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7년 동안, 우리는 매일매일 서로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현지시간으로 11월 19일, 미국 전 대통령 카터의 부인 로잘린 카터가 가족들과 함께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카터는 로잘린의 사망을 알리는 편지에서 “내가 이룬 모든 일에 로잘린은 내 파트너였다. 그녀는 내가 가장 필요할 때 나를 지도하고 격려했다. 로잘린이 살아있는 동안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영원히 알게 될 것이다. 카터와 로잘린 카터는 77년 동안 가장 오래 동안 결혼생활을 한 미국 대통령 부부였다. 결국 96세의 로잘린이 먼저 가고 말았다.
지난 2021년 로잘린에게 사랑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로잘린은 “우리는 서로에게 공간을 주는 법을 배웠고, 새를 관찰하고 낚시를 하는 등 늘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면서 “하지만 우리가 함께 책을 쓰던 그 시간은 최악이었고, 바로 이혼과 가장 가까웠던 시기였다”고 웃으며 농작을 했다.
함께 백악관에 입주하고 함께 중국을 방문한 대통령 내외가 스쳐 지나갈 뻔했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영부인은 영원한 사랑을 안고 세상을 떠났다.
“바로 내가 결혼하고 싶은 여자야!”
로잘린은 1927년 미국 조지아주 플랫타운에서 태어났다. 카터의 어머니 릴리안은 그녀의 분만 간호사였다. 카터도 로잘린이 태어나자마자 그와 알고 지냈다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
딸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로잘린의 아버지 에드거 스미스는 적은 월급에서 5달러를 꺼내 로잘린의 일생을 따라다니는 정교한 금화 목걸이를 사줬다.
플랫타운은 인구 600명이 채 안 되는 가난한 남부의 작은 마을로, 궁핍한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주민들과 친분이 있었다. 로잘린은 카터의 여동생 로즈와도 친한 친구였고 자주 카터의 집에 놀러 갔다. 로즈는 둘을 엮어주려고 노력했지만 두 사람은 분명히 감정이 없어 로즈를 무척 고민하게 만들었다. 로잘린도 카터는 자신의 어린 시절 삶의 일부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1930년대 미국은 보수적인 사고방식으로 여성들이 학교를 다니고 취업하는 길이 험난했지만 로잘린의 부모는 그녀가 대학에 입학해 마을을 벗어나길 바랐고. 로잘린은 자신이 어릴 때부터 건축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며 그림책에 온통 로잘린의 집을 그렸다고 한다. 그녀는 비행기에도 관심이 많았다. 우리 선생님의 남자친구는 비행기 조종사였는데… 그녀는 학교를 지날 때마다 손수건으로 만든 작은 낙하산을 떨어뜨렸다. 그 밑에는 애인에게 보내는 연애편지가 묶여 있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에도 훈훈한 어린 시절을 보낸 로잘린은 가족 모임 때 어머니가 구워주신 작은 케이크의 달콤한 향과 음악 수업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자주 떠올렸다.
1940년 로잘린의 아버지가 백혈병으로 사망하면서 행복했던 그녀의 어린 시절은 그 순간 끝났다.
맏딸로 가족을 돌보는 중책을 맡은 13살 로잘린은 아버지가 막 돌아가셨을 때 집 근처 숲에 숨어 한참을 울다가 눈물을 닦고 집으로 돌아와 동생들을 돌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로잘린의 어머니는 그녀를 데리고 가문의 재봉 사업을 이끌며 “네가 자신한테 차례진 운명적인 일은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가르쳤고, 몇 년 뒤 로잘린은 우등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지아 사우스웨스턴 주립대학에 입학했다.
1945년, 운명적인 만남처럼 로잘린과 카터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당시 카터는 미 해군사관학교에 다니며 플랫타운으로 휴가를 떠나던 중이었다. 그날 그는 조지아주 미인대회 우승자인 그린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지만, 그린은 집안 사정으로 약속을 어겼다. 잃어버린 카터는 교회 앞에서 로잘린을 만나 영화를 보자고 청했고, 로잘린은 흔쾌히 승낙했다. 이는 두 사람이 알고 지낸 지 10여 년 만의 첫 데이트였다.
몇 년 후, 카터는 로잘린과의 데이트를 행복하게 회상했다. 삐걱거리는 픽업트럭 좌석에서 내가 키스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카터의 키스에 놀랐지만 로잘린 카터는 여전히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첫 데이트에서 남자애가 키스하게 한 것은 처음이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 때 카터의 어머니 릴리안은 아들에게 “어젯밤에 어디 갔었니?”라고 물었다.
카터는 “영화를 보러 갔다”고 대답했다. 릴리안이 다시 물었다: “너 혼자 스스로 갔니? 나는 그린이 어젯밤 가족 모임에 갔다고 들었어.”
이에 카터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냐, 난 로잘린과 함께 영화를 봤어.”
릴리안의 눈썹이 펴졌다.
“로잘린은 어때?”
이에 카터는 웃으면서 “그녀가 바로 내가 결혼하고 싶은 여자야!”라고 대답했다.
영부인은 영원한 사랑을 안고 세상과 작별했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어!
지난 2015년 미국의 유명 MC 오프라가 방송 인터뷰에서 카터에게 물었다.
“왜 데이트 한 번 하고 로잘린이 당신의 짝이라고 생각했어요?”
카터는 “그녀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조용하고 얌전하고 똑똑하고 아름다웠으며 그녀에게는 뭔가 있었다”고 대답했다.
“대통령님은 얼굴이 빨개졌어요.” 카터가 대답하기도 전에 오프라가 웃으며 말했다.
카터가 행복한 어조로 말했다.
