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2-0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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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중한 민속문화 우리가 지켜가요"
    지난 16일, 할빈시도리조선족중심소학교는 조선민족의 전통문화를 잘 알고 또 그것을 소중하게 지켜가기 위해 각 반급에서 '전통문화와의 만남' , '소중한 민속문화 우리가 지켜가요' 등 제목으로 중대회,활동과를 조직했다.저학년은 전래동요, 전래놀이를 통해 민속문화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 나아가서 학생들에게 민족문화를 지키고 이어가려는 마음을 심어주었다. 고학년 학생들은 주로 우리민족의 의식주, 전통명절, 전통례절, 세시놀이를 통해 선조들의 슬기와 지혜를 알도록 했다. 학생들은 이번 활동을 통해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게 됐다며 우리의 전통문화를 소중히 지켜가겠다고 다짐했다.오춘매흑룡강신문 2012-11-21
    • 뉴스
    • 고국소식
    2012-11-24
  • 열혈축구팬 습근평총서기 《소원은 월드컵 우승》
    습근평총서기가 지난 2월, 아일랜드를 방문했을 당시 더블린의 한 축구장에서 직접 축구공을 차는 모습.중공중앙 습근평총서기가 스포츠 가운데서 축구를 혹애하고있는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축구 전문지인 축구보(足球报)는 19일 《습근평주석은 축구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지도자》라며 그의 축구 사랑과 관련된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습근평총서기는 지난 1980년대부터 축구경기장을 찾아 직접 경기를 관전할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습니다. 습근평총서기는 지난 2월 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NBA 경기를 관전할 당시 LA레이커스의 전설적 스타인 매직 존슨과 유명 축구스타인 데이비드 베컴으로부터 각각 그들의 유니폼을 선물받았는데 매직 존슨보다 베컴의 유니폼을 더 좋아했다는 후문입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베컴에게 《나는 당신의 팬이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습근평총서기는 그라운드에서 직접 공을 차기도 했습니다. 지난 2008년 7월 15일, 진황도에 위치한 올림픽센터스타디움을 시찰했을 당시 그는 직접 그라운드에서 공을 차며 잔디상태를 점검했으며 린근에서 훈련하던 녀자축구 대표팀의 훈련 현장을 방문해 선수들을 친히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월 아일랜드를 방문했을 때에도 더블린(Dublin)에서 열린 운동경기를 관전한후 직접 그라운드로 내려와 축구공을 찼습니다. 지난해 7월 4일, 당시 한국민주당 대표인 손학규 국회의원과 만났을때 그는 손의원으로부터 박지성의 친필 사인이 담긴 유니폼을 선물로 받자 그자리에서 《내겐 3가지 소원이 있는데 바로 중국의 월드컵 진출, 중국에서의 월드컵 개최, 중국의 월드컵 우승이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축구보》는 《습근평총서기가 당시 밝힌 3가지 소원은 중국축구가 앞으로 발전해나가야 할 방향을 짚어준것이나 다름없다》며 《습근평총서기 역시 축구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중국축구 발전에 대한 중장기적인 플랜을 세워 중국축구가 한단계 도약할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 뉴스
    • 지구촌
    • 아시아
    2012-11-23
  • 어머님의 편지
    어머님의 편지 글/훈이 어디 가서든 거퍼 백날을 넘기시지 못하던 어머니신데 우리집에 정착하신지 삼년이 넘었다. 헌데 요즘 어머님은 또 안절부절 못하신다. 또 어디로 떠나고 싶으신 걸까? 하긴 어머님께서 어디든 가시고 싶으시다면 마지막 요구인셈 치고 만족드릴수 없는건 아니지만 사방 수천리 땅 여기저기 널려있는 다섯딸 집을 떠돌아 다니시면서 수토와 기후 차이로 감기를 밥드시듯 자주 하셨고 나중에는 치매증에까지 걸리셔서 우리 젊은이들이 고생한 것은 그만두고 당신 자신도 얼마나 괴로우셨는지 모른다. 그래서 입이 닳도록 설복한 끝에 겨우 어머니를 우리집에 모시게 되였는데 왜 또 떠날 생각을 하시는 걸까? 그런 어머님을 만류할 만단의 준비를 다하고 매일 어머님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데 그날 퇴근해 돌아온 나를 보고 뜻밖에도 어머님께서 편지를 쓰시겠다며 편지지와 펜을 내놓으라는 것이였다. 광복후 문맹 퇴치때 야학을 좀 다니셨다는 밑천으로 갑자기 편지라니? 반신반의 하면서도 소설가나 시인이 되시겠단들 그요구를 무시할 이유가 나한테는 조금도 없는지라 원고지와 볼펜을 어머님께 드렸다. 인생 팔십에 실로 글귀라도 트시는지 어머님은 그날부터 꼬박 이틀 동안이나 식사시간 외에는 방안에서 나오시지 않으시더니 삼일째 되는날 아침 따로따로 접은 편지 네통을 나한테 넘겨 주시는 것이였다. 봉투에 넣어서 오늘중으로 당장 부쳐라 그렇게 호령이시다. 편지를 펼친 나는 억이 막혔다. “옥자 다 무사하냐? 에미는 이제 가고 싶은데도 없고 보고싶은 사람도 없다. 그냥 섧기만 하다. 대학까지 공부하구두 글이 모자라 엄마한테 편지두 못하느냐? 데리구 가다가 죽을가봐 데리러두 못오지, 데리구 가다 죽으문 목당강에 칵 처넣구 가문 되지 무서울게 뭐냐. 에미를 여기 막내한테 맡기구 죽기를 기다리냐? 손에 풀이 있을때는 어미구 풀이 없으문 어미두 아니냐? 당장 돈을 보내라. 회답을 해라!” 이는 독자들이 읽기 편하게 내가 다듬은 큰언니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이다. 다른 언니들에게 보내는 편지들도 이와 내용이 대동소이 했는데 중간에 쌍년을 넣어서 욕한것도 한가지고 손에 풀이 있으면 엄마고 늙어서 쓸모 없으면 엄마가 아니냐 당장 돈을 보내라는 어구로 결말을 맺은 것도 꼭 같았다 하지만 돈을 보내라는 그 호령이 혹 나의 뜻으로 오해될 것 같아 나는 아예 편지를 깔아 두기로 작심했다. 저녁에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니 어머니께서 오래 기다리셨다는 듯이 반색을 하신다. “편지를 부쳤느냐?” “네 아침에 말미를 맡고 우편국에 가서 다 부쳤습니다!” 나는 낯 가려운 줄도 모르고 .슬쩍 거짓말을 했다. 어머니는 무척 기뻐 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한술 더 떴다. “참 어머니두 재간이 이만저만 아니세요. 그런 재간 썩이지 마시고 이후엔 자주 편지를 쓰세요.” 그소리에 어머니는 몹시 흐뭇해 하시면서 말씀 하셨다. “재간이야 뭘. 하긴 전에 야학교 선생님이 나를 머리가 좋다고 치하는 많이 했니라.” 헌데 그것으로 얼렁뚱땅 넘어갈줄 알았던 일이 여운이 길기도 했었다. 편지가 장춘까지 갈려면 며칠이 걸릴까 연변까지는? 편지를 “부친”지 이삼일이 지나자 어머니께서 나한테 물어 오셨다. 집일에 바삐 돌아치는 나한테 그러시자 나는 별 생각이 없이 닷새면 족하겠더라는 실말을 해 버렸다. 어머니의 편지가 나의 서랍에 들어간지 꼭 열흘만에야 나는 아차하고 나의 실수를 깨닫게 되였다. 그날 퇴근해 집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반색을 하시면서 나한테 묻는다. “어디서 편지가 왔더냐?” 이런 어두운 밤에 홍두깨 같이!? 나는 어정쩡해서 되물었다. “편지라니요?” “내 편지를 부친지 열흘이 지났으니 넷중에 한년이라두 그날로 회답을 했을것 같으면 한통쯤은 안 왔을까?” 나는 가슴이 덜컥했다. 어머님께서 이토록 진지하게 편지를 기다리고 계실줄을 생각도 못했으니.......... 일단은 어머닐 속여 넘겨야 했다. “호호. 어머니두 손가락 꼽으시며 기다리셨구만요. 편지라는게 우편국과 우편국 사이에선 어김없이 닷새지만 배달부가 단위까지 전해, 또 단위에서 본인한테 전해지려면 하루 이틀, 그리고 언니들도 시간나지 않으면 또 며칠 그렇게 지체되는 거랍니다. 그러니까 아직 일주일쯤은 더 기다려야 될거예요.” “그런걸 난 애나게 기다렸구나.” 어머니는 퍼그나 실망하셨다. 이튿날 아침 어머니는 또 그편지 이야기시다. 이제 엿새면 되겠지. 