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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과학원, 생물 다양성 연구 및 보호 성과 발표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11일, 중국 언론에 따르면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15차 당사국 총회 개막을 앞두고 지난 10일 중국과학원은 중국과학원 쿤밍식물연구소(昆明植物研究所)에서 생물다양성 성과발표회를 개최하고 생물다양성 연구와 보존을 위한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발표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이는 생물다양성 자원 현황에 대한 연구, 모니터링(监测), 수집과 보존 등에서 이룬 성과이다.(사진/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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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11
  • 中 직업교육 박람회 12월 항저우서 개막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중국 직업기술교육학회가 개최한 브리핑에 따르면 중국 직업교육학회, 중국 전자학회, 중국 공업인터넷연구원이 공동 주최하는 중국직업교육박람회가 오는 12월 3일부터 5일까지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에서 열리게 된다. 이번 박람회는 전국 최초로 직업교육을 주제로 한 종합박람회로 "중국 국민경제 및 사회발전 제14차 5년 계획과 2035년 비전목표요강"벤치마킹하여 "고품질 직업교육 서비스 발전 기능형 사회건설"을 주제로 "공익성, 서비스성, 광범위성, 유효성"이라는 개최 원칙을 고수한다. 박람회는 또 최첨단 과학기술 전환과 산업 최적화 및 고도화, 특히 디지털화에 의한 산업 재구축을 지향하고, 주요 국가발전전략, 과학기술진보, 시장수요 및 산업·교육·과학·도시 통합과 연계, 직업교육의 유형과 특성을 설정하고 첨단기술로 고도화와 변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주최측에 따르면 박람회는 '온라인+오프라인'으로 진행되며 개방적이고 몰입적인 전시체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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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11
  • 中, 에베레스트봉 6200m 지대서 식물 종자 채취 성공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2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최근 중국 서남야생생물종질자원고 채집팀은 에베레스트봉 6200m 지대에서 수미선엽개(須彌扇葉芥), 쥐꼬리눈토끼(鼠麴雪兔子) 등의 씨앗을 채취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중국에서 식물 종자를 채취한 최고 해발 기록을 경신한 것으로 되고 있다. 채집팀은 지난 8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에베레스트봉 찾아 최고 20여 일 만에 해발 6605m에 당도해 식물다양성 조사를 벌였다. 중국과학원 쿤밍식물연구소에 의거해 건설된 중국 서남 야생생물종질자원고는 중국의 주요 과학기술 인프라시설이다. 종질자원고는 2020년 말까지 야생식물 종자 1만0601종, 8만5046종을 보존해 중국의 전략생물자원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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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06
  • 中, '생물다양성 보호 성과전' 베이징 식물원서 개최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중국 언론에 따르면 일전 중국 전국 임초 생물다양성 보호 성과전이 베이징 식물원에서 개막됐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중국에서 열리는 제15차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를 홍보하고 산림분야의 노력과 성과를 전면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 달간 진행된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생물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국가 중 하나로 115,064개의 종과 12,886개의 종 서브유닛을 포함한 총 127,950개의 종 및 종 서브유닛이 포함되었다. 중국 임업․초원부는 생물다양성 보호 부처로 생물다양성 보호에 관한 법률을 여러 차례 공포하고 개정하여 숲의 생태이전과 생태효익 보상 등 재정지원 제도를 조화롭게 수립하여 국가 공원 체제의 시범 건설과 보호지 통합 최적화를 대대적으로 추진하였다. 현재 중국은 이미 10개 국가공원 체제의 시범건설을 끝낸 상황이다. 현재 중국은 10건의 국립공원제도 시범사업을 완료하였으며 국토면적의 약 18%를 차지하는 거의 10,000개에 가까운 다양한 유형의 자연보호구역을 지정하여 유엔의 생물다양성협약인 '아이치 목표'를 앞당겨 실현하였다. 또 희귀 멸종위기종이 번식하고 창장(長江)·황하(黃河) 유역의 생태보전과 복원, 히말라야·횡단산(橫斷山)·치롄산(奇連山)·친링(秦嶺) 등 35개 전국 생물다양성 보호 우선구역의 보전을 촉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현재 중국의 야생 판다는 1864마리로 늘었고 야생 아시아 코끼리는 180마리에서 300마리 정도로 증가하였으며 야생 티베트 영양은 30만 마리 이상으로 회복됐고 하이난(海南) 야생 긴팔원숭이 마리 수는 40년 전 2개의 무리의 10마리 미만에서 5개 무리의 35마리로 늘었다. 판다, 사슴, 따오기, 사향노루, 흰목 긴 꼬리 꿩, 검은잎 원숭이 등 야생동물이 대거 자연으로 돌아왔다. 이외 야생복귀 야생식물 206종 중 112종이 중국의 고유종으로 됐다. 이번 전시는 중국 국가임업․초원국이 주최하고 중국야생식물보호협회와 베이징식물원이 주관했다. 출범식에서는 또 ‘중국의 글로벌 식물보호전략 이행(2011~2020) 보고서’가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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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06
  • 스페인, 화산 분출 마그마 바다로 흘러들어 육지 형성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스페인 라팔마 섬의 화산 폭발 10일 후, 마그마가 대서양으로 흘러들어 냉각되어 육지가 형성되면서 이 작은 섬의 면적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9월 30일 AFP통신에 따르면 라팔마 섬의 오래된 쿰브레 비에아 화산 폭발로 분출된 마그마가 이틀 연속 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갔고, 냉각 후 생성된 육지 면적은 축구장 25개에 맞먹는다. AP통신은 마그마가 바다에 들어가 냉각되면 라팔마섬 서부 해안에서 반원형 반도가 생성된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 신생 육지의 최대 폭은 500m가 넘는다. 쿰브레 비에아 화산은 19일 분화한 뒤 뜨거운 마그마가 산에서 굽이쳐 흘러내려 29일 새벽까지 섬 서쪽의 낭떠러지를 타고 대서양으로 유입됐다.이후 용암이 계속 바다로 흘러들어가 바닷물과 만나는 곳에서는 수증기가 솟아오르며 장관을 이뤘다. 한편 섬 당국은 바다로 들어가는 마그마는 폭발을 일으키고 유독 가스 덩어리를 형성할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해 해안 마을 3곳을 봉쇄했다. 이후 바람 덕분에 수증기와 유독가스가 바다로 날아가기도 했다. 다만 향후 풍향 변화가 새로운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 현지 당국은 30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마그마가 이 섬의 476헥타르의 땅을 흘러갔다고 발표했다. 유럽연합 '코페르니쿠스'지구감시계획은 지난 24시간 동안 마그마로 약 200개의 건물이 파손돼 마그마로 파손된 건물이 총 855개로 늘었다고 밝혔다. 한편 쿰브레 비에아 화산 폭발로 섬에서 6000여 명이 보금자리를 잃었으며 사상자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화산은 지금도 폭발하고 있으며 섬 공항은 일시 폐쇄됐다가 지난달 29일 운영을 재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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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03
  • 유럽과 미국 코로나19로 기대 수명 단축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영국 옥스포드대학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유럽과 미국의 많은 국가에서 기대 수명이 단축되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큰 하락폭이다. 27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번 연구는 유럽의 많은 국가와 미국, 칠레 등 29개국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이 중 2020년 기준 기대수명이 단축된 국가는 27개국, 6개월 이상 단축된 국가는 22개국이다. 연구원들은 많은 국가의 기대수명 단축은 코로나19 대유행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옥스퍼드대학 연구에 포함된 대부분의 국가에서 남성의 평균 기대 수명이 여성보다 더 많이 감소했으며, 미국 남성의 평균 기대 수명은 2019년보다 2.2세 줄었다. 미국에서 사망자 증가는 주로 60세 미만이고 아직 은퇴하지 않은 사람들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유럽에서는 60세 이상 인구에 집중됐다. 이 연구보고서는 영국 '국제역학저널' 계간지 최신호에 실렸다. 9월 23일 미국 존스홉킨스대 집계에 따르면 전 세계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는 470만 명을 넘어섰고, 이 중 미국에서 68만 명 이상이 사망해 14% 이상을 차지했다. 미국 인구는 세계 인구의 약 4%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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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01
  • ‘철의 여인’ 메르켈 - 독일 이끌어 16년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9월 27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미 임기가 종료된 독일 총리 메르켈에 대한 장문의 기사를 게재해 눈길을 끌고 있다. 다음은 기사 전문. “내가 갓 총리로 되기 시작했을 때 아이폰도 없었다.” 지난 6월 23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연방의원에서 질문을 받을 때 푸른색 상의를 입고 미소를 지으며 디지털화 문제를 묻는 한 의원의 질문에 담담하게 응했다. 1세대 아이폰은 2007년 출시됐고 올해 67세인 메르켈 총리는 2005년 11월 22일부터 독일 총리를 맡게 되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부시 2세였고 프랑스 대통령은 자크 시라크였으며 영국 총리는 블레어였다. 그 뒤 16년 간 서방 대국의 지도자들은 대거 물갈이됐지만 독일의 메르켈만은 꺼꾸러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지난 9월 26일, 독일에서는 연방의원 선거를 거행했고 이후 새 연방정부 출범했으며 메르켈 총리는 정식으로 총리 직에서 은퇴하였다. 전통적으로 독일 총리는 퇴임 후 총리 관저의 벽에 초상화 한 점씩 걸려 있게 된다. 하다면 메르켈의 모습이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을 때 어떤 초상화를 남겼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항구의 도선사” 독일 언론들은 한결같이 “‘도선사’가 배에서 내렸다”고 보도했다. 독일 DPA 통신은 ‘1900년대 비스마르크의 퇴임 당시’라는 고전 제목을 달면서 메르켈의 퇴임을 전했다. 메르켈은 16년간 총리를 지내면서 그녀의 정치적 스승인 컬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독일 사상 오직 재상 비스마르크만이 케르켈보다 집권 연수가 더 많았다. 메르켈은 확실히 ‘도선사’였다. 그 덕분에 독일은 ‘유럽의 병부’에서 경제 스타로 탈바꿈했다. 국제금융위기, 유럽재정위기난민위기, 우크라이나 위기와 코로나19 사태…. 독일과 유럽이 중첩으로 위기를 겪을 때 메르켈이 항해를 굳건히 지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독일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강력한 실물경제를 앞세워 서방의 주요 경제권 가운데 가장 먼저 정상경제를 회복했고 유럽 재정위기 이후 메르켈 총리는 연방의원에서 EU가 안 좋으면 독일도 좋아질 수 없다며 위기 해소를 위해 강력한 자세를 취하면서 재정긴축이 엄격한 독일의 안을 다른 회원국들이 수용하도록 했다. 2015년 여름과 가을 계절 유럽은 난민 위기에 직면했다. 메르켈이 난민들에게 문을 열자 1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독일로 몰려들었다. 이에 압박이 강해지자 메르켈은 훗날 “우리는 할 수 있다”는 한 마디로 일축했다. 이는 메르켈 총리에게 있어서 가장 논란이 되는 정책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난민 붐을 야기하던 일부 사회 문제는 이미 완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신 이민에 따른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동시에 난민 위기는 배외주의와 우익 세력의 대두로 이어졌으며 독일은 물론 유럽 여러 나라의 정치 판도를 파편화하였다. 그리고 지난해 코로나19가 급속히 악화되자 메르켈은 즉각 행동에 나섰다. 2020년 3월 18일 메르켈은 새해와는 별도로 처음으로 전국 TV 생방송에 출연해 “진짜 상황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진지하게 대처해야 한다”면서 “코로나19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겪은 가장 큰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설의 시청률은 독일에서 기록을 세웠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메르켈 총리는 보건 당국과 긴밀히 소통하며 연방과 각 주의 입장을 통일하고 EU의 추가적인 통제조치를 촉구했다. 어느 한 브리핑에서 메르켈 총리는 “위기가 없는 삶이 당연히 더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어났을 때는 반드시 대비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정치인인 이유이다”라고 위기관리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대담자 2020년 8월 28일 독일 총리 연례 브리핑에서 한 기자가 메르켈 총리에게 물었다. “총리 여사님, 독일은 EU 의장국 담당 기간 만약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면 일방주의 등 공동 도전에 대응할 수 있을까요?” 이러자 그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메르켈은 ‘일방주의’란 말에 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지난 몇 년간 역 세계화의 어두운 흐름이 밀려와 보호주의와 일방주의가 팽배했다. 나는 다자주의가 독일의 국익에 부합되며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 대결하지 않고 대화와 협력을 제창하는 것이 독일과 EU의 국제적 역할을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답했다. 메르켈 총리는 서로 다른 시각으로 대화와 협력에 지장이 없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EU에서 고참이자 ‘가정배경’을 갖고 있는 메르켈이 회원국 간 주선으로 나섰던 것이다. 웅변적이지는 않았지만 정곡을 찌르는 그의 입담과 강한 인내심으로 그녀는 각국 지도자들이 자기의 의견을 최종 수용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유엔과 주요 20개국 등 국제의 다자 틀에서 이란 핵문제, 기후변화, 발전 협력 등의 분야에서독일은 적극적인 참여국으로 됐고 메르켈이 늘 그 안에 있었다. 2019년 2월 제55차 뮌헨 안보회의 기조연설에서 메르켈은 “세계가 하나의 ‘글로벌 퍼즐’로 변하고 있다”며 말미에서 일방주의 성향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메르켈의 연설이 끝나자 장내에는 장시간에 달하는 박수갈채가 떠졌다. 당시 IMF의 라가르드 총재 등 여러 요인들이 기립해 환호하는 모습은 펜스 당시 미국 부통령의 연설 직후 드문드문 박수를 보낸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국제무대에서 메르켈의 긍정적인 역할을 본 탓인지 ‘포브스’는 10년째 메르켈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의 1위로 선정했다. 실속파 2020년 8월 독일 총리 연례 브리핑으로 돌아온 메르켈은 기자들의 질문에 “독일은 유럽연맹과 중국의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면서 “EU는 중국과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 제3자 시장 등에서 더 많은 협력을 기대하면서 유럽·중국 투자협정 협상의 새로운 진전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해 12월 30일, 중유럽 정상들은 중유럽 투자협정 협상을 예정대로 마무리 짓자고 공동 선언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때 이 협상은 막바지에 있었다. 이렇게 메르켈은 개인적 위신과 외교적 경험을 살려 EU 내부의 일치를 이끌어냈던 것이다. 메르켈은 수년 동안 실용적 태도로 대중국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그녀는 독일과 중국의 협력이 독일 이익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기후변화와 일방주의 같은 글로벌 도전에 대처함에 있어서 독일과 EU 그리고 국제사회 전체가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인정하고 있었다. 메르켈은 “어떤 경우에 있어서 우리들한테 부동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다만 EU는 중국과 계속 대화하면서 다자주의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메르켈의 임기 내내 중국과 독일 관계는 계속 발전했다. 2011년 중독 정부 협의체 가동, 2014년 양자 관계 전 방위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 양국 고위층의 상호 방문이 끊이지 않고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높은 빈도의 온라인 소통을 유지하고 있었다. 16년간 메르켈은 12차례 중국을 방문, 서방 정상 중 가장 많이 중국을 방문한 정상으로 되었다. 그녀는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난징(南京), 시안(西安), 광저우(广州), 톈진(津), 청두(成都), 허페이(合肥), 항저우(杭州), 선양(沈阳), 선전(深圳), 우한(武汉) 등으로 매번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메르켈은 새로운 지역에 발자국을 남겼다. 북에서 남으로, 동에서 서쪽으로 또한 연해에서 내륙으로, 도시에서 농촌으로 메르켈에게 있어서 경제발전 수준이 다르고 지역 문화가 다양한 중국 대지는 일종 신선한 체험으로 되었다. 이렇게 체험을 풍부하게 하는 것은 깊은 이해를 위해서였고 더 깊게 아는 것은 긴밀한 협력을 위해서였다. 독일연방통계국 집계에 따르면 중국과 독일 사이의 무역총액은 2005년의 611억7100만 유로에서 2020년에는 2121억 유로까지 늘어났으며 독일은 중국의 유럽 최대 교역 상대국으로 EU의 대중국 직접투자가 가장 많고 유럽에서 대중국 기술이전이 가장 많은 나라로 되었다. 그리고 중국과 독일은 과학기술, 교육, 문화, 산업 등 분야에서도 깊은 협력 관계가 있다. 메르켈의 가장 최근 중국 방문은 2019년 9월 중국 우한(武汉)에 다녀온 것이다. 당시 차량 행렬이 우한 창장대교를 건널 때 메르켈은 불현 듯 차량 행렬을 멈추게 했다. 이어 차에서 내린 메르켈 다리 위를 바라보며 수행인원들에게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독일 일간지 ‘르몽드’는 “메르켈이 외교 일정을 이탈한 적은 단 한 번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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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30
