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이(리)재덕(李在德)- 동북항일연군 내의 조선족 여투사이자 국제주의 전사였으며 살아 있은 역사의 증인이다. 그리고 조선인으로부터 중국조선족으로 탈바꿈하게 된 특수시대가 낳은 여성강자이기도 하다.
1917년 12월 29일, 이재덕은 조선 평안남도 개천군답도리(介川郡沓道里)에서 태어났다. 이재덕이 2살 되던 해 이재덕의 부친 이상희(李相熙)가 조선광복을 목적으로 하는 독립단체에 참가했다고 일제에 의해 체포되자 1920년 전 가족은 할머니 안순희(安顺姬)를 따라 중국 요녕성 안동(지금의 단동)지구의 농촌으로 이주, 다시 4년 뒤 송강성 탕원현 복흥툰에 정착한다.
당시 복흥툰에는 송강성의 군벌 오준생이 개설한 <복풍도전회사(福丰稻田公司)>가 있었으며 이재덕 일가는 그 회사의 논을 임대맡아 지으면서 입에 풀칠이나마 할 수 있었다.
1928년 초봄, 복흥툰에 3명의 조선인이 찾아왔다. 이들 중 한 사람은 키가 크고 우람지었으며 목소리도 우렁우렁하였으며 특히 그의 중국어구사가 아주 유창하였다. 그가 바로 유명한 혁명가였으며 후에는 조선의 제2임자로 된 최용건(崔庸健)이었다. 그 얼마 전 최용건은 공산당이 일으킨 광주봉기(广州起义)에 참가, 황포군관학교 교관 겸 제5기 제2구대 대장의 신분으로 200-300명의 병력으로 100여 시간에 달하는 격전을 벌이다가 봉기가 실패하자 국민당 특무들의 감시와 겹겹으로 된 적들의 봉쇄망을 뚫고 광주로부터 동북으로 오게 되었었다.
동북으로 온 최용건은 다니는 곳마다 혁명의 진리를 선전, 결국 이재덕이 살고 있는 복흥툰까지 오게 되었던 것이다.
복흥툰에 온 최용건은 김치강(金治刚)이란 가명으로 송동모범학교(松东模范学校)를 창립하고는 이 지구의 조선인들한테 민족 및 계몽 교육을 진행, 당시 10살인 이재덕은 제일 선참으로 이 학교에 입학했다.
계몽교육을 받는 기간 이재덕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압박하에 있는 중국과 조선은 모두 공동한 운명 속에 있으며 오직 제국주의 침략을 물리쳐야만 진정한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쟁취할 수 있다는 혁명의 진지를 깨닫게 된다.
이 송동모범학교에 다니면서 이재덕은 선후로 공산주의 아동단 및 소년선봉대에 가입했으며 소대장에 이어 중대장으로 되기도 했다. 당시 이 학교에서는 어문, 산수, 체육과 음악 등 학과를 설치, 음악학과에서는 제일 처음 배운 노래가 최용건 교장이 지은 모범학교 교가였다.
구락부로 된 학교는 저녁마다 마을 사람들로 붐비었다. 이재덕은 늘 어머니와 할머니를 이끌고 학교로 가서는 최용건 교장의 강연을 들었으며 여기에서 <공산당>이란 세 글자도 알게 되었다. 최교장은 또 일제가 조선과 중국을 침략하고 약탈한 죄행을 폭로하였고 레닌이 영도한 10월 혁명에 대해 소개했으며 장개석이 혁명을 배반하는 과정과 자신이 광주봉기에 참가하던 과정을 감명 깊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런 혁명도리들을 들으면서 마을사람들의 인식과 각오는 날로 높아만 갔다.
최용건의 영향을 받은 복흥툰 마을에는 농민협회, 부녀협회와 반일대동맹, 반일청년회 등 대중혁명조직이 성립되었으며 부녀협회에서 김성강의 활약이 가장 돌출하였다.
1928년 10월, 최용건의 양성과 도움으로 배치운(裴治云), 최규복(崔圭福), 이재덕의 어머니 김성강이 입당, 이들은 삼강지구(三江地区)에서 가장 선참으로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사람들이었다. 이어 1929년 봄이 되자 학립(鹤立) 부근의 북칠호툰(北七号屯)에 중공 탕원현위가 성립, 이는 삼강지구에서 성립된 첫 현위였으며 전반 동북에서 가장 일찍 성립된 현위의 하나였다.
1931년 항일투쟁의 수요와 중공 만주성위의 비준으로 중공 탕원현위가 확대되었고 이재덕의 어머니 김성강은 현위위원 겸 현 부녀연합회 주임으로 되었다.
그 시기, 이재덕은 어머니 및 기타 공산당원들의 영향을 받아 사상상 재빠르게 진보하였다. 당시 이재덕은 늘 당조직과 공청단 조직에서 조직하는 가무, 연극, 강연 등 문예활동에 참가하여 각종 형식으로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죄행을 폭로하는 한편 반일계몽 선전에도 열성을 다하였다. 1932년 초만 하더라도 이재덕은 40여 일간에 거쳐 선전대를 따라 학립진(鹤立镇), 연강구(莲江口), 태평천(太平川), 격절하 금광(格节河金矿). 학강탄광(鹤岗煤矿) 그리고 나북(萝北)경내의 압단하(鸭蛋河), 도로하(都鲁河), 의란현(依兰县) 북부 등지를 돌면서 순회공연, 공연장마다 관중들의 눈물바다로 되었으며 이는 또한 대중들의 반일각오를 불러일으킴에 있어서도 큰 작용을 하였다. 원 흑룡강성 군구 부사령원이었으며 저명한 항일장령이었던 왕명귀(王明贵) 등 많은 사람들 역시 항일선전대의 영향으로 총부리를 일제에게 겨누면서 항일전선으로 달려나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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