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기] 인생스케치
■ 이진숙
새의 족속들을 보면 거개가 수컷이 암컷보다 더 멋지게 생겼다 한다. 붉은 볏을 머리에 이고 갈구리발에 머리를 잔득 쳐들고 멋지게 휘여진 꼬리를 흔들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씩씩하게 걷는 수탉의 도고한 모습은 실로 오만한 왕자를 방불케 한다.
“문, 무, 용, 인, 신(文,武,勇,仁,信)” 5덕을 갖췄다는 수탉은 12띠 중에서 유일하게 날수 있는 동물이다. 라이벌과 맞서 용감하게 싸워 “용덕”이라는데 닭띠생인 내가 라이벌로 보였는지 어릴 때에 죽도록 혼난 적이 있다. 지금도 장거리나 농촌 마을에 갔다가 덩치가 큰 수탉을 보면 속이 한줌만 해서 슬그머니 피한다.
대약진으로 한창 들끓던 그 연대- 바로 1958년에 나는 초중에 붙었다. 학교들마다 근공검학이랍시고 별의별 일들을 다 했다. 우리 학급에서는 100여마리가 잘되는 오리와 닭을 키웠다. 수탉 한마리가 적어도 10여마리의 암탉을 거느린다더니 그 닭무리속에 얼마 안되는 수탉들이지만 우리 간담을 서늘케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 때 우리는 둘씩 한개조가 되어 번갈아 당번을 했다. 우리의 임무는 아침 일찍 밥도 먹지 못한채 닭과 오리를 밖으로 내몰고 우리청소를 한 다음 배추따위를 짓쪼아 물에 퍼지운 두병(콩찌꺼기)에 섞어 아침식사를 시키는 것, 그리고 업간체조시간, 점심시간, 하학후에 시간을 맞춰 모이를 주고 나중에 닭과 오리를 잠자리에 몰아넣으면 당번 끝이다.
어느 당번날 아침, 나는 대야에 모이를 담아들고 허리를 굽혀 좁고 기다란 나무구유에다 손으로 모이를 쭉 널어놓고 있었다. 내가 머리를 드는 순간, 글쎄 수탉이란 놈이 새노랗고 똥그란 눈을 부릅뜨고 나의 팔을 탁 쫏는 것이었다. “어구-엄마”
나는 숨이 떨어지는 소리를 질렀다. 긴박한 순간에 여자애들은 왜 남자애들과 달리 하나같이 엄마를 부르는지 모르겠다. 나는 모이대야를 내 동댕이치고 요리조리 수탉을 피했다. 웬걸 , 그 놈은 한사코 따라와 길길이 뛰면서 되는대로 나를 쪼아 놓았다. 키가 작은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소리소리 지르며 울안에서 뱅뱅 돌아쳤다. 그럴수록 사납게 달려드는 수탉이다. 끝내는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때 안에서 청소하던 당번애가 달려나와 나무꼬쟁이를 휘둘러서야 짐승과 사람전쟁은 끝났다.
지금 같으면 혈압이 터졌을거다. 제길할, 내가 닭이라고 착각했나 봐, 사람도 하루에 한번씩은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더니 요 놈의 수탉도 정신상태가 빵점인 모양이다.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쓱 닦고는 나무꼬챙이를 들고 “복수”에 나섰다. 이게 뭐냐? 이번엔 딴놈 이 등 뒤에서 “꼬-꼬-꼬”하면서 야단을 부린다.
와-정말 개판이다. 그날 저녁 나는 자면서도 소리치고 놀라고 식은 땀을 흘리고 했다.
정말이지 닭우리에 “새 친구”가 오면 밤새 쪼아서 피투성이로 만든다는 그 “닭의 텃세”도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도 혹시 덩치가 큰 수탉을 보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런데 늙으막에 또 재수없는 일이 생겼다. 어느 날 오후, 외손자를 데리고 함께 교문을 나섰다. 금방 골목길에 꺾어 들었는데 갑자기 난데없는 수탉 한마리가 우쭐우쭐 걸어오고 있었다. 옛날 나를 혼내던 그 수탉과 아주 흡사한 놈이다.(에구,북경에두 수탉이 활개치며 다니다니…)
나는 한 손에 손자의 책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론 애 손목을 잡고 다짜고짜 뛰었다.
“얘, 닭이 너를 문다.”
골목길을 벗어나자 나는 헐떡이며 말했다. 그러자 손자 놈은 나를 쳐다 보더니 “닭이 어떻게 물어, 쫏겠지”라며 비양댄다. 사실 난 그때 “쫏는다”는 말을 한어로 할줄 몰랐기 때문이다.
해마다 딸집에 가서 몇 달씩 집안일을 도와주면서 번번이 발음이 틀리고 음조가 틀려 수없이 애하테 몰렸는데 오늘 또 당한 셈이다.
(후-쬐꼬만 애한테까지 늘 훈시받다니…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하긴 한족사위와 대화를 잘 나눌 수 없는 것이 내게는 큰 고민이고 스트레스다. 밥상에서 이야기 꽃을 피울 때도 반벙어리상을 해야 했고 사위와 말을 건네기도 조심스럽다.
한족말을 잘 배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되는 순감이 많다. 내게는 큰 후회였다. 정말이지 한어말로 제생각도 쨩 소리나게 표달못하니 이보다 더한 바보가 어디에 있을소냐?!
누군가 인생은 후회의 누적이라 했다. 틀리고 후회하고 하지 않아 후회하고…
먼저 미련하게 처사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크고 작은 모든것, 미련은 먼저 나고 슬기는 나중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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