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1955년 중국인민해방군은 제1차로 군직함제를 실행했다. 당시 중남해 회인당에서는 모택동이 주덕 등 10대 장군들한테 원수 직함을 수여, 그것으로 중국군내에서는 10명의 원수가 확정되었다.
그 때로부터 수십년이 지나갔다. 오늘 그 10대 원수들 중 생존해있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하지만 그 10대 원수의 자녀들은 대다수가 생존해 있다. 그럼 그들의 자녀들은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을까?
▲ 주덕과 그의 가족들.
주덕(朱德- [1886-1976]) 은 중국군 10대 원수중 서열 1번이다.
주덕 원수의 딸 주민(朱敏)일찍 북경사범대학 러시아어학부에서 사업, 교수연구실 주임 등 주임을 맡았으며 1986년 이직, 그 뒤 주덕 원수의 딸 주민은 북경군지양용인재양성원(军地两用人才培训学院)을 설립, 원장을 맡았으며 이 학원은 현재 북경군지전업연수학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주민은 일찍 구 소련 유학시절 당시 모스크바에서 함께 유학생활을 하던 유쟁(刘铮)을 만나 열애에 빠졌다가 결혼, 이들 사이에는 유건(刘建), 유강(刘康). 유민(刘敏)과 유무(刘武) 등 네 자녀가 있다.

팽덕회(彭德怀[1898-1974])는 중국군 10대 원수중 서열 2번이다.
▲ 임표의 딸 임립형(林立衡)(가운데)
임표(林彪[[1906-1971]])는 중국군 10대 원수중 서열 3번이지만 그의 전쟁승리 전과와 지휘능력은 첫번째로 꼽히고 있다.
임표의 딸 임립형(林立衡)은 일찍 <중국공군보>의 부주필을 맡고 있다가 1971년 9월 13일 아버지 임표가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도망가다가 몽골의 언더르한에 떨어져 자멸한 뒤 격리심사를 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1974년 7월 31일, 모택동의 특별 비준에 의해 격리심사에서 해방받았고 그 뒤 장청림(张清林)과 결혼하였으며 이어 정주의 한 자동차제조공장에 배치받아 사업하게 되었다.
중공 11기 3중 전회 후 임립형은 북경에서의 사업 및 호적 문제가 해결되어 중국사회과학원에 배치되어 사업하게 되었으며 남편 또한 북경시 위생부문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2002년 5월 임립형은 고향의 모 회사의 요청으로 북경 황학대호텔의 이사장 겸 총경리를 맡게 되었다.
유백승(刘伯承)의 장자 유태항(刘太行)은 일찍 중국공군 모 연구소 부소장, 장갑병 작전부 부부장을 역임, 차자 유몽(刘蒙)일찍 중국군 총참모부 참모로 근무, 문학에 출중한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 <유백승전기>의 편찬사업에 참여하고 씨나리오 <청년유백승>을 창작하기도 했다. 셋째 아들 유태지(刘太迟)는 중국군 소장으로 공군사령부 장비부 부부장으로 근무하였었다.
유백승의 큰 딸 유화북(刘华北)은 일찍 1945년 6월 연안보육원 시절 적에 의해 암살당하였고 둘째 딸 유미군(刘弥群)은 중국군 소장으로 공군 지휘학원 부원장을 맡아했으며 셋째 딸 유해선(刘解先)은 중국군 북경군구 총후근병원 제1진찰부 의사로 지냈었고 넷째 딸 유응령(刘雁翎)은 중국군 총병원 핵의학과 연구원으로 북경의학회 핵의학전문위원회 위원으로 지냈었다.
▲ 하룡의 아들 하붕비(贺鹏飞)
하룡(贺龙[1896-196])은 8.1 남창봉기의 총지휘와 홍 제2방면군 총지휘를 맡은 원수이다.
하룡의 아들 하붕비(贺鹏飞)는 중국군 중장으로 해군 부사령원을 맡았었고 딸 하첩생(贺捷生)은 중국군 소장으로 군사과학원 군사백과연구부 부부장으로 있었으며 선후로 군사과학원, 총정치부, 무장경찰부대 등 부문에 자리를 옮기면서 연구 및 선전사업을 하는 한편 하룡원수를 추모하는 많은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진의(.陈毅[1901-1972])는 남방유격대, 신사군, 제3야전군 등을 지휘한 원수로서 종군문인이기도 하다.