  • 中, 헤이룽장 모허 첫 눈, 광저우는 반팔 티셔츠 차림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9월 30일, 중국 언론에 따르면 지난 9월 27일 밤 중국 헤이룽장(黑龙江) 모허(漠河)에 올 가을 들어 첫 눈이 내리면서 헤이룽장 다싱안링(大兴安岭) 지대가 겨울철에 성큼 다가서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북극’으로 불리는 모허는 중국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불리는 모허의 후중(呼中)진은 헤이룽장 다싱안링 이레이후리산(伊勒呼里山) 북쪽 기슭의 구릉지대로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평균 해발 810m이다. 후중진은 겨울철 혹한에 속하고 기나긴 한온대 계절풍 기후로 기후 특성은 여름에는 온량하고 짧으며 봄과 가을에는 가물다. 도시의 역대 최저기온은 -53.2도이고 연평균기온은 -4.3도에 달한다. 9월 27일 밤, 찬 공기의 영향으로 끊임없이 비가 내렸던 헤이룽장 사막에는 올 가을 들어 가장 많은 눈이 내리면서 누렇게 익어가던 산 위의 언송가지는 하얀 눈에 장식되어 신비롭게 보였으며 28일 오전까지 내린 눈으로 모허 후중진은 10㎝가 넘게 눈이 쌓였다. 한편 중국의 최북단 모허에 내린 눈과는 대조적으로 중국 남단의 광저우(广州)는 30도가 넘는 고열로 행인들은 반팔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중국의 남방으로 말하자면 계절은 이미 추분에 접어들고 삼복더위는 이미 멀어졌다지만 늦더위에 비유되는 무더운 날씨다. 9월 29일 12시,기상센터에 따르면 중국의 강남 지역의 기온은 섭씨 35도의 고온선 표준에 이르렀으며 특히 안후이 츠저우(安徽池州) 지대는 36도의 기온으로 전국 폭염 1위를 차지하면서 네티즌들로부터 “안후이성의 투루판(吐鲁番)”으로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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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30
  • 2020년 中 과학기술 연구개발비 2.4조 위안 돌파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20년 전국에서 연구·시험발전(R&D) 경비 24393억1000만 위안이 투입돼 10.2% 증가하며 '13~5' 이래 두 자릿수 이상 증가세를 이어갔지만 코로나19 사태 등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2.3%포인트 하락했다. 중국 국가통계국, 국가과학기술부,국가재무부가 공동 발표한 ‘2020년 전국 과학기술 비용 투입통계 발표문’에 따르면 2020년 R&D 투입 강도(GDP대비)는 2.40%로 전년보다 0.16%포인트 높아져 인상폭이 11년 만에 가장 높았다. 보도에 따르면 2020년 중국의 기초연구비는 1467.0억 위안으로 전년보다 9.8% 증가했으며 그 증가 속도는 전년보다12.7%포인트 하락했다. R&D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1%로 2년 연속 6%대를 유지했다. 2020년 기업의 R&D 비용은 1억8673만8000억 위안으로 전년보다 10.4% 증가했으며 전국 R&D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6.6억 위안에 달했다. 또한 전국 성장에 대한 기여도는 전년보다 각각 0.2%, 9.4%포인트 높아진 77.9%로 견인차 역할을 더욱 강화했다. 장치룽(张启龙) 중국 국가통계국 사회과학문화사(司) 통계담당관은 중국의 R&D 비용 투입을 국제적으로 비교해 보면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장 담당관에 따르면 2020년 중국 R&D 경비 총량은 미국의 약 54%로 일본의 2.1배로 세계 2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고, 2016~2019년 중국 R&D 경비 순증량은 연평균 2000억 원을 넘어 G7 국가 전체 연평균 증가량의 약 60%에 달해 글로벌 R&D 경비 증가를 이끄는 데 큰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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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28
  • 美 단속요원 말 타고 이민자 축출, ‘흑인 노예시대’ 재현?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미국 국경 단속요원들이 말을 타고 채찍을 휘두르며 이민자를 쫓는 사진과 동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미국 역사상 백인들이 흑인 노예들을 학대하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며 분노하고 있다. 멕시코 코아벨라주 아쿠니아시티와 맞닿아 있는 미국 텍사스주의 국경 소도시 델리오에 최근 도착한 이민자들은 리오그란데강을 가로지르는 델리오 인터내셔널 브리지 일대에 머물며 미국에 망명을 요청하고 있다. 이민자 수는 지난주 한때 1만4000명을 넘어섰다. 미국과 멕시코 측은 이들 대부분이 아이티 출신이라고 확인했다. 미국은 19일 이들 이민자를 대규모로 추방하는 한편 더 이상의 불법 입국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과 동영상에 따르면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말을 탄 미국 단속요원들이 강가에서 말채찍이나 고삐처럼 생긴 긴 밧줄로 이민자들을 향해 휘두른다. 서신교 인근의 이민자들은 음식과 생필품을 사러 아쿠니아로 들어갔다가 미국 쪽의 임시 수용소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의 한 기자는 말을 탄 미국 법 집행관들이 델리우로 돌아오는 이민자들을 가로막는 것을 목격했다. 그중 한 단속요원은 한 남성 이민자 셔츠를 잡고 끌고 다녔다. 또 다른 사진에는 이민자들이 말에 쫓기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일부 네티즌들은 “백인 경찰이 말을 타고 도망가는 흑인을 쫓고 있다”는 내용의 글도 올렸다. 과거 미국 기마경찰과 교도관이 흑인을 때리는 모습, 심지어 흑인 노인들이 미국에서 당했던 폭력과 불공평함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아프리카계 의원인 베니 톰프슨 미 하원 국토안보위원장은 “두렵고 불안하다, 미국의 가치관에 위배되는 것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통탄했다. 또 젠 포사키 백악관 공보비서관은 “끔찍해 보인다”며 “상황 전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며 어떤 상황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적절한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미 국토안보장관과 라울 올티스 미 국경순찰대장은 "경찰이 눈에 띄게 부적절한 행동을 보이는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두 사람은 조사 착수를 약속했다. 마요르카스는 "단속요원들은 채찍을 휘두르지 않고 말을 통제하기 위해 고삐를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토안보부는 단속이 부적절한 것으로 확인되면 수사에 착수해 처리할 예정"이라며 "불법 이민자들은 송환될 것이며 요행을 바라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올티스 장관은 또한 “단속요원들이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보도내용을 조사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은 지난 17일 델 리오에서 아쿠나로 가는 유일한 항구를 잠정폐쇄했다. 20일 현재 항구는 여전히 폐쇄되어 있다. 관계부처는 19일부터 여러 대의 항공기를 파견해 국제교 인근의 아이티인들을 일괄적으로 송환했으며, 이 조치는 며칠 동안 계속될 예정이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20일까지 '델리오 인터내셔널 브리지' 일대에 머물던 아이티인 수백 명이 멕시코 국경 쪽으로 내려왔다고 전했다. 그들이 아이티로 송환될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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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27
  • 美 아이티 특사 사표 제출, 난민 송환 결정 비판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대니얼 푸트 미 아이티 특사가 아이티 난민 송환 결정을 ‘비인도적’이라고 비판하면서 블링컨 국무장관에게 사표를 제출했다고 현지 시간으로 23일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22일 푸트 특사는 22일 블링컨 장관에게 보낸 편지에서 “수천 명의 아이티 난민과 불법 이민자들을 아이티로 돌려보낸 미국의 ‘비인도적이고도 정반대의 결정’과 연관되기 싫기에 아이티 특사에서 즉각 사임한다”고 밝혔다. 푸트는 아이티에 대한 미국의 난민 송환 결정은 “심각한 결함이 있다”면서 자신의 건의가 ‘무시되고 기각됐다’”고 말했다. 23일, 콘돌리자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성명에서 푸트의 사임 사실을 확인하면서 푸트의 제안이 무시된 것은 전적으로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국무부 웹사이트에 따르면 푸트는 잠비아 대사를 거쳐 지난 7월부터 아이티 특사로 활동 중인 고위급 외교관이다. 현재 지진과 동란, 극빈 등으로 최근 미국 텍사스 주 남서쪽 소도시 델리오에 도착한 아이티인들이 미국에 망명을 요청하고 있고 이에 미국은 지난 19일부터 이들 피난 신청자에 대한 대규모 추방을 시작했다. 유엔난민고급판무관은 21일 성명을 발표하여 “텍사스 국경지대에 체류 중인 난민 상황과 미국의 대규모 망명 신청자 추방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국제 규범에 따라 피난 신청자의 권리를 보호해 줄 것을 미국 정부에 호소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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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26
  • CNN, 한국은 ‘반중국가’? 정의용, “그것은 냉전사고 방식”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20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 "중국은 국제사회에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어하고 우리는 중국의 의견을 경청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의용 외교장관은 현지시간으로 22일 열린 미국외교협회 세미나에 참석해 “‘중국 외교가 갈수록 강세’로 되고 있다는 데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정 장관의 이같은 발언을 두고 국내 일각에서 “중국을 대변한다”, “중국을 두둔한다”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23일 외교부 최영삼 대변인은 정장관의 중국 관련 발언에 대해 “정의용 장관이 중국의 강경한 태도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김 대변인은 “다만 외교와 경제력이 날로 커지면서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 “한국 외교부를 포함한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명확한바 즉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조화롭게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천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정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을 수행해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 참석, 22일 미국외교협회(CIA)에서 CNN의 유명 앵커인 자카리아와 인터뷰를 갖고 현장과 동영상을 통해 시청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이 일이 있은 후 국내 언론들은 이를 집중 보도했다. 23일 연합뉴스는 CNN 유명 앵커 자카리아가 호주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중국이 ‘강세 외교’를 펼치고 있다고 하자 정 장관은 그 ‘강세’란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문화일보는 정 장관은 “중국으로 말하면 이는 당연한 일”이라면서 “중국이 갈수록 강대해지기에 이를 외교정책에 반영되기를 희망하였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CNN 앵커 자카리아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국 지지’와 ‘반 중국’의 국가 그룹으로 분류하면서 미국, 한국, 일본과 호주를 ‘반 중국’ 국가 그룹으로 규정하자 정 장관은 “이는 냉전시대의 사고방식이며 나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한미동맹은 한국 외교의 주축이고 중국은 한국의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라고 반박했다. 정 장관은 또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더 안정되길 바란다”면서 “미중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선택을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23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정 장관의 발언을 두고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한 전직 국회의원은 페이스북에 “당신은 어느 나라 외교장관인가? 정의용은 뉴욕에서 중국 대변인 역할을 했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서울신문은 “미중 간 충돌이 격화되면서 한국의 행보도 주목받는 만큼 민감한 사안을 논의할 때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특필했다. 22일의 인터뷰에서 정 장관이 “북한이 비핵화에 더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국제사회는 대북제재를 완화하고 민감하지 않은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피로했기 때문이다. 이 일로 하여 일부 국내 정치인들은 “정의용이 남북 공동 외교장관을 겸임하는 것 같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편 최근 유엔 총회가 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가운데 미중 관계 이슈가 특히 주목받고 있다. 22일, 친강(秦刚) 주미 중국대사는 22일 카터센터와 조지 부시 미·중 관계재단이 공동 주최한 온라인 대화 초청 강연에 참석해 발언했다. 친 대사는 “미·중 관계는 중·미 몇 세대 지도자와 각계 인사들이 함께 노력해 발전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 일각에서 중국에 대한 오해와 오판이 심화되고 있으며 그중 중·미 관계를 민주와 권위의 대결로 규정해 이데올로기 대립을 부추기는 것이 현재 중미 관계가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중‧미 정상이 최근 전화 통화를 갖고 솔직하고 깊이 있으며 전략적인 의사소통을 하여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면서 “솔직히 걱정되는 것은 미국 측이 경쟁적으로 중미관계를 정의하고 미국 측이 경쟁하는 방식은 중국의 핵심 이익이 걸린 중대 사안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친 대사는 “중․미가 청두(成都)와 휴스턴에 있는 양국 총영사관 재개 협상을 시작하느냐”는 문제를 두고 미국 측이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을 전격 폐쇄한 데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중국 측은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을 폐쇄하는 것에 반격하여 주 청두 미국 총영사관 폐쇄에 나섰으며 문제의 해결은 사건의 장본인이 해야 한다”며 “이 문제는 미국 측이 일방적으로 일으킨 것이므로 해결하려면 미국 측이 먼저 행동에 나서야 한다”면서 쐐기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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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25
  • 유엔 안보리, 기후 및 안보 문제 공개 토론회 개최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2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개최한 기후, 안보 문제의 공개 토론회에서 안보리 회원국들이 각자의 입장을 밝혔다. 24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공개 토론회에 앞서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기후변화의 위협이 시급하다며 국제사회는 기후행동에 협력해야 하며 그중 3가지 절대적 우선순위가 있다고 강조했다. 첫째는 전 세계 기온 상승을 섭씨 1.5도 이내로 통제하는 모든 국가의 명확한 약속과 신뢰성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기후 적응 및 회복 노력, 특히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각종 지원 강화이며 셋째는 기후 적응 작업을 평화 건설 작업과 결합하여 혼란지역에 보다 적응력이 있는 생태계 조성을 통해 현지 자원과 경제 상황을 개선하고 안정을 도모이다. 미셸 마틴 아일랜드 총리가 이날 안보리 순번 의장으로 회의를 주재했다. 그는 “유엔 평화유지활동이 있는 지역 가운데서도 대부분 기후 변화가 현지 평화와 안전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라는 것을 발견하였다”면서 “유엔 안보리는 국제평화와 안전을 수호할 책임을 지고 기후변화 요인에 대한 분석과 대응을 작업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언급했다.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주석은 “선진국이 앞장서서 감축을 강화하고 자금, 기술 등에서 개도국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공조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각국의 주권을 수호하고 실정에 맞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미국이 개도국을 위한 금융지원을 배로 늘이겠다고 선언한 만큼 다른 나라들도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더 많은 지원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은 “가장 취약한 국가와 지역의 예측을 돕고 기후변화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기후변화로 인한 불안정이 폭력조직과 테러주의자들에게 이용되는 것을 피해야 하며 기후변화가 평화와 안전에 미치는 리스크를 국제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분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타리크 아흐메드 영연방·유엔·남아시아 담당 국무장관은 “영국은 이미 아주 야심찬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금융 지원도 대폭 늘렸으며 기후변화는 전 세계 안보, 특히 취약지역 정세에 지속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집단행동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조했다. 이어 러시아 대표는 “기후 문제에 대한 대비가 시급하다”고 언급하면서도 “러시아 측은 기후변화를 안보리 의제로 채택할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안보리의 업무는 이미 매우 민감하고 복잡하여 더 많은 요소를 도입하면 안보리의 업무 효율에 더욱 영향을 줄 수 있기에 기후변화를 안보리 의제로 포함시키는 것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 상임주재 중국대표 장쥔(张军)은 “안보리 의장국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전란에 빠진 것도 아니고 기후변화에 대응할 필수수단도 갖추지 못했으며 기후 요인을 모든 문제의 요소로 구분하지 않고 유엔평화유지활동권한까지 포함시키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엔 평화유지활동 권한을 부여해 안보리의 효율적인 임무 수행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하며 불필요한 업무 중첩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도 대표도 러시아, 중국과 비슷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회의에 참가한 대표들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면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것에 보편적으로 찬성하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지를 강화해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 했다. 회의에서는 또 오는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26차 당사국 총회의 개최 성공을 기원한다고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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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24
