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과 더불어 새롭게 인식되는 역사 - 한반도의 현대사
■ 김철균
지금의 분열로 두개 나라가 된 한반도의 현실에 대해 구태어 길게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고 또 나름대로 분석하고 있으니 말이다. 언급하고 싶은 것은 지금의 한반도 현실 역시 다 우리 민족이 약하고 힘이 없는데다 강대국들의 욕심과 아귀다툼으로 인한 비극이란 것을 강하게 언급하고 싶다.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는 일본천황 히로히토의 항복성명으로 광복이 됐다. 헌데 광복이란 얻어진 것이지 우리 민족이 자체의 힘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에 의해 남한테 빼앗겼던 집이나 물건을 되찾게 되면 그 사람의 말을 잘 듣기 마련이다. 이는 사람으로 생겨서의 이치이다.”
아버지의 말씀이었다.
지리적 위치를 놓고 볼 때 한반도는 중국대륙과 러시아 극동지구와 붙어있고 미국과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해양인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있다. 그러니 제 2 차 세계대전의 종말 당시 미국의 입장으로서는 모든 방면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장악하고 발을 붙여야 할 지역이 바로 한반도였다. 하지만 제 2 차 세계대전의 종말을 앞두고 미국 혼자의 힘으로 일본을 굴복시키자면 막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그 당시 미국은 또 다른 강대국으로 떠오른 소련의 힘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1945년 7월 26일에 있은 포츠담회담에서 미국은 소련의 대일작전을 적극 요청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동시에 대일작전에 대한 스탈린의 동의를 얻어낸 후 미국대통령 투루먼은 돌이킬 수 없는 한가지 큰 과오를 저질렀음을 인차 깨달았다. 바로 이 때 투루먼은 본국으로부터 “아기는 무사히 태어났다”란 전보를 받게 됐는데 그 “아기”란 바로 원자폭탄이었다. 워낙 그 “아기” 즉 원자폭탄이 좀만 더 일찍 태어났어도 미국은 근본 소련의 힘이 필요없이 혼자서도 일본을 굴복시킨 뒤 보다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1945년 8월 6일,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첫 원자폭탄을 투하한 3일 뒤인 8월 8일 소련홍군은 도합 157만 7700여명의 막강한 병력으로 운집, 세갈래로 나뉘여 만주와 조선 지역으로 진출하며 파죽지세로 일본군에 대한 최후의 공격을 들이댔다. 소련홍군의 공세는 그해 4월 독일 본토인 베를린을 진격할 때의 속도를 초과하였다. 이는 미국도 미처 예상치 못하던 일이었다. 미국은 조선 전체를 소련홍군한테 넘겨줄 수는 없었다. 조선 전체가 소련의 지배로 넘어가면 미국은 아시아의 극동지구에서 발붙일 곳이 없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소련홍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방법이란 한반도의 중간지역에 경계선을 긋는 것이었는데 마침 그 중간지역에 38도선이 지난 것이 있었고 미국은 이 38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이 조선 남과 북에서 일본군의 투항을 접수하자고 제안하기에 이르렀으며 마침 소련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당시 소련이 왜 미국의 이 제안을 받아들였는지는 알바가 없다. 다만 2 차 대전에서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군사적 지원을 받아온 소련으로서는 미국의 제안을 거절할 적당한 이유가 없었던 모양이었으나 이는 다만 추측에 불과하다.
이렇게 생겨난 38선 - 그 38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은 각각 미국과 소련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고 또 그것을 계기로 여러 가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조선은 힘이 없었다. 소련군이 ‘해방자’란 명목으로 북에 진출할 때와 미군이 ‘점령군’이란 명목으로 등륙할 때에도 모두 구경밖에 할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약소국가와 약소 민족의 운명이었다. 그리고 북쪽은 소련을 등에 업었고 남쪽은 미군을 등에 업었으니 ‘통일’이란 구호는 같았으나 목소리의 내용은 제각각이었다. 그리고 통일과는 점점 멀어져가는 정치적 이념속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말대로라면 2차대전의 종말 당시 통일된 한반도가 탄생할 기회가 없은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북측의 뜻대로라면 소련이 38도선을 경계로 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듣지 않고, 또한 머나먼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이 “남조선”에 발붙이기 전에 한반도 전체를 점령했더라면 그때에 통일된 조선이 탄생했을 것이고 남측의 뜻대로라면 미국이 보다 일찍 원자폭탄을 만들어 소련의 힘을 요청하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일본을 굴복시켰더라면 역시 미국의 지배하에 있는 통일된 한국이 탄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약소국가인 한반도는 그러한 선택권은 물론이고 그러한 요구를 미국 혹은 소련에 제기할 권리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한편 중국은 달랐다. 한시기 중국도 남북으로 분단될 위기가 있은 적이 있었다. 즉 1949년 당시 미국과의 협의를 거친 스탈린이 모택동한테 장강이북을 차지하고 장강이남을 장개석한테 양보하라고 제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택동은 스탈린의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모택동한테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전쟁속에서 쟁쟁 소리나게 단련된 600만명의 군대가 있었고 공산당의 세뇌교육을 받은 2억만여명의 인민들이 있었으니 스탈린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고도 남음이 있었다.
반대로 한반도는 광복조차 외세에 의해 이룩된 것이었고 소위 한국독립군, 항일빨치산과 조선의용군 등 민족의 군대가 있었지만 그들은 조선에서 일본군의 투항을 접수할 권리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아버지의 얘기처럼 남들의 신세로 광복을 맞았으니 남의 말을 고분고분 들어야 했다.
그렇게 생겨난 38선, 이는 결국 1950년의 6.25동난을 초래했고 전반 7000여만의 겨레가 지금까지 분단의 설음을 안고 사는 고통속에 몰아넣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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