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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 22일 서거…서울대병원에 빈소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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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1.2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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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 대통령, 말레이시아서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보고받아
19일 고열 증세로 서울대병원 입원…21일부터 상태 악화
최연소 국회의원·국회 첫 제명·14대 대통령 등 역임
김무성 "너무나도 충격적…민주주의 열망 영원할 것"
새정치 "한국민주주의 거목, 온 국민과 함께 애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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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커스뉴스)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서거했다. 사진은 김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국민대 특임교수 페이스북. <사진출처=김현철 국민대 특임교수 페이스북> 2015.11.22 포커스포토 photo@focus.kr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22일 0시 22분 항년 88세로 서거했다. 그는 1993년 2월부터 1998년 2월까지 우리나라 제14대 대통령을 지냈다.

오병희 서울대학교병원장은 이날 오전 2시 김 전 대통령 서거 관련 브리핑을 열고 “김 전 대통령은 과거 반복적인 뇌졸중과 협심증 및 폐렴 등으로 수차례 병원에 입원했다”며 “지난 2013년 4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반신불수를 동반한 중증 뇌졸중과 폐렴으로 입원한 바 있다”고 이 같이 밝혔다.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오전 12시 고열 증세를 보여 병원에 입원했다 21일 오후 상태가 악화돼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19일 입원 당시 김 전 대통령은 고열과 함께 호흡곤란 증세 등을 보였다고 오 원장은 전했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하였으나 상태가 악화돼 숨을 거뒀다. 김 전 대통령의 가족들은 임종을 지켰다.

오 원장은 “김 전 대통령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허약한 전신 상태에 패혈증과 급성 심부전이 겹쳐 일어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혈관 관련 질병을 많이 갖고 있었고 그것들이 악화돼 사망하신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김 전 대통령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으며, 22일 오전 10시부터 개방될 예정이다.

서울대학교 장례식장 측은 이날 오전 2시부터 김 전 대통령의 장례를 위한 조화장식을 시작했다. 오전 4시 10분쯤에는 김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이 빈소에 도착했다.

김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은 문정수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가 들고 빈소로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문 이사는 김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난 1995년 4월부터 1998년 6월까지 부산시장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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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커스뉴스) 22일 오전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되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문정수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오른쪽, 전 부산시장)가 영정사진을 들고 빈소로 들어서고 있다. 2015.11.22 강진형 기자 photo@focus.kr

현관 앞에서는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으며 내부는 장례준비를 위해 통제되고 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오전 2시 10분쯤 빈소를 찾은 것 외에는 현재까지 조문객이나 조화는 아직 빈소에 도착하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관계자는 “현재 영장사진 옆으로 조화를 설치하고 있다”며 “오전 7시부터 정치인 등 조문객이 올 것으로 예상돼 작업을 서두르는 중이다”고 말했다.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현지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보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애도의 뜻을 담은 공식 입장을 같은 날 오전 중 발표할 예정이다.

23일 오전 귀국할 예정인 박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직접 조의를 표할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민주화 운동의 큰 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가슴깊이 애도한다"고 밝혔다.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22일 구두논평을 통해 "민주화운동의 큰 별이자 문민정부 시대를 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가슴 깊이 애도한다"며 "유가족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운동 시절 23일간의 단식투쟁을 하는 등 온 몸을 다해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며 "14대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는 금융실명제 실시와 우리 사회의 개혁을 위해서 강단있게 일했다"고 밝혔다.

김 수석대변인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너무나도 충격적이다. 가슴이 아프다. 민주화 운동의 영웅이 돌아가셨다. 그 분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열정이 영원할 것이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한국 민주주의의 거목,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온 국민과 함께 애도한다"는 뜻을 밝혔다.

김성수 새정치연합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일생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한국 민주주의의 거목으로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큰 지도자였다"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온 국민과 함께 애도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 독재 시절 정권에 의해 국회의원직을 제명당한 최초의 국회의원"이라며 "그의 제명은 부마항쟁으로 이어져 유신의 종말을 고하는 도화선이 됐다"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당시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한 고인의 말은 독재 타도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민중의 염원을 담은 시대적 명언으로 우리는 기억한다"며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전개하는 등 고(故)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으로 큰 발자취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이어 "1992년 대통령 선거에 당선, 32년 간의 권위주의 통치를 종식시키고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김 전 대통령은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도입, 공직자 재산 공개 등 과감한 개혁을 단행해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며 "특히 광주 민주 항쟁을 민주화 운동으로 승화시키고 신군부에게 광주 유혈 진압의 죄를 물은 것은 우리의 불행했던 과거사를 정리하는 역사적 전기를 마련한 것"이라고 치하했다.

김 대변인은 "3당 합당,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등 김 전 대통령에게 지워질 정치적 책임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민주화에 대한 고인의 업적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대통령은 1927년 12월 20일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에서 아버지 김홍조씨와 어머니 박부련씨 사이에서 1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녕, 호는 거산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51년 3월 손명순 여사와 결혼해 슬하에 2남(은철·현철) 3녀(혜영·혜경·혜숙)를 뒀다.

6·25 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5월 장택상(1893~1969) 전 국무총리의 국회의원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했던 김 전 대통령은 1951년 장 전 총리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장 전 총리가 1951년 5월 국무총리에 임명되자 그는 인사담당 비서관에 임명됐다.

이후 1954년 5월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남 거제에서 출마해 만 26세의 나이로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는 이후 5·6·7·8·9·10·13·14대 국회의원 등 9선을 지냈다.

김 전 대통령은 정치생활을 하면서 여러 중요한 직책을 역임했다.

1963년 민주정의당 대변인을 시작으로 1965년 민중당 원내총무, 1967년 신민당 원내총무(5년간 5선, 최다선 원내총무)등을 맡았고, 1970년에는 신민당의 대통령후보 지명대회에 출마를 하기도 했다. 당시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한 1972년 10월 후에는 1974년·1979년 신민당 총재를 맡아 야당의 지도자 역할을 했다. 1979년에는 박정희 정권에 의해 최초로 국회의원 직에서 제명되기도 했다.

이후 전두환 정권 하에서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의 공동의장과 1985년 신한국민주당의 고문, 1987년·1988년에는 통일민주당의 총재를 맡았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에는 직선제로 실시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시민들의 정권교체 열망에도 불구하고 김영삼·김대중 두 후보는 후보 단일화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노태우 전 대통령을 당선되는 단초를 제공해 시민들의 원망을 사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14대 대통령에서 김대중 후보를 누르며 당선돼 마침내 대통령의 꿈을 이뤘다.

1998년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이후에는 2004년 북한민주화동맹 명예위원장 등을 맡았다.

김 전 대통령의 주요 상훈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무궁화대훈장(1993) △해리만 민주주의상(1993) △마틴 루터 킹 비폭력 인권평화상(1995) △세계지도자상(1995) △미국 루즈벨트 국제장애인상(1996)

김 전 대통령의 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기댈 언덕은 없다(1964) △정치는 길고 정권은 짧다(1967) △40대 기수론(1971) △나와 내 조국의 진실(1982) △김영삼 회고록-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2000)

포커스뉴스 박요돈 기자 smarf0417@focus.kr 김도형 기자 namu@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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