  • 中 연구진, 코로나19 2019년 9월 전후 미국서 유행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중국 과학원 사전논문공개사이트 차이나카이브(ChinaXiv)가 22일 발표한 빅데이터 모델링 분석에 기반한 코로나19 기원 시기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코로나19가 2019년 9월을 전후해 이미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브라질을 포함한 많은 국가가 중국에서 새코로나19가 발생하기 훨씬 이전에 바이러스 영향을 받은 흔적이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수학 모델과 인공지능(AI) 기술을 결합해 전염병을 정성·정량(定性定量)적으로 분석하면 전염성 유행의 법칙을 밝혀낼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연구진은 감염병 전파 모델과 빅데이터 분석 방법을 바탕으로 최적화 모델을 구축하고 공개된 자료를 토대로 미국 동북부의 12개 주와 중국 우한시(武汉市), 저장성(浙江省) 등지에서의 코로나19 발생 시점을 추론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 북동부의 12개 주 코로나19 첫 번째 사례의 50% 확률은 대부분 2019년 8월에서 10월 사이이며 가장 이른 시기는 로드 아일랜드에서 2019년 4월 26일이다. 가장 늦은 것은 2019년 11월 30일 델라웨어에서 발생한 것으로 이는 2020년 1월 20일 미국이 공식 발표한 미국 내 첫 번째 확진자보다 빠른 것이다. 계산 결과 2019년 9월경 미국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우한의 경우 첫 감염 확률이 50%인 날짜은 2019년 12월 20일이며 중국 저장성의 첫 감염 확률이 50%인 날짜는 2019년 12월 23일이다. 이에 따라 중국 내 코로나19 유행이 2019년 12월 말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론됐다. 이 같은 결론은 기본적으로 역학조사 결과와 일치하는 것으로 계산방법이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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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23
  • 中, 도시 지역사회 ‘종합서비스’시설 보급률 100% 달성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민생의 마지노선을 공고히 하고 살기 좋은 생활을 기대한다. 이는 중국이 전면적으로 샤오캉(小康)을 건설하는 과정 중 민정 업무는 사회건설의 근본으로 그 기초적 임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기본적인 민생 보장, 기초적인 사회 관리 그리고 기본적인 사회 서비스 등의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 열린 중국 국무원 보도판공실 브리핑에서 리지헝(李纪恒) 민정부부장은 18차 당대회 이래 민정사업이 이뤄낸 성과와 향 후 중국 민정사업의 발전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리 부장에 따르면 2020년 말 현재 중국 전국에서 집중 양육하는 고아의 평균 보장 기준은 매달 1인당 1611.3위안에 달하며 사회 산재고아의 평균 보장기준은 2012년보다 각각 65.77%, 68.46% 늘어난 매달 1184.3위안이다. 2016년 중국은 빈곤 장애인에 대한 생활보조금, 중증 장애인 간병보조금 제도 등을 전면 도입하여 2020년 말 현재 각각 1214만 명과 1475명이 그 혜택을 받고 있다. 결손가정 아동보호와 관련해 중국 민정부 부부장 가오샤오빙은 “현재 감독관 5만 6000명, 관계자 67만 5000명이 결손가정 아동의 신변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결손가정 아동과 부모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민정부 왕아이원(王爱文) 부부장은 “사회구조 및 기초보장 정책을 한층 더 보완할 것”이라면서 “재난으로 인한 빈곤 퇴치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중국 전국의 도시와 농촌 지역사회 통합서비스 시설 보급율은 각각 100%, 65.7%로 총 51만 1000개에 이르며 지역사회 공공사업 서비스, 주민 편리를 제공하는 비즈니스 서비스가 더욱 간편해지고 자원봉사가 보편화됐다. 2020년 말 현재 중국의 각종 양로 기구와 시설은 총 32만 9000개이고 이 중 침대 수는 821만개로 2012년보다 97% 증가했다. 이외에 노령연금과 양로보조금, 장애인 간병 보조금은 각각 3104만 4000명, 535만 5000명, 81만 3000명이 혜택을 받았다. 민정부는 ‘14.5’ 계획 기간 도시와 지역에 ‘15분’의 양로 서비스권을 만들고 현, 향과 촌의 세 단계의 양로 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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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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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애령은 왜 동생 송자문의 장례식 참석 거부했을까?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송요여(宋耀如)가 죽은 후 송자문(1894-1971)은 점차 송씨 가족의 리더가 되었다. 그의 존재감은 송씨 가족의 삼자매만큼 은 영향력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송씨 가족의 장남인 송자문은 온 가족에게 큰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1912 년 그는 공부를 더 하라는 아버지에 의해 미국 하버드 대학교로 유학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출중한 재능을 가진 송자문의 성적은 항상 최고였으며 마침내 그는 목표를 달성하면서 하버드 대학교로부터 석사 학위를 수여받았으며 다시 미국 콜럼비아 대학교에서는 박사 학위까지 따냈다. 졸업 후 송자문은 어느 한 은행에서 사무원으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주로 중국 사업가에게 송금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이 일에서 그는 많은 중국 사업가들을 만났으며 이를 계기로 그는 중국에서 미래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1917 년 송자문은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가정에서는 타인한테 위탁하여 그로 하여금 한야평회사(汉冶萍公司)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회사의 총지배인은 성선회(盛宣怀)의 아들이었으며 그는 송자문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그는 영어를 아주 유창하게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성선회의 아들 성택이(盛泽丞)는 송자문을 일곱 번째 여동생 성애희(盛爱颐)의 영어교사로 초대했다. 둘은 점차 감정의 포로로 되었다. 이에 성애희의 어머니는 이 일을 알고 송자문의 지위가 애녀 성애희의 짝으로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1923년 송자문은 정식으로 한야평 회사에서 사직하고 손중산(손문) 선생한테로 가려고 했다. 떠나기 전 송자문은 성애희한테 함께 남하하자고 했으나 성애희는 집과 어머니 곁을 떠나기를 꺼려하다가 마침내 송자문을 따라 도망가는 것을 거부했다.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면서 작별했다. 손중산한테 가담한 후 송자문은 큰 책임을 맡았다. 재무부 장관 뿐만 아니라 중앙은행 총재와 광주은행(广州银行) 총재를 역임했으며 재무 관리를 조직하는 정부의 돈가방이 되었다. 당시 북벌전쟁의 연속적인 승리로 인해 장개석은 점차 군사력과 정치적 권력을 장악했으며 송자문의 누이 송애령은 가족의 장기 이익을 위해 장개석한테 접근하려고 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원래 장개석과는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던 송자문은 후에 장개석의 캠프를 위해 철저하게 헌신했으며 이어 남경 국민당 정부를 위해 일했다. 중국에서 전면적인 항일 전쟁이 발발한 후, 물질적 지원을 얻기 위해 송자문은 두 번째 누나 송경령과함께 1938년 6월 홍콩에서 ‘중국보위동맹’ 설립했다. 그러나 1941년 5월, 장개석의 압력으로 송자문은 동맹의 직무에서 사임해야 했다. 같은 해 12월, 그는 정부의 외무부 장관으로 되었으며 1943년, 송자문은 담판을 통해 외국열강들이 중국에서의 치외 법제권을 되찾았으며 1945 년에는 중국의 수석 대표로 유엔 총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1945년 8월, 송자문은 소련과의 ‘중소우호동맹조약’에 서명하게 되었다. 이에 앞서 미국, 영국, 소련의 지도자들은 중국의 참여 없이 얄타협정에 서명하는 것으로 중국의 주권과 영토 완정을 심각하게 위반했다. 이에 송자문은 처음에는 미국 대통령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다가 거절당했고 후에는 스탈린한테 제기했으나 소련 역시 일본을 패망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이유로 들어주지 않았으며 남경 정부는 결국 쓰라린 굴욕을 씹어 삼켜야 했다. 항일전쟁이 승리한 후 장개석은 공산당과 내전을 벌였다. 송자문은 군사 지출을 늘리고 국고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 금 외환 시장을 개설하고 많은 양의 금을 팔아 대량 자금을 유치할 대신 황금폭란을 일으켜 경제 위기를 초래했다. 1947년 3월, 수많은 규탄속에서 송자문은 직위에서 물러났으며 그해 10월 다시 장개석의 신뢰를 받아 광동으로 가서 내전을 위한 자금을 모으게 했다. 1949년 4월, 인민해방군이 남경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알게 된 송자문은 낙담하여 홍콩을 거쳐 미국으로 향발했다. 그 이후로 그는 해외 망명생활을 시작했으며 1년 후에는 국민당에서 제명되었다. 미국에서 송자문의 생활 조건은 상당히 우월했지만 때때로 외국에서의 고독과 슬픔은 여전히 마음을 괴롭히군 했다. 그는 부모님의 마지막 유언인 “내가 죽으면 상해에 묻고 자식들은 될수록 한 많이 나의 곁에 있어다오”란 말을 줄곧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12월 11일은 아버지의 생일임을 송자문은 항상 기억했다. 그래서 1958년의 아버지의 생일날 아내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송자문은 항공편으로 홍콩으로 날아갔으며 홍콩 도착 후 오랫동안 북녁하늘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더 이상 그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1963년 2월, 장개석은 그를 대만에 초청했다. 이러자 송자문은 가족 모임을 가지고 가족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기로 했다. 장녀 송경희와 차녀 송만희는 아버지가 대만에 가는 걸 단호하게 반대했으며 오직 막내 딸 송서희만이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아버지가 가고 싶다면 지금 가세요. 아버지가 나이가 점점 많아지기에 앞으로 대만으로 갈 기회가 점점 적을 터이니 가서 대만을 유람하면서 옛 친구들을 만나보기도 하세요”라고 위안해주었다. 이 말은 송자문의 마음을 약하게 했다. 그 뒤 송자문과 그의 아내는 대만행 항공기에 올랐다. 송자문 내외가 대만에 도착하자 장개석은 곧 바로 송자문을 회견하면서 대륙 본토를 공격 할 계획을 밝혔으며 아울러 이 계획에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송자문은 즉시 장개석의 뜻을 알고는 두 딸이 자기의 대만행을 반대하던 일을 떠올리면서 장개석과의 회담에는 그냥 의도적으로 중얼거렸다. 15일 후 송자문 내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으며 그 뒤 정치에 대한 얘기는 일절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1년 송자문은 77세의 나이로 미국에서 사망했다. 당시 그의 장례식은 특히 쓸쓸해 보였다. 송애령은 남편 공상희가 죽었기에 송자문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송자문이 사망했다는 비보를 접한 둘째 누나 송경령은 슬픔을 참을 수 없어 미국으로 가기로 결정했으나 전세기를 대여할 수가 없어 그번 행차가 실패했다. 그리고 장개석의 부인 송미령은 둘째 언니가 송자문의 장례식에 참석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은 뒤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형제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해야 했다. 사실 그녀는 항공기를 오랫동안 하와이에 준비 해놓고 송자문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곳으로 갈 준비를 한 다음 장례식 전야에 몰래 뉴욕으로 향발했으나 도중에 수차 장개석으로부터 “대륙 공산당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전보를 받고 도중에 귀항했으며 결국 송미령은 대만으로 돌아왔고 친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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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21-10-24
  • 美 인플레이션, 세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 끼칠 것
    ● 왕위판(王璵璠·중국국제문제연구원 미국연구소) 미국 노동부는 13일(현지시간) 미국 인플레이션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5.4% 상승했으며, 9월 전국 소비자가격은 8월보다 0.4% 상승해 연간 소비자 가격지수가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연준이 인플레 리스크를 간과하고 인플레를 우려한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치솟은 것은 복합적인 요인 때문이다. 첫째는 미국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미국 경제에 수조 달러의 유동성을 공급해 소비 수요를 끌어올린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긴장과 미국의 물자 부족, 생산력이 시장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 외 수급 불균형이 식품, 주택, 에너지와 자동차 등의 가격 상승을 야기 시켰다. 하나는 미국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미국 경제에 수조 달러의 유동성을 공급해 소비 수요를 끌어올린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긴장과 미국의 물자 부족, 생산력이 시장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수급 불균형으로 식료품, 주택, 에너지, 자동차 등의 가격 상승이 이어지고 있다. 둘째는 코로나19로 인한 미국의 노동력 부족에 무직자들이 미국 정부가 지급한 막대한 보조금으로 생활, 취업이 급하지 않은데다 퇴사자가 급증한 것이다. 그리고 대량의 일자리 빈자리를 초래, 아마존 월마트 등은 인재 유치를 위해 임금을 올려야 했다. 미국의 9월 평균 시급이 전년 동월 대비 7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라 인플레이션을 더욱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미국 연방 준비제도(Fed·연준)는 공급망 회복과 노동력 부족 상황 개선에 따라 인플레이션 상황이 호전될 것이며 경기 회복 속도가 인플레이션 통제 불능보다 빠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전히 경기부양과 긴축정책 사이에서 관망과 저울질을 하고 있다. 또한 금리 인상 등의 조치는 인플레이션을 완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자본시장에 타격을 줘 미국의 경기 회복에 발목을 잡히고 인플레이션 문제가 내년까지 이어지면 민주당 중간선거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인플레이션 수치가 계속 높아져 미국 소비자와 기업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식품, 일용품 등 생필품 가격의 상승 속도가 임금 상승 속도보다 빨라 미국 일반인들의 생활고를 증가시켰으며 일부 미국 기업은 원자재가 부족한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다. 예를 들어 ‘기름에 튀길 닭이 없다’는 KFC는 광고와 판촉을 줄여야 했고 뼈 없는 닭고기에 대한 입찰을 중단해야 했다. 뼛쪼각이 뼛조림보다 더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구매 수요가 높아져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긴축정책이 지지부진한 것은 자본시장을 보호하고 중·저소득층을 내팽개치는 것으로 미국 사회의 빈부격차는 계속 확대될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발표에 따르면 2021년 2분기 현재 미국에서 1%를 차지하는 부자 가구의 총 순자산은 36조2000억 달러이고 이들의 연소득은 2만7000달러부터 14만1000달러사이다. 그리고60%를 차지하는 중산층 가구의 총 순자산은 35조7000억 달러, 미국의 자산 부자 총액이 중산층을 앞지른 것은 1989년 이후 처음이다. 미국 발 인플레이션의 악영향이 국제사회로 번지고 있다. 우선 미국 등 선진국들은 시장에 대량의 통화를 들여와 대량의 상품 가격을 올리고 있기에 옥수수 가격 상승으로 멕시코인들이 주식으로 먹는 옥수수빵 가격은 8월에 전년 동월 대비 30% 넘게 올라 빈곤층의 생활고를 가중시켰다. 다음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글로벌 경제의 불균형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반도체 등 첨단 과학기술을 보유한 산업고리의 상위 국가들은 관련 제품의 가격 상승으로 이익을 보고 있지만 제품 가공업과 제조업을 위주로 하는 산업고리 중하위 개발도상국은 원자재 비용 증가에 직면했다. 한편으로는 가격 상승으로 인한 수익 불확실성에 직면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미국 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은 글로벌 경기 회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최근 11월 중순부터 통화정책을 긴축하기 시작하겠다는 정보를 방출했다. 이는 자산가격 하락의 위험은 경계할 만한 것으로 달러 외채가 높고 외환보유액이 적은 아르헨티나와 인도 등은 많은 채무 위험도 안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완화될 것이라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평가에 큰 불확실성이 있다면서 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도록 긴축정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고 독일 은행도 미국이 본격적인 경기 회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플레이션 상승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동시에 이는 심각한 경기침체를 초래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으니 미국은 무거운 것을 피하고 위기를 전가하는 것을 중단해야 하며 더 책임 있는 통화정책을 채택해야 하며 또 국제사회와 협력해 공중보건 조치를 조율하고 글로벌 시장의 유통을 정상화시켜 진정한 글로벌 경제 회복에 기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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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23
  • 대만 국민당이 직면한 기회와 도전
    지난 9월 30일, 중국관영 신화통신은 ‘주리룬(朱立伦) 취임 후 국민당이 직면한 기회와 도전’이란 제목으로 된 중국 화중 사범대학 타이완(台湾) 및 동아시아 연구 센터 연구원인 슝싱(熊兴)의 글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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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03
  • ‘제3차 세계대전’-총포성 없는 코로나19와의 전쟁은 ‘지구전’?
