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성운(칼럼니스트)
지금까지 많은 방언학자들은 표준어 할아버지에 대응되는 함경도방언을아바이로만 거론하여 왔다. 함경도에서의 아바이(abai)는 부모의 아버지와 같은 항렬에 있는 남자들을 이르는 말에 반해 부모의 아버지에만 한정된 호칭인 커라바이(khabai)라는 토박이말이 널리 사용되어 왔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아바이는 역사가 깊은 단어이다. 함경도에서는 할아버지를 의미하나 커라바이 맏아바이 아즈바이 오라바이 등 친족어 계열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 모두가 연장자 의미가 내포되어 경상북도와 평안도 일부에서 아버지를 아바이로 부르는 호칭과도 일맥상통된다. 아바이(abai)이 방언은 만주어에서 하늘을 뜻하는 아바카(abka) 그리고 북방언어계통에서 신성한 사람 하느님을 뜻하는 안파견 아바칸과 하나의 맥락에서 짚어볼 수 있다. 실제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두만강과 압록강 유역에서 인명으로도 불리어왔다.
고유어의 화석 같은 존재인 아바이 단어는 생물유기체와도 같은 진화를 거듭하며 함경도 방언에서 커라바이 제주도 방언에서 할아방 강원도와 경상도방언에서 할배로 나타나고 있다. 몽골과 흉노 중앙아세아에서 지도자를 지칭할 때에는 한 (han) 또는 칸(khan)으로 부르며 “ㅎ”발음과 “ㅋ” 발음이 상호전환 되는 규칙을 감안해 보면 사실 함경도방언 커라바이와 타지방의 할아방 할배 등 방언들은 쌍둥이처럼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 여러 줄기로 노출되어 있는 모양새이다.
예전에 늘 쓰고 들어왔던 “커라바이”라는 말은 오늘날에 와서 “할아버지”라는 표준어에 밀리여 아주 제한된 세대에서 사용되고 있어 이제는 영어 일어 러시아어를 술술 배워내는 우리 아래 세대들에게 있어서는 선인들이 써왔던 이런 모어가 울고 들어가서 울고 나오는 외래어로 전락되고 있다. 연변과 함경도 그리고 러시아 연해주 넓은 땅에서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의 뼛속깊이 뿌리내린 함경도방언은 조상들이 살고 간 역사의 흔적으로서 마치 앙금처럼 숱한 역사가 누적된 우리문화유산이나 이제 이런 말들은 바야흐로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오늘날에 와서도 일부 방언학자들은 연변과 함경도지역에서 남편을 나그네라고 부르는 언어현상을 마치 바깥세상과 동떨어진 외딴 섬나라 미개인의 언어로 풀이하고 있지만 그 어원을 깊이 따지고 보면 중세 몽골어에서는 남편 혹은 친구 의미를 가진 너헤nehers라는 어휘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함경도 방언 올찌세미를 올케의 그릇된 표현으로 섣불리 해석하고 있지만 여진어와 만주어에서 올케는 단수 형태를 지니고 올찌세미는 복수 형태를 지닌다. 함경도의 안까이는 표준어 아내라는 말과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쌍둥이 단어이다. 여러 쪽으로 갈라진 구리거울이 하나로 이어지며 눈부신 빛을 뿜어내는 옛날이야기처럼 지역마다 스며있는 방언가치를 깊이 발굴하고 동질성과 정체성을 확립하여야 만이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언어의 장벽이 허물어 질수 있는 것이다.
우리언어의 가시밭길을 더듬어보면 근대에 들어와서 허다한 문명은 남에서 북으로 들어왔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강력한 북방문명은 두만강과 압록강을 거쳐 끊임없이 남으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부르기 좋고 기억하기 쉬운 개성이 있는 방언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우리 방언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말을 마음속에 새길 때 장기간 밀폐된 언어의 창고에서 우리 방언도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연변과 함경도 방언은 우리 과거 역사를 풀어내는 블랙박스이며 또 미래를 헤쳐 나가는 내비게이션이기도하다.
필자/허성운(칼럼니스트)
ⓒ 인터내셔널포커스 & www.dspdaily.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
‘미국의 소리’ 정치적 소동…비용은 납세자 몫
▲ VOA의 업무 중단과 재건 논란을 표현한 방송 스튜디오 이미지. 실제 VOA 시설 사진이 아닌 AI 생성 이미지. [인터내셔널포커스] 낭비를 줄이겠다며 축소했던 ‘미국의 소리’(VOA)가 업무 복구에 나섰다. 직원들을 유급 행정휴가에 보내고 계약을 취소한 뒤, 다시 사... -
[수필] 세월 저편에 두고 온 열두 살의 고향
고향집 앞에는 해탕나무와 살구나무가 있었고, 뒤뜰에는 앵두나무와 자두나무가 자랐다. 수십 년이 지났건만 어느 자리에 무슨 나무가 있었는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열두 살에 떠나온 집인데도 그렇다. 내 고향 중평촌은 중국 연변 안도현 석문진에서 약 6km 떨어진 작은 농촌마을이다. 산 ... -
중국은 왜 아직도 축구를 하는가
⬤ 안대주 축구에서 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강팀도 무너지고 약팀도 이긴다. 문제는 한 번의 패배가 아니다. 비슷한 실패가 수십 년째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남자축구가 그렇다. 외국인 명장을 불렀고 프로리그에 거액을 쏟아부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중국 무대를 밟았고 귀화선수에게 ... -
영화가 마음에 안 들면 중국부터 찾는가
영화 ‘암살자(들)’ 때문에 시끄럽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삼았으니 논란이 생길 만하다. 실제 사건을 영화가 어디까지 바꿔도 되는지, 영화적 상상력이라 해도 역사를 너무 비튼 건 아닌지 따져볼 수 있다. 불편하게 본 관객이 비판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논쟁을 따라가다 보면 엉뚱한... -
국가 비밀까지 공개하라는 정치
북한군 포로 2명이 한국에 왔다. 전쟁터에서 붙잡힌 북한군이 한국행을 선택했고,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협의를 거쳐 송환됐다. 이 사실을 먼저 공개한 사람은 한국 정부가 아니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었다. 유엔총회 연설에서 포로 2명을 한국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 -
외국인은 일만 하고 사라져라?…한국 사회의 이상한 계산법
한국 사회를 지켜보노라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 외국인을 대하는 일부 사람들의 태도다. 농촌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공장에서는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식당에서는 외국인 직원이 그만두면 사장님 얼굴부터 어두워진다. 건설현장도 외국인 노동자의 손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