깽그랑 깽깽 문 여소
박태일
말이 좋아 개척이지
항왜 반만 광복군 기세 싸그리 태우고 지우기 위해
엮고 처올린 이른바 개척민 마을
하고 많은 개척 단지 가운데서도 안도현 장흥 도안골
합천군 예순 가구에 밀양군 마흔
사흘을 달려 안도역 기차에서 내린 날이 1938년 3월 25일
고향에서 보리밭 퍼런 고랑 보고 떠났는데
들판이고 산이고 허옇게 덮은 눈
춥다고 우는 아이 죽을 데로 왔다 장탄식 어른
쪽지게에 잡동사니 얹고 아이들 업고 걸리며
거친 사십 리 개판길 걸었다
이르고 보니 집은커녕 밭도 없는 도안골
속아도 이만저만 속은 게 아니어서
한 집에 고작 뜬내 나는 좁쌀 한 마대
세상 세상 이런 거짓말 어디 있습니꺼
이미 지어 놓았다는 집은 밭은 어디 있습니꺼
남의 나라 험한 산골에 울음이 터졌다
이주민을 앉히려 왔던 이른바 총독부 직원 리 아무개는
한 소리도 못하고 돌아갔고
그래도 양심이 남은 사람 그이 주선으로 해밑에
보내온 농악 한 질에 가마 쪽도리 사모관대 상여
그것들 두고 온 마을 눈물을 뿌렸다
깽그랑 깽깽 문 여소
주인 주인 문 여소
문 안 열면 갈라요
어이여라 지신아
지신 밟자 지신아
정월 초사흘 참나무 얼어터지는 추위 속에서
만주 도안골 첫 농악이 울렸다
지신 밟기 성주풀이가 오막살이 뜨락 감았다
토막 굴을 짓고 밖에다 솥을 걸고 썩은 좁쌀로 지은 밥
한 치 두 치 일군 밭에서 얻은 보리 강냉이
굶은들 한번 설 어찌 쉬지 않으랴
집집마다 막걸리 동이가 나왔다
타향살이 설에 굶주리는 설음이 정월 대보름까지
농악으로 돌았다
고향 고향이 어디요
고향 찾아 무어 하노
만주라 산골에 갇힌 몸
고향 고향이 어디 있노
흰 쌀밥 배 두드리며 먹을 수 있다던 만주가 지옥
개판 뜨고 논을 풀었으나 벼가 되지 않았다
모를 심는 고향과 달리 산종해 놓으면
볏대가 꼬지개덩이 타고 둥둥 떠다니고
여저기 샘이 터져 벼가 여물지 않았다
고향이 그리워 울고 배가 고파 울고
약 한 첩 침 한 번 써보지 못한 채 죽은 핏줄 상여에 실어 보내며 울었다
드디어 왜놈 망하고 을유광복
꼬지개덩이 마당이던 개판도 한 자리 두 자리
개간이 되면서 샘줄기가 머릴 숙였고
벼농사도 꽤 되었다
만주에 들어온 지 열 해 만에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
도안골에서는 논 따라 한 집 두 집 버덕으로 내려왔다
1949년까지 마을이 앉자 새마을 한문으로 신촌이라 불렀고
살림이 펴이며 농악놀이가 잦아졌다
설 보름 농악을 단오에도 추석에도 올리고 모를 내며 탈곡을 하면서도 올렸다
문화대격변 때는 복고로 비판받던 농악기들
봉건 귀신 물건짝이라 없애 버렸다 그 뒤
1979년 되살리고 새로 만들고 대용품을 쓰기도 했다
대격변이 가고 이른바 개혁 개방
새마을 농악은 열두발 행미를 돌렸다
탈춤까지 얹었다
쾌지나 칭칭 나네
고향 고향이 따로 있소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처자식이 주렁주렁
정이 들면 고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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