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율성은 1914년 7월 7일, 한국 전라남도 광주남구 양림정에서 태여났다.
1933년, 3.1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가 일제의 탄압에 중국으로 망명한 형들을 따라 부산, 일본, 상하이를 거쳐 중국 난징에 이르렀다.
난징에서 “의열단”이 꾸린 조선혁명간부학교에 입학하여 군사학과를 배우고 이어 조선민족혁명당에 가입하였다. 반일활동을 하는 한편 시간을 짜내 러시아인 크리노와교수에게서 성악을 배웠다. 크리노와교수는 그의 음악천부를 높이 평가하여 그를 “동방의 카루소”라고 격찬하였다.
1937년 정율성은 상하이 부녀구국회 지도자이며 조선혁명가 김성숙의 안해인 두군혜의 도움으로 “중국혁명의 성지” 옌안으로 떠나게 된다.
열아홉 살의 정율성은 바이올린과 만돌린 그리고 “세계명곡집”을 지니고 간난신고를 겪으며 옌안에 도착하였다. 옌안에서 루쉰예술학원을 나왔고 “팔로군 행진곡”, “연수요”, “항전돌격운동가”등 50여 수의 악곡을 창작하였다.
팔로군(八路軍)은 1937년 제2차 국공합작 후에 설립 된 공산당의 주력부대로서 신사군과 함께 화베이 지방에서 항일전의 최전선을 담당했다. 당시 팔로군과 손잡고 조선의용대도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팔로군의 통일전선 파트너였던 조선의용대는 대일 전선에서 스파이와 배후교란 등 매우 위험한 임무를 기꺼이 맡았다.
정율성은 연안에서 탁월한 작사자 두 명을 만나는데 “팔로군 행진곡”의 작사자인 궁무(公木)와 “연안송(延安頌)”의 작사자인 여전사 모예(莫耶)이다.
1939년 정율성은 시인 궁무에게 자신이 구상하고 있던“팔로군 행진곡”의 노랫말을 써줄 것을 부탁한다. 전선에서 풍부한 전투경험을 쌓았던 공무는 자신의 생생한 경험을 녹인 노랫말을 정율성에게 건네주었고 정율성은 같은해 8월에 곡을 완성한다.
“팔로군 행진곡”은 건조한 황토고원에서 불붙듯 삽시간에 퍼지면서 모든 항일전사들의 가슴에 깊이 아로 새겨졌다. 격정과 기백이 차넘치는 “팔로군 행진곡”은 군민의 항일의지를 북돋우어주면서 재빨리 널리 유전되었다.
그후 이 노래는 “중국인민해방군행진곡”으로, 1988년에 이르러서는 “중국인민해방군군가”로 채택되였다. 1990년 9월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개막식 역시 정율성 작곡의 이 노래의 연주로 시작됐다.
연안 시절 정율성은 그 훗날 중국 최초의 여성대사로 주 덴마크, 주 네덜란드대사가 된 정설송과 결혼하여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결혼 후 정율성은 무정장군을 따라 조선의용군 소재지인 태항산에서 조선혁명군사학교 교육장을 담임하였다. 그는 학생들을 이끌고 탄우가 비발치는 전쟁터에서 선전을 벌리기도 하고 대중가요창작활동도 펼쳐 나갔다. 그가 창작한 “조선의용군행진곡”과 ”혁명가”등은 중국의 하북과 동북의 항일근거지의 조선의용군들 속에서 널리 불려졌다.
그 몇 년사이 ”두만강”, “동해어부” 등 30수의 가곡 그리고 “조선인민군군가”를 작곡했다. 김일성 주석은 1948년 그 공로를 인정해 정율성 선생에게 표창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조선인민군군가”는 지난 2006년과 2007년 방북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맞이해 인민군 군악대가 연주하기도 했다.
10년의 “문화대혁명”이 결속되자 창작의 봄을 맞이했던 정율성은1976년 12월 7일 베이징 교외의 강에서 물고기를 낚다가 뇌익혈로 쓰러졌다. 향년 62세였다.
사후 정율성은 중국의 공신들만을 대우하는 “팔보산 혁명열사릉”에 묻혔다. 비문엔 이런 구절이 새겨져 있다. “인민은 영원하며, 율성동지의 노래도 영원하다. 중국인민은 그의 노래를 부르면서 일제 침략자들을 몰아냈고, 낡은 중국을 뒤엎었으며, 새 중국을 건립했다.”
40여년의 음악생애에서 각종 쟝르의 음악작품 360여수를 창작한 정율성은 중국현대음악사의 한 획을 그으면서 영원한 “인민음악가”로 추앙받고 있다.
지난해 7월 방한한 시진핑 주석이 서울대 강연에서 중·한 우의의 상징으로 정율성을 언급하다시피 중국에서의 정율성의 위상은 높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정율성이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금기시 되어왔다. 그가 중국과 북한, 그리고 한국전쟁과 깊은 관계를 맺은 탓이다. 지난 세월 이념과 냉전(冷戰)의 장벽 속에 갇혀서 정율성 선생의 실체(實體)는 한국인들에게는 오랫동안 베일 속에 가려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다 최근 정율성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중한 양국에서는 기념음악회, 일대기 영화화 등 관련 행사들이 잇달아 열리면서 그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활발히 일고 있다.
감독으로는 중국드라마부분 최고의 상인 “금독수리”상과 “비천”상을 석권한 중국인 감독과 조선족 감독인 박준희가 메가폰을 잡았고 중국영화계 최고의 상인 “금계상”과 “백화상” 수상자들이 정율성과 부인 부인 정설송역을 맡았다. 영화는 옌안에서 뿐만 아니라 베이징, 톈진, 창춘 그리고 연변지역을 폭넓게 전전하면서 외경을 찍었다.
이를 계기로 그이의 생애 그리고 음악이 하루 빨리 이념의 구름장을 넘어 만방에 알려지고 더 높이 울려 퍼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2015년 9월 3일
- “청우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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