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4월, 당시 북만성위의 지시로 배경천은 230여명의 파견대를 이끌고 남하, 남만의 항일유격대와 연계를 취하여 홍군의 북상항일에 배합하기로 하였다. 헌데 부대가 의란현 경내의 <서호경(西湖景)> 산구에서 일본군과 위 만주군 1000여명에게 포위되었다. 10시간의 치열한 격전을 거쳐 배경천 부대는 적군 120여명을 섬멸하였으나 탄약과 식량이 떨어지면서 사상자를 많이 냈으며 배경천도 최후의 1명으로 장열하게 희생되었다.
1937년 7월, 중공 북만임시성위 확대회의가 탕원 서쪽으로 이춘(伊春)과의 경계지인 모아산(帽儿山)에 있는 6군 피복공장에서 거행, 조상지, 풍중운, 장란생(张兰生)과 이조린 등이 참가했고 길동성위 대표로 주보중이 초청에 의해 회의에 출석했으며 3군 선전과장 우보합(于保合)이 회의 기록을 맡았다. 이번 회의는 각 군의 행동을 제정하는 중요한 회의로서 회의에서는 원 항일연군의 독립사를 제11군으로 확충하는 결의안도 결정, 군장에 기치중(祁致中)이었고 부군장에 장갑주(张甲州)였으며 정위에 김정국으로 선출되었다.
이번 회의 기간동안 6군 피복공장의 일군들이 후근사업을 맡았으며 이재덕 역시 수장들한테 물을 끓여주고 의복을 씻어주는 등으로 바쁘게 움직이었다.
어느 한번 휴회기간(休会期间)이 되자 누군가 “우리 내에 영준한 총각과 이쁘장한 처녀들이 많은데 우리가 이들을 도와 백년가약을 맺게 하는 것이 좋겠구만”하고 제의하자 모두들 그것이 좋겠다고 환호했다. 이어 조상지가 총각인 우보합을 보고 “자넨 요구표준이 높을 것 같은데 어느 처녀한테 눈길이 가는거요?”라고 묻자 우보함은 곧이곧대로“이재덕 동지가 아주 듬직해보이는데 그가 원하는지 모르겠군요” 라고 했다.
우보함의 말에 조상지 역시 동감을 표했다. 헌데 배성춘이 허락하겠는가 하는 것이 문제였으며 거기에 이재덕과 약혼했던 배경천이 1년 전에 희생되었기에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는데도 일정한 애로사항이 있기 마련이었다. 결국 조상지는 풍중운을 시켜 배성춘을 설복하고 다시 배성춘이 여자측의 매파로 이재덕을 설복하기로 했다.
그 뒤, 배성춘이 이재덕을 찾아 결혼을 권하자 그녀의 태도는 견결했다.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을테예요. 전 그냥 언니가 있으면 족하며 영원히 언니만을 따를테예요.”
이에 배성춘은 내심성이 있게 이재덕을 설복했다.
“현재 부대에는 남성동지들이 많고 모두 산에서 싸우다 보니 그들한테는 여성동지들의 따사로움이 필요하고, 여성동지들 또한 혼자서 생활하자면 불편할 때가 많기 마련이며 역시 남성 동지들의 도움이 필요한거야. 너도 이젠 20살이야. 이번에 조사령과 풍중운이 직접 나서고 있는데 우보합은 문화수준도 있고 기타 방면도 우월하니 한번 만나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배성춘의 설득에 어느 정도 달통된 이재덕은 드디어 우보합과 대면하는데 동의했고 또한 우보함과 대면한 후에는 그녀의 마음도 봄눈이 녹듯 완전히 풀리었다. 기실 이재덕은 딱히 우보함이 싫어서가 아니었고 다만 그 때까지 그녀가 배경천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뿐이었다.
회의가 곧 결속될 무렵, 동북항일연군 제6군과 중공북만임시 성위에서는 한차례 특수한 혼례식을 거행, 두 쌍의 예비부부가 혼례식의 주인공이었는데 한 쌍은 만족인 우보합과 조선족 이재덕이었고 다른 한 쌍은 조선족인 오옥광과 한족인 이계란(李桂兰)이었다. 혼례식은 주보중이 주례를 섰고 이조린과 대홍빈(戴洪宾)이 증인으로 나섰다.
그런데 그들이 결혼하여 약 1년 뒤, 그렇게도 이재덕과 이들 자매들을 아끼고 사랑해주던 <큰 언니> - 배성춘이 일제와의 격전에서 희생될 줄이야. 바로 1938년 11월 22일, 보청현(宝清县) 솥회산(锅盔山)에서 주력부대의 서정(西征)을 엄호하던 20여명의 6군 장병들은 서광해와 배성춘의 인솔하에 수백명에 달하는 일제놈들과의 치열한 전투에서 배성춘이 장열하게 희생되었던 것이다.(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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