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마도로스의 수기(10) 폭풍우속에서의 18시간
■ 김철균
그날은 7월 9일, 대만 고웅항을 떠난 본선은 그제야 진짜로 부산으로 향하는 배길에 들어섰다.
이제 오라지 않아 부산에 입항한다고 하자 모두들 기뻐서 야단법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본선 선원들의 대부분은 부산출신이었는데 이제 아무 날 몇시에 부산항에 입항한다고 회사에 팩스를 날리기만 하면 숱한 아내, 어머니와 미혼처들이 부두까지 마중나와 있겠으니 말이었다.
이렇게 모두들 잔뜩 희열에 잠겨있을 때 불현듯 선내 스피카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방송되었다.
“선내 알려드리겠습니다. 선내 알려드리겠습니다. 선내 각 부서들에서 각별히 유의하기 바랍니다. 방금 받은 해상일기예보에 따르면 올해 ××호 태풍이 지금 빠른 속도로 이쪽을 향해 밀려오고 있습니다. 선내 각 부서들에서는 태풍에 대처할 모든 준비를 잘하여 선박운행에 이상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리겠습니다…”
환희로 들끓던 선내는 삽시에 쥐죽은듯 고요해졌다. 하늘이 맑고 바람 한점 없는데 태풍이라니. 선박생활경험이 없는 우리 중국 조선족선원들은 그것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헌데 선내분위기가 벌써 달라졌다. 갑판장은 갑판원들을 이끌고 선내를 돌면서 통로문과 선창문을 몽땅 꽁꽁 닫게 했고 갑판의 물건 예하면 공구들은 몽땅 거두어들이고 도람통같은 것은 배전난간에 묶어 고정시켜 놓았다. 한편 기관실에서는 모든 설비들을 재점검하는 동시에 알준한 당직근무조를 내왔으며 우리 주방에서는 통신장의 지휘하에 주방의 일체 그릇들을 큰 대야같은데 채곡채곡 넣어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켜놓고는 비상으로 선원들한테 빵, 과자나 과일 등을 나누어주었다.
뒤이어 매개 선원마다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근무하라는 지시가 방송되었다.
얼마 후 과연 본선이 먹장 같은 구름떼들이 하늘로 몰켜오더니 뒤미처 불어치는 태풍과 함께 파도가 일기 시작하면서 선체가 이리저리 기우뚱거리군 했다. 그러자 선장은 기관당직자외의 모든 선원들을 조타실에 대기시켰다.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그 손실을 극력 줄이기 위해서였다. 항행지휘는 선장이 직접 했고 1탁수가 키를 잡았으며 기관실에서는 기관장의 지휘하에 1기사, 2기사가 엔징운행을 담당했는데 선내 전체가 1급비상태에 들어간듯 싶었다. 그 외 통신장은 레시바를 귀에 끼고 태풍전야의 현상태를 부지런히 보고하는 한편 본부의 지시를 선장한테 수시로 전달하군 했다. 사위는 대낮에도 불구하고 인츰 칠흑처럼 되더니 큰 파도가 배전을 세차게 때리기 시작했다. 갈매기들은 죽는다고 아우성치며 조타실 뒤에 있는 바람막이 같은 구석에 하나 둘씩 몰켜들었는데 어디로부터 그 숱한 갈매기들이 날아놨는지 쌓이고 쌓여 사람의 키를 초과할 지경이었다. 남대서양 포클랜드의 파도가 무섭다고 했는데 태평양에 불어치는 태풍에 비하면 파도라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태평양이 태평스럽지 못하다는 말을 실증하듯 앞으로부터 밀려오는 파도가 어찌나 높은지 선박을 당장 삼켜버릴 기세였고 그 파도가 선수를 들이박을 때는 길이 160미터나 되는 육중한 선박 전체까지도 부르르 떨기가 일쑤였다. 또한 그 파도가 선수에서 120미터 뒤에 있는 조타실꼭대기까지 올라오는건 물론 선박 전체가 파도속에 푹 잠겼다가 다시 물우로 솟구칠 때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천둥이 울부짖고 굵직한 비줄기가 흩날리는 자욱한 안개속에서 본선은 항행을 계속했다. 선장과 1항사는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고 앞만을 주시했다. 그러다가 큰 파도가 밀려오는 것이 어슴프레 보이면 급기야 “엔징가속”을 불렀다. 그러면 그 옆에서 복창하는 1항사, 엔징속도를 빨리면 그만큼 파도와 부딪치는 충격이 크기에 더 위험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것이 아니었다. 배가 전진하는 속도가 빨라야만이 파도와의 충격에서 뚫고 나갈 수 있지 그렇지 않고 속도가 느리거나 혹시 엔징이 꺼지기라도 하면 선박 자체의 힘이 적거나 없기에 배가 뒤집혀질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옆으로부터 파도가 밀려오는 것이 보이면 선장은 인차 배머리를 파도가 밀려오는 쪽으로 돌리게 했다. 왜냐하면 앞으로 치는 파도보다 옆으로 치는 파도가 더 무섭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옆의 파도를 발견하지 못했거나 혹은 미처 배머리를 돌리지 못했을 때는 선체가 파도에 맞아 거의 한쪽으로 넘어갈 것만 같았는데 벽에 머리를 박는 이, 바닥에 쓰러지는이들로 조타실은 수라장이 되기가 일쑤였다.
