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훈 | 칼럼니스트
2002년 6월, 중국 축구는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결과는 3전 전패, 무득점, 9실점. 그러나 당시 그 실패는 성장의 씨앗으로 여겨졌다. “지금은 아프지만, 언젠가는 우리도 해낼 것”이라는 기대가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23년이 지난 지금, 그 기대는 더 이상 희망이라 부르기 어렵다. 세계 축구는 전술의 진화와 유소년 시스템 경쟁, 리그 품질의 혁신으로 꾸준히 진화해왔지만, 중국 축구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실패는 반복되었고, 그 반복은 개선이 아닌 체념과 외면으로 이어졌다.
이쯤 되면 묻고 싶다. 중국은 왜 축구를 계속해야 하는가? 아니, 더 근본적으로는 지금의 방식대로 축구를 계속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경쟁 없는 리그, 훈련 대신 조작
중국 축구의 몰락은 단순한 성적 저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스포츠 시스템 전반이 병들었다는 신호이자, 하나의 국가가 공공성을 지닌 스포츠를 어떻게 통제적 구조로 망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본에 가깝다.
최근 벌어진 사건은 이 구조적 문제를 다시금 드러냈다. AFC U-20 대회에서 중국 대표팀 분석관이 상대 팀 훈련을 불법 촬영한 사실이 적발되면서, 아시아축구연맹은 중국축구협회에 중징계를 내렸다. 이른바 ‘도감 스캔들’이다. 경기를 이기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기본적인 윤리와 규범조차 무시한 채 목적만을 좇은 행위다. 국가대표팀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 이 일은, 그저 한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다.
문제는 그 배후다. ‘성적 압박’이라는 이름으로 구조화된 비상식적 운영, 지도자 선발의 불투명성, 그리고 실적 중심의 보고 문화는 결국 불법과 탈선을 부추기기 마련이다. 기술과 철학 없이 승리만을 추구하는 국가적 강박은 축구를 축구답게 만드는 요소들을 모조리 훼손한다.
중국 슈퍼리그는 수년간 막대한 돈을 들여 외국인 스타를 영입하며 눈길을 끌었지만, 국내 선수들의 성장에는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 부실한 리그 운영, 구단 간 경쟁이 실종된 구조, 그리고 팬 문화의 부재 속에서 중국 축구는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유사 리그’로 전락했다.
실패의 원인은 시스템, 그러나 책임은 선수 개인에게
중국 축구를 둘러싼 또 다른 비극은 책임 전가의 방식이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가장 먼저 비난받는 대상은 선수들이다. “정신력이 부족하다”, “애국심이 없다”, “배가 불렀다”는 식의 비판이 줄을 잇는다. 그러나 정작 시스템을 설계한 관리자들, 현장을 교란한 관료주의, 부실한 리그 운영은 책임에서 자유롭다.
축구는 국가적 명예의 전장이라 불릴 만큼 정치적 상징성을 갖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사회적인 스포츠이기도 하다. 축구는 구조를 배신하지 않는다. 지금 중국 축구가 무너진 것은 선수 개인의 태도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상업, 통제와 위신이 복잡하게 얽힌 구조적 실패 때문이다.
‘축구 굴기’라는 이름의 허상
2015년,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 축구의 부흥을 선언하며 ‘축구 굴기’를 국가 어젠다로 제시했다. 2050년까지 축구 강국이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 아래 수십 개의 축구학교가 생겼고, 교육과 훈련 시스템 개편이 시작됐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그 계획은 실질적 성과보다 보여주기식 행정과 실적 부풀리기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지도자 양성과 유소년 훈련은 질보다 양에 치중했고, ‘보고서용 개혁’이 반복됐다. 아이들은 공을 차기보다 ‘꿈을 말하라’는 식의 구호 속에 방치되었고, 축구는 점차 ‘국가적 홍보 수단’으로 기능하며 본래의 스포츠적 자율성을 잃었다.
그럼에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이 축구를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국가 운영 프로젝트’처럼 축구를 다룰 바에야, 차라리 멈춰 서는 게 낫다는 말이다. 축구는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길러내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말한 “축구 굴기”는 명령으로 강요될 수 없다.
그럼에도 중국은 여전히 축구를 한다. 계속 실패하고, 계속 부끄러움을 사고, 계속해서 체면만을 중시한다. 이쯤 되면 중국이 축구를 계속하는 진짜 이유는 축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국가가 보여주고 싶은 환상 때문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축구는 90분 안에 승패가 갈리는 스포츠이지만, 한 나라의 축구 수준은 수십 년의 사회적 투자와 문화적 기반 위에 성립된다. 지금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축구 국가’가 된 이유는, 공을 못 차서가 아니라 그 공에 담긴 정신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멈추고 되돌아봐야 한다. 축구를 왜 시작했는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길로 가고 있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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