어린애처럼 그렇게 손가락까지 꼽으시면서. 그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론 측은해 나기도 했다. 그렇듯 진지한 어머님을 속이다니? 죄의식이 들었다. 하지만 어머님의 그 편지를 언니들한테 보낼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였다. 무슨 수든 대야 했다. 생각던 끝에 나는 어머님께 가짜 편지를 드리려 작심했다. 이레째 되는날 아침 어머니는 출근을 서두르는 나한테 다가 오셔서 특히 귀띔 하신다. “나가거든 명심해서 편지를 찾아 보거라.”그동안 준비해 놓은지라 나는 아주 속이 든든해서 어머님께 여쭸다. “오늘은 꼭 편지가 도착할 거얘요.” 퇴근해 집에 들어설때 나의 손에는 그럴듯한 편지 네통에 송금단까지 네개 들려 있었다. “이봐요. 어머니. 편지 네통에 돈까지 한꺼번에 다 왔어요! 마치도 언니들이 약속이나 한것 같아요.” “그것봐라. 오늘 아침에 그렇잖아두 머리금으로 새끼거미가 줄쳐 내려 오더라니까!” 어머니는 기쁨에 겨워 어쩔줄을 모르신다. 어머니의 재촉에 못이겨 나는 신을 벗기 바쁘게 자기의 “걸작”을 낱낱이 읽어 드렸다. 내용은 한결같이 어머니의 편지를 반가이 받았다는것, 어머니께서 편지를 그리 잘 쓰실 줄을 몰랐다는것, 자주 편지를 쓰시면 꼭 회답을 드리겠다는것. 그동안 등한해서 편지 못해 어머님의 노여움을 샀으니 널리 양해 하시라는 것. 그리고 적지만 돈을 좀 보내 드리니 어머님께서 드시고 싶은걸 사서 드시라는 등 내용이였다. 편지를 다 읽어 드리자 어머니는 흡족한 기색으로 송금단을 하나하나씩 만져 보시면서 묻는 것이였다(송금단은 우편국의 친구한테서 한다발이나 가짜 날인 도장까지 찍어서 가져다가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있었다.) “돈들은 얼마씩 보냈더냐?” “네, 큰언니한테서 이백원 오고 다른 언니들은 모두 백원씩이예요.” 벌써 내일 우편국에 가서 찾는답시고 어머님 손에 쥐여드릴 돈 500원을 난 그새 다 마련해 두었었다. “근데 어머니, 담부터 편지 쓰실 때에는 돈을 보내라는 말씀만은 하시지 마세요. 어머니를 핑게삼아 제가 돈벌이를 한다고 언니나 형부님들이 오해하면 어쩌겠어요. 돈 때문에 제가 어머니를 모시는 것도 아닌데 또 용돈으로 저와 빈이 아버지가 드린것도 다쓰시지 못하시면서……” 어머님의 기분이 좋으실때 나는 그렇게 살짝 진정을 내뱉았다. “내사 너들이 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하는데 돈을 해서는 뭘하겠냐만 딸들을 숱해 뒀다는게 문안 편지두 자주 오고 쓰든 안쓰든 돈깍지(송금단)두 부지런히 와야지 안그러면 늙어 위촌(위신을 돌보아하는 관심)이 없는것 같아 내내 섭섭하고 같이있는 사위 보기두 부끄럽단 말이다.” 오! 원래는 그런 일이였다. 인생의 막고개에 오르신 어머니! 언제부턴가 그처럼 극성이시던 나의 뒷시중도 꼼짝 못해 주시는 가련한 신세시다. 하니까 노년의 자비감은 나날이 더 심하게 어머님을 괴롭힐 것이고 그래서 생겨난 과시욕이 결국 이런 형식으로 발로된 것이 아닐까? 헌데 그걸 알리 없는 언니들이라 설명절 때에만 어머니한테 문안 편지와 함께 용돈을 좀 보내고는 평소엔 잠잠하니까 자연히 섭섭하고 노여운 것이다. 나는 갑자기 인생이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울컥 치솟았다. 한창때 어머니는 살림살이는 물론이고 작식 바느질에 밭일 논일 막힘이 없으셔서 우리 고향에서는 꼬리없는 소라고 쇠소리 나는 여자라 소문이 났었다. 또 맨딸이라고 남한테 무시 당하지 않게 키우시느라 어머니는 그처럼 일손이 바쁜 와중에도 딸들의 단장에 엄청 신경을 써주시군 했었다. 명절이면 돈이 없어 새옷을 해 입히지는 못해도 낡은 옷이라도 뒤집어 새옷처럼 만들어 입히군 하셨고.... 언니들이 대학시험 칠때면 또 남다 자는 첫새벽 어둠을 헤가르고 우물 귀틀을 더듬어가며 “숫물”을 길어다 정성껏 밥을 지어 먹임으로써 딸들에 대한 엄마의 커다란 기대와 정성을 내 비치군 하셨었다. 그모든 것이 마치 어제 일이런듯 새삼스럽건만 어머니는 어느새 세상 만사에 관심이 없는, 일심으로 딸들의 “위촌”에만 희망을 걸고 사시는 늙은 아기로 변해버린 것이다. 나는 금세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아 눈물을 훔치고 갑삭하게 여윈 어머니의 조그만 체구를 살며시 끄당겨 안으며 말씀 드렸다. “어머니. 어머니께서 우리들을 위해 귀중한 한생도 다 바쳤을라니 다섯이나 되는 딸들이 어머니의 그만한 요구도 만족시켜 드리지 못할라구요?!" #붉은기와를 얹은 옛스런 단층 벽돌집에서 삼대노소가 아기자기 행복하게 살았던 때의 옛 이야기 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천방야담"같아서 눈물밖에 안납니다. 어머님께서는 99년도에, 남편은 2004년에 각각 저세상 사람이 되었습니다.#
    • 독자기고
    2012-11-22
  • 한국인의《깔보기 의식》빨리 정화해내야
    필자는 중국에서 십여년 생활하는 동안 재중 한인신문, 월간잡지에 정기칼럼 및 수시칼럼을 많이 써왔다.칼럼의 주제는 자연스럽게한국문화와 한국경제, 한국인으로 중국에서 살아가기에 초점이 맞추어졌다.이제 귀국하여 한국에서 생활하다보니 재한조선족사회에 관심을 갖고 조선족으로 한국에서 살아가기에 초점이 간다.중국에서 가장 념려스런 문제가 대다수 중국진출 한국인들이 중국인(한족)과 조선족을 깔보는 의식이였다.그야말로 대한민국은 눈부시게 발전하여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다 혹은 너희들보다 문화 수준이 훨씬 높다, 대한민국은 깨끗한 나라다 등등에서 자부심과 긍지로 가장한 깔보기 의식이 만연해 있었다.필자는 이런 한국사람들을 볼 때마다 깔보기 의식을 가진 사람이라 칭하였다. 여기에 한국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은 물가가 오른다는 속설이 생겨났다. 즉 중국을 깔보다보니 랑비성도 그만큼 커지게 되고 한국사람이 많이 접하고 즐기는 분야의 물가가 급속도로 오르게 되는것이다.깔보기 의식은 간혹 현지 진출한 기업에서도 문제가 되여 회사가 곤란에 처한 경우도 많이 봐왔다. 중국진출 한국기업에는 언어소통상 통역을 겸한 조선족관리자 몇명은 어느 기업에나 필수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일부 기업 한국인 관리자들에게도 깔보기 의식은 자리 잡고있어 현장에서 툭툭 튀여나오는 상소리와 비속어들이 조선족직원의 가슴을 멍들게 하여 큰 사고로 이어지는 일이 가끔 현지 한인신문이나 중국신문에 기사화되여 보도되는 것이다. 이런 깔보기 의식은 한국내에서도 마찬가지임을 깨달았다.코리안드림을 이루고자 현재 한국에 진출한 조선족동포의 수가 수십만명이다. 그 많은 조선족들이 오늘도 이 작은 나라 전국 어느 곳에나 구석구석 자리잡고 오로지 고향에 두고 온 부모자식들을 위하여 타향에서의 고된 삶을 살아가고있는 것이다.그러나 우리 한국인들의 의식에는 그들을 비하하거나 깔보는 의식이 뿌리깊이 자리하고있음을 보고 들었다.참으로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기가 필요해서 고용한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해주면 응당한 로동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가 지불에 린색하거나 아예 지불을 거부하는 몰지각한 량심의 소유자들이 간혹 있다.그럴 때마다 그런 수모를 당한 조선족의 가슴에는 왜 내 조국이 우리를 이렇게 무시하는가? 라는 불만과 복수심으로 부글부글 끓게 되는것은 불보듯 뻔하다. 그 복수심이 결국엔 크나큰 사고로 이어져 온 나라를 들쑤시는 뉴스를 생산하는 사회문제로 비화될수도 있다는것을 념려하는것이다.이에 한국사람이 갖고있는 조선족 깔보기 의식, 더 나아가 수많은 외국인 로동자 깔보기 의식에서 나타나는 듣기 거북한 비속어를 털어내야 한다. 즉 한국인 뇌리에 자리한 깔보기 의식을 하루 빨리 정화시켜내는것이 우리 사회를 정화시키는것이라 생각되여지는것이다.현재 한국에는 조선족 3세들까지 들어와 곳곳에서 반듯한 한국사회 일원으로 활동하고있다.이제 조선족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의식전환이 필요한 때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조선족들도 대한민국 땅에서 한국사람과 동등한 권리를 향유하며 동등한 대접을 받을수 있는 위치에 와있다는것이다. 이렇게 한국인의 의식전환이 이루어질 때 한국사회의 통합도 이루어지고 더 나아가 국가발전에도 유익하리라 여겨지는것이다.칼럼리스트 김종일/(산동성 위해시립대학 전임교수)길림신문 2012-11-16
    • 화제뉴스
