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김정룡(다(多)가치 포럼 위원장)

 

 

난세의 장수는 용(勇), 지(智), 덕(德) 등 세 가지 기질을 갖추어야 훌륭한 장수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세 가지를 다 갖춘 장수는 삼국시대에 조조나 유비 밖에 없을 만큼 매우 드물다.

 

55.png삼국정립 전 수많은 강호의 장수 중에 무예가 가장 뛰어난 장수는 여포이다. 여포는 무예가 가장 뛰어난데다 인물 또한 잘 생기기로 요명했다. 힘이 세기로 정평이 나 있는 관우나 장비는 키꼴이 장대한데다 얼굴이 구운 수수떡처럼 검붉어 힘이 펄펄 넘쳐나 보인다. 동탁도 무예가 뛰어나기로 유명한데 얼굴형이 사나워 사람을 겁나게 한다. 이들에 비하면 여포는 키도 장수치고는 큰 편이 아니고 얼굴이 미남형인데다 피부색 또한 희어서 여성들이 좋아할 이상형이다. 보통 이런 생김새를 갖고 태어난 사내들은 힘이 부족해서 유명한 싸움꾼이 될 수가 없지만 여포만은 예외였다. 여포는 활쏘기와 말 타기에 능숙했고 남보다 힘이 세서 자신을 비장(飛將, 한 무제 때 명장 李廣은 궁술과 마술에 뛰어나 당시 흉노들은 그를 ‘비장군(飛將軍)’이라 부르고 두려워했다. 여포는 자신을 이광에 비유한 것)이라 불렀다.


진수의 <삼국지> 여포전에 의하면 하진이 죽고 동탁이 궁에 도착했을 때 정원(丁原)이 실세였다. 동탁은 정원을 죽이고 그의 군사를 손에 넣으려고 했는데 정원에게는 천하제일 싸움꾼인 여포가 있어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정원이 병주에서 벼슬할 때 여포를 출세시켜 여포에게는 정원이 인생의 은인이었다. 소설 <삼국연의>에서는 정원과 여포는 부자관계를 맺었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정원은 여포의 양아버지가 되고 여포는 정원의 양아들이 된 셈이다. 이 정도로 가까운 관계이니 동탁이 정원을 숙청하는데 있어서 여포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포는 싸움에는 뛰어나지만 머리가 모자라 지혜롭지 못해 지장도 아니고, 덕이 부족해서 덕장도 되지 못한 용장일 뿐이었다. 이것이 그의 인생을 결정하는 주요 포인트로 작용했다. 무슨 말이냐면 동탁 진영에서 당대 최고의 전마(戰馬)인 적토마를 여포에게 주고 금은보화를 얹어 주는 조건으로 정원을 죽이게 했는데 눈앞의 하찮은 이익에 넘어가 그만 자신의 양아버지를 죽이고 동탁에게로 귀의한다.


포악무도하기로 끝이 없는 동탁은 황제를 갈아치우는 바람에 천하의 미움과 원한을 사게 되었고 물불 가리지 않고 무고한 백성마저 무리로 살해하는 바람에 전국적으로 반동탁연맹이 생겨났고 조정에서 사도 왕윤이 동탁을 살해하는 기획을 세운다.


소설 <삼국연의>에서는 동탁을 죽인 일등공신이 미녀 초선이라는 스토리를 그럴듯하게 그려냈다. 소설에 의하면 초선은 사도 왕윤의 양녀다. 즉 왕윤이 좋아한 기녀의 사생아인데 어미가 일찍 죽자 왕윤이 양녀로 키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명문가문에 입양된 초선은 어릴 때부터 공부도 하고 비파를 타고 춤과 노래는 물론이고 시까지 지을 만큼 지적으로 성장한 처녀였다. 초선의 용모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후대의 중국인은 초선을 역대 4대 미녀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 4대 미녀들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당시에는 사진이라는 존재가 없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가 없지만 그녀들을 비유한 전설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춘추시대 월나라의 서시(西施)를 본 물고기들이 수영하는 걸 잊고 강바닥에 가라앉았다고 한다. 한나라의 왕소군(王昭君)을 본 기러기들이 날갯짓을 멈춰 떨어졌다고 하고, 당나라 양귀비가 꽃을 만지자 꽃마저 부끄러워 잎을 말고 감추었다고 한다. 초선에 대한 일화도 이 세 미녀에 뒤지지 않는다. 하루는 초선이 화원에서 달을 보고 있는데 구름 한 조각이 달을 가렸다고 한다. 이 모습을 지켜본 아버지 왕윤이 찬탄을 금치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달조차도 초선을 보니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는구나. 과연 폐월(閉月)이로다.”