진의 원수의 장자 진오소(陈昊苏)는 일찍 북경시 부시장에 부임했었고 중국인민 대외우호협회 회장 겸 중러우호협회 회장도 맡았었다. 진의 원수의 차자 진주회(陈丹淮)는 중국군 소장으로 해방군 총장비부 과학기술위원을 맡았으며 진의 원수의 셋째 아들 진효로(陈晓鲁)는 중국 국제인재개발센터 인사대리단위표준국제투자관리 유한회사의 이사장이었으며 진의 원수의 딸은 진산산(陈珊珊)이었고 사위 왕광아(王光亚)는 중국외교부 부부장이었었다.
나영환 원수의 아들 나동진(罗东进)은 1939년 2월 12일 생으로 1959년에 중국군에 입대, 일찍 중국군 제2포병부대의 부정위를 맡았었으며 후에는 중국 노혁명근거지 건설추진회 고문으로 있었다. 나영환 원수의 셋째 딸 나북첩(罗北捷)은 1949년 10월생으로 1972년 제1군의대학을 졸업하고 북경군구 304병원에 배치받아 의사로 근무하였었고 넷째 딸 나녕(罗宁)은 1951년생으로 현재 북경 개성실업유한회사(北京凯星实业有限公司)의 이사장으로 있다.
▲ 서향전 원수의 아들 서소암(徐小岩)
서향전(徐向前[1901-1990])은 홍군 제4방면군의 총지휘 신분인 원수이다.
서향전 원수의 아들 서소암(徐小岩)은 중국군 중장으로 해방군 총참모부 통신부 부장을 지녔으며 서향전 원수의 내질녀 황원지(黄远志)는 원 호북성 당위 부서기 겸 규율검사서기직을 맡았었다.
▲ 섭영진 원수의 딸 섭력(聂力)
섭영진(聂荣臻[1899-1992])은 화북야전군 사령원으로서 일찍 황포군관학교 교관출신의 원수이다.
섭영진 원수의 딸 섭력(聂力)은 중국군 중장으로 일찍 중국 국방과학기술 공업위원회 부주임으로 지냈었고 현재 중국 발명협회 상무 부이사장으로 있으며 전국인대 상무위원이다. 섭영진 원수의 사위 정형고(丁衡高)는 중국군 상장으로 중국 공정원 원사이며 중국 국방과학공정위원회 연구원 부주임, 주임 직에 종사하였고 현재는 중국관성기술학회 이사장으로 있다.
▲ 엽검영 원수의 장자 엽선평(叶选平)
엽검영(叶剑英[1897-1986])은 특수한 자이지위와 이력을 소유한 원수이다. 북벌전쟁으로부터 중공의 재건 중 그는 줄곧 중국군 정계의 대표로 특수한 지위에서 활동했다.
엽검영 원수의 장자 엽선평(叶选平)은 중국정협 부주석이었었고 며느리 오소란은 오옥장(吴玉章)의 손녀로서 심천시 인대 부주임이었으며 엽검영 원수의 손자 엽신복(叶新福)은 홍콩 만신회사의 총재이다. 엽검영 원수의 둘째 아들 엽선녕(叶选宁)은 중국군 중장으로 일찍 해방군 총정치부 연락부장을 맡았었으며 전국인대 상무위원으로도 있었다.
엽검영 원수의 셋째 아들 엽선렴(叶选廉)은 중국정협 위원으로 일찍 중국 개리회사(凯利公司) 이사장 겸 총재로 있다.
엽검영 원수의 장녀 엽초해(叶楚梅)는 중국 기계공업부 기계국 원 부국장있었고 큰 사위 소가화(邹家华)는 국무원 부총리직에 있었다.
엽검영 원수의 둘째 딸 엽향진(叶向) 홍콩에서 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셋째 딸 엽문산(叶文珊)은 현재 해남화교투자유한회사의 부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그녀의 남편은 원 국무원 부총리었던 여추리(余秋里)의 아들 여방방(余方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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