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화
줄곧 한국행을 꿈 꿔왔던 나에게 기회를 준 것은 2007년에 시행된 무연고동포 방문취업제 시험제도였다. 10년 만에 친정아버지를 인천공항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도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가끔씩 화상채팅으로 아버지의 모습을 뵙기도 했고 목소리도 듣긴 했었지만 당시 공항에서 우리 부녀의 만남은 이산가족상봉 그 자체였다.
그해 한국에 첫 발을 들여놓은 나는 공항리무진을 타고 당시 아버지가 살고 계셨던 서울의 한 단칸 셋방에 행장을 풀고 그 다음날 동네 파출 사무실에 등록을 한 후 본격적인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첨에 내가 시작한 일은…. 그땐 아무것도 할 줄 몰랐으니 가는 집마다 바닥 쓸고 유리 닦고 손님이 가면 상치우고 짬짬이 컵 씻고 하는 일은 다 나한테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손님들의 심부름에 홀언니들의 뒤치닥거리에 몸은 고달프고 녹초가 되였지만 주머니에 들어있는 5만5천원이란 돈을 생각하면 웃음집이 흔들거렸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마냥 가볍기만 했다. 매일 이렇게만 벌면 몇년 후에 떼부자가 될 것만 같은 생각에 어떤 달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적도 있다. 내가 한국에 온 목적이 돈을 벌려는 것이어서 일이 힘든 건 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만 같은 중국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이 다르다고 무시하는 건 도저히 참을래야 참을 수가 없었다. 한번은 어느 보쌈집에 일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일찍 출근해 바닥청소 거의 마감하고 있는데 홀직원인듯한 예쁘장한 아가씨가 한들거리면서 출근한다. “안녕하세요?” 하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그 아가씨는 옷 갈아입으러 들어갔다. 보아하니 스물대여섯 돼 보였다.
근데 옷 갈아입고 나온 그 아가씨가 소주뿌려가면서 테이블을 닦고 있는 나에게로 다가와서 하는 말이, “아줌마도 중국에서 오셨죠? 중국 어디에서 오셨어요?”였다. 말투 들어보니 나처럼 중국에서 온 아가씨인듯 하여 무척 반가웠다. “나는 연변에서 왔는데 아가씨는 어디서 왔어요?” 당시 삼십대 후반이였던 나보다 훨씬 어린 여자애였지만 그래도 초면인지라 예의상 존댓말을 썼다. 근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예쁜 얼굴에 실망의 빛이 어리면서 얼굴표정이 딱 굳어지더니, “아, 그래요? 전 연변사람이 별루예요.”라고 하면서 몸을 홱하니 돌려서 가버리는 것이였다.
순간 나는 너무나 당황하여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그냥 넘어가야 하나? 아니면 어린애한테 뭐라고 지적해줘야하나? 하고 갈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초간...나의 자존심은 뿔부터 난 못된 송아지를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일하고 있는 그 아가씨에게 다가가서 손으로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얘, 연변사람인 내가 너한테 피해를 준 일 있니?”
“아니요, 없어요.”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연변사람이 별루라는 거니?”
아가씨는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듯이, “우리 동네에서는 연변사람은 몽땅 사기꾼이라고 소문이 자자해요. 그래서 나도 연변사람 싫어해요.”라고 또박또박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였다.
“헉! 어린것이! 이마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된방망이에 뒤통수 맞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당해보지 못한 사람은 그때 기분을 상상도 못할 것이다. “얘, 그 이쁜 얼굴로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그러면 너네 동네사람들은 연변사람이 아닌 너처럼 다 그렇게 할 말 못할 말 못 가리고 툭툭 내뱉니?”
이렇게 말한 후에도 나는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어찌 다른 사람이 팥을 콩이라 한다고 너도 같이 따라서 콩이야 하고 말하니? 나이도 어린 게 이렇게 이상지하 모르면 못 써! 우리 엄마도 연변사람이지만 자식교육 이렇게 시켜서 내보내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연달아 쏘아붙이고는 돌아서서 내 할일만 했다. 시간이 좀 지나고, “욱ㅡ”했던 기분이 좀 가라앉으니, “아, 내가 나이 어린애한테 너무 심하게 했나?”라는 자책감도 없지 않아 기분이 찜찜했다. 아침부터 이런 일이 있었는지라 그 아가씨와 나는 일에 관한 말을 빼고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고, 둘 다 뿌루퉁한 기분으로 하루 일을 마무리했다. 그날 나는 그 아가씨한테 연변사람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려고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더욱 열심히 뛰여다니다보니 결국에 녹아나는 건 내 몸뚱아리 뿐이였다.
그 후에도 나는 일 다니면서 연변 아줌마 신분 때문에 같은 중국조선족끼리 무시당하고 따돌림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떤 연변언니들은 누가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 그냥 길림에서 왔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나는 연변에서 태여났고 해란강옥토벌에서 나는 쌀을 먹고 자랐는데 무엇 때문에 내가 연변사람이라는 사실을 숨겨야 하는가! 연변지역의 조선족들이 관내 조선족들보다 먼저 코리안드림의 물결에 합류한 것도 아니다. 터놓고 말해 1990년 초반 한국에 연고 있어 실현한 코리안드림 얼마나 될가. 근데 한국에서의 조선족 이미지가 나빠진 것을 같은 조선족끼리 연변사람들한테만 그 책임을 돌리려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고 이해할래야 할 수 없었다.
한국으로 보내준다며 사기 등 온갖 몹쓸 짓을 한 불법브로커들이 살판쳤던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런 브로커들이 다 연변사람인것도 아니지 않는가! 한국 본토박이도 있고 관내 조선족들 가운데도 이런 브로커가 있다. 연변사람일지라도 그들은 수십만 연변조선족가운데 한낱 소수점에 불과한 존재이다. 우리 조선족은 지구촌 세계각지에서 모래알처럼 흩어져서 살지만 마음만은 하나로 융합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고 있는 지역이 다르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서로 간에 얼굴 붉히고 배척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조선족이 글로벌경제시대로 진출하고 있는 지금 조선족은 단결 화합하여 타향에서의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자신들의 아름다운 락원을 꾸려가야 한다. 나에게서 호된 소리를 들었던 그 아가씨가 그날 이후로 연변사람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였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앞으로라도, “나는 연변에서 왔어요!”라고 떳떳하게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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