밤이 되었다. 칠칠야밤, 비바람은 더욱 세찼고 파도는 더욱 흉악스럽게 선박 전체를 삼켜버릴양으로 덮쳐들었다. 지척도 분간하기 힘든 한바다에서 아무리 유명한 선장이라 해도 육감에 의해 항행지휘를 했지 정확한 판단과 지휘는 거의 불가능햇다. 배는 파도에 의해 수시로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했다. 바로 이 때 억수로 크고도 거센 파도가 선수를 호되게 갈기는듯 하더니 엔징이 툭하고 꺼졌다. 순간 선내 전체는 까막나라로 되었고 선장의 지휘도 1타수가 잡은 키도 기능을 잃었다. 8000톤급 되는 본선은 완전히 부평초처럼 파도가 치는대로 이리 밀려가고 저리 밀려가고 했다.
드디어 어둠속에서 누군가 울음을 터뜨리었다.
“아이고, 내가 왜 부산서 승선하지 못하고 방콕까지 가서 앞당겨 승선했노?”
뒤이어 “엄마야 나 어떻게 죽어, 난 아직 장가도 못들었는데.”
심지어 기독교신자로 출항할 때마다 기도를 드리군 하던 냉동사까지도 “하나님은 무슨 말라비틀어진 하나님이라더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면 이럴 때 우릴 구하지 않고 언제 구한다더냐?!”라고 희스테리적으로 부르짖었다.
이에 선장은 차마 들을 수 없었던지 “이 미친 놈들아, 조용하지 못해? 죽긴 왜 죽는다고 지랄염병들을 하고 있는거야?!”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하나님도 개아들보다 못한판에 선장의 말이라고 먹혀들어갈리 만무했다.
이렇게 약 20분 가량 지났을 때 불현듯 엔징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나더니 조타실내 신호등들이 일제히 켜졌다. 조타실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파도의 충격에 1호발전기가 스톱하는 통에 바다에 처박힐번 했던 본선은 다시 2호발전기를 가동해서는 항행을 계속했다. 허나 공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아니 파도의 충격은 점점 더 커갔고 선체도 점점 더 기우뚱거렸다. 하지만 한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어서인지 선원들은 더는 아우성을 치지 않았다. 사내란 것들이 고까짓 위험에 아우성쳤다는 창피감도 있었겠지만 인젠 생사의 여하를 운명의 배치에 맡긴 모양이었다.
이렇듯 긴장한 분위기속에서도 선박과 선원들의 안전을 책임진 선장이 어딘가 남들 과는 달랐다. 그는 인차 심리평형을 잡고는 수시로 앞과 좌우를 관찰하면서 될 수 있는한 정확한 지휘를 하느라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엔징으로 인한 위험이 제거되자 이번에는 또 새로운 위험이 들이닥쳤다. 파도가 이미 선박 우현쪽을 때려서 기우뚱했던 선체가 바로서기도 전에 또 다른 파도가 재차 우현쪽을 강타한데서 배가 점점 좌현쪽으로 기울러지고있었는데 거의 45도각을 이루었다.
선장은 그런 찰나에도 지휘를 계속했다.
“좌현 20도! 좌현 20도! 빨리 키를 돌렸!”
이에 1타수가 그걸 복창하며 키를 좌현 20도로 돌리자 그제야 선체는 천천히 평형을 잡는 것이었다. 가령 그때 키를 좌현쪽으로 돌리지 않았거나 혹은 미처 돌리기도 전에 파도가 재차 우현쪽을 때렸더라면 그 후과는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었다.
20여년 전부터 해병대 상등병으로 베트남전에도 참가했었다는 A급 선장인 정유식, 그는 그야말로 훌륭한 선박의 마스터임에 틀림없었다. 가령 그때 그가 정확진 지휘를 하지 못했거나 또한 그마저 죽음의 공포에 떨며 재능을 과시하지 못했다면 선박과 선내 24명 선원들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되였을는지?…
장장 18시간이나 지속되는 태풍은 이튿날 오전 10시에야 비로서 물러가기 시작하더니 찬란한 해빛은 인차 우리의 머리위를 비추었다.
검푸르던 바다는 다시 푸름을 자랑하며 찰랑대였고 고기무리들도 이에 따라 물우로 솟구치며 자유로히 놀았다. 한편 태풍이 한창인 하늘가에는 아름다운 바다무지개가 걸리었다.
