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투데이]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일본의 항복을 앞두고 소련은 ‘대일 참전’을 명분으로 100만 대군을 이끌고 만주(중국 동북지역)에 진입했다. 공식적으로는 중국을 돕는 ‘우방군’의 모습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철저히 계산된 약탈 계획이 숨어 있었다.
8월 9일 새벽 4시, 소련군은 중·소 국경선을 넘어 만주로 진격했다. 불과 2주 만에 일본 관동군은 무너졌다. 그러나 전투 종료 뒤에도 소련은 철수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리 관리’라는 명분으로 만주의 정치·산업 시설을 장악했다. 이는 이미 반년 전 얄타회담에서 합의된 비밀 조항—소련이 전리품을 자유 처분할 권리를 가진다는 약속—에 기반한 것이었다. 중국은 이 협의에 참여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게 됐다.

소련군의 첫 목표는 금융기관이었다. 1945년 9월, 장춘의 ‘만주 중앙은행’이 접수됐다. 사흘간 이어진 작업 끝에 7억 만주국 화폐와 75억 원 상당의 유가증권, 금 36킬로그램, 백금 31킬로그램, 은괴 66킬로그램, 다이아몬드 3705캐럿이 군용 트럭에 실려갔다. 은행은 텅 빈 껍데기만 남았다. 한 은행 직원은 훗날 “금고는 물론 전화기까지 뜯어갔다”고 회고했다.
이후 소련군은 아시아 최대 제철소였던 안산 제철소로 눈을 돌렸다. 1945년 11월부터 40일간, 소련군은 고로(高爐)와 압연기, 발전설비까지 모조리 해체해 기차로 실어갔다. 대형 장비는 불도저와 용접기로 잘라내는 방식으로 분해됐다. 조사에 따르면 이곳만 해도 피해 규모가 미화 2억 달러에 달해, 동북 전체 산업 피해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10월에는 만주 중공업을 총괄하던 일본인 경영진에게 ‘산업자산 전부를 소련에 이양한다’는 문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했다. 총구 앞에서 결국 서명이 이뤄졌고, 70여 개 주요 산업 부문이 한순간에 소련 소유로 넘어갔다. 중국 외교 당국은 항의했으나, 미국과 영국은 침묵으로 일관했고, 소련은 “전리품 조항에 따른 합법적 행위”라며 일축했다.
1946년 3월 소련군이 철수했을 때, 동북은 이미 ‘산업 폐허’로 변해 있었다. 중국 국민정부가 작성한 피해 보고서에 따르면 소련이 가져간 장비와 자산은 8억 5천만 달러 규모, 금융·원자재 포함 총 피해액은 2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당시 중국 GDP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였다. 피해 내역을 보면 안산 제철소는 장비의 95%가 사라졌고, 선양 항공기 제작소와 하얼빈 항공엔진 공장은 장비가 100% 반출됐다. 푸순 탄광의 경우 80%가 사라졌으며, 전력 시스템 역시 75%가 손실됐다. 수많은 공장이 가동을 멈추었고 수만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오늘날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전략적 협력 관계로 묘사되곤 하지만, 1945년 만주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양국 사이의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해방’의 이름으로 시작된 진군은 결국 동북의 산업 기반을 송두리째 앗아간 약탈로 끝났다. “역사는 지울 수 없고, 이 부채는 언젠가 반드시 계산해야 한다”는 중국 내 목소리는 지금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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