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투데이] 젊음이 자본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젊음은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 사랑을 할 수 있고, 젊음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꿈을 좇을 수 있으며, 젊음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젊음은 제멋대로 굴어도 되는 특권의 증표인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정말 다시는 미치지 않을 기회가 있을까? 하이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생각이 얼마나 편협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이디 할머니는 1937년 독일에서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인형과 사탕이 없는 유년기를 보내며 끝없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기에 어린 나이에 독립적인 삶에 적응했다.
물론 자유를 갈망하는 아버지의 성격을 물려받았는지 그녀는 어릴 때부터 도전적인 일을 특히 좋아했다.
열네 살 때 다른 여자 아이들은 예쁘게 꾸미는 법을 배우는 나이가 됐지만 하이디는 오토바이를 보자마자 반했다.
열여섯 살 때 드디어 오토바이를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집에서 자동차 대리점을 운영하던 그녀는 아버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적지 않은 전문지식을 배웠다.
서른한 살 때 집안의 사업을 이어받아 점점 사업을 키워갔다. 알고 보니 그 작은 가게가 그녀에 의해 독일 최대의 딜러로 운영되고 있었다.
사업에 대해 그녀는 자신의 100%의 열정을 쏟아부었고 그렇게 지낸 것이 어느 사이에 40여 년이 되었다.
그녀에 대해 업계의 누구도 그녀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취미를 사업으로 발전시켜 현금화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대단한 일이며, 더욱이 그녀는 이 업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이었다.
은퇴 후 다들 그녀가 다 쓰지도 못할 돈을 가지고 여유롭고 근심 없는 삶을 살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추측은 절반만 맞아떨어졌다.
반평생을 바쁘게 살다가 드디어 자신만의 일을 할 시간이 생겼고, 그녀는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결정을 내렸다. 바로 자동차 여행이었다.
당시 하이디 할머니는 78세였고 자동차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그 나이의 사람들에게 자동차 여행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아는 일이다.
하지만 하이디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컸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어렸을 때 그녀는 다른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아버지의 여행 일기를 껴안고 이리저리 뒤적이는 것을 좋아했다.
그 일기에는 아버지가 젊은 시절 이집트, 지중해를 탐험하며 여행한 사진과 마음을 담았는 오토바이를 탄 아버지를 동경하며 언젠가는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젊었을 때는 돈 벌기에 바빠 세상을 제대로 볼 시간이 없었는데, 이제는 은퇴해 드디어 시간이 생겼으니 그녀가 출발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만 있다면 여행은 결코 늦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지루한 은퇴 생활에 지친 하이디 할머니는 드디어 꿈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할머니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빈티지 자동차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빈티지 픽업트럭을 골라 지구와 같은 색으로 도색하고, 차체에 세계지도를 그려주며 귀여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되살려서는 상세한 로드맵을 만들었고, 모든 것을 직접 할 준비를 했다.
윤년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흔들의자에서 노후를 보내기로 선택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가속 페달을 밟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인생의 한계를 경신하고 있었다.
가는 도중에 동행한 사람은 없었지만 그녀의 흥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았고,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아이처럼 기뻐하는 할머니의 눈빛에는 아련함과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그녀가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됐다.
할머니는 안데스산맥에서 여행을 좋아하는 젊은이를 만났고 튀르키예로 가는 길과 캐나다에서는 사진 찍는 것도 잊지 않았으며 가는 곳마다에서는 자신의 차에 이 나라 국기를 꽂았다.
그녀는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기꺼이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심지어 경찰과도 친구가 되었다.
물론 이번 여행도 순탄하지만은 않았고, 도중에 그녀도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예를 들어, 그녀는 중국 국경에 진입하려고 할 때 문전박대를 당했다. 외국인이 중국에서 면허를 신청할 수 있는 나이는 69세지만 당시 할머니는 이미 78세였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한 중국인 가이드가 아이디어를 내 키르기스스탄의 또 다른 관문에서 해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우여곡절 끝에 하이디 할머니는 어렵사리 중국 경내로 들어왔다. 그리고 중국의 남쪽으로 가는 내내, 그녀는 깊이 들어갈수록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중국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는 많은 중국인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들을 자신의 조수석에 초대하기도 했다. 중국인 친구들은 하이디 할머니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도 성의를 보였다. 하이디 할머니를 모시고 만리장성을 등반했고 시안(西安)에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
한편 아미산에 가서 할머니는 향 태우는 법을 배웠고 시장에 가서는 중국 할머니들의 일상을 체험하기도 했다.
그녀는 중국을 매우 좋아했지만, 아무리 떠나기 싫어도 계획대로 계속 가야 했다. 중국을 떠난 후의 여정 역시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가벼우면 후도를 몰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또 심할 때면 교통사고로 할머니가 크게 다쳐 새끼손가락 일부를 절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시련들이 하이디 할머니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베를린을 출발해 튀르키예, 중동을 넘어 중국을 횡단하고, 크루즈를 타고 호주와 뉴질랜드를 거쳐 미국과 캐나다에서 남미로 향하는 할머니…
이 자동차 여행은 10만 킬로미터를 달려 58개국을 여행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에게 물었다. 어떤 용기가 그녀로 하여금 이 쉽지 않은 일을 하게 했을까고 말이다.
그럴 때마다 하이디 할머니는 평생 한 번쯤은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며 늘 이렇게 답했다.
하이디 할머니에게 여행의 의미는 색다른 삶의 경험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짧은 인생을 끊임없이 풍요롭게 하는 것이었다.
여행기간 그녀는 꽃 치마를 입을 수 있었다. 오토바이도 탈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사업을 잘 운영할 수 있었고, 또한 꿈을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할 수도 있다.
미치지 않으면 늙는다는 말이 무성했지만 하이디 할머니는 행동으로 그 말을 뒤집었다.
늙으면 어때? 80세에도 세상에 나갈 수 있다!
꿈을 좇는 것은 이 세상에서 드물게 공평한 일이다.
나이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이유가 결코 아니며, 당신이 생각한다면 어떠한 구속도 구속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가령 당신이 젊게 살지 못한다면 열심히 늙기를 바란다.
우리의 앞으로의 노년 생활이 모두 하이디 할머니처럼 배움의 기회가 있기 마련이다, 노년에는 배움이 있고 노년에는 즐거움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