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일 승리 80년, 권력과 정의의 충돌

[동포투데이]1945년 8월 15일, 중국 전역은 14년간 이어진 항일전쟁의 승리 소식으로 들썩였다. 당시 언론 <대공보(大公報)>는 대형 활자로 “일본 투항!”을 전하며, 수많은 중국인들이 기다려온 순간을 알렸다. 그러나 전쟁의 종결과 동시에 민중의 관심은 ‘일본에 협력한 한간(漢奸) 처벌’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와 분노를 함께 안고 한간 단죄를 촉구했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국민당 정부의 미온적 태도와 권력 내부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정의는 늦춰지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상처가 길게 남았다.
전승 직후 국민당 정부는 한간 체포와 처벌에 소극적이었다. 체포 대상 명단조차 한 달 이상 지연되어 공개됐다. 이는 단순한 행정상의 문제라기보다 정치적 판단과 관련이 깊었다. 장제스와 국민당 고위층은 공산당과의 내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간 세력을 ‘포섭 가능한 자원’으로 고려했다. 무조건적인 숙청보다는 거래와 재활용이 우선시됐다. 미국은 “국민당이 움직이지 않으면 연합군이 직접 전범 명단을 작성할 것”이라고 압박했고, 이에 국민당은 1945년 9월 말부터 본격적인 체포 작전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한 달가량의 지연 기간 동안 상당수 한간은 도피하거나 증거를 은폐하며 체포를 피했다.
국민당 정보기관인 군통(軍統)과 각종 접수 대원들은 ‘한간 숙청’을 명분으로 대규모 재산 몰수에 착수했지만, 공적 관리보다는 권력층의 사적 이익으로 상당수가 흘러들어갔다. 금괴와 고급 주택, 자동차는 물론 일부 매춘업소와 도박장까지 ‘한간 재산’이라는 명목으로 압류됐다. 결과적으로 많은 한간은 금전이나 재산을 바치며 생명을 유지했고, 정치적 연줄이 없는 경우에만 처벌을 면치 못했다. 죄의 경중보다는 권력과 연결된 정도가 생사를 결정한 셈이다.
대표적 사례로 주불해(周佛海)는 일본 점령기 금융·경제 분야를 장악한 대표적 한간이었으나 항전 말기에 비밀리에 국민당과 접촉해 ‘내통 증거’를 남겼다. 전후 그는 사형을 면했고, 몰수된 자산은 장제스의 내전 자금으로 활용됐다. 반면 같은 한간 거물인 진공보(陳公博)와 양홍지(梁鴻志)는 정치적 보호망이 없어 결국 처형당했다. 이처럼 당시 정의의 기준은 일관되지 않았고, 권력과 거래가 생사를 좌우했다.
국민당은 전국적으로 약 4천여 명의 한간을 체포했다고 보고했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한간이 도피하거나 증거를 지웠다. 민중 사이에서는 “한간보다 한간을 감싼 국민당이 더 밉다”는 말이 퍼질 정도였다. 게다가 국민당은 일본군 포로와 민간인에게 상대적으로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전후에도 식량과 의복, 용돈을 제공했지만, 전선에서 피를 흘린 중국군 장병들은 충분한 보급조차 받지 못했다. 이러한 차별적 조치는 국민당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권력 내부의 부패도 두드러졌다. 상하이에서는 접수 대원들이 수천 채 건물과 금괴, 자동차를 사유화했고, 일부는 장제스와 군통 고위층에 재분배됐다. 군통과 연결된 한간만이 ‘보호막’을 얻을 수 있었고, 그렇지 않은 자는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전쟁 이후의 체제 구축 과정에서 권력 다툼과 재산 다툼이 한간 처벌보다 우선한 셈이다.
항일전쟁 승리 80년이 지난 지금, ‘한간’은 단순한 역사적 용어를 넘어 배신과 협력의 상징으로 중국 사회에서 여전히 회자된다. 역사학자들은 “한간의 존재가 전쟁을 장기화시키고 민중 피해를 확대했다”고 평가하며, 전쟁 이후 정의 구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승리 직후 정의가 지연되거나 왜곡될 경우, 사회적 상처가 세대를 넘어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역사적 교훈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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