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4(토)
 
 
■ 김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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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항구도시 비고와 마린에서 눈코뜰사이 없이 바삐 보내다보니 날자가 가는줄조차 모르다가 그날 기관실의 김영림군한테 물어서야 그날이 6월 21일이란걸 알았다.
 
마린은 자그마한 항구도시었는데 첫 번째 특징이라면 하루해가 23시가 되어서야 지군 했다. 해마다 6월이면 그곳에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리고 이튿날 해뜨는 시간도 늦지 않아서 아침 3시좌우에 일출하니까 해가 진 후 잠간 어두워졌다가 인츰 밝아지는 셈이었다.
 
마린의 두번째 특점이라면 항구를 벗어나면 그 다음의 도시건물은 몽땅 경사도가 비교적 강한 산비탈에 우중충 세워져 있는 것이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인상을 주었다. 또한 모두가 자가용을 몰고다니니 말이지 중국처럼 자전거가 주요한 교통수단이라면 큰 일이겠구나 하는 감이 들었다. 자가용이라 하면 부두에서 하역작업을 하는 흑인인부들마저 자가용을 몰고와서 일하고는 다시 옷을 바꿔입고는 자가용을 몰고 퇴근하는 것이 퍽 우리들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그런데 바로 그 마린에서 주방장이 몬테비데오에 입항했을 때 무단적 외출로 며칠간 근무하지 않아 강제하선을 하는 통에 내가 부득불 주방장 직책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주방장이라 하면 갑판장과 기관실의 조기장과 같은 계급장이었는데 승선한 뒤 석달밖에 안되는 나한테 있어서 그 진급은 너무나도 빨랐고, 또한 그만큼 힘에 부치기도 했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것처럼 눈코뜰 사이 없다는 말도 나왔고 또한 한낱 중국 조선족선원인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와는 반대로 항구에 와서는 해상과 달리 인부들의 작업과 작업량만을 감독하고 체크만 하는 선원들은 팔자가 늘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무식한 “배놈”들의 취미란 뭐겠는가. 또 계집들의 궁둥이를 밝히는 수밖에.
 
그 때 항구입구에서 약 500미터쯤 도보로 걷노라면 전문 “배놈”들을 대상해서 차린 창녀촌이 있었는데 본선의 선원들은 쩍하면 거기로 찾아가기가 일쑤였다. 그런가 하면 어떤 친구들은 값을 흥정하여 아가씨 한명씩 “임대”해서는 선박으로 데리고 와서 온밤 즐기기도 했다. 그날 아침도 내가 주방에서 밥지을 준비를 하는데 느닷없이 한 예쁜 아가씨가 나타나 “무쵸아밍고 올라?(친구, 안녕하세요?)”라고 하더니 나의 볼에 살짝 키스까지 해주는 것이었다. 이에 내가 어리둥절해 있는데 뒤이어 2항사 정명복씨가 따라들어오면서 이 아가씨가 배고파서 그러는데 라면 한그릇 좀 꿇여줄 수 없는가고 했다. 참, 두 사람이 할 주방일을 혼자서 도맡은 것도 억울한데 남이 즐기던 년의 음식까지 만들어주다니?!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국사람들이 돼지라면 돼지로 되는 선박이고 그들이 죽으라 하면 죽는 흉내까지도 내야 하는 세상이니까 나는 “예, 알겠습니다”하고 운명에 순종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나는 매일마다 아침 5시에 기상해서는 밤 10시까지 바삐 돌아쳐야 했는데 선박이 세계에서 유명한 수에즈운하를 지나는 것도 한번 얼핏 보았을뿐이었다. 선원들의 말에 따르면 당시 중동사태의 긴장함에 따라 미군함정들이 그 때 수에즈운하를 지났고 본선에 무기를 실었나 해서 미군의 헬리꼽터가 날아와서 선장과 무선전대화까지 했다는데 나는 그것을 통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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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 1박 2일간 입항해 있은 것은 그렇게도 기억에 똑똑히 남았다. 그것은 너무나도 힘들고 바쁘고 지쳤기 때문에 각별히 인상에 남은 모양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기루타항에 입항하자 어떻게 알고 몰려 들었는지 숱한 당지의 한국노무자들이 배에 오르는 것이었다. 보나마나 그들이 온 목적은 술이나 얻어먹자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하긴 철두철미하게 이슬람교를 믿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식당에서 술을 파는 사람도 술을 마시는 사람도 붙잡기만 하면 영창에 처넣을뿐만 아니라 근본 술을 만들지도 수입하지도 못하게 하고 있었다. 게다가 일부다체제는 성행하고 있으나 매음업만은 엄금하는지라 일단 매음업을 하는 것만 발견하면 그 여자건 사내건 초죽음을 당하고도 극형을 받는다 했다. 그러니 고도로 발달한 술문화로 술에 인이 박히고 또한 여자라면 오금을 못쓰는 한국노무자들이 그런 곳에서 어떻게 배겨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일단 한국선박이나 중국선박이 들이닥치면 그들은 통금령을 내린 거리에 나서는 사람마냥 살금살금 부두에 모여 드는 것이 상례었고 이런 선박들에 올라서는 술이나마 얻어마시는 것으로 인생을 달래는 것이 일쑤었는데 원래는 선박에서까지 술을 마시는 것이 엄금된 나라였으나 한국노무자들이 하도 지꿎게 달려드는 통에 인젠 세관측에서도 한쪽 눈을 슬쩍 감아주는데까지 이르게 됐던 것이다.
 