    ● 철 민 요즘 전반 지구촌이 전쟁터로 되고 있다. 아니, 이 전쟁은 2020년 1월부터 진작 시작되었다. 여느 전쟁과 다르다면 이 전쟁은 총포소리가 없다는 것이다. 전쟁의 양상을 보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는 1931년 9월 일본관동군이 중국 동북을 삼켜 버릴 때의 진격 속도보다도, 소련군이 베를린을 향해 진격할 때의 속도보다도 훨씬 더 빨라 수개월 내에 지구촌 곳곳에 파급되었다. 인류와 질병과의 전쟁-이는 이미 세계대전으로 확장되었으며 지난 두 차례의 세계대전까지 합치면 이번의 이 전쟁은 ‘3차 세계대전’이라고도 할만도 하다는 것이다. ‘우한 폐렴’ 2019년 12월 31일, 중국의 우한(武汉) ㅡ 이 날 정오, 우한 시 위생건강위원회는 일종 원인불명의 폐렴 발생정황을 공개 통보하였다. 통보는 “현재 이미 27건의 확진사례를 발견했다. 이 중 7건의 증상은 아주 엄중하다”라고 밝힌 후 임상상태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예사롭지 않은 현상은 먼저 2개의 3급 병원인 후베이성 중서의 결합 병원(湖北省中西医结合医院)과 우한 시 중심병원(武汉市中心医院)에서 발견되었다. 12월 26일, 후베이 성 중서의 결합병원 호흡 및 중증의학과 주임 장지센(张继先)은 육속 여러 명의 기괴한 폐렴환자를 진찰했다. 우선 폐부 CT 결과가 같은 한 가정 세 식구였고 같은 병 증상이었으며 다음은 화난해산물시장(华南海鲜市场)의 1명 상인이었다. 12월의 우한은 조습하고도 음침하고 추웠다. 그 후 초보적인 조사결과에 의해 우한 화난해산물시장이 봉쇄되었다. 12월 29일, 후베이 성 중서의 결합병원에서는 재차 7건에 달하는 집거성 원인불명의 폐렴사례를 상급에 보고하였다. 후베이성과 우한 시 위생 건강 위원회 질병통제 처에서는 보고를 받자 즉시 우한 시질병통제센터, 진인탄병원장한수질병통제센터에 지시하여 이 병원에 대한 유행병학 조사를 진행하도록 했다. 그런데 당시 해당 환자들은 모두 순서에 따라 이미 각종 바이러스에 대한 검사를 마친 상황이었다. 이러자 12월 30일 아침 일찍 장딩위는 팀을 이끌고 가장 먼저 치료를 받은 7명 환자의 기관지 폐포 세척액을 채집해 이를 중국 과학원 우한 바이러스 검사소에 보내 검사하게 했다. 검사결과 이전에 진행했던 부분적 인식자(咽拭子) 검사결과가 음성으로 나온 것과는 달리 폐포 세척액의 SARS 핵산검사는 그 전부가 양성으로 나타났다. 한편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중국 질병통제센터는 실정을 요해한 후 그 이튿날 국가 위생 건강 위원회 전방 사업조가 첫 대의 항공편으로 베이징을 떠나 우한에 도착했고 뒤 이어 제 1진 전문가 팀도 우한에 도착했다. 12월 31일 오후, 이 직접보고 시스템을 통해 전국 방방곡곡에서는 ‘우한 장한 구 화난 해산물시장의 집거 성 폐렴 발생 상황’을 보고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우한은 삽시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중국은 제1 시간대에 우한의 상황을 WHO(세계보건기구)에 보고하였고 1월 5일, 세계위생조직에서는 처음으로 중국 우한에서 나타난 원인불명의 폐렴에 대해 정식으로 전 세계에 통보했다. 이어 해괴병 바이러스는 다른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도 나타나기 시작, 사람들은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에서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는 점을 감안, 이 해괴병을 ‘우한폐렴’이라고 칭하였다. ‘우한폐렴’을 ‘코로나19’로 개칭 ‘우한폐렴’-이는 서방세계가 중국을 공격함에 있어서 ‘핵폭탄’에 못지않은 아주 좋은 ‘여론의 무기’로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중국을 공격하는 ‘그룹’의 선봉에는 당연히 미국이란 아메리카합중국이 있었다. 가뜩이나 미중무역전쟁에 이어 중국에 각종 제재를 가하던 미국은 이 때라 하고 ‘우한폐렴’이란 것을 들고 나와 중국에 대해 무차별한 공격을 들이댔다. 그리고 이는 점차 정치적 색채를 띄기 시작했다. 이러자 국제사회는 무작정 전염병을 정치화하면서 중국을 공격하는 미국의 목적과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 WHO 역시 설사 그 해괴한 전염병이 중국 우한에서 기원됐다 하더라도 이를 ‘우한폐렴’으로 규명하는 건 적절하지 못하다고 인정했으며 이어 그 ‘우한폐렴’이란 명칭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란 명칭을 거쳐 최종 2019년에 발생한 해괴 질병이라고 해서 ‘코로나19’로 규명하였다. 세계서 가장 발전하고 강대한 나라-미국 보도에 따르면 지난 9월 24일까지 현재 전 세계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2억 845만 6436명이었고 누적 사망자는474만 6852만 명이었다. 이를 만약 전쟁터라고 하면 누적 474만 6852명은 말 그대로 전사자이고 누적 확진자 2억 845만 6436명은 상병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다. 그리고 그 전쟁 지속 기간 또한 국부전이나 단기전이 아닌 세계의 전쟁이고 장기전에 돌입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이상한 것은 이번의 이 ‘제 3차 세계 대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 과학기술과 의료시스템이 가장 발달한 미국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존스 홉킨스 대학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한국시간으로 지난 21일 09시까지 코로나19로 인한 미국의 사망자는 67만 6000명을 초과하였다. 이는 1918년 대 독감으로 인한 미국의 사망자를 초과했다고 한다. 미국은 분명 선진국이고 강대국이다. 공업으로 보면 미국 보잉회사의 여객기를 수입하지 않은 나라가 거의 없고 군사적으로 보면 또 마음만 먹으면 그 어떤 나라도 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질병 앞에서는 왜 쩔쩔 매는 미국으로 되고 있을까? 어찌 보면 미국이란 나라가 코로나19를 박멸하고 있는 것 대신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미국이라는 이 아메리카합중국을 삼켜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할 때 미국이라는 나라는 겉으로는 선진국이고 강대국 같으면서도 일찍 지난 세기 40년대 중국의 모택동이 “미 제국주의와 일체 반동파는 모두 종이범이다”라고 한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 본 동포투데이는 ‘미 코로나19 방역 붕괴된 5가지 폐단’이란 제목으로 된 중국관영 신화통신의 글을 전재했다. 이 글에는 코로나19 방역이 붕괴된 미국의 5가지 폐단을 나열됐다. 그것들로는 각각 “당파싸움이 크고 그칠 사이 없고 전국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것”, “‘벌크업(散装)’의 분권체제로 미국은 연방과 주정부가 각각 따로 놀고 행동하고 있다는 것”, “생명의 차별로 자본 우선과 이익 우선은 민중의 생명권·건강권을 평등하게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사회의 극단화, 일방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다는 것”, “‘뭐나 미국이 먼저다’ 라면서 타국과의 협력을 배척한다는 것” 등이었다. 신화통신의 글은 아주 명철하고도 조리성이 있는 것 같다. 그 무엇보다도 개인의 자유도 중요하겠지만 이번의 코로나19는 자기 개인 외 타인한테 전파시켜 극심한 피해를 줄 수 있으며 심지어는 타인의 생명도 잃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본인 개인의 극단화 자유보다는 타인의 건강과 생명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 외 미국의 분권체제와 자본 및 경제 이익 우선 그리고 공화당과 민주당사이 벌어지는 당파 싸움 또한 뭐나 미국이 우선이라는 것 등은 모두 코로나19 방역에는 불리한 요소라는 것을 망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뒤죽박죽이 된 미국- 이 거들먹거리고 파렴치한 미국의 부분적 정치인들은 국내 민중들의 불평불만의 시선을 해외를 돌리려고 시도하고 있다. 즉 코로나19의 기원을 놓고 중국에 대한 공격을 무차별적으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마치 코로나19로 인해 뒤죽박죽이 된 미국의 현황이 중국 때문에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코로나19의 기원은? 현재까지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19의 진정한 기원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의 모 실험실에서 유출되었을 가능성은 아주 적다는 판정은 내린 상황이다. 코로나19 출원처를 놓고 의혹되는 곳은 여러 곳이 된다. 중국 우한의 모 실험실이 한시기 의심되는 곳이었다면 미국도 몇 곳이 있었고 유럽에도 몇몇 지방이 있었다. 일찍 지난 해 11월 미국 질병통제센터는 2019년 12월 코로나19가 미국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결과를 공개했었다. 미국 질병통제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적십자회는 2019년 12월 13일부터 2020년 1월 17일까지 채취한 미국 전역 9개 주 주민들한테서 7389개의 혈액샘플을 채취해 미국질병통제센터에 제공, 검사결과 이 중 106개의 샘플에서 코로나19 항체가 발견되었다. 이는 코로나19가 일찍 2019년 12월에 미국에서 출현되었음을 설명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 11월 30일 미국 질병통제센터 연구일꾼들은 ‘임상전염병’ 간물에 발표한 글에서 일찍 지난해 12월 중순, 코로나19가 미국에서 출현, 이는 미국 관변 측에 보고된 미국 본토 코로나19 첫 사례보다 1개 월 가량 더 일찍했으며 중국에서 정식으로 보고한 첫 사례보다는 몇 주가 더 빨랐다. 보도는 갈수록 많은 증거들이 코로나19가 중국 외에서 발생한 시간이 중국보다 더 빠른 증거들을 열거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는 또 코로나19가 이미 알고 있던 시일보다 더욱 일찍 미국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제시했다. 아울러 바이러스가 미국에서의 전파가 이전에 밝혀진 데이터를 훨씬 초과했으며 또한 더욱 넓은 지역으로 전파되었다고 밝혔다. 이 외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미국에서 아주 일찍 나타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몇 개 더 있었다. 첫째 의혹: 미국이 공포한 자국 내 첫 코로나19 확진 사례는 지난 1월 하순 워싱턴 주에서 나타났다고 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주 지방관원의 말에 따르면 당지에서 한 사체를 부검해 본 결과 코로나19가 지난 1월, 지어는 그보다 더 일찍 캘리포니아 주 사회에서 전파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뉴저지 주 벨빌시의 마이클 멜럼 시장도 자신이 지난해 11월에 코로나19에 감염되었었다고 고백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미국의 코로나19 첫 전파시간은 부단히 앞당겨지고 있었다. 둘째 의혹: 코로나19가 폭발되던 초기 미국은 바로 인플루엔자 유행 계절이었다. 당시 미국의 몇몇 유행병학 전문가들은 미국에서 일부 인플루엔자로 진단한 사례가 코로나19와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하다면 미국의 인플루엔자 환자 중 도대체 얼마나 많은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있었는가? 셋째 의혹: 2019년 7월, 미국 위스콘신 주에서 신비한 ‘전자담배 폐렴’이란 전염병이 폭발적으로 발생했다. 그 병원체 원인을 알 수 없었고 증상 또한 코로나19와 거의 비슷했다. 2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전자담배가 왜 현재에 와서 집중적으로 폐렴을 일으켰을까? 넷째 의혹: 미국의 수렵행위로 바이러스가 인간한테 전파됐을 가능성이다. 미국은 매년 1560만 장의 수렵증을 발급한다. 수렵으로는 노루, 멧돼지, 산양과 각종 야생 조류 등이며 매 수렵계절이면 이상의 수렵물들이 수백 만 마리에 달한다. 하다면 미국 국내의 수렵행위로 동물의 바이러스를 인간한테 전파되게 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섯 번째 의혹: 2019년 7월, 미국 포트 데트릭 생물연구 기지가 임시 폐관했고 그 부근의 한 퇴직인원 구역에 호흡기 계통 질병이 폭발적으로 발생하면서 54명이 증상이 나타났고 2명이 사망했다. 2020년 3월, 미국의 한 네티즌이 백악관 사이트에 이 생물연구 기지가 폐관하게 된 진정한 원인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바이러스 누설의문에 한해 미국정부는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또 있다. 2019년 연말 이래 미국에서는 1만 8000명이 이른바 ‘독감’으로 사망, 이 중 적지 않은 사망자는 독감이 아닌 코로나 19로 사망되었다는 것이 이미 증실 되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충분한 증거를 갖고 2020년 1월 11일부터 미국이 연구개발한 백신의 바이러스 샘플이 미국 본토에서 온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미국정부는 줄곧 세계에 향해 코로나19의 진실을 감추면서 “도둑이 도둑이야” 하고 소리를 지르고 “도둑이 매를 드는 격”이 되고 말았다. 한편 바이러스 샘플이 어디에서 왔든 중요한 것은 미국은 일찍 2020년 1월 11일 전에 벌써 코로나19의 엄중성을 잘 알고 백신 개발을 서둘렀다는 것이 유력한 증거로 되고 있다. 이는 세계를 쇼크 시켰다. 그리고 이는 이른바 미국이 주장하던 ‘중국의 정보 감추기’ 논조와 자체 모순에 빠졌으며 더 이상 자기들의 논조를 주장하기도 우습게 되었다. 다음의 의혹은 미국이 코로나19 기원추궁을 정치화로 내몰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중국을 무조건 비호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 우한의 실험실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출되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아니며 WHO의 조사 역시 100% 철저하고 정확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적어도 2020년 초 중국 우한에서의 코로나19 대폭발은 이를 부정할 수 없으며 실험실 유출을 의심할 수도 있다고 보아진다. 하지만 이러한 의혹은 중국 뿐 아니라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국가들에서도 발견되었고 미국이란 아메리카 합중국에서는 아주 많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이 단지 의혹을 갖고 기정사실화하면서 더군다나 그것을 정치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정보 부문이 아닌 미 중앙정보부를 동원시킨다는 것이 의문스럽다. 올 2월 바이든은 대통령에 취임하자 바람으로 미 중앙정보부에 지령을 내려 “90일 내로 코로나19 출처를 밝히라”했다. 과학 분야가 아니고 왜 하필이면 중앙정보부일까? 여기에 바로 정치인들의 또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었다. 의도적으로 꼬투리를 잡아 중국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 중국의 발전을 저애하려는 정치 외교적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국이 싫어하는 동방 대국-중국 미국이 중국을 타격하고 고립시키려고 하는 목적은 단지 코로나19만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기실 미국의 전략은 중국이 자신을 추월하여 미국으로부터 세계패권을 앗아 갈까봐서이다. 미국이란 나라는 뭐나 자신의 나라고 우선이고 그 어떤 나라도 자기를 추월하면 안 된다고 부르짖는 나라이다. 지난 세기 80~90년대 일본의 발전이 빨라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되니 미국은 각종 구실을 붙여가며 무역 등 여러 분야에서 제한하고 제재하고 하면서 일본의 발전이 주춤하게 했었다. 오늘 날 미국은 역시 중국의 발전이 빨라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자 재차 일본을 대하듯 중국의 발전을 저애하려고 시도하고 있음이 불 보듯 뻔하다. 헌데 미국은 중국을 잘 모르고 있다. 아니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중국은 필경 인구 1억 정도를 가진 소국인 일본이 아닌 것이다. 인구 14억을 가진 거대한 대륙의 국가인 중국, 미국은 결코 중국의 발전을 가로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중국엔 없는 것이 거의 없다. 석유, 천연가스, 희토류 그리고 세계 으뜸을 자랑하는 제조업과 세계와 사통 발달한 무역업 또한 거대하고도 무궁무진한 내수시장…아무리 미국이란 나라가 세계 패권을 휘두른다고 해도 호락호락 쓰러질 중국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란 나라는 5000년이란 역사와 끈질기고도 인내성이 있는 전통이 있다. 언제 어디서 누구의 입으로부터 터져 나온 얘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우스운 이야기 한 컬레가 있다. 옛날 일본인 1명, 조선인 1명과 중국인 1명이 시합을 했는데 시합의 내용인 즉 누가 돼지우리에서 더 오랫동안 엎드려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중일 3국의 3명 남자가 돼지우리에 들어가 엎드려 있기를 시작했는데…그 더럽고도 역겨운 냄새에 버티지 못하고 제일 먼저 뛰쳐나온 사람은 일본인 사내였다. 다음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사람은 조선인이었다. 너무도 참기 어려운 역겨운 냄새 때문이었다. 그럼 세 번째로는 당연히 중국인이 뛰쳐나올 차례였다. 헌데 아니었다. 돼지가 뛰쳐나왔던 것이다. 돼지우리보다도 중국인한테서 냄새가 더 난다면서 말이었다. 이는 일종 중국인을 비웃고 모욕하는 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고 분석해보면 중국인한테 그만큼 인내심이 있다는 말로도 된다. 성격이 얄미우면서도 참을성이 없는 열도인보다는, 그리고 직설적이지만 참을성이 그만큼 적은 반도인 보다는 그래도 느긋하게 참고 견디는 대륙인이라는 해석으로도 된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의 어느 겨울, 필자가 살고 있던 연길시의 역전광장에서 한 노숙인이 동사했다. 헌데 노숙인으로 거지행색을 하고 있던 그 동사자의 몸에서 중국 돈 2만 위안 이상이 나왔다는 것이다. 돈 2만 위안 이상을 갖고도 여관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동사했다? 이는 ‘외상이라면 소라도 잡아먹는다’는 것처럼 웬만한 사람들은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 이해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일들은 중국인한테는 그렇게 너무 생소한 일이 아니며 중국인들은 크게 놀라거나 희한해 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중국인은 이런 사람들이며 그 민족은 이런 민족이다. 그리고 얼어 죽으면서까지 여관에 가지 않고 돈을 아끼는 인내력, 돼지우리에서 돼지가 뛰쳐나갈 정도로 참을성이 있는 끈질김 - 중국이란 바로 이런 인종들로 모여 사는 나라이다. 동사하면서도 돼지우리에서 돼지가 도리어 뛰쳐나갈 정도로 참고 견디는 데는 꼭 모르는 아니 영영 알 수가 없는 그들만의 깊은 생각이 있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영영…그리고 또… 그런데 미국이란 나라는 중국인과 중국이란 나라에 대해 아주 우습게보고 있다. 아직도 100여 년 전의 그 ‘동아 병부’로 여기는 것 같다. 그렇다. 100여 년 전 중국은 확실히 ‘동아 병부’로 불릴 정도로 무능하고도 몽매했으며 또한 파워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중국은 바로 그런 치욕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유능해졌고 경제적으로는 부유하고 국방적으로는 강해질 수가 있었으며 국민의 애국심은 중국을 이끌고 있는 공산당의 주위에 똘똘 뭉치게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중국은 절대 타국을 건드리지는 않을 것이지만 가령 타국이 중국을 건드리거나 중국의 핵심이익을 해치기만 하면 시진핑 주석이 언급한 것처럼 긍정코 ‘머리가 다치고 피를 흘리게 될 것’이란 것은 아주 의심할 바가 없는 것이다. 가령 미중 전쟁이 터진다면? 