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9(일)
 

장가간 아들이 구촌이 된다더니 한족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인 아들이 어미와 원쑤로 되는게 아닌가 요즘은 그런 생각이 자주드는 나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은 둘도없이 착한 효자이지만 한족말만 하는 며느리를 너무 이뻐하는 아들이 공연히 미울 때가 더러 있으니까 괘씸한 생각에 그런것 같다.


당초에 대학에 붙어 북경으로 떠날때 나는 아들한테 단단히 부탁을 했었다. 꼭 우리민족 여자친구를 사귀라고…



그만치 우리부부는 민족심이 한결 같았다. 하긴 한족지구에 외홀로 섞여사는 신세에 민족심마저 없었다면 우리집 다섯식구는 진작에 다 한족으로 동화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토록 우리는 악을쓰고 자기가 조선족임을 애들한테 주입시키면서 힘들게 여기까지 왔다.


나와 남편이 다니는 직장에서 조선족은 우리둘 뿐이고 애들이 다니는 소학교 중학교 다가 한족학교 뿐이었다. 그러니까 우리집 식구들이 자기말을 할 기회가 밖에서는 영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집에 돌아와 식구들 뿐일때는 꼭 우리말만을 하도록 애들한테 단속을 엄하게 했었다. 적어도 자기가 조선족임을 우리 생전에 아랫세대가 잊게하면 안된다는게 애들 아빠의 철같은 知照지조였었다.


“집에선 한족말을 하면 절대로 안된다. 꼭 우리말이다. 알았어?!” 


그렇게 하는데는 다른 원인도 있었다. 부모자식이나 노소구분이  전혀 안되는 너나들이 한족말은 예절면에서도 너무 우리말하고 차이가 컸었다. 또 계획적으로 우리글 잡지와 신문 같은것도 많이 주문해서 보았고…


우리가 단속을 잘한 것인지 아니면 아빠엄마 말을 유난히 잘들은 탓인지는 몰라도 애들은 실로 우리말에 능한데다 엄마인 내가 배워준 약한 밑천으로 우리글로 된 신문잡지 같은 것도 좀씩 읽을 줄을 알게 되었었다.


우리같이 한족지구에 홀로 섞여사는 사람들치고 나같은 이세도 우리말을 전혀 모르는 이들이 대다수인데 삼세대가 우리말에 글까지 안다는 것은 실로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만족을 할수가 없었다. 애들이 크면 또 기어이 조선족 사위에 조선족 며느리만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부부의 오랜 염원이고 욕심이었던 것이다.


딸애는 별로 애먹이지 않고 우리의 염원대로 돈도 잘벌고 사람도 참한 조선족 총각한테 시집을 갔다. 한데 큰아들이 대학교 이학년때에 덜컥 한족여자 친구를 사귀게 된것이다. 그게 너무도 서운해서 난 며칠밤을 잠도 자지 못했다. 하지만 그냥 민족이 다른 한가지 내놓고 어느조건도 아들한테 짝지지 않는 처녀인데다 아들이 그처럼 죽고 못 사는데 억지로 떼여 놓을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조건을 걸었다.


“우리글과 우리말을 배우도록 해라.”


그때는 내아들이 좋아서 기어이 시집오고 싶었던지 금방 대답을 했던 며느리였다. 하지만 시집을 오고 보니까 배부르고 그래서 뱃장이 생긴건가 쉬운말 한마디도 배울세라 한다. 밥 먹으면서도 그냥 남편하고만 남의 말을 지껄이고 시어미의 말은 남편이 통역을 해주기를 기다리거나 무시하기가 일쑤고…물론 한족말에 능한 나이지만 약속을 어기는 며느리가 미워서 편한 내말을 두고 며느리를 위해 그말을 하기도 싫은지라 심술스레 그냥 우리말만을 고집하며 살다보니 집안 분위기가 이상할 때도 많았었다.


그날은 내가 해준 밥을 맛있게 한공기 제꺽 비우는 며느리를 향해서 내가 또 우리말 한마디 했다.


“며늘아, 밥 더 먹어라!”물론 어안이 벙벙해하는 며느리한테 이번엔 내가 통역을 해주었고 며느리는 한결같이 제말로 사양을 한다. 그래서 내가 하루 한마디씩이라도 우리말을 배우라 하니까 한다는 소리가 안 배운다고 필요 없다고 그러는 것이었다. 요런 괘씸한것 같으니라고! 참말로 배우기 싫고 그래서 안 배우더라도 시어미의 말에 일단은 배우겠습니다. 어머님께서 가르쳐 주세요 그렇게 헛대답이라도 해야 예절일 건데 그냥 데늠식으로 단방에 거절을 하다니?! 그래서 내가 아들한테


“저런 어미가 아이를 낳아 키우면 이제 네 후대는 완전데늠이 되겠다.”