    2012-11-21
  • 2013 상반기 기술교육 · 2013 하반기 방문취업 신청
    • 외국인· 출입국
    2012-11-20
  • 【심층기획】2012 시즌 이변은 없었다 (3)
    【심층기획】 2012 시즌 이변은 없었다 (3) 올시즌 연변팀은 처음으로 당위와 정부의 지대한 관심으로 로임, 상금 체불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 선수들도 뽈을 찰 맛이 났고 감독진도 일하는 보람을 느꼈을것이다. 우리 연변에서 정부는 그동안 주체육국이라는 매개를 통해 축구구락부를 간접 경영해왔다. 오늘은 연변축구구락부의 좌표설정 문제로 독자들과 교감해보려 한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직업축구구락부의 실질은 축구가 중심이 되고 축구를 둘러싸고 일련의 상업활동을 전개해나가면서 한개 체육범주를 넘어 경제실체로 뻗어나가는것이다. 하지만 연변의 객관환경과 경제발전수준의 제약 등 여러 면의 영향으로 연변축구구락부가 이를 실현해내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구락부의 시장화운영은 계속해 시도해보고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고 사료된다. 정부는 “연변축구”라는 이 브랜드를 절대 랑비해서는 안된다. 장원한 견지에서 볼 때 연변축구는 정부의 지지를 떠날수도 없지만 또한 정부에만 의거해서도 안된다. 정부에만 의거할 경우 연변축구의 휘황재현은 없을것이며 후속력도 없어진다. 정부 역시 한해에 수천만원씩 들어가는 축구구락부를 먹여살리기에는 부담이 있다. 때문에 구락부의 시장화운영은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 정부 재정수입내의 체육경비와 지방 체육복권 수입의 전용자금으로 프로축구를 영위해나가려 해서는 절대 안된다. 빠질수록 심연인것이다. 일단 어느 시점에 가서 자금을 메꾸지 못할 경우 그 팀은 없어지게 돼있다. 연변축구구락부는 시장화운영 시도의 일환으로 스타시스템 구축에도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구락부의 지명도와 가치는 성적보다는 스타가 더 중요하다. 스타의 발견, 양성으로부터 스타행렬에로의 정립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연변팀은 근간에 들어 박성, 김경도 등 전국적인 스타와 허파, 지문일, 지충국 등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할 잠재력을 지닌 선수들을 보유하고있다. 구락부차원에서 이들을 양성, 발전시켜 그들의 기량을 키워 전국적인 스타가 될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연변축구구락부의 청사진이 성공하자면 관념전변이 가장 중요한것 같다. 우리 정부가 연변축구를 궤도에 올려세울수 있는 힘과 능력은 분명 있다고 본다. 얼마만큼의 연구를 하는가가 문제인것이다. 연변일보 리영수기자
    • 스포츠
    2012-11-19
  • 탕웨이, 분당 땅 구입
    #1. 3월부터 최근까지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일대 부동산중개업소에는 눈부신 미모를 자랑하는 한 여성이 자주 나타났다. 영화 ‘색, 계’와 ‘만추’ 등에서 주연을 맡았던 중국의 인기 여배우 탕웨이(湯唯·사진)였다. 그녀는 7월 구미동 일대에 있는 485.9m²의 땅을 13억5000만 원에 사들였다. 구미동은 분당에서도 고급 빌라 및 단독주택이 밀집한 지역이다. 현지의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올해 들어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해 찬찬히 여러 물건을 비교해 보고 주거용 땅을 매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2. 5월 중국인 관광객 20여 명이 경기 김포 한강신도시를 찾았다. 이들이 여행사의 인솔을 받아 김포를 단체 방문한 이유는 아파트 때문이었다. 이들이 ‘한국 아파트를 한번 둘러보고 싶다’고 요청하자 여행사가 삼성물산의 ‘래미안 한강신도시 2차’ 분양사무소에 연락해 부랴부랴 본보기집 투어가 성사됐다. 방문은 단순한 투어로 끝나지 않았다. 이 아파트는 3월 분양을 시작한 이후 한 달에 2, 3채씩 지금까지 모두 20채 정도가 중국인들에게 팔렸다. 임홍상 분양소장은 “중국 아파트와는 다른 깔끔한 마감재, 공항에서 가까운 위치에 호감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제주와 부산 등지에서 시작된 외국인들의 한국 부동산 구매 열기가 서울 등 수도권으로 북상(北上)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집중되는 수도권 아파트의 투자가치에 중국 등의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부동산 경기침체에 따른 가격하락으로 ‘한국 아파트는 비싸다’는 외국인들의 인식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총 844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 증가했다. 특히 이달 1000만 명째 관광객이 입국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숙박시설은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수도권 호텔 수요는 3만6300실인데 공급은 2만8000실에 그치고 있어 급증하는 관광객을 수용하기에는 8300실 이상이 부족한 실정이다. 최근 민간 투자회사들이 호텔 건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완공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런 상황을 ‘돈 벌 틈새’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로 GS건설이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짓는 고급주상복합 ‘메세나폴리스’의 분양광고를 9월 중국권 신문인 ‘다지위안(大紀元)시보’에 싣자 홍콩, 싱가포르의 투자자들로부터 문의가 빗발쳤다. 메세나폴리스 분양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아파트를 분양받아 중국권 관광객들을 상대로 단기 임대를 주면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다음 주에만 투자자, 부동산컨설팅사 관계자 등 20여 명이 분양 상담을 받으러 올 예정”이라고 전했다.여유가 있는 외국인들은 별장 개념의 ‘세컨드 하우스’를 물색하기도 한다. 김신조 내외주건 사장은 “래미안 한강신도시 2차를 사들인 중국인을 살펴보니 한국을 자주 찾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며 “한국에 숙소가 필요한 외국인들이 부동산 가격이 많이 떨어진 것을 보고 투자를 겸해 아파트를 사들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서울보다 가격은 저렴하면서 입지가 좋은 ‘신흥 개발지역’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관심이 뜨겁다. 대우건설이 시공하고 오케이센터개발이 시행하고 있는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송도 아트윈 푸르지오’의 경우 3월부터 두 차례 미국 뉴욕,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한 현지 설명회를 통해 교포 등 현지인들에게 아파트 42채를 팔았다. 손봉균 오케이센터개발 이사는 “교포나 외국인들은 건물이 빽빽이 들어찬 서울보다 쾌적한 신도시를 선호한다”며 “게다가 서울 강남의 아파트는 3.3m²당 3000만 원이 넘지만 송도는 평균 1000만∼1100만 원 수준이라는 점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런 열기에 힘입어 외국인 토지소유 규모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외국인의 국내 토지소유 면적은 2억2471만 m²로 2분기(4∼6월)에 204만 m²가 늘어났다. 3개월 동안에만 서울 여의도 면적(290만 m²·윤중로 제방 안쪽 기준)의 3분의 2가 넘는 땅을 외국인이 새로 사들인 것이다. /동아닷컴
    • 연예·방송
    2012-11-15
  • 도대체 어찌하면 좋을까요?!