가령 중국과 미국이 전쟁을 하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필자의 판단이라면 중국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을 건드린다는 것은 거의 100% 불가능하며 아직은 그럴 파워도 없으며 또한 중국은 그런 계획조차 없을 것이 분명하다. 하다면 미국이 태평양을 건너와 중국을 직접 때리거나 중국의 주변국을 발판으로 중국을 건드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필자의 분석으로는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이 100여 년 전의 중국이 아니며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사 전쟁에서 승리하여 중국을 정복시켰다 하더라도 미국이 당하게 될 손실 역시 어마어마할 것은 불 보듯 뻔 한 것이다. 남을 물에 빠지게 하려면 자기 또한 바짓가랑이가 물에 젖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중국은 이미 강대해졌으며 미국과 대등하게 어깨 겨룸을 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몇 가지 면에서는 필경 우세가 있으며 만약 중국의 본토거나 영해 혹은 영공이라면 그 우세는 더욱 뚜렷한 것이다. 그렇다. 중국은 지금 이미 강대해졌으며 앞으로는 더욱 강대해질 것은 불 보듯 뻔 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지금 그것을 우려하고 두려워하고 있으며 앞으로 날이 갈수록 미국한테는 이러한 우려와 두려움도 더 해질 것이다. 한편 중국이 강대해졌다는 것은 이번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도 증명되었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사태가 폭발적으로 발생한 뒤 중국은 단 수개 월 만에 그 확산세를 잡았는가 하면 우한의 안정을 되찾았으며 그 뒤엔 코로나19의 ‘불씨’가 되살아나면 아주 빠른 시일 내로 그것을 송두리째 박멸시키곤 하여 ‘코로나19 확진사례의 0기록’을 실현하군 했다. 이에 반해 미국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미국의 현실에 대해서는 세계가 다 아는 만큼 이 글에서 구구히 떠들지 않겠지만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미국은 큰 대가를 치렀으며 그 실패 또한 아주 크다. 앞으로 미국이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종국에는 승리를 가져 오겠으나 그 때 가서 미국은 승리했다고 경축할 만한 기분은 못될 것이다. K 방역과 한국의 코로나19 확산 실태 다음 필자는 한국계 중국인이기에 한국의 코로나19와의 전쟁 상황에 대해 수수방관할 수가 없다. 코로나19와의 전면 전쟁에서 한국은 비교적 선진적인 의료시설과 우수한 의료진의 노력으로 비교적 효과적으로 코로나19의 ‘기습’을 제압하고 있는 나라 중의 하나라는 느낌이 든다. 특히 2020년 2월 한국 대구에 있는 신천지 교회를 발단으로 코로나19가 폭발했을 때 한국의 보건당국에서는 신속하게 행동, 가장 우수한 의료진과 선진치료설비를 한국에 급파하여 약 한달 여의 시일을 거쳐 대구에서의 확산세가 전국에 파급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고 통제하였으며 국제사회로부터 ‘K 방역’이란 명칭을 받을 정도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대구에서의 방역이 성공하고 또 서울에서의 콜센터 방역까지 효력을 보면서 한국 내 코로나19 일일 간 확진사례가 두 자릿수에서 오르내리자 한국인들의 어느 정도 콧마루가 높아진 것 같았다. 이른바 ‘K 방역’에 대해 크게 떠들며 자랑했는가 하면 확산세가 심해지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비아냥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코로나19에 대한 강한 통제 조치를 취하고 있는 나라(예하면 중국)에 대해 “외국인에 대해서까지 격리시킨다”, “봉쇄가 너무 심하다”느니 하면서 ‘간섭’하기도 했다. 다른 분야에서도 그러하겠지만 코로나19 방역에서는 각 나라마다 자국으로서의 사정이 있고 그 조치 또한 다르기 마련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한국은 코로나19의 국내 상황을 두고도 당파들 간의 싸움이 격렬했다. 그리고 지난 2월 말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개시할 당시 많은 이들이 백신에 대한 믿음성에 의심하면서 백신 접종을 강조하는 문재인 대통령한테 어떤 사람들은 “대통령부터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여 그 효율성을 점검해야 한다”고 떠들어 대기도 했다. 그럼 반대로 대통령부터 백신 접종을 했으면 이런 사람들은 또 “대통령이 특수화를 부린다”고 집중포화를 퍼부을 것이 불 보듯 뻔 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통령의 행위가 맞고 그름을 떠나 대통령 흠집 잡기에 혈안이 된 것이다. 이 외, 어떤 당파나 계층의 사람들은 코로나19로 한국사회가 혼란해지는 것을 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결과가 초래되어야 상대방을 역경에 몰아넣고 자신들이 원하던 ‘야망’을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다는 조심스러운 분석도 해보게 된다. 다음, 역시 조심스럽게 건의해보고 싶은 것은 이른바 ‘도시봉쇄’이다. 코로나19 예방통제에 있어서 ‘도시봉쇄’란 어딘가 가혹하고 강제성이 없지 않아 있다는 느낌이다. 그 전형적인 나라는 역시 중국이며 중국은 지금도 그 어디에 확산세가 보이면 ‘도시봉쇄’ 조치를 취한다. 하지만 그것이 제일 빠르고도 효과적인 조치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또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땅이 넓고 14억의 인구를 가진 중국으로서는 일단 코로나19가 대규모로 확산하면 수습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를 것이 뻔하다. 일찍 2020년 1월 23일 ‘우한봉쇄(武汉封城)’를 앞두고 우한에서는 500만 인구가 도시를 탈출하여 타 지방으로 빠져나갔다. 당시 중국이 우한에 대한 ‘도시봉쇄’ 조치를 취하지 않았더라면 그 뒤 중국의 사태는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었다. 중국은 막부득이한 지경에 이르자 과단한 조치로 이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도시봉쇄’ 조치의 효과에 대해 유럽의 독일,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선진국들도 뒷 따라 ‘도시봉쇄’ 조치를 취하여 정도 부동한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지금 코로나19의 일일 확진자, 누적 확진자 및 일일 사망자와 누적 사망자가 가장 많고 심각한 나라는 미국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여전히 ‘도시봉쇄’ 조치를 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마스크 착용령’도 무색해 질 정도로 혼란의 계속이다. 이것이 바로 자유와 민주라는 건가?! 필자는 이는 자유와 민주주의 보다는 무정부주의와 뒤죽박죽과 더 가깝다고 인정하고 싶다. 그럼 한국은 왜 ‘도시봉쇄’ 조치를 실행하지 않을까? 코로나19 확산이 아직은 덜 심각하다고 여겨서일까? 아니면 중국의 조치 방식이 아닌 미국의 조치 방식을 따른다는 것에서일까? 맞다. 한국이 아직은 미국처럼 코로나19 확산이 극도로 치달아 오른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한국의 절대 다수의 국민들의 자각적인 방역의식이 강하며 마스크 착용, 손 씻기와 거리두기 등 방역 상식들이 기본상 잘 지켜지고 있으며 정부와 지방의 노력 또한 헤아릴 수 없이 각고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토대에서 가령 중국처럼 ‘도시봉쇄’ 조치를 강행했더라면 국민들이 마라톤식 기나긴 시일의 고생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며 적어도 자영업자들의 손실 또한 오늘의 이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4일 24시까지 인구 14억을 가진 중국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38명, 본토 신규 확진자는 10명인 반면 같은 시각 인구 5000만 명인 한국의 경우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3273명으로 코로나19가 발생한 뒤의 최고기록을 작성했으며 이 중 대부분이 본토 확진자였다. 2020년 1월부터 개시된 코로나19와의 전면전은 약 1년 하고도 8개월 째 접어들었다. 전쟁기간 인류는 별의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잡기에 진력했다. ‘도시봉쇄’,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와 깨끗하게 손 씻기, 그리고 자가 격리와 백신 개발 등으로 코로나19와 싸웠으며 그 형태는 이미 ‘지구전’의 양상을 띠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또한 인류의 방역벽을 뚫기 위해 변이 바이러스 형태로 개량되어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그럼 코로나19와의 전쟁의 끝은 언제일까? 솔직히 말해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비해서일까? 최근 들어 싱가포르 같은 나라는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줄어들지 않음에도 각종 규제와 조치를 완화시키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를 ‘독감’ 정도로 취급, 그것과 공생하면서 국민이 받는 인명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꾀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이 서로 싸우지 않고 손을 맞잡고 잘 합작하기만 해도 코로나19와의 ‘제3차 세계대전’은 끝이 보이거나 그것이 가까워 질 수도 있을 것이다.(필자는 동포투데이 논설위원임)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1-09-29
  • 中 GDP 10위 도시 소비 활력, 3개 도시 소비 만억 위안 돌파②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세계 평균 기준은 GDP 대비 주민소득 평균 비중이 약 60%로 중국 국내 GDP 10대 도시는 이보다 높지 않다. 이 같은 현상이 표본가구 조사법에 따른 표본 차이와 관련이 있는지는 학계의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된 인식은 주민들의 소비력 향상은 내수 확대의 관건이며 국제 소비중심 도시를 건설하는 기초 지표라는 것이다. 앞으로 소득분배 개혁, 부동산 규제 등을 통해 어떻게 주민 소득을 올릴 수 있을지는 지방정부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이다. 도시 주민의 가처분 소득 올리는 것이 관건 인구가 대도시로 집중되는 배경에서 21세기경제연구원은 중위권 소득층 확대의 최대 기초인구 공급원은 도시인구가 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미 도시에 정착한 농촌의 노동력 이전도 포함되고 있다. 2010부터 2020년까지의 데이터 대비, 도시 주민의 가처분 소득 증가 속도는 10개 도시가 모두 100%를 넘었으며 이 중 쑤저우(苏州)가 가장 빨라 143%에 달했고 우한(武汉)과 상하이(上海)가 각각 142%, 140%로 2~3위였다. 그리고 10개 도시 중 연 평균 9% 이상 성장한 도시로는 쑤저우, 베이징(北京), 항저우(杭州), 상하이와 난징(南京)이다. 2011년 쑤저우는 “도농 주민의 소득 증대와 인민생활 향상에 관한 실시 의견”을 내놓으면서 ‘소득이 비교적 빠른 성장 메커니즘’을 분명히 했다. ▶경제전환 가속화 ▶주민 소득증가 통로 확대 ▶기업 근로자 임금분배 지도 강화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2017년, 쑤저우에서는 “지속적인 도농 주민 소득수준 향상에 초점을 맞춘 업무 의견’을 발표하고 “2020년 도시와 농촌의 1인당 가처분소득이 2010년보다 2배 증가하고 지역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주민소득의 비중이 점차 증가한다”는 총체적 목표를 제시했다 이 지표로 볼 때 쑤저우는 2020년까지 ‘소득 2배’란 목표를 무난히 달성했다. 이 밖에 21세기 경제연구원은 쑤저우 도시와 농촌 주민의 가처분 소득이 높아지고 지방 경제의 활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예를 들면 최신 ‘백강현(百强县)’ 랭킹에서 보면 알 수 있다. 즉 쑤저우 산하에 있는 쿤산(昆山), 장자강(张家港), 창수(常熟), 타이창(太仓) 등이 이름을 올렸으며 이 중 쿤산은 연속 17년간 전꾸 100강 현 중의 1위를 차지했다. 쑤저우 경험에 따르면 도시소비 활성화의 관건은 여전히 주민들의 경제 소득수준을 더 다원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있는 것이다. 도시 주민의 가처분소득을 보면 2010년 현재 상하이, 선전, 광저우, 항저우 등 10개 도시 중 4곳만이 3만 위안을 넘었고 충칭의 도시 주민 가처분 수입은 겨우 1.75만 위안이었다. 하지만 2020년에는 청두와 충칭 외 다른 도시들은 모두 5만 위안을 초과, 그 중 상해와 쑤저우가 7만 위안을 넘어섰다. 이 수치로 볼 때 서부지역은 여전히 중위권 소득층 규모를 확대하는 중요한 지역으로 국제소비중심도시를 건설하고 육성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될 것 같다. 중국 상무부가 충칭을 제1차 육성건설 명단에 포함시킨 것도 중위권 소득층의 증가 배경 아래 현지에서 비교적 큰 소비향상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어떻게 중국의 중위권 소득 그룹에 대해 더욱 과학적인 구분을 진행할 것인가? 예를 들면 국가 통계청에서 사용하는 ‘5등분’ 분조법, 즉 최저 소득에 따르는 것이다. 중하위권 소득, 중위권 소득, 중위권 소득과 고위권 소득을 다섯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 각각 20%씩 배치, 반면 중하위권 소득, 중위권 소득- 중위권소득은 전체적으로 ‘중위권 소득층’으로 분류된다. 2020년의 데이터 추산으로 보면 저소득권 그룹은 1인당 평균 가처분소득 7869위안, 중간 하위권 그룹은 1인당 평균 가처분소득이 1만 6443위안이었다. 그리고 중간 소득권 그룹의 1인당 평균 가처분소득은 2만6249위안, 중간 상위 소득권 그룹은 1인당 평균 가처분소득 4만 1172위안이었으며 고 소득권 그룹의 1인당 평균 가처분소득 8만 0294위안이었다. 이 기준으로 이들 10개 도시를 계산하면 충칭을 제외한 9개 도시의 도시 거주민 소득은 모두 ‘중간 상위 소득권’에 이르렀으며 고 소득권에 가장 근접한 도시는 상하이로 이 목표와 3857위안의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평균법을 적용한 획정기준이 실제 소득권별 인구비율을 반영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21세기 경제연구원은 국제소비중심도시 건설의 배경 하에 소비의 업그레이드를 목표로 삼았다. 전체 중위권 소득의 확대뿐 아니라 중간 소득그룹과 중간 상위소득 그룹의 규모를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다. 10대 도시의 전체 소비 규모 지속 증가 지난 9월 3일, 패션무역박람회에 참가한 ‘다국적 기업 관점에서 보는 서비스 무역 편리화 최고 포럼’에서 중국 국무원 발전연구센터가 발표한 ‘국제소비중심도시 이론, 정책과 실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140개 최대 소비도시 인구가 전 세계 13%를 차지하고 있지만 33%가 넘는 전 세계 소비시장 점유율, 36%가 넘는 GDP를 기여하고 있다. 중국 국내의 GDP 10대 도시도 국내 소비가 가장 활기를 띠는 도시이다. 사회소비재 소매 총액은 도시 소비의 활력을 측정하는 중요한 지표이다. 2010~2020년 수치 대비 누적성장이 가장 빠른 곳은 충칭시로 310%였으며 다른 9개 도시보다 현저히 높았다. 다음 청두는 236%로 2위를 차지했고 난징과 쑤저우도 각각 229%, 220%의 빠른 성장률을 보였다. 총량으로 따지면 2020년 한 해 소비재 소매판매액은 베이징, 상하이, 충칭 등이 각각 1조 위안을 넘었다. 21세기 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21년 국제소비중심도시 평가 보고서’에서도 베이징과 상하이는 각각 전체 순위에서 1, 2위를 차지하며 강한 소비 활성화와 소비 공급 및 그 수요 능력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2021~2022년쯤에는 광저우와 선전도 소비재 유통 총액이 조 단위의 또 다른 도시가 될 전망이다. 중위권 소득층의 꾸준한 성장의 배경에는 소비 동력이 직접적으로 소비재 소매판매의 증가로 이어질 것이며 이는 이 10개 도시의 경제수치에서 최근 몇 년간 반복적으로 언급돼 온 ‘소비향상’ 추세가 반영된 것이다. 다음 지방정부는 여전히 합리적인 집값 통제와 같은 소비 억제의 요소를 발생시키는 연구를 필요로 한다. 만약 합리적인 집값 조절이 있다면 중위권 소득층의 비중 성장을 촉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된다. 통계에 따르면 소비재 소매 판매는 지역 주민들의 기여에서 비롯되며 관광수입도 일부 포함된다. 관광객이나 숙박에서 쓰는 돈이 영향을 받지 않았던 2019년에는 총 6억 5700만 명이 찾은 충칭의 관광객들도 소비재 판매 증가를 간접적으로 이끌었다. 이는 더 많은 소비현장을 제공하는 것이 지방소비 활성화를 위한 또 다른 효과적 조치라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21세기경제연구원은 GDP가 높은 지역일수록 공동부유를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이 좋아 신규 소비를 부추길 잠재력이 높다고 보고 있다. 대 도시로 인구가 몰리는 배경에는 도시 주민들이 중위권 소득층의 주력을 형성하고 있다. 그 소득 수준은 도시의 소비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로 된다. 미래에는 해당 도시가 반드시 이 지역 중위권 소득 그룹의 구조를 분석하고 연구해야 하며, 중위권 소득 그룹의 추진을 통해 중위권 소득 그룹의 확대를 추진해야 한다. 특히 중상위권 계층의 지역을 넓혀 도시 소비의 활력을 북돋우고 국제소비중심도시를 건설하는 데 더욱 많은 동력원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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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21-09-21
