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미국이 중동에 수십 년 만의 최대 규모 전력을 집결시키며 이란에 대한 군사적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스텔스 전투기와 조기경보기, 공중급유기가 잇따라 전개되고, 두 개의 항모전단이 페르시아만에 진입하면서 미군의 첫 공습은 ‘언제든 가능’한 상태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공격 여부는 시간 문제”라는 관측과 달리, 백악관 내부에서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단 한 차례의 ‘치명적 타격’만으로 이란을 굴복시켜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다는 보장을 참모진이 제시하지 못하자, 점점 더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복되지 않은 땅” 이란의 역사와 지리
백악관 참모들의 신중론은 역사와 지리를 들여다보면 설득력을 얻는다. 이란은 인류 고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로,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 잡았다. 수차례 침략과 외세의 개입을 겪었지만, 어느 초강대국도 이란을 장기간 완전히 정복하지는 못했다.
그 배경에는 지형이 있다. 국토 면적 160만㎢, 인구 8000만 명이 넘는 이란은 깊은 전략적 종심을 갖춘 국가다. 특히 남부와 서부를 가로지르는 자그로스 산맥은 험준한 암반 지형으로, ‘자연의 성벽’이라 불린다. 이 산맥은 과거 로마군의 동진을 가로막았고, 근대에는 영국·러시아 제국의 남하를 제어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도 이라크군은 산맥 돌파 과정에서 막대한 대가를 치렀다.
산 속으로 들어간 군사력… 지하기지의 힘
현대전에 들어서 이란은 이러한 지형적 이점을 극대화했다. 이란은 산악 지형 내부에 다수의 지하 군사기지를 구축해 왔으며, 정밀유도폭탄과 순항미사일, 심지어 관통탄에도 견딜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산체를 방패 삼아 깊이 100m에 이르는 ‘지하 미사일 도시’도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DPA통신이 인용한 이란 파르스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란 혁명수비대는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호람샤르-4’를 지하에 배치했다. 사거리 약 2000㎞, 탄두 중량 1.5t에 달하는 이 미사일은 이란의 ‘적극적 억지’ 전략의 핵심 전력으로 꼽힌다. 혁명수비대 항공우주사령부에는 새로운 지하 미사일 기지도 가동에 들어갔다고 한다.
세계의 ‘에너지 밸브’를 쥔 나라
이란이 쥔 또 하나의 카드는 호르무즈 해협이다. 최협부가 33㎞에 불과한 이 해협은 전 세계 석유 교역의 3분의 1, LNG 교역의 5분의 1이 지나는 핵심 해상로다. 이란은 1970년대 이후 해협 인근 주요 도서를 실효 지배해 왔으며, 군사 공격을 받을 경우 해협 봉쇄에 나설 수 있다고 수차례 경고해 왔다.
수심이 얕은 해협의 특성상 항공모함이나 핵잠수함의 기동은 크게 제약된다. 봉쇄가 현실화할 경우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은 치명타를 입게 되고, 미국 역시 그 충격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20위’ 군사력과 비대칭 전력
군사력 면에서도 이란은 과소평가하기 어렵다. 글로벌 군사력 지수에 따르면 이란은 병력, 장비, 후방 능력을 종합해 세계 20위권에 속한다. 중동 최대 규모의 미사일 전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수천 기의 탄도·순항미사일이 최대 2000~2500㎞ 범위를 커버한다.
무인기 분야에서도 ‘샤헤드(목격자)’ 계열과 ‘모하제르(이주자)’ 계열을 대량 운용 중이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 IISS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이란제 무인기를 대거 사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 정규 육군 병력은 약 35만 명으로 추산되며, T-72와 국산 ‘줄피카르’ 전차 등 1500여 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상당수 장비가 구형이어서, 전문가들은 이란 지상군이 속도전보다는 국토 방어와 장기 소모전에 적합하다고 보고 있다. 공군의 한계를 미사일과 무인기 전력이 보완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왜 굴복하지 않느냐고? 우리는 이란인이다”
이란의 또 다른 강점은 내부 결속이다. 페르시아 문명의 계승국인 이란은 20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강한 민족적 자부심을 형성해 왔다. 시아파가 국교이지만, 기독교·유대교·조로아스터교도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의회 의석까지 보장된다. 다민족 사회임에도 ‘이란인’이라는 정체성이 국가 통합의 축으로 작동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왜 아직 굴복하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에 대해, 이란 외무장관 압바스 아라그치는 SNS에 “우리가 왜 항복하지 않는지 알고 싶은가. 우리는 이란인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테헤란대 교수 푸아드 이자디는 “제재는 경제에 큰 상처를 남겼지만, 동시에 사회적 결속을 강화했다”며 “외부 압박이 커질수록 이란 사회의 저항성과 단합은 오히려 강화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암살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최고국가안보회의를 통해 유사시 국가 운영을 지속할 준비를 해두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의 계산, 그리고 제네바의 변수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은 24일 CBS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치명적 타격’으로 이란을 협상에 복귀시키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으나, 군사 참모진은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미·이란의 새 협상은 26일 제네바에서 열릴 예정이다. 미군의 군사 배치가 완료된 상황에서 미국은 제한적 타격 능력을 확보했지만, 전면 충돌과 외교 해법 사이의 선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전쟁과 협상 사이에서, 수많은 제국의 흥망을 지켜본 이란 땅은 다시 거대한 불확실성에 휩싸였다. 분명한 것은 중동의 긴장 고조가 세계가 원치 않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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