    지현이는 금년에 아홉살 입니다. 한국의 유명한 스타 전지현의 팬이셨던 지현의 어머니께서 당신의 따님도 유명한 스타마냥 예쁘게 자라서 잘되길 바라는 맘으로 일부러 지어주신 이름이라고 합니다. 사실 지현의 어머니는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빼어난 미모의 젊은 여성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듣기에도 착하고 예쁠것 같은 양예순이고요. 그녀는 조선족이니까 비록 양씨이긴 하나 당나라때의 양귀비의 후손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누가 봐도 드라마에 나오는 양귀비를 많이 닮은것 같다고 합니다. . 그래서 지현이는 유치원에 다닐때부터 엄마가 데리러 오시는 오후 네시를 제일로 좋아했었습니다. 문어구에 빼어난 미모에 긴생머리의 지현의 어머니께서 나타나시면 애들이 일제히 부러운 눈으로 지현이를 쳐다봅니다. 그리고는 “야 지현이 엄마다!”그렇게 환성까지 터져나오고. “지현의 엄마는 백설공주 같아!” “아니 지현의 엄만 인어공주다.” ”아니다. 성냥파는 아가씨!” 그렇게 애들이 알고 있거나 머리속에 상상하고 있는 아름다움의 화신들의 이름이 다 튀여나오고 선생님들까지도 “지현이 엄마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처녀같아요. 지현이는 엄마를 언니 아니면 이모라 불러야 할것 같습니다.” 그렇게 맞장구 치기가 일쑤입니다. 지현의 아빠는 유명한 항일영웅 안중근이네 그 안씨인데 명함은 듣기에도 정의로울것 같은 안의정입니다. 180의 쭈욱 빠진 키에 떡버러진 어깨를 가진 그역시 드라마속 주인공 뺨치게 잘생긴 외모의 소유자인데다가 또 위엄스런 경찰이기도 합니다. 밤낮이 따로없이 사회의 치안을 위해서 고생도 많이하시는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범인도 많이 잡았었고 재작년에 홍수가 졌을때는 물에 빠진 할머니를 구하다가 희생될 뻔한 일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또 수사에 뛰여난 재주를 갖고 있는 그는 머리아픈 어려운 안건도 많이 해결하여 2등공 1차 3등공은3차 세우고 공안부의 표창도 여러번 받으신 모범입니다. 그렇게 지현의 아빠는 우리 주위에서 보기드문 진짜영웅이십니다. 진정“영웅과 미녀”커플로서 지현의 아빠와 엄마는 손색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함께 길에 나서면 이웃들이 혀를끌끌 차면서 칭찬합니다. “에구 참말로 천생배필이 따로 없지. 어쩌면 저리두 인물이 맞을까?꼭 그림같이 잘 어울리는 한쌍일세!” 그래서 지현이는 이세상에서 제일로 행복한 어린이입니다. 영웅아빠와 아름다운 엄마의 손을 양손에 그네타기 하면서 공원에 놀러가면 모두가 부러워서 돌아들 봅니다. 호랑이도 위엄스런 지현이 아빠 앞에서는 꼬리를 감추고 공작새도 지현이엄마 앞에선 빛을 잃는듯 합니다.…. 그만치 엄마 아빠가 자랑스럽고 든든한 지현입니다. 누군가 묻습니다. “지현인 엄마하고 아빠중에 누가 더 곱냐?” 지현의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아빠.엄마둘다!!” “엄마 아빠둘다!!” 참말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지현이는 그렇게 행복 했었습니다. 헌데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지현의 엄마와 아빠가 이혼 한답니다. 이년전에 지현의 아빠는 우리시에서 버스타고 두시간은 족히 걸리는 h현성으로 사업 전근이 되였습니다. 그래서 원래부터 집에 계시는 시간이 너무적은 지현의 아빠인데 일주일에 한번 보기도 어렵게 되였습니다. 흉범을 잡는 특수사정이 있을때면 지현의 아빠는 한달 또는 두달에 겨우 한번쯤 집에 올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지현이의 아빠는 집에 계시는 시간이 날이 갈수록 더 적어졌습니다. 늘 범인을 잡으시느라고 밖으로만 돕니다. 아름다운 지현의 어머니는 아빠가 당신을 생과부로 만드셨다고 또 받으시는 월급도 너무 적다고 늘 불만스러워 하십니다. 그래서 지현의 어머니가 식당일을 해서 버시는 돈까지 보태도 지현의 학원비 마련하기 힘들답니다 밤늦게까지 돈을 버시느라고 어머니의 아름다운 얼굴이 초들초들 말라 갑니다.늦은 밤길에 퇴근하시는 아름다운 어머니를 멀리 계시는 영웅아빠는 위험에서 지켜 주시지도 못하십니다. 또 천둥번개가 우는 여름밤이면 지현이네 모녀는 이불 밑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떨면서 너무 무서워서 잠도 못잡니다. 그래서 지금 지현이도 자주 도깨비 꿈에 시달리군 한답니다. 참말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도 훌륭한 영웅--아빠가 늘 곁을 지켜 주신다면 이런 일이 있을 법이나 하겠습니까? 우리사회의 안전만 안전이고 가족의 안전은 안전이 아니라고 말할수가 있습니까? 그날 밤, 지현이는 깊이 잠들었다가 어머니의 신음소리에 놀라서 깨여났습니다. 두손으로 아랫배를 움켜쥐고서 아름다운 지현의 어머니는 방바닥에서 때굴때굴 구을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이마와 콧잔등에 콩알같은 땀방울이 맺혔습니다. 지현이는 바삐 이웃의 아저씨와 아지미한테 구원을 청했습니다. 이윽고 구급차가 와서 엄마를 싣고 병원에 갔는데 의사의 말이 10분만 늦었으면 지현의 어머니는 맹장이 터져서 죽을뻔 했답니다. 그번에도 지현의 아빠는 수사때문에 외지에가 계셨고 어머니가 출원한 다음에야 집에 왔다가 겨우 이틀만에 부랴부랴 또 떠나갔습니다. 듣는 말에 의하면 지현의 아빠는 지현이를 난산하느라 어머니께서 사선을 헤매시던 그날에도 흉범을 잡으시느라고 외지에 가 계시다가 지현이가 태여나서 한달후에야 집에 오셨답니다. “이렇게는 도저히 지겨워서 못살겠구나 지현아!” 그렇게 무서운 말씀을 하시는 아름다운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비오듯이 흘러 내립니다. 그러시는 어머니가 불쌍해서 어린 지현이도 함께 울었습니다. 하지만 지겨운 어머니의 생활을 개변시킬 재간이 지현이 한테는 없습니다. 혹시 자기가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돈문제라도 해결이 되어질까 싶어서 지현이 엄마한테 물었더니 어머니께서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딱 잡아 떼십니다. “남들이 다 다니는 학원에를 내딸이 다니지 않다니!?” 사실 지현이가 학원에 다니지 않는대도 지현이 어머니의 외로움과 아픔은 해결 되는게 아닙니다. 결국 어느날 밤, 오랜만에 지현이 아빠가 집에 왔던 날인데 딸애가 잠이 들자 지현이의 엄마가 아빠한테 말합니다. “우리 이혼 합시다!” 지현이 아빠한테는 참말로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인가 봅니다. “도대체 왜!?” “더는 당신과 이렇게 못살겠어서요.” “내가 뭘 잘못한게 있으면 고치면 안되오? 꼭 이혼 해야겠소?” “아니 이젠 늦었어요. 저한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걸요. 돈도 많고 절 예뻐도하고 잘 지켜도 주는 그런 사람이…..”사실 지현이 어머니가 사랑하는 사람은 지현이 아빠밖에 없습니다.그냥 그런 거짓말까지 하고 싶을만치 힘들고 아프고 지친 지현이의 엄마였습니다. 그런 아내를 제대로 위안해 주지도 못하시고 지현의 아빠는 그다음날 또 흉범을 잡으신다고 이번에는 외국에까지 갔습니다. 