“안녕, 나는 이 순간 나를 통제할 수 없어.”
첫 데이트 후, 로잘린과 카터는 사랑에 빠졌다. 양가 가족들도 그들의 로맨스에 도움을 주었다.
1946년 2월 갓 군사학교를 졸업한 카터는 용기를 내어 로잘린에게 청혼했지만 뜻밖의 거절을 당했고, 며칠 뒤 로잘린은 아버지의 병상 앞에서 대학 졸업 전까지 결혼하지 않겠다고 서약했다고 카터에게 편지를 보냈다.
카터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로잘린에게 계속 연애편지를 썼고 기회가 닿는 대로 전화를 걸었다. 1946년 7월 로잘린은 대학을 졸업하고 카터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몇 년 후 카터는 “로잘린과 결혼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일이었다. 그것은 내 인생의 정점이었다”고 회고했다.
결혼 후 두 사람은 카터가 근무했던 해군기지 옆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로잘린은 수줍음이 많아 모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에서는 카터를 꼭 붙잡고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로잘린은 사람들을 대하는 데 노련해졌다. 카터의 어머니 릴리안은 “카터와 로잘린이 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잠수함 장교로 오랫동안 해외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집안일을 모두 로잘린이 도맡게 했던 카터는 1953년 퇴역 후 로잘린과 함께 아들 3명을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가 농업회사를 운영했다. 로잘린은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회계학을 독학하고 회사 재무와 운영을 맡았다. 카터는 사업적으로도 아내에게 의지하게 됐다.
1961년, 카터는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로잘린이라는 당시의 수줍은 소녀는 단상에 올라 남편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카터의 오랜 정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해온 로잘린. 카터는 “나는 그녀가 이렇게 정치에 관심이 많은지 몰랐다”며 “시사를 분석하고, 자금을 배분하고, 전략과 선거 루트를 짜는 과정을 그녀는 나보다 더 좋아했다”고 말했다.
로잘린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남편을 위해 중도 유권자들의 신뢰를 많이 얻었다. 카터는 “나는 로잘린의 결단에 의지하고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정치판의 전방위 파트너가 됐다”고 털어놓았다.
1976년 카터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로잘린은 곧 백악관에 사무실 가방을 들고 들어가는 미국 역사가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영부인이 되었다. 그녀는 각료회의에 참석해 중요한 사안에 대해 의견을 피력했다.
로잘린은 1977년 대통령에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카터가 중남미 7개국을 방문했을 때 남편으로부터 자랑스럽게 ‘비밀병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해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카터는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를 주는 것이 목표”라며 “나는 문제를 봤고, 내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로잘린의 관심사 중 하나는 정신질환 치료였다. 1980년 로잘린의 노력으로 미국은 지역사회 정신건강센터를 설립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정신질환 치료를 정부 의료보험에 포함하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2008년에야 통과됐다.
영부인은 영원한 사랑을 안고 세상과 작별했다.
“우리 함께 모든 것을 이겨 내자요.”
1980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카터. 그날 밤 로잘린은 고개를 숙인 카터를 바라보며 남편의 무릎에 걸터앉아 “우리 함께 모든 것을 이겨내자요”라고 속삭였다.
몇 달 후, 카터 가족은 백악관을 떠났다. 퇴임한 많은 대통령들과는 달리, 로잘린에게는 그곳이 그녀의 진짜 집이었던 플랫타운으로 돌아갔다.
카터 대통령이 재임하면서 미국과 중국은 수교를 맺었고, 퇴임 후인 1981년에는 초청을 받아 로잘린과 함께 중국을 방문하면서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이후 40여 년간 두 사람은 여러 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에서 태극권은 로잘린의 흥미를 끌었고, 그녀는 곧 태극권이 심신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카터와 함께 태극권을 적극 홍보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아침에 태극권을 연마하는 습관을 길렀다.
1986년 로잘린은 남편과 함께 노숙자들에게 저렴한 주택을 제공하기 위한 ‘해인의 집 수리’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이후 18년간 매년 이 행사에 부부가 직접 나서서 나무를 깎고 집을 짓곤 했다. 로잘린은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기에 나도 작은 목수가 된 셈”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로잘린은 백악관 생활에 대한 그리움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지만 남편에 대한 동경을 참지 못했다. 그녀는 “지미 카터가 하는 모든 일은 미국을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로잘린은 자신에 대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내가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로잘린은 카터와는 생활 습관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녀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는 일어나면 태극권과 명상을 좋아했고, 카터는 수영과 조깅을 좋아했다.
“가끔 카터가 나와 커피를 끓이는 솜씨 때문에 명상이 엉망이 되기도 했다.”
비록 평소에도 티격태격 하지만 부부는 여전히 금슬이 좋았다. 카터는 그 비결을 “매일 밤 잠들기 전 우리는 먼저 소통하고 화해했으며, 삶의 갈등을 다음 날로 가져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카터는 또 “우리는 4명의 자녀와 11명의 손주가 있으며 그들은 일이 생기면 로잘린에게 먼저 전화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로잘린이 더 잘 들어주고 이해심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개탄했다.
카터는 2023년 2월 호스피스를 시작했고, 같은 해 5월 로잘린도 치매를 앓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77년 결혼생활을 함께 한 부부는 인생의 마지막 장을 함께 하게 됐다.
돌아가시기 전 로잘린의 기억은 모호했지만 손자는 “로잘린은 남편이 누구인지 잊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만년에 로잘린은 늘 소파에 함께 앉아있었다.
이들 부부는 77년 동안 매일 서로를 더 사랑하며 살았다. 카터는 많은 부부들이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했다면서 미소를 지으며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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