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지명과 연변지명②광지바위부터 광려산까지
■ 허성운
지난세기 60년대 전까지만 해도 광지바위는 장대한 기상을 품고 연길현 동성공사 덕신공사 석정공사의 경계지대에 우뚝 솟아있었다. 천년 풍상을 견디며 버티고 서있던 광지바위가 동란의 세월에 접어들면서 꺼져가는 촛불처럼 힘없는 민초들의 슬픈 삶처럼 비참하게 쓰러져 갔다. 60년대 초에 연길현 소재지였던 용정진에서 건축용 기초 돌을 전부 광지바위 돌을 캐서 날라 들이였는데 1965년에 이르러 이미 바위 주변은 커다란 채석장으로 변하여 갔다. 바위를 폭파하는 발파소리, 망치와 징으로 돌 까는 소리로 광지바위는 걷잡을 없는 혼돈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어 갔다. 천년동안 쌓아 온 광지바위 기운이 꺾여서 일까 과거에 웃광지바위마을 아래광지바위마을 그리고 인근 개척기마을 사람들이 어울러 삶의 터전을 가꾸어 오던 동네,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들어 앉아 지나가는 길손들의 발길을 붙잡던 정경도 그때로부터 차츰 그 자취를 감추어갔다.
먼 전설에 의하면 옛날 장재비라는 인색한 부자가 이곳에 살았는데 어느 날 스님이 시주를 청하니 장재비는 소똥 한 바가지 퍼서 스님의 몸에다 부어 버렸다. 스님이 말없이 돌아가려 하자 장재비의 며느리가 몰래 쌀을 시주하니 스님은 며느리에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며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당부하였다. 며느리는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아이를 등에 업고 집을 나섰는데, 이제 막 산 정상에 올라 설 무렵 별안간 하늘에서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너무 놀라 스님의 말을 잊고 뒤를 돌아보니 그가 살던 집은 땅속으로 함몰되고 그 자리는 커다란 늪으로 변해가고 있었으며 그 사이 광주리를 인 자신도 아기와 함께 바위 돌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이후 사람들은 이곳 커다랗게 광주리를 이고 아기 업은 형상을 하고 서 있는 바위를 광지 바위라고 불렸다고 전하고 있다.
전라남도 장흥군 억불산 며느리바위는 멀리에서 바라만 보아도 신통히 중국 연변 광지바위와 꼭 닮은 형상이다. 며느리바위도 광지바위와 같은 전설을 지니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지명설화로서 이 광주리 바위 설화는 장자 못 설화와 함께 한반도 전역에 널리 퍼져있다. 함경북도 어랑군 장연호에 있는 광주리바위 ,강원도 판교군 광주리바위골, 평안북도 강계군 광지암산, 평안북도 영변군 광주리 바위 고개 ,평안남도 북창군 광주리 바위산 등이 있다.
이제 우리는 광지바위 지명 풀이에서 하나의 관건적인 문제점과 부딪치게 된다. 즉 광주리바위 지명에서 광주리가 지니고 있는 실질적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리고 광지바위 전설이 불교설화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광주리와 광지와의 연관성을 밝혀내는 것이다.
불교의 발상지 인도에서는 일찍 부처님의 말씀을 문자로 기록 할 때 패엽(貝葉)이라는 나뭇잎에 부처님 말씀을 새겨 보관하게 되었다, 우기 철이 오면 습기가 많아 부식이 잘 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광주리에 경전을 따로 담아 보관하게 된 데서 대장경 大藏经 인 삼장三藏(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을 ‘세 개의 광주리(筐)’라는 의미로 풀이한다.
몽골어로 대장경大藏经을 ganzuur ,만주어로 ganjur로 표기되고 있는데 어원은 티베트 불교 최고의 성서로 꼽히는 깐주얼(甘珠尔)에서 유래 되었다. 그리고 불교와 관련이 깊은 ‘광지’의 어원적 의미는 단지 언어학적인 추론이 아니라 바위 돌에다 불경을 새기는 티베트불교 문화와도 부합 되여 있다. 티베트의 파스타 승려가 쿠빌라이의 스승이 되면서, 원나라에 티베트 불교가 받아들여졌고 원나라 간섭시기에 티베트불교가 고려에 유입되었다.
함경북도 경원군의 옛 지명이 광주(匡州)로 적혀 있는데 이 지역에서 발견된 12세기 경원군여진서비慶源女眞字碑가 불교 사찰을 세운 이의 공덕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비석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보면 광주라는 지명은 불교경전을 뜻하는 광주리 의미로도 추정할 수 있다. 조선 세종 때부터 육진을 설치하고 조선인 농부들을 이 지역으로 이주시켰으며, 그 결과 이들은 그 지역의 여진족과 섞이게 되었다. 이들 중 대부분 사람들은 관청에서 찾을 수 없는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어 갔으며 이 지역 여진족과 동화하는 과정에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1914년 이 지역에 대한 조사에서 일본 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는 부령의 북쪽에서 발견된 재가승이라고 불리는 집단에 주목했다. 그들은 깊은 계곡, 산속의 움집에서 살았는데 움집은 사원의 성격을 담고 있어서, 대부분의 재가승들은 경전을 읽을 줄도 몰랐고 불상 앞에서 기도를 했으며 죽은 자들을 화장하고 姓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연변 광지바위 주변 가름산 절당께, 장남샘터 암자, 중평촌 사찰유지 그리고 이 지방 대부분 사람들 적관(籍貫)이 함경북도 경원군과 경흥군으로 나오는 자료를 접하고 보면 광지바위와 경원군 옛 지명 광주(匡州) 두 지명사이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이 모든 것은 지명연구 시야를 넓혀주고 있는 것은 의심할 바 없으나 정확한 사료가 부족하니 현재로서는 완벽하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광주리바위 지명은 연변과 한반도에 걸쳐 널리 분포 되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연변에서는 광지바위라 부르고 북한에서는 광주리바위 또는 광지바위라고 부르며 한국에서는 며느리바위 부처바위 감투바위와 같이 지명이 변종 되여 나타나고 있으나 전해 내려오는 설화는 유사하다. 중국 강서성의 불교 명산 려산(옛 지명은 匡廬山) 지명과 동일한 경상남도 창원 광려산(匡廬山) 지명, 충청남도 예산군 후사리에 자리 잡은 광주리봉 지명도 불교지명으로 추정된다. 절이 있어 뒷절 또는 후사라 하여 후사리 지명이 생겨났다는 기록을 보면 광주리봉도 역시 불교문화와 연관 있는 지명임을 알 수 있다. 허나 지명풀이에서 유사한 설화를 찾아 볼 수 없다. 이밖에 서울 구로구 광주리물 혹은 광지廣池 라는 지명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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