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요즘, 옛 북경의 홍등가로 불렸던 <8대 골목>이 매체를 통해 밝혀지면서 사람들의 <식후 일담>으로 되고 있다.
옛 북경의 <8대 골목(八大胡同)>은 청국 청함풍(清咸丰) 시기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광서(光绪) 시기에 와서 완성되었다.
광서시기에 와서 옛 북경의 기방(妓院)규모는 기본상 완정하게 형성되었으며 정부의 허가로 기방들은 4가지 유형에 따라 각각 문패를 내걸었다. 상류 급 기방은 <당(堂)> 혹은 <큰 지방(大地方)>으로 불렀으며 <청음소방(清音小班)>이란 명칭도 있었다. 이 중 <당>과 <큰 지방>이란 명칭은 명나라 시기부터 내려오던 것이었고 <청음소방>은 남방 상류기방의 이름을 따내온 것이었다.

다음 2류에 속하는 기방은 <당>, <큰 지방> 또는 <청음소방>보다 한 차원 낮은 2등 기방으로 <중간 지방>으로 불렸다가 후에는 <찻집>으로 개명되었으며 3류의 3등 기방은 <하처(下处)>로 불렸고 4류의 4등 기방은 <작은 지방>으로 명명되군 했다.
당시 옛 북경의 명기였던 색금화(赛金花)의 설법에 따르면 1류 기방의 기녀들은 반드시 <누회(楼会)>, <사범(思凡)>, <장정(长亭)> 혹은 <화접(化蝶)> 등 유형의 옛 곡조 한 곡씩 뽑아 부를 줄 알아야 했으며 2류 기방의 기녀들은 한 차원 낮아 곡조를 뽑을 필요는 없지만 차 문화만은 잘 장악해야 했다. 그리고 3류 기방과 4류의 기방은 <화연관(花烟馆)> 혹은 <야계처(野鸡处)>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을 종합해보면 기녀와 기방들을 급별로 나누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또 정부측의 입장으로 보면 관리 및 세금표준을 정함에 있어서도 유리한 등 면이 있고 표객(嫖客)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돈지갑 사정과 신분에 따라 기녀를 선택할 수도 있으며 그 외 기녀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몸값을 나타내는 장소이기도 했다.
물론 1등 기원은 강조되는 것이 많았다. 기방 대문은 일반적으로 정교한 벽돌공예로 장식되어야 하고 이름도 편액으로 되어야 했으며 문 위에는 기녀들의 <화명(花名)>이 적힌 게시판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전등이 없었을 시기에는 문 앞을 석유등 혹은 램프등 같은 것으로 밝혀야 했지만 광서 32년(1906년) 전등이 생겨서부터는 일률로 화려한 등불로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음 1등기방은 매 기녀마다 독방이 있었고 그 독방의 시설도 매우 기녀의 신분에 맞게 꾸며졌으며 최초에는 붉은 나무 침대였다가 후에는 시몬스 침대가 주류를 이루었는가 하면 금동으로 된 침대와 조각으로 된 침대가 있는 기방도 있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이런 기녀들의 방은 부잣집 규슈들이나 향수할 수 있는 침실을 방불케 하는바 방안의 분위기 또한 낭만적이어서 들어서자 인차 바지부터 벗는 하류 급 기방과는 근본적인 대조를 이룬다는 것이 특점이었다.

일류 기방의 기녀들은 모두 <엄마>가 있다. 이 <엄마>는 전문 그녀들한테 밥을 제공하는 여인으로서 보모와 비슷하며 나이는 30-40대에 이르는 중년 여성들로서 이전엔 기녀로 있다가 연령이 많아지자 <2선>으로 물러난 여인들이며 기원의 규칙을 잘 알기에 눈치가 빠르고 손님과 기녀들의 비위를 잘 맞춘다고 한다. 이들 중 부분적 <엄마>들은 여전히 그제 날의 자태를 유지, 글짓기와 한 곡조 뽑기 및 서예와 비파연주 등에 능하여 하류 등급 기원의 기녀들과는 비길 바도 못된다. 그리고 2등 기방으로 불리는 <찻집(茶室)> 역시 어떤 기방은 근근히 작은 4합원(小四合院)으로 형성되었지만 어떤 기방은 서양풍미가 농후한 현대식 건물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단순한 급별로는 결코 무시할 바가 못 되는 곳이었다.
광서연간의 통계에 따르면 북경 <8대 골목>에는 도합 373개의 기방이 있었으며 이 중 일등기방과 이등기방이 178개 점으로 근 절반의 비율을 차지, 적지 않은 수자로 알려지고 있다.
북경 <8대 골목>의 기녀수자가 늘어남에 따라 무언중 이곳은 인기골목으로 거듭났으며 이 곳의 번영도 가속화되기 마련이었다.
한편 북경 <8대 골목>에서 처음으로 자리를 마련한 남방의 기녀의 화명은 색금화(赛金花)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남방에서 온 기녀 소란(素兰)은 북경에서 유명기녀로 수많은 관신자제(官宦子弟)들이 그녀한테로 가서 즐겼지만 기실 소란보다 몇 년 먼저 북경에서
<남방 팀>을 선보인 것은 색금화였다고 소란 역시 인정한 바가 있었다고 한다.
전하는데 따르면 당시 색금화가 북경에서 첫 선을 보일 당시 그녀를 수용한 기방에서는 동으로 만든 간판에 <남 팀 • 금화원(南班·金花院)>이란 글을 새겨갖고 내걸었으며, 그 날로부터 이 기방은 색금화를 찾는 표객들로 발길이 끊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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