추진하고 유학생 파견을 구상하는 등 지식·인재 기반 확충에도 힘을 쏟았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보수적 조정과 충돌했다. 서양식 복장 착용과 외국 군주에 대한 기립 예절 등은 ‘과도한 서화(西化)’로 비판받았고, 결국 ‘매국’에 가까운 공격을 받았다. 저서 『사서기정』은 판각이 훼손됐고, 그는 1879년 조용히 귀국한 뒤 공식적인 명예 회복도 얻지 못했다.
‘실무 총괄’ 리훙장…체제 안에서 외교를 움직이다
리훙장은 청말 양무운동의 핵심 인물이자, 사실상 대외 교섭을 총괄한 실력자였다. 직예총독과 북양대신을 겸임하며 외교·군사·산업 정책을 동시에 주도했다.
그는 궈쑹타오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주영 공사로 천거한 인물이다. 궈 사후에는 조정에 추증과 전기 편찬을 건의하기도 했다. 궈의 시각에 대해 “양무에 식견이 있다”고 평가하며, 그러한 인식이 더 확산됐다면 국가 재건의 가능성도 달라졌을 것이라는 취지의 견해를 남겼다.
실제 외교 현장에서는 리훙장이 전면에 섰다. 그는 청 정부를 대표해 각종 조약 체결을 주도하며 열강과의 관계를 조정했다. 동시에 해운·군사·산업 기반을 강화하는 양무 정책을 추진해 근대화의 토대를 마련하려 했다.
다만 그가 관여한 여러 조약은 결과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담은 경우가 많았고, 이는 당대 외교의 한계와 국제 질서 속 약소국의 현실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상과 현실의 교차…근대 전환기의 두 얼굴
궈쑹타오가 외교 제도의 ‘출발점’을 연 선구자라면, 리훙장은 그 제도를 실제로 운용하며 국가의 이해를 조정한 ‘집행자’였다. 전자는 서구 제도의 본질을 배우려는 문제의식으로, 후자는 제한된 조건 속에서 성과를 만들어내려는 현실 감각으로 움직였다.
두 인물의 궤적은 공통된 질문으로 수렴한다. 서구 중심의 국제 질서가 밀려오던 시기, 전통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어떻게 변화를 수용할 것인가.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나타난 갈등과 시행착오가 바로 청말 외교의 실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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