이 4대 미녀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가 현재 중국인의 입에 자주 회자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서시, 왕소군, 양귀비는 역사인물인데 비해 초선은 역사인물이 아니고 문학이 각색해낸 상상속의 인물이다. 역사에 존재하지도 않은 초선을 4대 미녀 반열에 올려놓았으니 나관중이란 작가가 얼마나 위대한지 새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당대에 있어서 잘 생기고 무예가 가장 뛰어난 사내에게 여러모로 걸 맞는 상대 여성을 그려내려면 천하제일 미녀였던 것은 이해가 충분히 가는 일이다. 나관중의 <삼국연의>가 고전 소설 중에 가장 많이 읽힌 이유가 강호의 영웅들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잘 그려낸 것이 크게 한 몫을 했던 것이고 금상첨화로 초선이라는 미녀를 등장시킨 것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던 것이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했던 것이다.


사서에 의하면 여포가 동탁을 죽인 것은 초선 때문이 아니고 동탁이 여포에게 안방 문을 지키게 할 만큼 신임했는데 그만 동탁의 여인을 건드려 불륜을 저지른 것이 들통 날까 두려워 전전긍긍 하고 있었다. 게다가 동탁은 여포를 믿으면서도 기분이 안 좋을 때 쩍하면 창을 여포에게 마구 던져 생명의 위험을 느낄 정도로 불안해 왕윤을 찾아 고충을 털어놓아 왕윤은 때가 왔다고 속으로 쾌자를 부르고 여포를 설득하기에 나섰다. 여포도 언제 불행이 닥칠지 몰라 왕윤과 사손서의 동탁 죽이기 기획과 의기투합이 되어 행동에 나섰던 것이다.


사실 왕윤이 여포에게 동탁을 살해하라는 주문을 했을 때 처음에는 여포가 많이 망설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포가 양아버지 정원을 죽이고 나서 동탁과 또 부자관계를 맺었기 때문이었다.


“나와 그는 부자 관계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왕윤이 말했다.


“당신은 성이 여씨(呂氏, 중국인은 남의 성 뒤에 氏를 붙이지 않는다. 이 대화는 한국 작가들의 버전에 등장한 것임을 밝혀둔다)이니 동탁과는 본래 골육이 아니지 않소. 그대는 언제 죽을지 몰라 근심하면서 무슨 부자 관계를 말하시오.”


여포는 이 말을 듣고 드디어 일을 도모할 것을 허락하고 칼을 들어 동탁을 찔러 죽였다.


여포는 인생에서 두 번이나 양아버지를 죽였다. 배신도 이런 배신이 천하에 또 있을까? 배신의 아이콘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가야 했다.


동탁을 죽이고 나서 세상이 여포의 천하였다면 그나마 괜찮았을 건데 동탁이 죽고 40여 일만에 궁에서 쫓겨나 유랑 길에 오르는 불행을 맞게 되었다.


여포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원술이었다. 그런데 원술은 받아주지 않았다. 여포는 할 수 없이 황하 북쪽에 있는 원술의 형 원소를 찾아간다. 여포는 원소를 도와 상산(常山)에 있는 장연을 공격했고 적토마를 갖고 있는 여포가 전장에서 얼마나 뛰어났는지 쉽게 상대를 격파했다. 승리 후 원소에게 군대를 늘려 줄 것을 요구하고 게다가 여포의 장수와 병사들이 약탈을 일삼자 원소도 여포를 두려워 기피했다. 눈치를 챈 여포가 원소를 떠나려 하자 원소가 후일이 두려워 자객을 보내 암살하려고 했는데 성공하지 못해 여포는 달아나 장양(張楊)과 합세했다. 원소는 병사들에게 여포를 추격하도록 명령했으나 다들 여포를 두려워하며 감히 가까이 다가가려는 자가 없었다.


흥평 원년(194)에 여포는 유비를 찾아가서 유비를 동생으로 삼기로 하는데 유비는 여포의 말이 일관성이 없어 겉으로는 받아주는 척하고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유비가 동쪽으로 가서 원술을 공격할 때 여포는 하비성을 습격하여 취했다. 유비는 돌아와서 할 수 없이 여포에게 귀의했다.