  • 中 GDP 10위 도시 소비 활력, 3개 도시 소비 만억 위안 돌파①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중위권 소득층의 비중을 확대하고 그 주체가 올리브형 사회구조를 형성하는 것은 공동부유의 목표를 달성하는 열쇠가 될 뿐만 아니라 국제 소비중심도시 건설의 중요한 지표이기도 하다. 중위권 소득층 확대에 따라 도시 소비에 새로운 증량을 가져와 수요 단으로부터 더 큰 소비 활성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3일, 중국 상무부는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광저우(广州), 충칭(重庆)과 톈진(天津)에서 먼저 국제 소비중심도시 건설과 육성사업을 전개하기로 확정했다. 이 밖에도 국내 20개 가까운 도시가 ‘14,5’ 계획 기간 또는 2035년 목표에 이 건설 임무를 실행할 것을 제시했다. 그것인 즉 상하이, 베이징, 선전(深圳), 광저우. 충칭. 쑤저우(苏州), 청두(成都), 항저우(杭州), 우한(武汉)과 난징(南京)을 모델로 2010년과 2020년 두 개의 년대를 선택하여 10년 동안 이들 도시의 경제, 인구와 소비상의 변화를 비교하였다. 21세기경제연구원이 보고서에서 보여준 것은 2020년 GDP 10대 도시들로서 이들 도시의 소비활력을 주민 소득으로 해석했다. 주민 소득분배 구도 여전히 최적화가 필요 중위권 소득층의 확대에 따라 새로운 소비수요가 확대되면서 이는 GDP 10대 도시의 소비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중위권 소득층의 규모를 따지기 전에 소득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면서 21세기경제연구원은 이를 근거로 들었다. GDP 총량과 인구가 관건이다. GDP가 높은 지역일수록 공동부유를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이 좋아 신규 소비를 부추길 잠재력이 높은 것이다. 10년 동안 만억 위안의 GDP 도시가 분명히 늘어났다. 2010년, 만억 위안의 GDP 도시는 상하이, 베이징과 광저우밖에 없었다. 2020년 현재 만억 위안의 GDP 도시는 23개에 이른다. 이 중 베이징과 상하이가 3만억 위안, 2만억 위안 이상인 도시가 6곳에 이르렀다. 이 GDP 10대 도시 중 청두의 GDP 증가 속도가 가장 빨라 10년 간 누적 성장률이 219%, 충칭이 210%, 선전과 남경이 모두 189%에 이르렀다. 상대적으로 성장률이 낮은 도시는 상하이와 쑤저우로 10년 간 각각 116%, 119%로 증가했다. GDP 성장을 촉진하는 요인은 여러 방면에서 나온다. 경제 발전의 자체 동력 외 행정구역 조정을 통해 GDP 규모를 늘린 것도 그 요인이다. 청두는 2016년대 젠(简阳)양을 접수 관리한 뒤 GDP 총량에서 우한 추월을 달성했다. 장기거주 인구 방면에서는 제6차 인구보편조사의 데이터로 비교하니 10개 도시 중 세 자리씩 성장한 도시는 각각 선전, 청두와 광저우였다, 그 중 선전의 10년 장기거주 인구는 68% 증가해 연평균 5.35%씩 증가했다. 그리고 1인당 GDP 증가 속도는 2010-2020년 기간 충칭이 179%로 10개 도시 중 가장 높았다. 난징과 우한은 2-3위를 차지, 증가 속도는 각각 148%, 123%였다. 충칭이 다른 도시와의 격차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도 역시 높은 GDP 증가 속도와 낮은 인구 증가속도의 공통된 결과였다. 즉 충칭의 GDP 증가 속도는 10개 도시 중 2위인 반면에 인구 증가 속도는 상하이보다 높은 10개 도시 중 9위였다. 다음 광저우와 선전의 성장 속도는 58%와 70%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는 10년간 두개 도시의 인구 증가와 관련이 있다. 제6차 인구보편조사에서의 데이터를 비교하면 광저우와 선전의 장기거주 인구는 각각 47%와 70% 증가해 10개 도시 중 증가 속도가 가장 빨랐다. 1인당 GDP 총량을 보면 2010년 10개 도시가 모두 10만 위안 이하였으나 2020년에는 8개 도시가 10만 위안을 넘었으며 이 중 베이징은 16만 4000 위안으로 현재 청두와 충칭만 10만 위안을 밑돌고 있다. 그러나 1인당 GDP의 성장은 한 지역이 함께 잘사는 정도를 반영할 뿐이다. GDP 성장이 주민의 소득 향상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은 이 수치로 단순하게 추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도시 1인당 가처분소득에 도시 장기거주인구/GDP를 곱한 계산방법을 가지고 있다. GDP 대비 주민의 가처분 총수입 비중을 가늠하면 GDP 10대 도시 중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청두시로 57.4%를 기록했고 가장 낮은 곳은 우한시로 39.8%를 차지했으며 2010년과 2020년의 비율과 비교했을 때 충칭을 제외한 다른 도시들의 점유율이 조금씩 상승하고 있고 가장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광저우시는 16%포인트 가까이 올랐다.(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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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19
  • 코로나19 사망자 65만 명 초과! 美 정부 국민께 할 말은?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지난 12일, 중신망은 ‘코로나19 사망자 65만 명 초과! 美 정부 국민들에게 할 말은?’이란 제목으로 중국 산시성(陕西省) 작가협회 레이중저(雷钟哲)작가의 글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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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기고
    2021-09-14
  • 스포츠 실력 향상은 국력 향상의 축소판
    ● 철 민 지난 8일, 2020 도쿄 올림픽이 17일간의 열전 끝에 그 긴장하고도 화려하던 순간 순간의 막을 내렸다. 올림픽은 막을 내렸지만 그 여운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중국 선수단은 금메달 38매, 은메달 32매와 동메달 18매(미국은 금메달 39매, 은메달 41매와 동메달 33매로 종합 1위)를 획득해 종합 2위에 놓이면서 금메달에서는 스포츠 강국인 미국과 단 1매의 차이로 거의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다. 종합 2위, 이는 중국 선수단 총체 실력의 합리적인 반영인가 아니면 실력 이상의 반영인가 또한 반대로 실력 이하의 반영인가? 필자가 인정하건 대 이는 자로 잰 듯이 정확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적으로는 중국 선수단 총체 실력의 합리적이고도 정확한 반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필자는 스포츠 실력의 향상은 국력 향상의 축소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필자가 스포츠 실력의 향상은 국력 향상의 축소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다. 그 여러 가지 요소 중 역사적인 요소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하지 아니 할 수 없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중국의 올림픽 출전 역사 대사기 중국이 제일 먼저 올림픽에 참가한 것은 1932년 7월(현대 올림픽의 기원은 1896년임)이다. 당시 중국 대표단은 도합 6명의 대표단 성원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제 10 회 올림픽에 파견, 당시 선수로는 류창춘(刘长春) 단 1명뿐이었다. 류창춘은 올림픽에서 원래 3개 종목의 육상 단거리 경기에 참가하려고 했지만 여로의 피로 때문에 400미터 종목은 포기하고 100미터와 200미터에만 참가하여 각각 5등과 6등을 하였으며 결승에 오르지도 못했다. 초라했다. 인구 4억 명에 달하는 대국인 중국은 스포츠에서도 서방세계와는 아주 까마득하게 거리가 먼 후진국이었고 말 그대로 ‘동아병부(東亞病夫)’였다. 그 뒤 새 중국이 창립되어 처음으로 올림픽에 참가한 것은 1952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개최된 제 15회 올림픽이었다. 당시 중국은 비교적 늦게 올림픽 참가 초청을 받았다. 중국은 40명에 달하는 대표단을 파견하였지만 헬싱키에 도착했을 때는 올림픽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 오직 우촨위(吴传玉)만이 100미터 배영 경기에 참가했다. 경기 성적은 1932년의 로스앤젤레스에서의 결과와 별로 다를 바 없었다. 한편 그 당시 국제올림픽 위원회의 많은 인사들이 ‘두개 중국’론을 주장하면서 새 중국과 타이완(台湾) 모두 올림픽에 참가하게 하려고 하자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성명을 발표하여 1956년 호주 멜버른에서 개최되는 제 16 회 올림픽 참가를 거절하였으며 1958년 8월 19일에는 성명을 발표하여 아예 국제올림픽 위원회에서 퇴출해 버렸다. 이어 중국은 그 뒤 1960년 8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있은 17회 올림픽, 1964년 10월 일본 도쿄에서 있은 18 회 올림픽, 1968년 10월 멕시코 멕시코 시티에서 있은 19회 올림픽, 1972년 8월 독일 뮌헨에서 있은 20회 올림픽과 1976년 7월 캐나나 몬트리올에서 있은 21회 올림픽에 불참하였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각종 월드컵이나 선수권에 참여하는 것으로 스포츠의 종합실력 향상에 여러 모로 노력을 쏟았으며 멀지 않은 장래에 기어코 올림픽에 복귀하려는 ‘야망’을 불태웠다. 그도 그럴 것이 스포츠의 종합 실력은 오직 올림픽에서만이 체현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중국은 너무 서두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점진적으로 스포츠 실력을 쌓아 가기만 했다. 이렇듯 중국 정부와 중국인민들은 먼 앞날을 내다보며 장기 타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1979년 11월 26일,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중국 올림픽위원회의 합법적 권리를 회복시킴과 아울러 타이완은 오직 중국 타이베이 올림픽위원회(台北奥委会)의 명의로 올림픽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그 몇 달 뒤 중국은 처음으로 13회 동계올림픽에 참가했다. 1980년 7월, 구소련 모쓰크바에서 22회 올림픽이 개최되게 되자 중국은 참가하기로 하고 만단의 준비를 갖추었다. 헌데 세상 풍운을 예측할 수 없다고 각종 원인에 의해 중국은 올림픽 정신과 국가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모쓰크바 올림픽에도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중국 올림픽 선수단은 1980년 4월 24일 국가올림픽위원회가 발부한 공고에 따라 모쓰크바 올림픽 참여를 포기하였다. 1984년 7월 2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컬리시엄에서 있은 23회 올림픽 개막식에는 중국 선수단이 ‘중화인민공화국’이란 간판을 든 소녀의 뒤에서 진붉은 오성홍기를 추켜들고 입장했다. 이 대회에서 중국은 도합 225명에 달하는 선수단을 파견했다. 축구, 필드 하키 볼, 복싱, 승마와 현대 5종을 포함한 16개 종목에 참가하였으며 7월 29일, 푸라두 사격장에서 울린 중국 선수 쉬하이펑(许海峰)이 울린 총소리가 중국 올림픽 사상의 금메달 ‘0의 돌파’를 실현했다. 즉 이 금메달은 1932년 중국이 처음으로 올림픽에 참가한 이래의 첫 금메달이었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중국은 도합 금메달 15매, 은메달 8매와 동메달 9매를 따내 종합 4위에 올랐으며 ‘동아병부’란 오명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당시 스포츠 강국 미국의 벽은 높았다. 이 대회에서 미국은 도합 금메달 83매, 은메달 61매와 동메달 30매를 차지하며 금메달 수량 상 종합 2위인 루마니아(금메달 20매)보다 63매나 더 많았다. 한편 올림픽 대회에서의 중국의 굴기는 우연한 것이 아니란 것은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인 사실로 입증되었다. 물론 자그마한 굴곡은 있었지만 올림픽에서 중국의 상승세는 지속되었다. 1984년의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이후 올림픽 대회에서 중국의 메달 획득 상황은 다음과 같다. 1988년 9월, 한국 서울에서 개최된 24획 서울 올림픽 당시 중국은 301명의 선수단을 파견, 중국 선수단은 금메달 5매, 은메달 11매와 동메달 12매를 획득하면서 종합 8위를 기록했다. 1992년 7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25회 올림픽에서 중국 선수단은 금메달 16매, 은메달 22매와 동메달 16매로 종합 4위를 차지했다. 1996년 7월 미국 애틀란타에서 개최된 26회 올림픽에서 중국 선수단은 금메달 16매, 은메달 22매와 동메달 12매를 따내면서 종합 4위에 올랐다. 2000년 9월, 호주 시드니에서 개최된 27회 올림픽에서 중국 선수단은 금메달 28매, 은메달 16매와 동메달 15매를 획득, 종합 3위를 차지하면서 순위 한 단계 끌어올렸다. 2004년 8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된 28회 올림픽에서 중국 선수단은 금메달 32매, 은메달 17매와 동메달 14매를 따내면서 종합 2위를 차지했고 순위를 재차 한 단계 끌어 올렸으며 미국의 버금으로 세계 스포츠 분야에서 강자로 군림하였다. 2008년 8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개최된 29회 올림픽, 중국은 일개 스포츠 후진국인 ‘동아병부’로부터 마침내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행사인 올림픽을 주최하는 동방의 ‘거성’으로 떠올랐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580여 명의 선수단을 선 보였고 중국 올림픽 사상 참여한 종목도 가장 구전하였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은 도합 금메달 51매, 은메달 21매와 동메달 28매를 따냈으며 금메달 순위에서는 스포츠 강국 미국을 따돌리고 첫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중국의 스포츠 종합실력이 미국을 능가했다는 설명은 아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미국은 금메달 36매, 은메달 38매, 동메달 36매 도합 110매로 여전히 중국의 100매의 메달 총수보다 많았다. 그리고 중국은 자국에서 개최한 올림픽이다 보니 천시, 지리와 인화 등 우세가 있었으며 진정으로 미국이란 높은 벽을 뛰어 넘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또한 그 뒤에 있은 몇 차례의 올림픽에서도 충분히 나타났다. 2012년 7월,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30회 올림픽에서 중국 선수단은 금메달 38매, 은메달 31매와 동메달 22매를 획득하면서 미국에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했다. 2016년 8월,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에서 개최된 31회 올림픽에서 중국 선수단은 금메달 26매, 은메달 18매와 동메달 26매를 따내면서 미국과 영국에 이어 종합 3위에 머물며 몇 회에 거쳐 지켜오던 2위 자리를 영국에 넘겨주었다. 스포츠란 항상 변화무쌍한 법, 올림픽 역시 그 법칙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실력적으로 강하기만 하면 남한테 뒤지는 건 잠시적인 것, 이번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32회 올림픽에서 중국은 종합 2위 자리를 되찾아 왔을 뿐만 아니라 올림픽 폐막의 전날인 7일까지 만도 금메달 개수에서는 1위를 지키기도 했다. 경제 발전과 스포츠 실력 향상은 정비례 관계? 주지하다 싶이 개혁개방을 실시한 지난 40여 년래 중국은 세계를 놀라게 하는 경제적 발전을 거듭하였다. 데이터에 따르면 개혁개방이 되던 1978년 중국의 GDP는 3679억 위안으로 세계 10위에 있었으나 1년 전인 2020년에는 100만억 위안을 돌파했다. 40여 년 간 271.8배 증장하면서 미국의 버금으로 세계 2위 자리를 확고하게 굳혔다. 구체적으로 보면 2000년 10만억 위안을 돌파하면서 이탈리아를 초과해 세계 6위를 점했고 2006년에는 20만 억 위안을 돌파하면서 영국을 초과해 세계 4위에 올랐다. 2007년에는 독일을 초과하면서 세계 3위가 되었다. 그리고 2010년에는 40만 억 위안을 돌파하면서 일본을 추월하면서 세계 2위를 차지했다. 그럼 중국의 GDP가 언제 미국을 따라잡거나 혹은 추월하는가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시간적 문제만 남았다.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해 미국의 GDP는 20.94만억 달러였고 중국의 GDP는 14.71만억 달러였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GDP가 세계 경제에서 점하는 비율은 각각 24.7170%와 17.3811%이다. 그럼 이처럼 비약적으로 발전한 중국 경제와 중국의 스포츠와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거듭 말하지만 필자의 주장이라면 이 양자의 관계는 정비례로 발전한 관계라는 것이다. 주지하다 싶이 중국 경제는 새 중국이 창립된 후에서 아주 오랫동안 낙후한 상태에 있었다. 적어도 중국공산당 11중 3차 전원회의가 열린 뒤인 지난 세기 70년대 말까지만도 ‘먹고 입는 문제’마저 해결하지 못한 빈곤한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1980연대 초기부터 농촌에서는 호도거리를 실시하고 대외적으로는 개혁개방으로 시장경제의 초급단계에 들어가면서 경제 분야에서는 초보적으로 생기발랄한 현상이 출현되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1984년 7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23회 올림픽에서 중국은 금메달 ‘0의 돌파’를 시작으로 올림픽 폐막할 때까지 금메달 15매, 은메달 8매와 동메달 9매를 따내면서 종합 4위에 올랐으며 스포츠에서의 ‘동아병부’란 오명을 깨끗이 벗어 내쳤다. 아쉬운 것은 중국은 1956년에 있은 16회 올림픽부터 22회 올림픽까지 연속 7회의 올림픽에 불참하였기에 그 기간 동안의 중국의 종합 스포츠 실력에 대해 가늠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마도 탁구와 체조 외에는 금메달 사냥에 성공할 종목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중국은 비록 낙후했지만 스포츠에서의 탁구와 체조에서만은 내노라 할 수 있었던 만은 사실이었다. 탁구와 체조의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아무리 개도국이고 후진국이라 해도 자국의 특성에 따른 스포츠 종목은 가끔씩 있었다. 예하면 중국이 탁구와 체조를 내세울 수 있었다면 아프리카의 케냐 등 국가와 중남미의 자메이카 등 국가는 육상이 ‘명품 종목’이라 할 수 있었으며 남미의 브라질,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등 국가는 축구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다시 본 화제로 돌아와 1984년 7월의 로스앤젤레스의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의 종합 스포츠는 굴기하는 경제발전과 더불어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즉 그 위에 있은 1988년의 서울 올림픽, 1992년의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6년의 애틀란타 올림픽, 2000년의 시드니 올림픽, 2004년의 아테네 올림픽, 2008년의 베이징 올림픽, 2012년의 런던 올림픽 그리고 2016년의 리우 올림픽과 올해의 2020 도쿄 올림픽 등 올림픽에서 보면 중국은 스포츠 분야에서의 강한 굴기를 보였다. 이 10회에 걸친 올림픽에서 중국이 차지한 가장 낮은 종합 성적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의 8위였고 가장 좋았던 성적은 2008년의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금메달 1위였으며 해외 출전 사상 가장 좋은 성적은 2012년의 런던 올림픽(금메달 38매, 은메달 31매와 동메달 22매)과 이번 도쿄 올림픽(금메달 38매, 은메달 32매, 동메달 18매)에서의 종합 2위였다. 한편 중국 연변출신인 필자로서는 중국 연변의 경제 발전 및 스포츠의 발전과 중국 국가적 차원의 경제 발전 및 스포츠의 발전을 비교하면서 분석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연변은 중국에서 2개의 ‘축구의 고향’ 중의 하나이다. 즉 남방에서는 메이현(梅县)이었고 북방에서는 연변이다. 특히 지난 세기 50년대 주로 연변 조선족들로 구성된 지린성(吉林省) 축구팀은 중국 내 4개 강팀 중의 일원이었고 당시 중국의 모든 축구 전업 팀에는 조선족 선수가 없는 팀이 거의 없었다. 중국 국가 임업팀에는 일색으로 조선족 선수들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연변은 또한 스케이팅과 아이스하키를 비롯한 동계 스포츠 방면에서도 유명한 곳이다. 동계스포츠라고 하면 중국에서는 흔히 헤이룽장성(黑龙江省)과 지린성에서 인재가 많이 나왔으며 지린성의 선수 거개는 연변적이었다고 한다. 이외 여자축구와 여자배구 역시 연변은 전국에서 꽤나 인기가 있었다. 이 중 일찍 지난 세기 80년대에 연변 여자축구가 중국 국내 리그에서 우승(남자축구는 1965년 지린성팀의 이름으로 우승)을 한 적도 있다. 스포츠뿐이 아니다. 연변은 일찍 ‘축구의 고향’과 더불어 ‘사과배의 고향’과 ‘가무의 고향’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가 지나간 일이다. 지금 연변에서 여자배구, 여자축구와 동계 스포츠는 뀅 구워먹은 자리가 됐고 남자 프로축구도 자취를 감췄다. 뿐만 아니라 현재 연변의 사과배는 풍년이 들어도 그 판로가 막혀 창고에서 썩어나는 현상이 비일비재이고 연변의 자랑이던 연변가무 역시 지린시가무단과의 경쟁에서 ‘1위 자리(지린성을 대표하는 가무단은 원래의 연변가무단으로부터 지린시가무단으로 넘어갔음)’를 내주어야만 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장시기 기간의 인구 감소와 내지와는 점점 뒤 처져지는 경제상황 등등이다. 그럼 연변스포츠, 사과배와 가무의 진로가 암울하고 심지어 부진하는 현상을 놓고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가? 필자의 조심스러운 분석이라면 아쉽고 안타깝지만 어떻게 보면 이는 중국 내지의 스포츠와 기타의 모든 것이 전반에 거쳐 돌파성적으로 발전했다는 증거로도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연변의 상황에 가슴 아파하기도 해야겠지만 한편으로는 국가와 기타 국내 많은 지방의 거족적인 발전에 기뻐하기도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한테는 민족과 국가가 모두 중요하기 때문이다. 2030년의 분수령 - 중국의 국력과 스포츠 실력 라인은? (에필로그) 세계의 많은 예언가들은 이제 2030년이 되면 중국 경제가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고 진작 추정했다. 필자가 중국인이라서 이 추정이 맞는다고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태껏 지나온 과정을 놓고 볼 때 이는 완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과 미국 사이에 GDP 차이는 분명 존재하나 구매력에서는 중국이 이미 미국을 추월한 상황이다. 그럼 경제발전과 스포츠 실력 향상이 정비례가 된다는 필자의 주장이 맞는다면 2030년 그 때에 가서 중국의 스포츠 역시 미국을 추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올해에 개최된 도쿄 올림픽에서 어느 정도 증실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동포투데이 논설위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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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17
