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4(토)
 
 
김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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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을 건널 때 눈이 내렸고 또한 눈내리는 하늘을 향해 기도까지 드렸건만 김명기네 가족일행은 두만강을 건너 오랑캐령을 넘자 바람으로 중국인 마적떼를 만나 그나마 약간 몸에 지니고 있던 금은붙이를 몽땅 털리었다. 그러니 진짜 알거지 신세가 되었다.

간도로 들어올 때는 용정지구만이 아닌 간도밖의 목단강이나 할빈쪽으로 가서 정착하면서 새로운 계몽활동을 할 계획도 없지는 않았으나 두만강을 건너 하루도 채 되지 않아 그 계획을 털어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몸에 지니고 있던 돈과 금은붙이 등 돈이 될만한 물건은 몽땅 털리고 말았으니 내지는 고사하고 당장 먹고 살 거처부터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로 나섰다.

다행히도 당시 간도 용정의 대문동이란 곳에는 김순자의 어머니 윤명숙 여사의 친정 쪽으로 가까운 친척 몇집이 있었기에 한겨울에 바깥에 나앉는 신세는 면하게 되었다. 친척들 거개가 마음씨들이 고왔던터라 사랑채를 내주는 집, 쌀과 감자 따위를 갖다 주는 집과 땔나무 등을 갖다 주었기에 김명기네 일가는 별로 큰 고생을 하지 않고도 대문동에 정착하여 추운 겨울을 날 수 있게 되었다.

두만강을 건너올 때 드린 기도 때문이어서인지 여하튼 건너온 뒤 마적들을 만나 귀중품들을 털린 것 외에는 모두가 무사한 편이었다. 하긴 어지럽고 뒤숭숭한 세월에 월강하면서 목숨을 부지한 것만 해도 하늘이 도왔다고 할 수 있을 법이었다.

당시 간도 역시 태평한 지방은 못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대륙침략을 획책해 오던 일제는 간도 용정에 총영사관을 건립했으며 투도구, 팔도구 등 곳곳에 영사분관을 세우고 헌병대를 주둔시키면서 동만조선인들에 대한 무차별한 탄압을 실행했던 것이다. 동만조선인들에게 계몽사상과 반일정서를 주입하던 많은 사립학교들이 폐교되었고 한시기 기세가 드높던 반일운동은 크나큰 좌절을 당하였으며 반일조직들은 지하로 잠적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대문동에 정착한 김명기는 화전밭을 일구고 약재를 캐는 등으로 등이 휘도록 열심히 일했으나 한번 기울어진 가세를 춰세우기가 여간만 어렵지 않았다. 조선에서 건너올 때 가산을 헐값으로 처분한데다 얼마 안되는 금은붙이마저 털리웠고 거의 빈손으로 대문동에 정착했기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처가편 친척들 몇집이 있어 그들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들도 워낙 여유가 없다 보니 정착할 때 얼마간의 도움을 줬을 뿐 계속되는 도움은 줄 수가 없었다.

바로 이럴즈음인 1929년 3월 18일, 순자가 대문동의 김명기 어른과 윤명숙 여사의 사이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당시 순자가 태어날 때 순자의 위로 오빠 셋이 있었는데 그들은 각각 김구정, 김구준과 김구완으로 불리었으며 순자가 태어나서 몇년 뒤 또 순자 아래로 남동생인 김구춘이가 태어나 순자네는 결국 4남 1녀의 5남매로 형제를 두게 되었다.

순자는 자라면서 오랫동안 자기가 5남매 중 외동딸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기실 순자가 원래부터 김씨가문의 외동딸인 것은 아니었다. 순자가 갓 태어났을 때 순자한테는 그와 나 차이가 많은 언니 한명이 있었다고 한다. 이쁘장하고 활달했으며 서당에서 공부할 때도 항상 하나를 배우면 열가지를 알아내군 하던 언니었다.

그러던 그 언니가 19살에 시집갔다가 22살인 아름다운 꽃나이에 몹쓸 병인 늑막염에 걸려 절명했다는 것, 언니의 장례를 치르던 날 어머니 윤씨가 막 까무라치며 상두앞을 막아서기에 상두를 멘 장정들이 한동안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는 것 등은 순자가 후에 아버지 김명기 어른한테서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순자 어릴 때의 애명은 기숙이었다.

제 2 회

 총명하고도 착한 아이

1

큰 딸을 잃은 후 뒤늦게 본 딸자식이라 어머니 윤씨는 어린 순자를 각별히 아끼었다. 쥐면 꺼질가 불면 날가 또한 추울세라 더울세라 애지중지 키웠다. 그리고 오빠 셋 역시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라 귀여워하기는 마찬가지었다.

그러면 여느 집 애들 같으면 어리광을 피우고 자기밖에 없는 척 할 법도 하지만 유독 순자만은 그렇지 않았다. 천성이 착해서인지 순자는 어릴 적부터 부모를 도와 간단한 살림살이를 배우기를 즐겼고 제법 남을 잘 도와주기도 했다.