지현의 아빠만 인민경찰이 아니건만 어째서 다른 아빠도 아니고 지금 저렇게 아파하시는 지현이 엄마를 집에 내버려 두시고 지현이 아빠만 범인잡으러 다녀야 하시는지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떠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름다운 지현의 어머니가 얼마나 슬피 우시는지 가슴이 저려서 지현이도 함께 울었습니다. 그렇게 떠나가신 지현의 아빠는 옹근 두달만에 집으로 오셨습니다. 그 두달간을 지현이의 엄마는 아빠를 기다리며 울고 울고 또 우시다가 나중에는 눈물도 다 말라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젠 악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지현의 엄마는 말했습니다. 아빠가 돌아오시자 지현의 어머니는 차겁게 말합니다. “당장 도장 찍으러 갑시다!” “그럼 지현인 어떡하구?” “지현인 당신 딸이니까 나두 몰라요” 그처럼 사랑하시던 딸내민데도 지현이 어머니의 입에서 지독한 소리가 나옵니다. “당신한테 시집와서 거지 같이 산 세월이 너무 원통해서 이제부터라두 좀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지현이 때문에 제 인생이 불행해 지는건 싫으니까 당신두 좀 이해해 주세요.” 눈물 한방울도 없이 지현이 어머니가 그런 모진 소리까지 마구 내 뱉습니다. 지현의 아빠는 그래도 이혼 하기가 싫은 모양입니다. 아무 대답도 없이 그다음날 또 범인을 잡는다고 떠나 갔습니다. 지현의 엄마는 더는 못 참겠답니다. 이렇게 당신말을 무시하는건 자기에 대한 모욕이라고 못참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현의 아빠를 찾아가서 협박까지 했답니다. 당장 도장을 찍어주지 않으면 지현이 아빠의 상사를 찾아가서 소문을 놓겠다고. 영웅사내는 그게 죽기보다 싫습니다. 백설공주같은 아내를 둔 영웅은 지금껏 남들의 시샘을 받도록 행복한 사내였습니다. 그래서 내조를 잘하는 아내 덕분에 범인도 많이 잡으시고 공도 여러차례 세우실수 있었다고 늘 자랑스레 생각하고 기뻐하셨던 지현이 아빠입니다. 그런 아내가 자신을 배반하고 다른 사내를 따라간다는 사실을 소문 내겠다니 오죽 하겠습니까? 지현이 아빠는 그래서 억지로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날은 지현이도 학교에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빠의 말씀이 마지막으로 함께 가족사진도 찍고 밥도 먹고 한답니다. 가족사진은 지현이가 가운데 앉고 엄마와 아빠가 지현이의 왼쪽과 오른쪽에 나누어 앉고 그렇게 찍었습니다. 사진사 아저씨가 그들 셋을 웃기려고 무진 애를 쓰십니다 “자 이쪽을 보면서 웃으시오. 참으로 재밌고 행복한 가족이구만 왜 그리 찬기운만 도는지 나원 이해 할수가 없구려! 자자, 여기여기 이렇게…..”그러는 사진사 아저씨의 얼굴이 우습꽝스러웠지만 지현이 엄마도 아빠도 지현이도 끝내 웃지 못했습니다, 사실은 다가 울고 싶었으니까 웃는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그리고는 셋이서 냉면집에 갔습니다. 옛날엔 세식구 다 냉면을 좋아해서 자주 다니던 냉면집이였지만 그날은 냉면이 차가운 그들의 마음을 더구나 얼어들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지현이의 어머니는 그렇게 흰눈이 내리던 어느 추운 겨울날에 슬프게 우시면서 떠나가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지현이의 아빠는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새끼도 버리고 간 나쁜년”이라고 “사람도 아니”라고 지현이 엄마를 자주 욕합니다. “군사내한테 미쳐서……”그말은 누가 들어도 아니다 싶습니다. 지현이 엄마는 이웃이나 친척 친우들이 다아는 착한 여자입니다. 그래서 지현이 엄마가 맘이 변해서 이혼까지 했다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지현이 엄마는 그런 사람이 절대로 아니라고 말합니다. 처음엔 지현이의 아빠도 그녀의 말이 거짓말인걸 아는것 같았습니다. “내 잘못이 크지, 내가 네 엄마를 고생시켜서 그리됐다!” 그러시고는 지현이를 어루만지시면서 아빠는 슬피 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지현의 아빠의 친구되는 어떤 아저씨가 지현이 아빠한테 이상한 말을 해 줍니다. 제 여동생이 일러준 거라면서 지현이 엄마가 이혼 하기도 전에 어떤 군사내의 차에 앉아서 시내돌이를 하는걸 직접 봤다고 하더라고….. 그날엔 지현이의 고모도 와 있었는데 그말을 듣고 고모는 펄쩍 뛰면서 그말을 절대로 믿으면 안된다고 합니다. 원래부터 지현이의 엄마는 아름다우시니까 남들이 시샘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래서 지현이 엄마보다 예쁘지 않은 그여자가 이상한 말을 해서 지현이 아빠 엄마 사이를 이간 놓는거라고 고모는 말합니다. 하지만 지현이 아빠는 그 말이 믿어지시는가 봅니다. 망할년이 이혼도 하기전에 내 얼굴에 똥칠을 하고 다녔구나 그렇게 악을 쓰면서 술을 마시고는 그때까지 보배처럼 고이 간직하고 자주 꺼내 보시면서 눈물 흘리시군 하던 아름다운 지현이 어머니의 사진을 갈기갈기 찢어 버립니다. 그러고도 분을 참지 못하시고 지현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계신집에 찾아가서 지현이 엄마의 옷이란 옷은 다 찾아서 찢어놓고 집안에 부실수 있는 물건은 다 때려 부수고 부실수없는 물건은 엎어놓고 난장을 쳐놓았답니다. 지현이를 9년간이나 힘들게 키우신 불쌍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이십니다. 그분들한테 무슨죄가 있겠습니까? 지금 갑자기 외손녀를 만나지 못하게 된것만도 가슴아픈 일인데 지현이 아빠가 그런 끔찍한 일까지 저질렀습니다. 그래도 그날 누군가 알고 미리 소식을 전해서 집에 사람이 없었던게 불행중 다행, 아니라면 이성을 잃은 지현이 아빠께서 살인을 하셨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게 얼마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제일로 행복했던 지현이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로 불행한 아이로 되였습니다. 전에는 모두들 지현이만 보면 칭찬하였습니다. “참 지현인 엄마를 닮아서 예쁘고도 착한애지.” “공부까지 잘하면 더 예쁠텐데,” “먹는것도 복스럽게 맛갈스레 잘두 먹지, 에구 예뻐라,” 하지만 꼭같은 사실이 지금은 욕으로 바뀌였습니다. “제에미를 닮아서 얄밉구두 괘씸하게 생겼다니까.” “어미를 닮아서 다른데 골이 트니까 공부두 못하는 게지!” “미운년을 닮아서 먹을것에 게걸이 든게지.” 참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아빠와 엄마의 이혼은 지현이도 바랐던게 아니고 또 그것이 지현이 탓도 아니건만 어째서 사람들은 엄마대신에 자기를 미워하고 욕하는지 지현이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고 그래서 얼떨떨합니다. 엄마를 닮아서 예쁘다 착하다 할때가 언젠데 엄마를 닮은것마저 죄로 되여서 미워져야 합니까? 지현이라고 뭐 엄마를 닮고 싶어서 닮았겠습니까? 그냥 어쩌다 보니까 엄마를 닮은걸 어떡하라고?! 