했더니 아들놈이 한다는 소리가 더구나 희한하다.


“되면 됐지! 그게 우리 중국에서 뭐 이상한 일입니까?”


지금 생각하면 나와 아들의 모순은 그말에서부터 시작이 된것 같다.


얼마전에 며느리가 아기—내손녀딸을 낳았다. 한데 아기 이름을 짓는 일이 또 문제로 된 것이다. 내가 이런저런 이름이 어떠냐고 하면 아들 며느리 둘다 그냥 도리질을 하면서 맘에 안든다고 한다. 원래 우리민족 예의대로 한다면 부모가  애 이름을 짓는게 도리고 그 이름이 개돌이나 쌍년이나 그런 천한 이름이라도 자식된 입장에선 수긍할수 밖에 없을 것이지만 문화환경이 완전히 다른 중국땅에서 그건 너무 억지이니까 맘 내키지 않는대로 난 양보하기로 했다. 그럼 너들이 애 이름을 짓되 우리말로 부르기가 이상하면 절대로 안된다 그렇게 조건을 걸었고 일부러 조선말 신화자전까지 사다가 아들한테 주었던 것이다.


헌데 그날 전화 통화를 하다가 물었더니 지들끼리 지어서 호적 등록까지 했다는 애 이름이 천낙(탠눠天诺)이란다. 우리말로 부르기가 안됐고 부드럽지도 않은 이름인데다 천한 글짜와도 동음이고 또 당나귀와도 친척인듯한 이름이 어찌해도 내 맘에는 안드는지라 아들보고 뭐라 했더니 서른살이 넘은 아들을 너무 간섭한다고 내 딸이름 내가 좋으면 그만이고 호적에 조선족일뿐 조선족 행세를 할수도 없는데 이름이 조선말로 듣기 싫은들 무슨 상관이냐고 한바탕 내쏘는지라 나도 당장에 할말을 잃었다. 하지만 생각하니 그래도 괘씸한지라 이미 대답을 했으면 한대로 조선말로 듣기도 부르기도 좋은 이름을 지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은게 잘못인 줄도 모르고 네쪽에서 도리여 말이 많으냐 나도 한바탕 했다.


“저는 어머님의 의사를 충분히 존중 했습니다.”


그렇게 아들은 울먹이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실 애 이름이 우리말로 부르기 이상할 것을 고려해서“은이”라는 예쁜 조선족 애명을 지어 나더러 부르라고 했었던 것이다. 한데 호적에 올린 이름이 내맘에 들지 않아서 잔뜩 화가난 나에게 그게 먹혀들 리가 없다.


“야 이 민족의 배신자 놈아! 내 손녀딸 이름을 당나귀라구 지어 놓구두 어미 의사롤 존중했다는 말이 나가느냐?!”


전화 통화가 그쯤 되니까 서로가 격해져서 아들은 전화 저쪽에서 울고 나도 이쪽에서 씩씩거리다가 제풀에 화나서 울고 그렇게 서로가 아이이름 때문에 실로 불쾌한 하루를 보냈었다. 사실 서른살이 넘을때까지 아들은 실로 내말을 100% 존중해 주는 효자이다. 그래서 나도 아들한테 씻지 못할 죄를 진일이 있다. 아들이 고중에서 문리과를 선택할때 내뜻대로 성적표를 분석하고 문과를 하라고 시켰었고 대학지원을 할때는 또 조선족 며느리 삼기가 편할것 같은 내 생각으로 일지망을 중앙민족대학에 쓰도록 한것이다. 아니라면 아들은 지금쯤 기자가 아닌 의사로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것 때문에 아들은 두고두고 원망을 하고 있고 그래서 사실은 엄마인 내가 이제라도 조금 기죽어야 하는데도 민족심 하나에서 만은 죽어도 아들한테 양보하고 싶지 않으니까 야단이 아닌가?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아들의 말에 전혀 도리가 없는것은 아니였다. 아이는 북경에서 자라야하고 또 조선족학교가 아닌 한족학교를 다녀야 하는터에 한족말 이름이 듣기가 좋고 부르기 좋으면 그만이다. 그 이름이 우리말로 불려질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니까 이름 때문에 이리도 야단하는 나역시 어찌보면 오바하고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상황을 미루어 추측 하건대 어차피 언젠가는 중국 대륙에서 사라져 가야할 우리민족의 운명이고 그것이 내집에서 지금 시작이 되는 시점이니까 이상할 것도 없지만, 민족심으로 악을쓰고 여기까지 온 이세대로서 지금부터 그 꼴을 보려니까 울화가 번지고 그래서 한바탕 되도 않을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 눈물나게 슬픈 내 마지막 발악이여!!

/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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