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1(화)
 

[동포투데이] 장어금: 1964년 연길 출생, 키 1.58m, 선수위치 미드필더, 이화련: 1966년 화룡 출생, 키 1.60m, 선수위치 미드필더, 안영실: 1964년 화룡 출생, 키 1.64m, 선수위치 수비.

 

이 3명의 여성이 바로 지난 세기 80년대 잔디밭에서 축구로 조선족 처녀들의 날랜 모습을 자랑하며 전국 우승을 뽐내던 원 연변 여자축구팀의 주력선수들이며 한시기 중국 여자축구팀에까지 입선됐던 잔디밭 3자매이다. 

 

지금 이 3명의 선수 중 장어금은 가정주부로, 이화련은 상해의 모 외자기업에서, 안영실은 개인사업으로 각각 평범한 일터에서 수수한 삶을 살고 있지만, 역사는 그녀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1980년대 초에 여자축구붐이 광활한 중국 대지에 휩쓸면서 연변에도 1982년에 여자축구팀이 설립되었다. 당시 연길시 2중에서 공부하던 장어금은 화룡에서 온 이화련, 안영실 등과 함께 연변 여자축구팀에 입선됐다. 

 

당시 연변 여자축구팀은 길림성 축구팀 등 5개의 축구팀과 훈련장 하나를 두고 훈련했는데 늘 남성팀들에 훈련장을 양보하다 보니 언제나 날씨가 가장 더운 오후 2시에 훈련을 했기에 그 조건이 매우 간고했다. 생리가 와도 당시 그녀들은 그 어떤 내색을 내지 않고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훈련을 견지했다. 약 한 달 반의 시일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결과 40여 일 후에 펼쳐진 전국여자축구경기에서 연변 여자축구팀은 3등을 쟁취했고 이어서 그 이듬해인 1983년에는 서안에서 진행된 중국 전국여자축구경기에서 전국 우승의 영예도 만끽했다. 

 

당시 연변 여자축구팀 선수들한테도 그들의 장기에 걸맞은 “별명”이 있었다. 예하면 장어금은 속도가 빠르고 대인방어에 능하면서 이악스러웠기에 “개고기”란 별명이 있었고 안영실은 공차단이 적중했고 장거리 패스에 능했기에 “장벽”이란 별명을, 이화연은 가동작을 잘하고 헤더 슈팅에 능했기에 “공중 능수”란 별명을 갖게 됐다. 

 

전국 우승 후 장어금, 이화련, 안영실 등은 중국 여자축구팀에 입선하기도 했다. 

 

한시기 연변 여자축구팀의 감독직을 맡은 적이 있던 동경춘 축구원로에 따르면 그 당시 연변 여자축구팀의 약점은 보편적으로 키가 작고 속도가 늦었으며 수비도 약했다. 하지만 팀의 풍격이 하도 이악스러웠기에 어느 팀이나 다 두려워하는 팀으로 전국적으로도 소문이 높았다. 

 

하지만 후기에 들어 팀을 맡고 있던 방정훈 감독이 훈련지도에는 능했으나 선수들에 대한 요구가 높지 못했기에 1983년 전국 우승을 따낸 후인 1984년부터는 팀 성적이 하강 선을 긋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데는 선수(특히 농촌 처녀) 들이 너무 일찍 연애하면서 훈련과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데 있다고 그때의 주력이었던 장어금씨가 피로했다. 연변여자축구팀 선수 대부분이 농촌에서 온 처녀 들었기에 그들은 도시진출이 목적이었으며 일단 그것이 해결되자 최신 유행 옷, 화장품 따위에 신경을 쏟으면서 훈련에 별로 정진하지 않았다. 팀 성적은 그렇게 하강 선을 긋다가 결국 1986년에 이르러 해산되고 말았다. 

 

현재는 연변에 없는 여자축구 하지만 역사는 한시가 휘황했던 연변의 여자축구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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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의 조선족 3자매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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