지현이도 이럴줄 알았으면, 또 제 맘대로일것 같으면 아빠를 닮지 않았을까요? 그래 당신들은 누구를 닮고 싶으면 맘대로 닮아집니까? 참말로 그럴수 있을것 같으면 지현이 엄마를 시샘하지 않아도 되도록 다가 예쁘게요? 그리고 지현이 아빠한테도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지현이 엄마는 당신이 너무 외롭고 아프게 해서 떠나간 것이지 남편을 배반해서 떠나간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군사내를 따라간 여자의 옷이 왜 지현이 외가에 당신이 난장을 치도록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지금까지도 그걸 모르는 당신이기 때문에 아내를 더아프게 했었고 외로움에 지치고 힘들게 했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니 아내가 떠나간건 따지고 보면 당신의 잘못인데도 아내를 불쌍해 하고 남들 앞에서라도 두둔해 주셔야 할 대신에 남들이 시샘해서 이간질하는 말을 믿고 행패까지 부렸으니 영웅답지 못하게 미련한 일을 하신 것입니다. 또 아름다운 지현이 어머니한테도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남편이 아무리 힘들게 하고 지겹게 했더라도 그건 어지러운 세상사에 밝지못한 영웅이 우리사회의 치안을 지키느라고 당신을 미처 돌보지 못해서 그리된 것인데 그런 말로 남편 가슴에 칼을 박지 말으셨어야 합니다. 그게 아름다운 당신한테도 무슨 이득이 되는 말이라고 함부로 그러신단 말입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그리 쉽게 하실수가 있다는게 참으로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름답고 착하고 현멍한 여인이라면 적어도 호박쓰고 돼지우리로 들어가는 멍청이중의 멍청이요 바보중의 상바보나 할수 있을것 같은 그따위 말을 입에 담지 말으셨어야 하는건데… 당신은 지현이 아빠가 그러지 않으면 리혼해 주시지 않을것 같으셔서 그리하셨다고 하지만 그렇더라도 말씀은 가려서 하셔야 하는것 아닙니까? 이제 추운겨울은 다 지나갔는가 봅니다. 아름다운 당신께서 제일로 좋아하시던 봄철이 왔습니다. 파아란 잎새들이 피어나고 아름다운 꽃들도 피어납니다. 지난 겨울에 꽁꽁얼어 붙었던 연신하도 인젠 완전히 풀려서 밤낮없이 재밌는 옛 이야기를 조잘대면서 흘러갑니다. 우리집은 연신하 북쪽에 위치한데다 26층이여서 내방 남쪽 창문으로 제일로 잘 바라 보이는 연신하입니다. 그런 연신하의 이야기 소리를 들으면서 멋진 지현이 아빠와 아름다운 당신과 함께 지현이를 데리고 나물캐러 갔었던 지난해 봄을 생각해 봅니다. 지현이 아빠는 일편단심 아내를 닮은 민들레만 캔다고 우기셨고 당신은 어딘가 달아만 다니는 남편을 닮은 달래만 캐신다고 우기셨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현이의 담임선생인데다 이웃사촌이여서 그만치 당신들의 생활을 많이 지켜본 저입니다. 그때는 그것이 그냥 롱일줄로만 알았는데 당신한테는 모름지기 깊은 상처가 있어서 달래를 찾아 캐시면서도 가슴아파 하시지 않으셨을까 그런 생각을 새삼스레 해 봅니다. 올봄에도 나물캐러 지현이가 엄마 아빠손을 그네 타면서 가는걸 봤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 지현이한테 그런 날이 다시 올수 있을까요? 그리 된다면 지현이가 얼마나 가슴 벅차게 행복해 할까요? 지현이는 그런날이 너무너무 그리워서 간밤에도 베개가 푹젖도록이 슬프게 슬프게 울고 또 울었다고 오늘 아침에 저한테 말했습니다. 그말을 하던 지현이가 너무 불쌍하고 안쓰러워서 저도 한참을 울었고요 오늘 진종일 정신없이 지웠답니다. 이제와서 당신들의 사정이야 어떻게 딱하든 저는 상세히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만 지헌이한테는 단하나밖에 없는 엄마요 아빠입니다. 또 당신들은 늘 저의 혼인 생활의 롤모델이었습니다. 그런 당신들이 이리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저이고 그래서 너무 실망이 큽니다. 당신들이 절 주제 넘는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한번 권고하고 싶습니다. 서로 아픈상처를 주면서 버티기를 하지 마시고 지현이를 보시더라도 서로 한걸음씩만 물러서시여 양보하는 선에서 참으시고 전처럼 셋이 다같이 행복하게 사시는게 어떻겠는지요?! 아! 제발만 그런일이 기적같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참으로 그렇게 간절한 바램입니다. 남들은 당신들이 그냥 그렇게 갈라지는게 재밌을지 모르지만 지현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한테는 전혀 재미가 없고 그냥 가슴 아프고 힘들기만 할겁니다. 당신들은 지현이가 불쌍하지도 않고 그리도 미우십니까? 그래서 딸애가 힘들어하고 아파하고 그렇게 비뚤어지면서 자라는게 좋으십니까? 세상에서 제일로 아름다운 지현이 엄마! 그래 당신은 지현이가 보고 싶지도 않으십니까? 또 지현이 보고 싶어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눈에서 진물이 흐르는게 그리 속시원 하신지요? 지현이를9년간이나 힘들게 예쁘게 키우신 그분들이 한을 품으시고 돌아가시게 되는게 지현이 엄마 아빠의 진정한 소원은 아니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원래부터 훌륭한 분들이시니까 이제 서로의 잘못을 깨우치기만 하신다면 또다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림같은 한쌍이 되여서 깨알이 쏟아지게 잘사실수가 있을것입니다. 제가 불쌍한 지현이를 대신해서 이렇게 저 연신하를 마주하고 밤낮으로 빌고 또 빌면 안되겠습니까? 지현이가 울고 또 울면 어떻겠습니까? 아파하고 또 아파하면 어떻게 될까요? 저희가 어찌하면 될는지요? 도대체, 도대체 어찌하면 좋을까요?! /중국조선족대모임에서 발췌
    • 독자기고
    2012-11-15
  • 조선족 전철수 중국공산당 중앙위원…김진길 후보위원
    14일, 18차 중국공산당대표회는 선거를 걸쳐 새로운 한기 중앙위원회를 산생하였다. 중앙 위원은 205명으로 구성되였는데 조선족 전철수가 그중 일원으로 당선되였다. 중앙 후보위원은 171명으로 구성되였는데 조선족 김진길이 그중 일원으로 당선되였다. 자료: 전철수(全哲洙): 1952년 룡정시에서 출생. 선후로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장, 길림성 부성장, 길림성 당위부서기 겸 부성장직을 력임. 현재 중공중앙 통전부 부부장 겸 전국공상련 당조서기, 제1부주석. 15기, 16기, 17기 중앙 후보위원이며 제 8기 전국인대 대표이다.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 주석단(247명)성원 김진길(金振吉):1959년 연길시에서 출생 선후로 공청단길림성위 부서기, 당조성원, 길림성청년련합회 주석, 공청단길림성위 서기, 당조서기, 연변주당위 부서기,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장 , 길림성정부 부성장직 력임. 17기 중앙 후보위원. 현재 길림성당위 상무위원, 성정법위원회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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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1-15