한차례 폭풍취우의 세례를 겪고난 선원들은 지친 나머지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쓰러져있었고 선장 역시 눈에 피줄기가 서고 열병에 앓고난 사람처럼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 사이에 배란간에 묶어놓았던 빈도람통들은 파도에 맞아 납작하게 되었고 조타실 뒤에 몰켜있던 갈매기들은 자기들의 무게에 깔리고 숨막혀 죽은 것이 태반이나 되었다. 살아만은 갈매기들은 죽은 갈매기들의 죽음이 애닮아서인지 슬피 울면서 조타실주위를 맴돌며 떠날념을 하지 않았다. 죽은 갈매기들을 바다에 “수장”하는 동안 조타실에서는 자주 고동을 길게 뽑아 그것들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때 우리가 태풍속에서 18시간이나 역사했지만 항행거리는 고작 5마일도 되나마나 했다.
마도로스들의 지치고 짜증난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는걸가. 원양운반선 “코리안스타”호는 24노트의 최고속도로 한국의 제일 항구인 부산을 바라고 힘찬 항행을 다그쳤다.
(다음기 계속)
ⓒ 동포투데이 & www.dspdaily.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
왜 예술인에게 ‘재교육’이 필요한가?
6월의 비는 쉼과 시작 사이를 적신다. 벌써 반년이 지나고, 빗소리는 지나온 시간에 안부를 전하듯 마음을 두드린다. 그리고 지금, 그 빗줄기처럼 우리에게 용기를 속삭인다. ‘다시 시작하라, 다시 배움에 도전하라’ 라고... 무용, 음악, 미술, 연극, 뮤지컬 등, 예술을 전공한 수많은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 -
“나도 드라마 속 ‘가난한 사람’이 되고 싶다”
● 허 훈 가난한 사람을 다루는 드라마를 네 나라, 한국·미국·중국·일본의 작품을 함께 놓고 본다면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네 나라 중 유독 한 곳만, 가난이 너무도 ‘예쁘게’ 포장돼 있다. 바로 중국이다. 요즘 중국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미드·한드·일드나 본다”는 말이 유행처럼 ... -
디아스포라와 AI 시대, 한글교육의 도전과 과제
허 훈 | 칼럼니스트 “디아스포라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지난 6월 23일 서울 종이나라박물관에서 열린 ‘지구촌한글학교미래포럼’ 제10회 발표회에서 전후석 다큐멘터리 감독이 던진 이 말은 한글교육의 본질과 미래를 깊이 성찰하게 하는 표현이었다. 한글교육은 더 이상 단순한 문자 교육... -
역사 속 ‘신에 가까운’ 일곱 사람…제갈량도 5위 밖, 1위는 누구였을까
각 시대마다 역사 흐름을 바꾸는 탁월한 인물들이 등장해왔다. 이들은 그 지혜와 능력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신과 같은 존재’로 불리며 사회와 문명의 발전을 이끌었다. <삼국연의>로 널리 알려진 제갈량은 이러한 인물 중 대표적으로 손꼽히지만, 실제 역사 속에서는 그조차도 ‘신인’ 순위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들... -
‘홍대 중국인 커플 폭행’, 언제까지 외국인 혐오에 눈 감을 것인가
[동포투데이]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외국인 관광객 폭행 사건이 또다시 한국의 국격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3일 밤, 서울 홍대 앞 거리에서 중국인 커플이 한국인 남성에게 네 차례나 폭행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 장면은 피해자가 직접 촬영한 영상으로 중국 SNS에 확산됐고, “한국은 안전한가”라는 물음이 순식간에... -
“제주도가 중국인의 섬?”…무질서한 중국 관광객에 쏟아지는 비판
[동포투데이] 제주도의 바람이 전해주는 건 더 이상 소라향만이 아니다. 라면 국물 냄새가 편의점 냉장고 위에 퍼지고, 중국어가 적힌 안내문 옆에서 한국인 점원이 무거운 빗자루를 쥔 채 한숨을 쉰다. 관광객의 무질서한 행동이 반복되는 가운데, 지역 주민과 상인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제주도가 중국인의 섬...
NEWS TOP 5
실시간뉴스
-
21세기에도 남아 있는 노예제…모리타니, 인류의 그림자
-
“제주도가 중국인의 섬?”…무질서한 중국 관광객에 쏟아지는 비판
-
역사 속 ‘신에 가까운’ 일곱 사람…제갈량도 5위 밖, 1위는 누구였을까
-
단동의 밤, ‘해당화’ 식당에서 피어난 이념의 그림자
-
“9·18 사변의 전주곡—만보산 사건의 전말”
-
[역사 바로보기] 중국사 속 3대 허위사실…'주유왕 봉화사태'부터 '강건성세'까지
-
국경을 초월한 영웅, 이다 스케오의 희생과 평화의 메시지
-
연변조선족자치주 8개 현·시 지명에 스민 역사와 문화의 숨결
-
1960년대 북-중 관계의 악화와 저우언라이 방북
-
중국 5대 종교 중 신도가 가장 많은 종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