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 훈
스리랑카 출신의 이주노동자가 전남 나주의 한 벽돌 공장에서 지게차 화물에 결박된 채 한국인 노동자들에 의해 끌려다니는 영상이 공개됐다. “잘못했다고 해야지.” 피해자의 비명이 아니라, 가해자들의 희롱섞인 말과 웃음소리다. 영상 속 동료들의 웃음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감각마저 사라졌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장면을 본 우리 사회는 과연 무슨 자격으로 ‘외국인노동자 인권 개선’을 말할 수 있는가를 되묻게 된다.
고용노동부는 24일 해당 사업장에 대해 기획감독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폭행과 직장 내 괴롭힘 여부는 물론, 임금 체불·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전반적인 법 위반 사항을 조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명백한 인권 유린”이라며 엄정한 대응을 주문했다. 사후 대응이 뒤따른 것은 당연하고 다행이지만, 사건의 본질은 단지 한 공장의 일탈로 축소될 수 없다.
이 사건은 한국 산업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어떤 방식으로 ‘관리’되고 있는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법적 신분은 고용허가제로 보호받는다지만, 현실 속 이주노동자는 고립된 채 최하위 노동력으로만 여겨진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도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그리고 아무도 그들을 대변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가해는 계속된다.
‘사람을 지게차로 끌었다’는 이 믿기 어려운 장면은 어쩌면 오랜 시간 우리 산업현장이 누적해온 침묵의 결과물이다. 일부 사업장에서의 집단 괴롭힘은 이미 몇 차례 반복돼 왔고, 고용노동부의 감독 체계는 항상 사건이 터진 뒤에야 움직였다. 이는 예방이 아닌 사후진화의 행정으로, 제도 자체에 구조적 반성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또한, 이번 사건은 공동체의 도덕적 감각을 심각하게 시험하고 있다. 누군가의 고통을 장난삼아 소비하고, 이를 말리지 못한 채 방관한 현장의 노동자들, 그리고 이를 보고도 무덤덤하게 넘긴 관리자까지, 문제는 단지 한 명의 악행이 아닌 공장 전체의 집단적 윤리 붕괴로 읽힌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형식적 조사나 일시적 징계가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방조해온 구조와 시선을 철저히 되짚는 일이다. 고용허가제는 단순히 노동력 공급의 수단이 아니다. 그 제도 아래 일하는 이들의 존엄을 보장하지 않는 한, 우리는 더 이상 ‘선진국’도, ‘법치국가’도 아니다.
인권은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다. 노동 현장은 법이 가장 멀고, 침묵이 가장 짙게 깔리는 곳이다. 그곳에서 벌어진 일이 지게차 학대였다면, 이는 한국 사회가 아직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음을 반증한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그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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