  • 중국신부 초청서류
    발 급 대 상 : 한국인과 결혼하여 양국의 호적관서에 혼인신고를 마친 중국인 배우자가 한국인 배우자와 결혼, 동거목적으로 방한하고자 하는 자 구비서류1. 사증발급신청서(사진부착), 예약 확인증(출력본) 2. 초청장, 초청사유서 3. 주민등록증 사본 4. 인감증명서 5. 혼인당사자 이력서(기재사항 빠짐없이 작성) 6. 여권(원본, 사진면사본) 7. 신분증 사본 8. 호구부(원본, 사본) 9. 가족관계 입증서류(혼인관계증명서, 기본증명서 등) - 혼인관계증명서는 과거 혼인관계가 모두 나타나도록 발급 - 신청인이 이혼경력 있는 경우: 이혼증 또는 이혼판결민사조해서 - 신청인이 사별 경력 있는 경우: 사망의학 증명서 등 10. 소개경위서서 (소개인 서명, 날인) 11. 직계혈족의 국제결혼 인지서(2인이상 서명, 날인) 12. 재정관련 입증서류(재직증명서, 부동산기부등본, 임대차계약서 등) 13. 기타 혼인진정성 입증자료(교제사진 등 자유제출) 14. 국제결혼 안내 프로그램 이수증15. 초청인의 신용정보조회서(전국은행연합회 발행) 16. 혼인당사자 쌍방의 범죄경력증명서 17. 혼인당사자 쌍방의 건강진단서* 국제결혼 안내 프로그램 이수 면제대상은 14~17번 서류 제출 불요<국제결혼 안내 프로그램 이수 면제대상>- 중국 또는 제3국에서 유학, 파견근무 등으로 45일 이상 체류하면서 배우자와 교제한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 국내에서 중국인배우자가 91일 이상 합법체류하면서 초청자와 교제한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 임신, 출산 등 인도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자 ♣ 국제결혼 서류 준비방법1. 국제결혼 안내 프로그램 이수증 ①회원이 아닌 분은 하이코리아 인터넷 사이트(http://www.hikorea.go.kr) 회원가입후 로그인합니다.②「국제결혼 안내프로그램」참가 신청-상단 “전자민원” 또는 하단 “전자민원신청하기” 클릭③목록중 국제결혼 안내프로그램 전자민원 화살표 클릭- 행정정보 공동이용에 동의합니다. 클릭- 본인 민원신고 체크- 신청하기 클릭④국제결혼 안내프로그램 신청 인적사항 기재-예-신청하기 클릭⑤ 접수증 출력- 하이코리아 상단 마이페이지 클릭- 국제결혼 안내프로그램 신청현황에서 확인 2. 초청인의 신용정보조회서 전국은행연합회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인 본인신용정보 조회서비스(www.credit4u.or.kr)에서 출력하여 제출<발급 절차>- 상기 본인신용정보 조회서비스 사이트에 접속- 공인인증서로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친 후 본인신용정보조회서 발급 ※ 개인사업자 공인 인증서로는 본인 인증을 하실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개인범용공인인증서로 본인인증 하십시오. ※ 공인인증서 안내. "본인신용정보 조회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공인인증기관에 서발급한 범용공인인증서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 범용공인인증서가 있으신 분 ① 크레딧포유 홈페이지에 접속 ② 회원가입 및 로그인 범용공인인증서 유효성 확인 요청 및 결제 ③ 본인 신용정보 조회 ※ 범용공인인증서가 없으신 분 ① 거래 금융기관에서 인터넷뱅킹 신청(범용공인인증서 발급) ② 본인의 PC에 공인인증서 다운로드 ③ 크레딧포유 홈페이지에 접속 ④ 회원가입 및 로그인 ⑤ 범용공인인증서 유효성 확인 요청 및 결제 ⑥ 본인신용정보 조회 3. 범죄경력증명서 한국 및 중국의 관할기관(경찰서,공안국)이 발급한 초청인 및 피초청인(혼인 양당사자) 각각의 범죄경력 증명서 제출 - 자국 내에서의 모든 범죄경력이 포함되어 있는 자국정부 발급 범죄경력 증명서 발급 ※ 사증신청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발급된 증명서에 한함 4. 건강진단서 - 혼인 양당사자의 건강진단서 제출 - 초청인의 경우, 의료법 제3조제2항제3호에 따른 병원급 의료기관 또는 지역보건법 제7조- 따른 보건소에서 발행 - 피초청인의 경우, 중국에서 통용되는 유사한 건강진단서로 갈음 ※ 사증신청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발급된 증명서에 한함 【※ 3.7.(월) 신청서류부터 적용】
    • 외국인· 출입국
    2012-11-13
  • 심양영사관 호구부 제출 폐지 확대
    당관은 친척관계 확인이 사증심사의 중요한 요소인 경우에 한정하여 호구부 원본 및 사본을 제출하도록 하고, 그 외의 경우에는 사본 제출도 전면 폐지할 예정임을 알려드립니다. ○ 호구부 원본 제출 대상 - 단기방문(C-3) ․ 단기 친척 방문, 가족 사망, 국민의 배우자 및 자녀, 국적취득자의 가족 ․ 독립유공자 후손 ․ 가족 단위 관광객 ․ 국내 체류동포의 만 19세 이상 만 25세 미만 자녀 ․ 외국국적 동포의 자녀로서 만 19세 미만의 자 ․ 제조업 등 장기취업 방문취업 소지자의 가족 - 재외동포 자격자의 가족 (F-1) - 국민의 미성년 외국인 자녀 (F-2-2) - 영주자격자의 배우자 (F-2-3) - 동반 (F-3) - 결혼이민 (F-6) - 친척 초청 방문취업사증 (H-2-1) - 기타 보증인이 친척이거나 신청인과 동반하여 사증 신청하는 경우 ○ 호구부 사본 제출이 폐지되는 사증 종류(예시) - 단기 방문 중 회의참가, 어학연수, 개별관광 등 (C-3) ※ 재정능력 입증서류의 명의인이 부모 등인 경우에는 호구부 원본 및 사본 제출 - 한국 다차방문자 등 복수사증 대상자 (C-3) - 방문취업(H-2-5) 및 기술교육(C-3) 당첨자 (사전 단기방문 사증 신청자 포 함) - 방문취업 만기출국자 재입국 (H-2-7 또는 C-3) - 고령동포 대상 방문동거 사증 신청자(F-1) - 재외동포 사증 신청자 (F-4) - 기타 취재(D-5), 주재(D-7), 투자(D-8), 구직(D-10), 의료관광(G-1) 등 ○ 시행일 : 2012. 6. 25.(월) 출처: 심양영사관홈피20120625
    • 외국인· 출입국
    2012-11-13
  • "쉬러우-조선족의 별이 한국서 다시 떴다"
    지난 5일 한국 영화 제작사인 (주)아시아홈엔터테인먼트 에서 제작한 위안부 이야기를 다룬 영화 '소리굽쇠'의 주인공으로 우리 연변의 “쉬러우” 리옥희씨가 수많은 출연배우 오디션자를 젖히고 캐스팅되여 제작사와 계약을 맺었다. “중국인민대회당”에서 끼를 발휘하여 조선족 배우로서 처음 “국가급1급배우” 영예를 지닌 후 신병으로 인하여 지금까지 연예무대에 나서지 못하였다. 하지만 쉬지 않고 다듬고 익히는 노력과 천재적인 재능이 그를 다시 뜨게 한 계기가 됐다.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에 성노예로 인권을 유린당한 채 통한의 시대를 살아온 한 녀인의 비극적 삶과 그 후손에게 대물림되고있는 고통에 대한 생생한 증언-한 쪽을 울리면 다른 한 쪽도 똑같은 음을 내며 공명하는 소리굽쇠를 주제로 하고있다. 이 소리굽쇠는 60년의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아픔과 사랑에 공명하며 현재에 되풀이되고있는 또 다른 아픔과 사랑을 절절하게 보여준다. 메가폰을 잡게된 감독으로는 작년에 영화 <감>으로 광주3D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추상록 감독이다.
