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강춘
전통민요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음악을 상징하고 있는 대표적인 민요이다. 세계 아름다운 곡 선정대회에서 82%라는 엄청난 지지를 받으면서 1위로 선정된 적 있는 그야말로 세상에 자랑할만한 선율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 조선족 문화에서 '아리랑'이 지나치게 범람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리랑'을 붙인 노래 명칭만 보더라도 '장백의 아리랑', '나의 아리랑', '아리랑 정가', '내 고향 아리랑', '아리랑 총각', '연변 새아리랑', '새아리랑' 등이 있다. 기업 명칭들로는 '아리랑 미식거리', '아리랑 식품유한회사', '아리랑 김치공장', '아리랑 식당' 등이 있고 지어 텔레비전 프로와 시나리오 명칭에도 아리랑이 붙는다. 실로 '아리랑' 이 없으면 조선족을 홍보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아리랑' 의미는 무엇일까?
'아리'의 뜻은 하나는 '고운'을 뜻하며 또한 '사무치게 그리운'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랑'은 '님'이라는 뜻이다. '님'은 한국어 사전에서 사모하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했다.
이처럼 '아라리'는 고대에는 '상사병'의 뜻으로 판단된다. 현대에 상사병을 나타내는 '가슴 아리(가슴 앓이)'에서 그 흔적이 어렴풋이 보인다.
'아리랑'의 가사를 현대어로 리듬을 접어두고 해석하면 '곱고 그리운 님 사무치게 그리워 상사병이 났네'의 뜻이 된다. '아리랑 고개 넘어간다'라는' 곱고 그리운 님이 고개를 넘어간다'라는 뜻이다.
이처럼 '아리랑'은 청춘 남녀의 순결하고 변함없는 애정을 반영한 전통민요이다.
이런 독특한 민요의 뒤에 각가지 명칭들을 붙여 민족을 홍보하려고 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무엇 때문에 중국 조선족은 '아리랑'을 이렇게 남용할까 하는 물음표가 생긴다.
'말리꽃(茉莉花)'은 중화민족의 대표적인 전통민요이다. 한족 문인들은 이 민요의 사용에 각별한 중시를 돌리고 있으며 일반 문예 야회에는 이 노래를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송조영(宋祖英)은 오스트리아의 빈 황금홀에서 이 노래를 불러 중화민족의 예술을 세계에 홍보하였다. 하지만 '말리꽃'이란 노래 뒤에 갖가지 명칭을 붙인 현상을 보았는가?
혁신은 한 민족의 진보하고 발전하는 동력이다. 개혁개방 30년이 지난 오늘 이 같은 '아리랑' 현상에서 느껴지는 점이 있어 우리 민족의 가곡 창작에 몇 마디 성숙되지 못한 견해를 이야기해 보려 한다
수십 년 동안의 조선족 노래를 보면 아주 훌륭한 대중가요도 많지만 적지 않은 가사는 지금도 지난 50년대의 틀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혁개방 후 중국의 조선족은 한국 문화, 조선 문화, 중화 문화의 영향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런 독특한 사회와 생활 배경은 우리 민족 예술창작에 전례 없는 절호의 기회를 창조해 주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지금도 몇십 년 변함없는 풍격으로 노래를 창작하고 있는 점이다.
무엇이 훌륭한 노래일까? 민족성과 현대성을 밀접히 결합하고 대중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아닐까. 14억 국민을 대상으로 지금 서장, 신강, 내몽골, 운남 등지 소수민족들의 문화는 민족 특색을 보류하고 있는 한편 한족 문화를 비롯한 각 민족의 우수한 문화요소들을 흡수하여 중화 문화권에 자리매김 하고 있다.
변혁의 시대, 약동하는 시대에 우리 민족의 예술도 과감한 혁신을 통해 전통 민요에서 체현된 사랑의 힘으로 새 세기, 새 시대에 알맞은 민족 가요를 많이 창작하여 기타 소수민족 가요와 어깨 나란히 중국무대, 나아가서 세계무대에서 중국 조선족을 대표할 수 있는 노래가 나왔으면 한다.
BEST 뉴스
-
극우, 이제는 때려잡아야 할 때
극우가 미국으로 건너갔다. 국내의 한 극우 청년단체가 미국에서 첫 공개 활동을 열었다는 소식은 가벼운 해프닝이 아니다. 그들이 쏟아낸 말은 정부에 대한 저급한 욕설, 선거가 조작됐다는 허무맹랑한 주장, 종교를 빌미로 한 선동뿐이었다. 사실은 실종되고 증거는 사라졌다. 남은 것은 음모론과 분열의 광기뿐이다. ... -
인천 앞바다의 선택, 인간애가 남긴 울림
며칠 전 인천 앞바다에서 있었던 구조 소식은 제 마음을 오래 붙들었습니다. 34살 해경 이재석 경장은 새벽 바다에 뛰어들어 위기에 처한 중국인 노인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한밤중의 차가운 바다, 거센 파도 속에서 그는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요... -
백두산 현장르포① | 민족의 성산, 천지를 마주하다
[동포투데이] 2025년 9월 26일 아침, 백두산 자락은 맑은 하늘 아래 싸늘한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다. 정상에 오르는 길목에는 이른 시간부터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 카메라를 든 한국인 청년들, 러시아와 몽골에서 온 관광객들까지, 백두산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긴 오르막을 지... -
“터무니없는 괴담, 정치 선동의 불쏘시개 될라”
글 | 허훈 최근 온라인 공간에 떠도는 ‘중국인 괴담’은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내년까지 중국인 2천만 명이 무비자로 들어온다”, “아이들이 납치돼 장기 적출을 당한다”는 식의 주장들이 버젓이 퍼지고 있다. 터무니없는 거짓말임에도 수백 명이 ‘좋아요’를 누르고 수십 차례 공유하... -
[기획연재②] 윤동주 생가에서 보는 디아스포라 — 교육·신앙·항일의 불씨
[동포투데이] 백두산 자락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서면 용정시 명동촌이 나온다. 소박한 기와집과 푸른 담장이 맞아주는 이 마을은 시인 윤동주(1917~1945)의 고향이다. 그러나 이곳은 한 시인의 생가를 넘어선다. 근대 조선 민족운동의 요람이자, 교육·종교·문화가 교차한 북간도의 심장부였다. 1906년 서전서... -
[기획연재①] 윤동주 생가에서 보는 디아스포라 — 문학, 민족, 그리고 기억의 장소
[동포투데이] 2025년 9월 25일, 기자는 길림성 용정시 명동촌을 찾았다. 이곳은 애국시인 윤동주(1917~1945)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다. 복원된 생가는 소박하게 서 있고, 그 앞마당에는 여전히 들판에서 불어온 가을 바람이 머문다. 마을 입구의 표지석은 단순히 한 시인의 흔적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명동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