허나 무턱대고 “무사통과”인 것만은 아니었다.
 
중동나라들에서 도둑놈을 키우면서 벌금과 세금액을 올린다 하더니 사우디아라비아의 세관들에서도 이런 술군들이 선박에 오르게 하고는 부두입구에서부터 배에서까지 돈을 받아내군 했다. 그러건 말건 술미치광이들은 사처로부터 꾸역꾸역 모여 들었는데 아마도 60~70명은 잘되는상 싶었다.
 
한편 선내에서는 누구나 다 하기 싫어하는 주방장이었고 또한 늘 남들한테서 밥투정질을 받기만 하던 내가 그 날만은 선박의 마스터인 선장보다도 인기가 더 높을 지경이었다.
 
“아이구 주방장님, 억수로 욕보시네요. 술안주 딱 한가지만 챙겨주이소.”
 
“주방장형씨, 형씨의 요리솜씨가 중국에서도 일품이고 한다 하는 한국요리사들도 뺨칠 지경이라더군요. 한번 좀 맛봅시다구요.”
 
“일본말로 요리사를 ‘주자’라고 하는데 왜 그러는지 아십니까? 사람들한테 주자,주자라고 해서 주자라고 했대요.”
 
보아하니 끝을 보지 않고서는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에익, 치사하기를 불알쪽같은 놈들! 저놈들속에서도 말단들과는 떵떵거리는 자들이 있겠지? 허나 오늘만은 내가 너희들의 아버지로다. 술이나 얻어 처먹겠거든 내 말을 곰상곰상 들어야 한다.
 
“이 양반, 나살깨나 있는 것 같은데 왜 그리도 치사하게 노는기요? 당신 계집이나 딸년들이 보면 욕한당께요 욕해.”
“아, 정말 주방장님 죄송합니다. 하도나 술먹고 싶어서요. 참.”
 
저런?! 나는 그들이 놀아대는 꼴이 우습기도 하고 밉기도 했다. 겉과 속이 다른 저런 인간들이 있기에 옛날 이씨 조선도 망하는 수밖에 없었지. 섬나라 쪽바리라고 일본을 욕하다가도 일본인들앞에서는 실웃음을 지으며 굽신거리는 놈들. 이런 인간들에 비해 일본민족은 퍽 월등하다고도 할만 했다. 한국인들은 유럽쪽이나 미국쪽으로 가면 쥐구멍 찾듯이 피해다니다가도 동남아나 아프리카 그리고 남미쪽으로 가면 마치도 제 잘난듯이 술 처먹고 오입질하고 떵떵 큰소리치지만 일본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유럽이나 아프리카를 막론하고 우쭐거리지도 그렇다고 굽신거리지도 않는 일본민족, 아니 한국인과 같은 민족이었지만 대국에서 태어나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우리 중국조선족 선원들도 이 면에서만은 한국인보다 퍽 자질이 높은 것 같았다. 한국인들은 선장앞에서 “예예, 선장님 알겠습니다”라고 하다가도 일단 돌아서면 “씨팔놈, 싸가지없는 놈”하고 욕하지만 우리들만은 그토록 앞뒤가 다르지는 않았다. 좀 예의가 없다는 책망을 가끔씩 들어서 그렇지 말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그날 선박에서는 라스팔마스에서 올린 술을 몽땅 높은 값으로 팔아먹었다. 글쎄 영국의 “죠오네카” 위스키를 50불에 한병씩, 독일의 “하이네킨” 맥주 한깡통에 10불씩 받아 먹었으니까 장사래도 큰 폭리를 얻는 장사를 한 셈이었다. 하긴 지고가라면 못가도 처먹고 가라면 굽까지 핧고 가는 술미치광들의 호주머니를 털어내는 장사였으니까.
 
그외 사막지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물이 몹시도 긴장하여 물값이 기름값보다 억수로 더 비쌌는데 우리 선박과 항구측에서는 기름과 물을 아무런 차가도 없이 막 바꾸는 것이었다. 나는 그제야 본선이 라스팔마스에 있을 때 그렇게도 물을 많이 올리던 비밀을 알 수가 있었다. 이제 그걸 싣고 기름이 긴장한 곳으로 가면 그 기름을 주먹치기로 막 팔아먹을 판이었는데 듣는 바에 따르면 그때 가면 매 선원당 300불은 어렵잖게 차례진다고 했다. 그렇지 오케이!(다음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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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견문 시리즈(8)젊은 마도로스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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