    • 연예·방송
    2012-11-13
  • 조선족 전철수, 中 제18차 당대회 주석단 성원으로
    조선족 당대표 전철수(全哲洙)가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영광스럽게 주석단 성원으로 당선되여 8일 인민대회당에서 진행된 18차 당대회개막식에서 주석대에 앉았다. 전철수(全哲洙)는 현재 중공중앙 통전부 부부장 겸 전국공상련 당조서기, 제1부주석으로 있다. 15기, 16기, 17기 중앙 후보위원이며 제 8기 전국인대대표이다. 1952년 룡정에서 출생한 그는 선후로 연변주 주장, 길림성 부성장, 길림성 당위 부서기 겸 부성장을 담임하였다. 이번 제18차 당대회의 주석단 성원은 총 247명으로 구성되였다. 그중 112명은 새로 주석단성원에 당선된 대표들이다.지난 제17차 당대회때는 237명으로 이번에 10명이 더 증가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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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12-11-12
  • 【심층기획】2012 시즌 이변은 없었다(2)
    올시즌 연변팀에는 쿠리바리(말리적 미드필더), 이반 보직(크로아찌아적 공격수), 홍진섭(한국적 미드필더), 라피치(크로아찌아적 수비수) 등 4명의 외적선수가 용병으로 뛰였다.올시즌 연변구단은 그동안 생소했던 용병교체라는 해프닝을 양산하기도 했다. 선수교체에 불만을 품고 감독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하극상이 자행됐는가 하면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경기 불참을 선언하는 일도 발생했다. 오늘 문장에서는 용병 선정과정, 피해사례와 시스템부족 문제를 추적해보는것으로 독자들과 교감해보려 한다. 올시즌초 브라질용병 카레라의 경우 입단과 동시에 문제를 낳았다. 해남전지훈련, 곤명전지훈련에서 팀과 함께 해온 구락부의 관련 책임자가 호북의 한 축구중개인으로부터 테프(경기동영상)를 전해받고 영입을 결정했다. 실제 기량이나 경력은 “함량 미달”이면서 에이전트나 협상과정을 통해 보기 좋게 포장함으로써 특급 대우를 받으며 입단한 케이스였다. 축구결책층과 구단은 엄창난 후회를 해야 했다. 쿠리바리와 홍진섭 선수의 경우 일찌감치 영입이 결정됐다. 2011 시즌이 끝난 뒤 연변구단은 곧바로 쿠리바리와의 계약을 체결했고 당시 팀을 이끌었던 정상룡감독은 한국으로 건너가 지인을 통해 홍진섭을 영입하는데 합의를 보았다. 라피치의 경우 한국 K—리그에서 2011 시즌 부상이후 경기력이 기대만큼 나아지지 않아 결국 팀에서 방출된 선수였다. 수비수 물색에 급급했던 연변구단은 2월 27일 연길에서 급급히 그와 입단계약을 체결했다. 이반 보직선수의 경우 올시즌 2차 이적이 허용되는 6월 29일 연변구단은 그와 입단계약을 체결했다. 년초 이적했던 브라질용병 카레라 대신 들어온 선수였다. 올시즌 외적용병들이 구단에 페를 끼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물론 그 리유는 여러가지였다. 자신의 기량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는 리유로, 또는 숙소나 휴가 등 기타 자신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리유로 그리고 간혹 감독의 지도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리유로 선수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리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상대적으로 뛰여난 신체조건과 기술 그리고 더 큰 무대에서 뛰여본 경기경험으로 본토 선수들에 비해 턱없이 높은 년봉을 받으면서 각종 “특혜”를 누린것도 사실이다. 용병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 2012 중국축구 갑급리그에서 연변팀은 “사기성 입단”에 무방비로 로출돼있음을 적라라하게 보여줬다. 축구결책층과 연변구단은 용병 선정과 인입사업에 있어서 제도적장치를 하루속히 마련하는것이 바람직할것 같다. 연변일보 리영수기자
    • 스포츠
    2012-11-12
  • 【심층기획】2012 시즌 이변은 없었다(1)
    2012 시즌 연변팀은 강급문전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갑급리그에서 탈락하면 언제 다시 솟아오를지 모를 그 위험천만한 사태가 곁을 스쳐지나 우리를 굉장히 괴롭혔다. 최악의 성적 초래에는 많은 요소와 문제들이 함재돼있지만 오늘 문장에서는 올시즌 팀을 이끌었던 정상룡감독, 조긍연감독, 김광주감독대행 등 3명의 감독을 비교분석해보는것으로 독자들과 교감해보려 한다.희비가 엇갈린 비운의 감독 정상룡감독은 지난해 시즌도중 연변팀을 맡아 10껨(17륜부터 26륜까지)의 경기를 지휘, 6승4패의 전적을 올리며 팀을 강급위기에서 구해냈다. 올시즌에는 10껨(1륜부터 10륜까지)의 경기를 지휘하며 2승2무6패를 기록, 10륜이 끝난 뒤 연변축구결책층은 저조한 성적 책임을 물어 정상룡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2012 시즌을 앞두고 팀 재건에 나섰던 정상룡감독은 기자에게 “연변팀은 자체 칼라(색갈)가 없는 팀이였다. 우리만의 특징을 갖춘 팀으로 리빌딩하기 위해 팀을 재건, 래년 시즌 좋은 성적을 올릴수 있도록 하겠다”고 결의를 새롭게 다졌었다. 하지만 그는 올시즌 곤명 전지훈련(2차 전훈) 내내 감독강습반 참가차 대부분 시간 하문에 머물렀으며 원격조종으로 팀훈련을 체크했다. 한편 감독으로서 외적용병 영입에 가장 큰 목소리를 낼수 있는 위치였지만 구단과 감독진 기타 성원에게 영입사업을 맡기는 우를 범했다. 한편 시즌초 련속 7껨의 원정경기와 구단의 저질공격수(브라질적, 카레라) 영입도 그에게는 재앙이였다. 하지만 올시즌 정상룡감독이 3명 감독중 유일하게 원정서 2승을 거뒀다.지독한 아집으로 “몰락”한 감독 한국적 조긍연감독은 올시즌 제12륜부터 21륜까지 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6월 5일 기자와의 만남에서 그는 “소신껏 일할것이며 내 모든것을 보여주겠다”고 포부를 밝혔었다. 추구하는 축구에 대해 그는 “개인적으로 롤모델은 공격축구이며 패스게임 축구를 좋아한다. 난 수비축구는 절대 안한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나는 지는걸 싫어하고 선수들이 나한테 복종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조감독이 팀을 이끄는 기간 선수들의 체능은 많이 올라갔다. 하지만 그는 외적용병들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이 기간 이반 보직선수를 제외한외 기타 외적용병들은 볕을 거의 보지 못했다. 련속 7껨의 홈경기가 있었지만 10껨의 경기를 지휘하며 4승2무4패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한편 연변 토종선수들과의 의견마찰도 심했다. 선수들이 훈련을 집단 거부하는 사태에까지 치달아 결국 “그동안 쌓인 피로와 오랜 지병이였던 허리디스크때문에 감독지휘봉 잠시 반납”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귀국하게 되였다. 매번 새 얼굴을 불러 테스트를 하고 새 전술을 시험하는건 너무 태평했다. 슈퍼리그 진출을 웨친 팀에 “실험축구”는 팬들에게 실망만을 안겨줬다. 하지만 일부 반발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모든 책임을 조감독에게 돌려서는 안된다는것이였다.“소방수”역할로 고생만 했던 감독 지난해 성적부진으로 올시즌 코치, 조리감독에 만족해야 했다. 정규리그 10륜이 끝난 뒤 김광주는 감독대행을 맡고 11륜 북경리공팀과의 원정경기와 홈에서 펼쳐진 도시바 2012 중국축구협회컵 중경 FC팀과의 경기를 전부 승전으로 마무려 맡겨준 임무를 무난히 수행했다. 22륜부터 또다시 감독대행을 맡은 김광주감독대행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9껨의 경기를 지휘하며 3승6패를 기록했다. 비록 성적은 초라하지만 팀내에 일었던 풍파를 빠른 시일내에 수습했고 강급보존의 관건경기(대 중경력범과의 홈경기)를 잘 치러내며 강등위기에서 팀을 구해냈다. 팀이 강등권에서 완전히 탈출하지 못했을즈음 김광주감독대행은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중국축구무대에서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만큼 자력으로 노력할것이다”고 각오를 밝혔었다. 그의 태도는 항상 신중했다. 한마디로 올시즌 김광주감독대행은 “소방수역할을 비교적 무리없이 소화해냈다”는 업계의 평가를 받고있다. 하지만 올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전술운영의 미비 등이 말밥에 오르며 팬들로부터 “색갈이 없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단의 “전략적배치”였는지는 몰라도 올시즌 3명의 감독은 각자 10껨의 경기를 지휘하며 서로 다른 색갈을 보여줬다. 이것이 올시즌 현실이였다. 우리에게 슈퍼리그 진출은 너무 사치한 희망사항이고 그냥 갑급보존만으로 만족할수밖에 없는게 현주소인듯싶다. 연변팀 력대 갑급리그 최종 순위 년도: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순위: 8위 8위 6위 9위 6위 3위 11위 13위연변일보 리영수기자
    • 스포츠
    201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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