  • 말라리아 퇴치 후 국제사회 돕고 있는 중국②
    ‘영원히 가지 않는 팀’ 만든다 아프리카의 토고, 상투메 프린시페로부터 오세아니아 파푸아뉴기니에 이르기까지 말라리아 퇴치 프로그램인 ‘중국 방안’을 활용한 참가국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중국은 의료약품의 배달과 병원과 말라리아 퇴치센터의 건립은 물론 의료진과 과학기술자를 대거 배출해 ‘영원히 가지 않는 팀’을 만들고 있다. 2017년 중국 광둥(广东) 항말라리아팀은 파키스탄 정부와 협력해 키리비나 섬에서 말라리아 퇴치실험을 시작, 2018년 8월 ‘중국-파키스탄 말라리아 퇴치센터’가 문을 열었다. 항말라리아 단체의 위정제(余正杰)에 따르면 센터는 건립 이후 60여 회에 달하는 훈련을 조직하였으며 현지에서 30명에 가까운 말라리아 퇴치 중·고급 기술자와 200명 가까운 일반 기술자를 양성했다. 콩고 노스키우 주 쑥 재배기지 연구원 페생트 카를로마 씨는“우리는 푸른 쑥을 재배하며 관련 기술을 중국인한테서 배우는 것 등을 보급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말라리아를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만연 상황 멈추지 않았지만 중국은 코로나19 발생 이후에도 아프리카 등 지역의 말라리아 대응을 도와주었다. 동아프리카 국가인 남 수단은 장기적인 전란으로 위생조건이 열악하고 의료자원이 부족했다. 중국(안후이-安徽) 제8진의 남 수단 의료팀장 우화이궈(吴怀国)에 따르면 당시 남 수단의 코로나19 상황은 말라리아 검사와 치료에 많은 어려움을 가져왔다. 우화이궈는 “코로나19와 말라리아 모두 발열증상이 있기 때문에 폭염 속에서도 방호복을 입고 환자를 위해 말라리아 항체 검사와 치료가 필요했으며 아울러 코로나19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한 흉부 CT 검사도 병행해야 했다”고 말했다. 2007년 아프리카에 진출한 중국계 약 업체 푸싱(复星)의 약품에는 이미 20여 개의 항 말라리아 제품이 세계보건기구(WHO)를 통해 사전 약품 인증을 받았다. 병풍이 전 세계 공급 사슬에 가져온 도전에 직면하여 복성의약품은 국내 국제 구매 강도를 높이고 대체 공급 업체를 발전시켰으며 제품의 원부자재 공급을 보증하여 제품이 중국에서 아프리카로 순리롭게 운송될 수 있도록 보장하였다. 케냐 보건부 말라리아 프로젝트 사무국장인 조지 지투카는“지난 1년간 케냐는 항 말라리아 물자 부족 등 많은 도전에 직면하자 중국 푸싱의약에서는 즉시 대량의 물자를 기증하여 급한 불을 꺼주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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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21-07-27
  • 말라리아 퇴치 후 국제사회 돕고 있는 중국①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 중국에 말라리아 퇴치 인증서를 보냈다고 중국의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이전에 중국은 말라리아 감염사례가 매년 3000만 건 정도씩 보고되다가 이어 4년 연속 현지 환자가 0건 발생에 이르기까지 70여 년이 걸렸다. 중국은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에 이르기까지 말라리아 없는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 믿음과 힘을 불어 넣으면서 계속 움직이고 있다. 말라리아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여름이 되면 모기는 많은 사람에게 골칫거리가 된다. 별 볼일도 없는 곤충 때문에 수천 년간 지속된 인간과 말라리아 간의 대전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말라리아는 중국 민간에서 속칭 ‘학질’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말라리아 원충이 일으키는 급성 전염병이며 모기에 물리면서 전파된다. 말라리아 감염자는 간헐적으로 오한이 나고 열이 나 치료를 제때 받지 않으면 인체기관에서 혈액공급이 파괴돼 사망할 수도 있다. 그럼 말라리아는 얼마나 무서운가? WHO 웹사이트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 말라리아 발생 추정 건수는 2억 2900만 건, 사망건수는 40.9만건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30여 년 만에 서태평양 지역에서 말라리아 무 인증 판정을 받은 첫 국가이다. 여러 차례 전 세계 말라리아 퇴치 최전선에 나섰던 광저우 중의약대학교 쑹젠핑 교수(广州中医药大学宋健平教授)는 중국이 말라리아를 퇴치한 것은 세계에 위대한 공헌이라고 하면서 이것은 말라리아는 퇴치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많은 말라리아 때문이 괴롭게 보내는 많은 나라의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말라리아와의 오랜 싸움에서 중 약초 중에서 청호소(青蒿素)를 발견하고 추출하여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 환자의 생명을 구했다. 중국의 축적과 총화의 경험은 말라리아로 고통 받는 여러 나라에 자리 잡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중국의 창의력은 말라리아에 대한 자국의 대처에 좋은 역할을 했는가 하면 전 세계에도 독특한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중국 정부와 인민은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새롭고도 혁신적인 방법을 찾고 있다. 보편적인 약복용으로 말라리아 유행 억제 말라리아 퇴치에 있어서 중국의 국제협력이라면 달의 나라 코모로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아름다운 인도양의 섬에서는 한시기 말라리아가 기승을 부렸다. 14살 때 말라리아에 감염됐던 나수는 예전에는 섬에서 많은 사람이 말라리아로 죽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5세 이내의 경우 생이별을 경험하는 가정이 많아 부모들은 아이가 5세까지 살 수 있을지 걱정하였다고 한다. “이전에 우리 집에서 가족 3명이 말라리아에 걸린 적이 있었으며 입원비가 매달 많이 들었다.” 코모로 전 부통령 포아드 무하지는 이렇게 회고했다. 2006년 중국 광둥(广东)의 신난팡(新南方)그룹과 광저우(广州) 중의약대학교로 구성된 항말라리아 팀이 아프리카로 건너가 말라리아 퇴치 지원 사업을 벌였다. 광동 청호소 말라리아 퇴치 단체인 코모로 프로젝트팀 덩창성(邓长生)에 따르면 중국 측은 코모로인 지역에서 근무하고 있다. 멜라닌 복방으로 말라리아를 빠르게 퇴치하는 방법이기에 전 국민이 멜라닌 복제를 복용하면 인체에 있는 말라리아 원충을 퇴치하는 방법을 창조적으로 제시했다. 2014년에 들어 코모로는 말라리아 제로사망을 기록, 말라리아 발병 사례는 2142건으로 2006년 프로젝트 이전보다 98% 감소하였다. 인류 사상 처음으로 집단적인 약물개입을 통해 한 국가가 말라리아 유행을 빠르게 통제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더창성은 “2019년 전 세계 말라리아 사망자의 94%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해 아프리카의 GDP는 매년 평균 1%의 손실을 보며 이는 아프리카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크파카 칼루 WHO 아프리카 사무소 관원은 “아프리카의 말라리아 퇴치를 돕기 위해 중국은 항상 움직이고 있다”며 “아프리카가 앞으로도 말라리아 제로(0)를 달성할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다음 계속)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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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영화 ‘장진호’ 국경일 하루 관객 4억명 돌파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지난 9월 30일 중국에서 개봉 첫날에 관객 2억을 돌파한 영화 ‘장진호’ 국경일 하루 4억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개봉 이후 파죽지세의 흥행으로 치닫고 있다. ‘장진호’는 제작 규모, 투자 규모, 촬영 기간, 출연진과 스태프 수 모두 중국 영화 역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영화 준비 기간은 2년 이상 지속되었으며 초기 단계에는 7,000명 이상이, 후반에는 12,000명이 영화에 참여하였으며 100,000명 이상의 엑스트라가 동원됐다. 10월 1일 20시 35분 현재 ‘장진호’와 ‘나와 나의 아버지 세대’ 등 2부의 영화에 힘입어 국경절 첫날 티켓 판매액은 이미 6억 위안을 돌파하였으며 국경절 첫날 티켓 판매는 역대 3위에 올랐다. ‘장진호’는 2일 만에 누적 흥행 6억 위안을 기록 중이며 또 다른 국경절 연휴 기간의 새 영화 ‘나와 나의 아버지 세대’는 개봉 2일 만에 누적 티켓 판매액 2억6000만 원을 돌파했다. ‘장진호’는 6.25 전쟁 기간인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24일까지 북한 장진호 지역에서 중국군 제9병단과 미 제10사가 직접 대결한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장진호 전투에서 중국군 제9병단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무기 장비가 세계 일류이고 전공이 혁혁한 미 10사와 직접 교전하였던 곳으로 당시 미군 1개 사를 골탕 먹이면서 이 미군 정예부대는 역대 최장기 퇴진을 경험하게 됐다. 한편 2021년 상반기 중국 영화 매출은 30억1200만 위안으로 전년 동기 대비 553.23% 증가했고, 순이익은 3억500만 위안의 흑자로 돌아섰다.
    • 연예·방송
    2021-10-02

스포츠 검색결과

  • 베이징 동계올림픽 성화 환영식 성대히 거행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20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당일 오전 올림픽타워에서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성화 영접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행사는 우선 그리스에서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성화 채집과 인수인계식을 영상으로 감상하며 기대와 함께 진행됐다. 이어 베이징 동계올림픽 성화가 행사장에 장엄하게 들어섰으며 곧 바로 성화대에 불을 붙였다. 성화대는 중국 전통의 청동 예기인 존(尊)에서 영감을 받아 상운 무늬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 눈꽃으로 변하는 ‘쌍오지성(双奥之城)’의 정신적 계승을 상징하는 것으로 붉은 리본이 하늘하늘 날리며 위로 둘러져 있어 횃불 디자인과 조화를 이루었으며 붉은 색과 은빛으로 어우러진 색채는 전통과 현대, 과학기술과 격정의 조화를 상징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성화 전시와 성화 봉송 릴레이 계획을 발표했다. 글로벌 코로나19 대응의 큰 배경에서 베이징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간결하고 안전하며 멋진 동계올림픽’이라는 대회의 개최 요구에 따라 공공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전통 성화 봉송 릴레이와 성화 전시 행사를 결합해 베이징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 릴레이를 새로 만들 계획이다. 성화 봉송 릴레이는 ‘빙설과의 약속을 맞이하여 아름다운 미래를 향하여’라는 주제로 ‘건강·기쁨·활력’을 슬로건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전시를 늘려 성화 전시, 전통 성화 봉송, 인터넷 봉송 등 3개 부문으로 나눠 진행되며 올림픽의 성화가 베이징에 도착하면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이이 열릴 예정이다. 이외 먼저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 릴레이 주제 전시와 연계해 올림픽타워에 전시하는 동시에 빙설에 대한 참여를 독려하고 동계올림픽 유치를 지원할 방침이다. 장젠둥(张建东) 베이징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집행부주석은 “2022년 2월 2일부터 4일까지 베이징, 옌칭(延庆), 장자커커우(张家口) 등 3개 지구에서 전통 성화 봉송 행사를 열고 성화 봉송에는 약 1200명의 주자가 참여하며 전달 코스는 빙설문화, 역사문화, 장성문화에 입각하여 연도의 자연풍광, 인문적 특색 및 도시적 모습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베이징 지구의 성화 봉송 릴레이는 ‘쌍오지성’의 독특한 매력을, 연경 지구는 ‘가장 아름다운 동계올림픽 도시’의 새로운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게 되며 장자커우 지구는 아시아 겨울여행의 여행지를 조성한 풍성한 성과를 중점적으로 보여주게 된다. 이외에도 베이징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는 각종 인터넷 애플리케이션,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한 성화 봉송 인터넷 홍보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 스포츠
    2021-10-21
  • 베이징 동계올림픽 성화 그리스서 점화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18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성화 점화식이 올림픽의 발상지인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고대 올림피아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성화 점화식은 2000여 년이 된 헤라 신전 유적 앞에서 올림픽 성화가 점화되어 다시 한번 베이징에서 타오르게 된 것이다. 점화식에서는 그리스의 최고 여배우 조지우가 처음으로 성화 봉송을 받았고 이어 그리스 알파인스키 선수 얀스 안토니우가 이어받아 18일 두 번째 성화 봉송 주자인 전 중국 쇼트트랙 선수 리자쥔(李佳军)에게 전달하였다. 이로써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장거리의 성화봉송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 스포츠
    2021-10-19
  • 중국 선수단 도쿄 올림픽 총 결산④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지난 8월 7일,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베이징(北京)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로부터 ‘연강독조(烟江独钓)'라는 제목으로 된 중국화 한 점을 선물받았다. 올림픽을 응원하기 위해 중국 예술가가 창작한 것으로 고요하고 먼 동양의 정취를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여전히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바흐는 “올림픽의 의미는 전 세계를 하나로 모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베이징 타임(北京时间)’에 표지대 세운다 도쿄를 지나면 올림픽은 ‘베이징 타임’에 들어간다. 지난 7월 21일 도쿄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베이징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는 총회에 동계올림픽 개최 계획의 최신 진전을 보고, 세계를 위해 간약하고 안전하고도 멋진 올림픽을 치르겠다는 것을 표명했다. ‘100년 투톱’의 목표가 교차하는 역사적 위치에 선 베이징의 2022년 동계올림픽과 동계 패럴림픽 좌표가 독특하여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13년 전의 8월 8일은 베이징 올림픽이 개막된 날이다. 이후 중국에서는 매년 8월 8일이 ‘전민 건강의 날’로 정해졌다. 이는 베이징 올림픽이 중국에 남긴 가장 소중한 정신적 유산이었다. 현재 중국 전 국민 건강의 공공 인프라가 나날이 완벽해지고 있으며 전민 건강활동이 활발히 발전하고 있다. ‘국민 자질을 제고하여 전민 건강을 실천한다’는 이념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경상적으로 스포츠 활동에 참가하는 비율이 37.2%에 달했다. 베이징 올림픽이 심은 이 씨앗은 이제 중화의 땅에 잎이 무성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도쿄는 금메달에 대한 완벽한 릴레이를 지켜봤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아쉬움을 남긴 적이 있는 중국 선수단의 사격 선수 두리의 도쿄방문은 다섯 번 째 올림픽 관련 방문으로 되지만 코치로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21살의 제자 장창훙(张常鸿)이 이번에 새내기의 모습으로 올림픽 데뷔무대에서 세계기록을 깨트리며 금메달을 따내는 것을 보고 그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중국은 올림픽과 손잡고 점차 올림픽 개혁을 추진하고 이끄는 실천자로 거듭나고 있다. 중국은 동계올림픽 배당금과 함께 더 많은 중국의 경험, 중국의 지혜와 중국의 방안은 올림픽 운동과 인류의 운명공동체 구축에 많은 본보기를 제공할 것이다. 베이징 톈안먼(天安门)에서 창안제(长安街)를 따라 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은 서우강(首钢)그룹의 공장구역이 있던 옛터이다. 이 오래된 옛터는 당시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곳에는 올림픽 스키점프 경기장 ‘수이징세(水晶鞋)’가 들어서고, 베이징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도 이곳에 사무터전을 닦았으며 여러 동계 종목의 국자호(国字号) 팀들도 이곳에 새 기지를 만들었다. 이 곳은 또한 바흐가 여러 차례 극찬한 ‘베이징 스탠더드(北京标准)’로 소문난 곳이다. 바흐는 또 “베이징은 준비작업이 효율적이며 ‘올림픽 2020의 의정(奥林匹克2020议程)’하에서 될 수록이면 절약하고 있다”면서 “올림픽 정신을 계승하고 선수 경험을 존중하며 따라서 베이징이 ‘올림픽 2020 의정’의 새로운 벤치마킹(标杆)에 나설 것으로 자신한다”고 했다. 도쿄에는 특수한 중국단체인 베이징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도쿄올림픽 관찰원 실무단이 있다. 왕둥궈(王同国) 실무단 사무총장 겸 베이징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스포츠대회 서비스부 의료 위생처 부처장은 “이번에 많은 보귀한 재료를 얻었으며 이 재료들은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기획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한편 크리스 펜 국제올림픽위원회 관찰원 담당자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에 뭔가 참고할 만한 경험을 전달하고 싶다”면서 “우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동계 패럴림픽 기간에 관찰원 종목을 다시 만들기를 기대하고 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개최하는 데 좀 더 지혜가 있다고 믿는다. 다른 조직위에도 더 많은 경험을 전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바흐는 올림픽 정신을 계승하여 새로운 장을 쓸 것과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계속 이어 달라고 당부했다. 이제 반년 후 중국은 세계 각지의 동계 스포츠 건아들을 향해 팔을 벌릴 것이다. (끝)
