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대산의 불교성지
오대산 불교성지의 자료
소속대륙: 아시아, 소속국가: 중국, 지점: 산서성 오대현 함의: 중국불교의 4대명산중의 으뜸
오대산은 산서성 동북부에 위치, 산중에 다섯개 봉우리가 우뚝 솟아있는데 산정이 평탄하고도 넓어 마치 다섯개의 높은 평지가 있는듯 하여 “오대산”으로 불리우게 되였다. 오대산은 당조시기부터 불교성지로 지명받아오다가 후에 줄곧 각 조대의 황제로부터 예우(礼遇)를 받아오기 시작, 청세조순치황제(清世祖顺治)가 바로 이 산에서 출가했기 때문이다. 오대산은 현존하는 사원이 48개 곳이 되고 중이 수백명에 달한다. 오대산불교성지는 역사가 유구하고 문화가 찬란해 중화민족 문화유산의 주요한 구성부분으로 되고 있다.
“조사”와 탑원사
오대산의 사원묘군 중 현통사는 규모가 제일 크고 역사가 가장 유구하여 “조사(祖寺)”로 불리운다. 현통사는 산서성 오대현 대환진북쪽에 있는데 동으로 된 전당 3개가 있고 동탑이 두개가 있으며 문전의 종루에는 만근에 달하는 동종이 걸려있다. 이 종소리는 전반 오대산이 있는 대회진내에 들린다고 한다. 그외 탑원사는 명조시기에 건설, 웅위롭고 장엄하여 오대산의 첫번째 상징으로 되는데 대표성적인 건축물은 높이가 50미터에 달하는 네팔식 큰 백탑이다.
“높이 솟아있는” 보살정
보살정(菩萨顶)은 현통사 북쪽의 영취봉(灵鹫峰)우에 있는데 오대산의 5대 대선처의 하나이다. 보살정은 북위(北魏)시기에 건립, 청조황제가 오대산에 가서 배알할 때 일찍 이 보살정을 위하여 비문을 써주면서 그것을 수건할 것을 명령하였다고 한다. 보살정은 지세가 비교적 높고 문전에 108개의 돌계단이 있으며 돌계단위에는 세개의 패방(牌坊)이 있다. 그리고 산문내에는 천왕전, 보살전, 대웅보전 등 주요건물이 있고 양측에는 배전(配殿)이 있으며 뒤에는 선원과 전랑(转廊) 이 있는데 전반 묘는 규모가 방대하고 엄엄하다.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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