순자는 여덟살이 되자 산건너 마을에 있는 육도소학교에 붙게 되었다. 그러자 홀 몸으로 남의 집 방살이를 시작했다. 어린 순자였지만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남의 집 방살이를 잘했다. 당시 아버지 김명기 어른이 달구지에 땔나무와 쌀 그리고 남새같은 것을 가져다 주면 제법 계획적으로 살림살이를 했다. 예하면 쌀같은 것을 한달치씩 가져다 주면 그것이 중도에서 떨어지는 법이라고는 없었고 항상 남아돌군 했다. 그런가 하면 틈이 날 적마다 주인집 아줌마를 도와 터밭김도 매주고 아기도 봐주고 하면서 진심으로 도와주었다. 특히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다보니 부모님과 남들한테서 꾸중을 들을래야 들을 수 없었다. 방살이를 하는 동네에서도 어른들은 자기 집 애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너 왜 이 모양이야, 언제 철이 들래? 저 고개넘어 마을에서 온 기숙이를 좀 보렴아. 혼자 남의 집 방살이를 하면서도 얼마나 부지런하고도 예의가 바르고 착한가” 라고 하며 자주 순자를 입에 떠올리군 했다.

순자는 총명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그날 배운 것은 반드시 그날로 소화해 냈으며 하나를 배우면 열가지를 알 정도로 배운 것을 응용하군 하였다. 그 때 벌써 순자는 일기란 것을 쓰기 시작했고 또한 육도소학교에 단 한부밖에 오지 않는 조선문 신문을 교원들이 윤번으로 본 뒤엔 꼭꼭 순자가 읽어보군 했다.

이렇게 순자는 어릴 적부터 동네 아이들의 본보기로 되었다.

한편 주말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순자는 이상 올케들을 몹시 따랐다. 집안에 어머니외 여자란 올케들 뿐이어서인지 그들을 친언니처럼 믿고따랐고 그네들의 일손을 잘 거들어 주었으며 간혹 부모님들이 며느리한테 뭐라고 꾸중이라도 할라 치면 곧 잘 두둔해나서기도 했다.

어느 겨울날 아침에 있은 일이다. 그날도 큰 올케가 물동이를 들고 드레박우물가로 물길러 나섰다. 시부모들이 낮이 되어 해가 쭉 펴지면서 좀 날씨가 수그러들면 나가라고 했으나 큰 올케는 낮이 되면 바람이 더 기승을 부릴 것이라며 아침부터 서둘렀다. 기실 낮이 되면 소여물도 끓여야 하고 또 새끼를 꼴 벼짚에도 물을 뿌려야 하겠기에 물을 쓸 일이 많았던 것이다.

큰 올케가 집을 나서자 어린 순자도 따라나섰다. 어머니 윤씨가 말려도 막무가내였다. 추운 겨울에 홑옷바람으로 물길러다니는 올케가 가여워서였다.

그 날은 유달리 추웠다. 눈이 내린 이튿날이라 바람이 세찼고 길도 몹시 미끄러웠다.

“형님, 오빠가 형님보다 덩치가 더 크고 힘도 더 센데 왜 형님만 물길러 다니나요? 그리구 왜 집에서는 여자들만 일을 더 하는가요?”

“집안에서 일을 더하고 남정들을 잘 받드는 건 여자들의 팔자얘요. 그만큼 남정들이 밖에서 곱절 더 힘든 일을 하잖아요?!”

“그래요?”

순자는 그러면서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듯이 올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들은 왜 자기를 낳아준 부모의 슬하를 떠나 남의 집으로 시집가 아이를 낳아키우고 시부모와 남정을 섬기면서 일만 하며 살아야 하는가? 이에 대해 어린 순자는 물론 알리 만무했다. 그저 남의 집에 들어와 싫컷 고생만 하는 올케가 불쌍하기만 했다.

“왜 아직도 모르겠요? 또 남자들이 물동이를 이면 머리꼭대기가 뾰족하여 쉽게 떨어진대요. 그리고 보기도 망칙하고…자, 이런 건 기숙이도 커서 어른이 되면 다 알게 돼 있어요.”

올케는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는 순자가 이뻐서인지 순자의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순자와 올케, 어찌보면 순자와 올케는 모녀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만큼 그들 사이는 나이 차이가 있었다.

헌데 바로 그날 사달이 생겼다. 물을 가득 채운 물동이를 이고 집으로 오던 올케가 그만 얼음에 미끌며 뒤로 넘어졌고 물동이가 땅에 떨어져 깨여지면서 산산 쪼각나고 말았다.

“어머나, 이를 어쩌나?!”
올케는 치마자락과 신까지 물에 푹 젖은 것도 돌볼 사이가 없이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가슴을 붙안고 울먹울먹하는 올케를 바라보며 순자는 그 물동이가 아깝다기보다는 올케가 더없이 불쌍해났다.

“형님, 저한테 밀어씌우세요. 제가 장난이 심해 물동이를 깨뜨렸다면 부모님도 그냥 책망하다 말거예요.”

“아니, 어찌 그렇게…”

하지만 순자는 어디에서 그런 담이 생겼는지 막무가내로 올케의 손목을 잡아끌고 집으로 향했다.
……
“아니, 네가 물동이를 깼단 말이냐? 그래 뭘하던? 물길러 다니는데로 따라가지 말라고 했는데…”

“어머니, 기실은…”

올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순자가 앞질러 답변했다.

“엄마 잘못했어요. 형님이 물동이를 일 때 도와준다는 것이 그만 얼음에 미끌면서…형님한테는 아무런 잘못도 없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엄마…”

이 때 아버지가 웃방에서 나오면서 “됐다. 며늘아기는 옷을 바꿔입고 밖에 나가 돼지먹이나 주거라. 돼지가 배고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난리들이다” 라고 하며 말참견했다.

이윽고 며느리가 나가자 아버지는 어머니한테 입을 삐죽하고 실웃음을 지으며 “정말 기숙이가 물동이를 깬 것 같수?” 라고 했다.

(다음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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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실화연재] 한 여인의 인생변주곡(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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