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여유가 있어서만이 남을 돕는 것이 아니다”란 순자의 좌우명은 학교의 과외보도원생활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학교의 물통 밑창이 구멍나면 집의 물통을 가져가고 비자루, 쓰레기통, 물걸레와 심지어 학교벽보란을 만들 때 쓰이는 널판자까지도 집의 것을 가져가군 했다. 그 중 비자루는 시골에서 친정아버지가 만들어 해마다 몇개씩 보내준 것인데 그것을 순자가 다시 학교로 가져갔던 것이었다.
한편 순자가 이렇게 할 수 있는데는 남편 김용환의 이해와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만큼 남편 용환이는 순자가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그대로 믿고 밀어줄 위인이었다. 그것은 용환이한테 있어서 순자는 항상 “은인”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교원직업을 단연히 포기하고 자기와의 결혼을 선택한 여인 ㅡ 아내가 교원직업을 버리고 자기한테로 시집온 뒤 어떤 대가를 치렀다는 것은 남편은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안해가 중앙소학교와 신흥소학교의 과외보도원 사업을 맡겠다고 할 때 웬간한 남정들같으면 그것을 극력 반대하면서 “집에서 애들이나 잘 키우라”고 호령할만도 했으련만 용환이는 오히려 적극 지지해나섰다.
건국전의 중학교를 졸업한 순자의 지식과 재능이 그대로 썩는 것이 아까워서라고 할까? 아니면 그토록 사랑하던 교원의 꿈을 과외보도원이라는 무보수근무에 의해서라도 펼쳐보게 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여하튼 김용환은 아내 순자의 과외보도원 사업을 적극 밀어주는 것을 아주 마땅한 일로 간주하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과외보도원인 순자를 자주 불렀다. 반급에 그 어떤 문제라도 생기면 순자가 가서 곧잘 해결해주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순자의 말이 설득력이 강해서인지 학생들은 그의 말을 곧잘 듣군 했다. 학생들을 교양함에 있어서 순자는 절대 강압적이 아니었다. 실제 행동으로 학생들을 감화시켰다. 예하면 반급의 유리창을 닦을 일이라도 있으면 언제 한번 어느 어느 학생이 창문턱에 올라가서 닦으라고 시킨 것이 아니라 번마다 솔선수범하군 했다. 특히 순자가 신흥소학교의 과외보도원으로 된 뒤 수개월이 지나자 둘째 아들 경남이가 생겼는데 아이를 업고 학교활동에 참가할 때가 자주 있었다. 어린 경남이를 업고 바닦을 쓸고 유리창문을 닦군 하는 순자를 보노라면 교원은 물론 학생들 모두가 탄복해마지 않았다.
“순자선생님이 있으면 저는 모든 것이 든든해요. 어쩌면 큰 소리 한번 치지 않고 학생들이 잘 따라주게 하는지요? … 전 매일마다 순자선생님이 몰래 기다려지게 되는군요.”
이는 당시 중앙소학교와 신흥소학교 이 두 학교 거의 모든 담임교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었다.
한편 당시 순자는 큰 아들 영남이네 반급의 담임교원이 병으로 교단에 오를 수 없게 되자 학교지도부의 허락을 맡고 몇차례 교단에 오르기도 했다. 결과 교수안을 작성한 실력이나 교수하는 능력이 비범하여 학교의 모든 교직원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어서 교원들과 교장선생님 등은 순자가 건국전에 용정의 명신여자중학교를 졸업한 수재라는 것을 알게 되자 일반 “교원이 턱없이 부족한 요즘 세월에 저런 분이 우리 학교 교원으로 돼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하면서 몹시 아쉬워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그렇게도 교원의 꿈을 갖고 있으면서도 교원이 되어보려고 이곳 저곳 해당부문을 찾아다니며 노력해보지 않은 순자였다. 학력과 능력에 거기에 남편 등이 해당부문에 줄을 놓아 손을 써보면 불가능한 것도 아닐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순자와 남편 김용환의 처사 ㅡ 이는 지금까지도 미스테리로 남아있을뿐이다. (다음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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