싸움에서 밀린 원술은 여포와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여포의 딸을 며느리로 맞아들여 사돈이 되고 싶어 했지만 여포는 과거에 받아주지 않은 복수를 하려고 거절했다.


조조는 여포를 어떻게 보았을까? 진등이 조조를 만났을 때 “여포 장군을 대하기를 마치 호랑이를 기르듯 해야 합니다. 호랑이는 고기를 먹어 배가 불러야지 배부르지 않으면 사람을 물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자 조조는 말하기를 “그대가 말한 것과 같지 않소. 비유하자면 매를 기르는 것과 같소. 굶주리면 솜씨를 발휘할 것이고 배부르면 날아가 버릴 것이오.”


난세에는 적도 아군도 임시적인 것으로서 그때그때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이 이뤄진다. 어제 원수와 손을 잡을 수도 있고 오늘 동지가 내일 배신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건안 3년(198) 여포는 다시 원술과 힘을 합쳐 모반했다. 고순을 파견해 소패에 있는 유비를 공격하여 쳐부수었다. 조조는 하우돈을 보내어 유비를 구하도록 했으나 고순에게 패했다.


원술이 칭제를 자처하고 나서자 조조는 원솔을 공격한다. 그때 조조는 여포를 끌어들여 힘을 함께 하고자 하자 유비 삼형제는 게거품 물고 반대한다. 조조가 겨우 설득해서야 여포와의 협력, 즉 ‘적과의 동침’이 이뤄진다.


여포는 싸움에는 이골이 나 있으나 궁을 떠난 지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 잡지 못해 여기저기 몸을 의탁하며 살았다. 아울러 머리가 모자라고 덕이 부족해 어디가도 환영을 받지 못했다.


건안 3년(198) 결국 조조가 직접 여포 정벌에 나섰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다.’ <손자병법>에 있는 전략전술이다. 조조는 여포가 있는 성 아래 이르러 여포에게 편지를 보내 싸움과 항복의 이해득실을 설명해주었다. 여포가 투항하려고 하자 진궁 등은 자신들이 지은 죄가 깊음을 생각하여 그의 계획을 가로막았다. 여포가 싸움을 하려면 병력이 모자라 사람을 보내 원술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원술은 스스로 기병 1천 명을 이끌고 전쟁에 나섰다. 하지만 곧 패배하여 돌아가 성을 지키고 감히 나와서 싸우려 하지 않았으므로 원술 역시 여포를 구하지 않았다.


여포는 비록 날래고 용감했지만 계책이 없고 의심과 질투가 많아 부하를 통제할 수 없었으므로 단지 몇몇 장수만 믿었다. 그러나 장수들마저 저마다 의견이 달라 서로 믿지 않았으므로 싸울 때마다 대부분 크게 패배했다. 조조는 참호를 파고 포위한 지 석 달 만에 상하 간에 마음이 벌어져 장수 몇 명이 조조에게 투항했다.


여포는 직속 부하들과 함께 백문루(白門樓)에 올랐다. 군대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여포는 하는 수 없이 내려와 투항했다.


포승줄이 너무 단단하게 조여져 여포가 말했다.


“너무 꽉 조이게 하지 말고 조금 느슨하게 묶으면 안 되겠소.”


이에 조조가 말했다.


“큰 호랑이를 묶었으니 부득이 꽉 조여야 하지 않겠는가.”


여포는 마지막으로 요청했다.


“명공(조조)께서 근심거리로 여기던 것 중에서 나 여포보다 더 지나친 것은 없었소. 이제 내가 항복했으니 천하에 근심거리가 될 만한 것은 없소. 명공이 보병을 거느리고 나 여포로 하여금 기병을 거느리게 한다면 천하를 쉽게 평정할 수 있을 것이오.”


이 때 곁에 있던 유비가 말했다.


“명공께서는 이 자가 정건양(정원)과 동태사(동탁)를 섬기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뜻인즉 여포는 양아버지 둘씩이나 죽인 인간인데 언젠가 명공(조조)을 배신할지 모를 일인데 살려두다니요. 말이 됩니까?


이 말을 들은 조조는 즉시 여포를 죽이라는 명을 내렸다.


잘생긴데다 무예가 뛰어나 세상의 주목을 받던 여포는 용장의 기질은 충분했지만 지장의 기질도 덕장의 기질도 갖추지 못해 천하를 누비며 달리고 달렸으나 아무 성과도 이루지 못하고 씁쓸하게 역사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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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재해석⑨ 배신의 아이콘 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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