    • 스포츠
    2021-08-18
  • 스포츠 실력 향상은 국력 향상의 축소판
    ● 철 민 지난 8일, 2020 도쿄 올림픽이 17일간의 열전 끝에 그 긴장하고도 화려하던 순간 순간의 막을 내렸다. 올림픽은 막을 내렸지만 그 여운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중국 선수단은 금메달 38매, 은메달 32매와 동메달 18매(미국은 금메달 39매, 은메달 41매와 동메달 33매로 종합 1위)를 획득해 종합 2위에 놓이면서 금메달에서는 스포츠 강국인 미국과 단 1매의 차이로 거의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다. 종합 2위, 이는 중국 선수단 총체 실력의 합리적인 반영인가 아니면 실력 이상의 반영인가 또한 반대로 실력 이하의 반영인가? 필자가 인정하건 대 이는 자로 잰 듯이 정확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적으로는 중국 선수단 총체 실력의 합리적이고도 정확한 반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필자는 스포츠 실력의 향상은 국력 향상의 축소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필자가 스포츠 실력의 향상은 국력 향상의 축소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다. 그 여러 가지 요소 중 역사적인 요소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하지 아니 할 수 없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중국의 올림픽 출전 역사 대사기 중국이 제일 먼저 올림픽에 참가한 것은 1932년 7월(현대 올림픽의 기원은 1896년임)이다. 당시 중국 대표단은 도합 6명의 대표단 성원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제 10 회 올림픽에 파견, 당시 선수로는 류창춘(刘长春) 단 1명뿐이었다. 류창춘은 올림픽에서 원래 3개 종목의 육상 단거리 경기에 참가하려고 했지만 여로의 피로 때문에 400미터 종목은 포기하고 100미터와 200미터에만 참가하여 각각 5등과 6등을 하였으며 결승에 오르지도 못했다. 초라했다. 인구 4억 명에 달하는 대국인 중국은 스포츠에서도 서방세계와는 아주 까마득하게 거리가 먼 후진국이었고 말 그대로 ‘동아병부(東亞病夫)’였다. 그 뒤 새 중국이 창립되어 처음으로 올림픽에 참가한 것은 1952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개최된 제 15회 올림픽이었다. 당시 중국은 비교적 늦게 올림픽 참가 초청을 받았다. 중국은 40명에 달하는 대표단을 파견하였지만 헬싱키에 도착했을 때는 올림픽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 오직 우촨위(吴传玉)만이 100미터 배영 경기에 참가했다. 경기 성적은 1932년의 로스앤젤레스에서의 결과와 별로 다를 바 없었다. 한편 그 당시 국제올림픽 위원회의 많은 인사들이 ‘두개 중국’론을 주장하면서 새 중국과 타이완(台湾) 모두 올림픽에 참가하게 하려고 하자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성명을 발표하여 1956년 호주 멜버른에서 개최되는 제 16 회 올림픽 참가를 거절하였으며 1958년 8월 19일에는 성명을 발표하여 아예 국제올림픽 위원회에서 퇴출해 버렸다. 이어 중국은 그 뒤 1960년 8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있은 17회 올림픽, 1964년 10월 일본 도쿄에서 있은 18 회 올림픽, 1968년 10월 멕시코 멕시코 시티에서 있은 19회 올림픽, 1972년 8월 독일 뮌헨에서 있은 20회 올림픽과 1976년 7월 캐나나 몬트리올에서 있은 21회 올림픽에 불참하였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각종 월드컵이나 선수권에 참여하는 것으로 스포츠의 종합실력 향상에 여러 모로 노력을 쏟았으며 멀지 않은 장래에 기어코 올림픽에 복귀하려는 ‘야망’을 불태웠다. 그도 그럴 것이 스포츠의 종합 실력은 오직 올림픽에서만이 체현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중국은 너무 서두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점진적으로 스포츠 실력을 쌓아 가기만 했다. 이렇듯 중국 정부와 중국인민들은 먼 앞날을 내다보며 장기 타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1979년 11월 26일,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중국 올림픽위원회의 합법적 권리를 회복시킴과 아울러 타이완은 오직 중국 타이베이 올림픽위원회(台北奥委会)의 명의로 올림픽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그 몇 달 뒤 중국은 처음으로 13회 동계올림픽에 참가했다. 1980년 7월, 구소련 모쓰크바에서 22회 올림픽이 개최되게 되자 중국은 참가하기로 하고 만단의 준비를 갖추었다. 헌데 세상 풍운을 예측할 수 없다고 각종 원인에 의해 중국은 올림픽 정신과 국가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모쓰크바 올림픽에도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중국 올림픽 선수단은 1980년 4월 24일 국가올림픽위원회가 발부한 공고에 따라 모쓰크바 올림픽 참여를 포기하였다. 1984년 7월 2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컬리시엄에서 있은 23회 올림픽 개막식에는 중국 선수단이 ‘중화인민공화국’이란 간판을 든 소녀의 뒤에서 진붉은 오성홍기를 추켜들고 입장했다. 이 대회에서 중국은 도합 225명에 달하는 선수단을 파견했다. 축구, 필드 하키 볼, 복싱, 승마와 현대 5종을 포함한 16개 종목에 참가하였으며 7월 29일, 푸라두 사격장에서 울린 중국 선수 쉬하이펑(许海峰)이 울린 총소리가 중국 올림픽 사상의 금메달 ‘0의 돌파’를 실현했다. 즉 이 금메달은 1932년 중국이 처음으로 올림픽에 참가한 이래의 첫 금메달이었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중국은 도합 금메달 15매, 은메달 8매와 동메달 9매를 따내 종합 4위에 올랐으며 ‘동아병부’란 오명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당시 스포츠 강국 미국의 벽은 높았다. 이 대회에서 미국은 도합 금메달 83매, 은메달 61매와 동메달 30매를 차지하며 금메달 수량 상 종합 2위인 루마니아(금메달 20매)보다 63매나 더 많았다. 한편 올림픽 대회에서의 중국의 굴기는 우연한 것이 아니란 것은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인 사실로 입증되었다. 물론 자그마한 굴곡은 있었지만 올림픽에서 중국의 상승세는 지속되었다. 1984년의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이후 올림픽 대회에서 중국의 메달 획득 상황은 다음과 같다. 1988년 9월, 한국 서울에서 개최된 24획 서울 올림픽 당시 중국은 301명의 선수단을 파견, 중국 선수단은 금메달 5매, 은메달 11매와 동메달 12매를 획득하면서 종합 8위를 기록했다. 1992년 7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25회 올림픽에서 중국 선수단은 금메달 16매, 은메달 22매와 동메달 16매로 종합 4위를 차지했다. 1996년 7월 미국 애틀란타에서 개최된 26회 올림픽에서 중국 선수단은 금메달 16매, 은메달 22매와 동메달 12매를 따내면서 종합 4위에 올랐다. 2000년 9월, 호주 시드니에서 개최된 27회 올림픽에서 중국 선수단은 금메달 28매, 은메달 16매와 동메달 15매를 획득, 종합 3위를 차지하면서 순위 한 단계 끌어올렸다. 2004년 8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된 28회 올림픽에서 중국 선수단은 금메달 32매, 은메달 17매와 동메달 14매를 따내면서 종합 2위를 차지했고 순위를 재차 한 단계 끌어 올렸으며 미국의 버금으로 세계 스포츠 분야에서 강자로 군림하였다. 2008년 8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개최된 29회 올림픽, 중국은 일개 스포츠 후진국인 ‘동아병부’로부터 마침내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행사인 올림픽을 주최하는 동방의 ‘거성’으로 떠올랐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580여 명의 선수단을 선 보였고 중국 올림픽 사상 참여한 종목도 가장 구전하였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은 도합 금메달 51매, 은메달 21매와 동메달 28매를 따냈으며 금메달 순위에서는 스포츠 강국 미국을 따돌리고 첫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중국의 스포츠 종합실력이 미국을 능가했다는 설명은 아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미국은 금메달 36매, 은메달 38매, 동메달 36매 도합 110매로 여전히 중국의 100매의 메달 총수보다 많았다. 그리고 중국은 자국에서 개최한 올림픽이다 보니 천시, 지리와 인화 등 우세가 있었으며 진정으로 미국이란 높은 벽을 뛰어 넘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또한 그 뒤에 있은 몇 차례의 올림픽에서도 충분히 나타났다. 2012년 7월,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30회 올림픽에서 중국 선수단은 금메달 38매, 은메달 31매와 동메달 22매를 획득하면서 미국에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했다. 2016년 8월,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에서 개최된 31회 올림픽에서 중국 선수단은 금메달 26매, 은메달 18매와 동메달 26매를 따내면서 미국과 영국에 이어 종합 3위에 머물며 몇 회에 거쳐 지켜오던 2위 자리를 영국에 넘겨주었다. 스포츠란 항상 변화무쌍한 법, 올림픽 역시 그 법칙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실력적으로 강하기만 하면 남한테 뒤지는 건 잠시적인 것, 이번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32회 올림픽에서 중국은 종합 2위 자리를 되찾아 왔을 뿐만 아니라 올림픽 폐막의 전날인 7일까지 만도 금메달 개수에서는 1위를 지키기도 했다. 경제 발전과 스포츠 실력 향상은 정비례 관계? 주지하다 싶이 개혁개방을 실시한 지난 40여 년래 중국은 세계를 놀라게 하는 경제적 발전을 거듭하였다. 데이터에 따르면 개혁개방이 되던 1978년 중국의 GDP는 3679억 위안으로 세계 10위에 있었으나 1년 전인 2020년에는 100만억 위안을 돌파했다. 40여 년 간 271.8배 증장하면서 미국의 버금으로 세계 2위 자리를 확고하게 굳혔다. 구체적으로 보면 2000년 10만억 위안을 돌파하면서 이탈리아를 초과해 세계 6위를 점했고 2006년에는 20만 억 위안을 돌파하면서 영국을 초과해 세계 4위에 올랐다. 2007년에는 독일을 초과하면서 세계 3위가 되었다. 그리고 2010년에는 40만 억 위안을 돌파하면서 일본을 추월하면서 세계 2위를 차지했다. 그럼 중국의 GDP가 언제 미국을 따라잡거나 혹은 추월하는가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시간적 문제만 남았다.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해 미국의 GDP는 20.94만억 달러였고 중국의 GDP는 14.71만억 달러였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GDP가 세계 경제에서 점하는 비율은 각각 24.7170%와 17.3811%이다. 그럼 이처럼 비약적으로 발전한 중국 경제와 중국의 스포츠와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거듭 말하지만 필자의 주장이라면 이 양자의 관계는 정비례로 발전한 관계라는 것이다. 주지하다 싶이 중국 경제는 새 중국이 창립된 후에서 아주 오랫동안 낙후한 상태에 있었다. 적어도 중국공산당 11중 3차 전원회의가 열린 뒤인 지난 세기 70년대 말까지만도 ‘먹고 입는 문제’마저 해결하지 못한 빈곤한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1980연대 초기부터 농촌에서는 호도거리를 실시하고 대외적으로는 개혁개방으로 시장경제의 초급단계에 들어가면서 경제 분야에서는 초보적으로 생기발랄한 현상이 출현되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1984년 7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23회 올림픽에서 중국은 금메달 ‘0의 돌파’를 시작으로 올림픽 폐막할 때까지 금메달 15매, 은메달 8매와 동메달 9매를 따내면서 종합 4위에 올랐으며 스포츠에서의 ‘동아병부’란 오명을 깨끗이 벗어 내쳤다. 아쉬운 것은 중국은 1956년에 있은 16회 올림픽부터 22회 올림픽까지 연속 7회의 올림픽에 불참하였기에 그 기간 동안의 중국의 종합 스포츠 실력에 대해 가늠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마도 탁구와 체조 외에는 금메달 사냥에 성공할 종목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중국은 비록 낙후했지만 스포츠에서의 탁구와 체조에서만은 내노라 할 수 있었던 만은 사실이었다. 탁구와 체조의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아무리 개도국이고 후진국이라 해도 자국의 특성에 따른 스포츠 종목은 가끔씩 있었다. 예하면 중국이 탁구와 체조를 내세울 수 있었다면 아프리카의 케냐 등 국가와 중남미의 자메이카 등 국가는 육상이 ‘명품 종목’이라 할 수 있었으며 남미의 브라질,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등 국가는 축구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다시 본 화제로 돌아와 1984년 7월의 로스앤젤레스의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의 종합 스포츠는 굴기하는 경제발전과 더불어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즉 그 위에 있은 1988년의 서울 올림픽, 1992년의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6년의 애틀란타 올림픽, 2000년의 시드니 올림픽, 2004년의 아테네 올림픽, 2008년의 베이징 올림픽, 2012년의 런던 올림픽 그리고 2016년의 리우 올림픽과 올해의 2020 도쿄 올림픽 등 올림픽에서 보면 중국은 스포츠 분야에서의 강한 굴기를 보였다. 이 10회에 걸친 올림픽에서 중국이 차지한 가장 낮은 종합 성적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의 8위였고 가장 좋았던 성적은 2008년의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금메달 1위였으며 해외 출전 사상 가장 좋은 성적은 2012년의 런던 올림픽(금메달 38매, 은메달 31매와 동메달 22매)과 이번 도쿄 올림픽(금메달 38매, 은메달 32매, 동메달 18매)에서의 종합 2위였다. 한편 중국 연변출신인 필자로서는 중국 연변의 경제 발전 및 스포츠의 발전과 중국 국가적 차원의 경제 발전 및 스포츠의 발전을 비교하면서 분석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연변은 중국에서 2개의 ‘축구의 고향’ 중의 하나이다. 즉 남방에서는 메이현(梅县)이었고 북방에서는 연변이다. 특히 지난 세기 50년대 주로 연변 조선족들로 구성된 지린성(吉林省) 축구팀은 중국 내 4개 강팀 중의 일원이었고 당시 중국의 모든 축구 전업 팀에는 조선족 선수가 없는 팀이 거의 없었다. 중국 국가 임업팀에는 일색으로 조선족 선수들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연변은 또한 스케이팅과 아이스하키를 비롯한 동계 스포츠 방면에서도 유명한 곳이다. 동계스포츠라고 하면 중국에서는 흔히 헤이룽장성(黑龙江省)과 지린성에서 인재가 많이 나왔으며 지린성의 선수 거개는 연변적이었다고 한다. 이외 여자축구와 여자배구 역시 연변은 전국에서 꽤나 인기가 있었다. 이 중 일찍 지난 세기 80년대에 연변 여자축구가 중국 국내 리그에서 우승(남자축구는 1965년 지린성팀의 이름으로 우승)을 한 적도 있다. 스포츠뿐이 아니다. 연변은 일찍 ‘축구의 고향’과 더불어 ‘사과배의 고향’과 ‘가무의 고향’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가 지나간 일이다. 지금 연변에서 여자배구, 여자축구와 동계 스포츠는 뀅 구워먹은 자리가 됐고 남자 프로축구도 자취를 감췄다. 뿐만 아니라 현재 연변의 사과배는 풍년이 들어도 그 판로가 막혀 창고에서 썩어나는 현상이 비일비재이고 연변의 자랑이던 연변가무 역시 지린시가무단과의 경쟁에서 ‘1위 자리(지린성을 대표하는 가무단은 원래의 연변가무단으로부터 지린시가무단으로 넘어갔음)’를 내주어야만 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장시기 기간의 인구 감소와 내지와는 점점 뒤 처져지는 경제상황 등등이다. 그럼 연변스포츠, 사과배와 가무의 진로가 암울하고 심지어 부진하는 현상을 놓고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가? 필자의 조심스러운 분석이라면 아쉽고 안타깝지만 어떻게 보면 이는 중국 내지의 스포츠와 기타의 모든 것이 전반에 거쳐 돌파성적으로 발전했다는 증거로도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연변의 상황에 가슴 아파하기도 해야겠지만 한편으로는 국가와 기타 국내 많은 지방의 거족적인 발전에 기뻐하기도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한테는 민족과 국가가 모두 중요하기 때문이다. 2030년의 분수령 - 중국의 국력과 스포츠 실력 라인은? (에필로그) 세계의 많은 예언가들은 이제 2030년이 되면 중국 경제가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고 진작 추정했다. 필자가 중국인이라서 이 추정이 맞는다고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태껏 지나온 과정을 놓고 볼 때 이는 완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과 미국 사이에 GDP 차이는 분명 존재하나 구매력에서는 중국이 이미 미국을 추월한 상황이다. 그럼 경제발전과 스포츠 실력 향상이 정비례가 된다는 필자의 주장이 맞는다면 2030년 그 때에 가서 중국의 스포츠 역시 미국을 추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올해에 개최된 도쿄 올림픽에서 어느 정도 증실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동포투데이 논설위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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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기고
    2021-08-17
  • 중국 선수단 도쿄 올림픽 총 결산③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합계가 6킬로그램이나 뒤졌을 때 실리군은 깜짝 놀랄 정도로 큰 반전을 이루었다. ‘후회를 남기기 싫다’는 50km 경보 선수 볜퉁다(边通达) 바늘 세 개를 갖고 4시간 가까이 달렸으며10여 번 찌르면서 정신을 가다듬었고 32세의 천룽(谌龙)은 비록 배드민턴 남자 단식 타이틀 방어에는 실패했지만 그의 발에 생긴 피가 섞인 물집은 사람들에게 결코 포기하지 않는 그 ‘중국의 용’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27세의 왕순(汪顺) 개인 최고기록을 1초16이나 끌어올려 중국 남자선수 혼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이렇듯 중화의 체육건아들이 보여준 끈질긴 투혼과 선전의 정신은 감동적이었고 경기장 안팎에서 전하는 자신감 여유도 눈에 띄었다. 중국 선수단은 하나의 젊은 대오였다. 선수 431명의 평균 나이는 25.4세, 이 중 70%에 가까운 293명은 첫 올림픽 출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 여름, 올림픽 건아들이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는 것은 성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욱이 세계무대에 선 이들은 자신의 빛과 자신감, 솔직함, 유머 그리고 개성와 패션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개성 있는 표현과 멋진 언어금구가 많아 중국 선수들이 표현에 서투르던 모습이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는 확 바뀌었으며 이들의 다원적인 개인 이미지도 운동선수 집단의 또 다른 면을 대중에게 보여주었다. 이번 도쿄 올림픽의 첫 금메달을 거머쥔 양첸(杨倩)은 경기를 마친 뒤 옆집 여동생과 흡사하게 네일아트 비법을 공유, 성적도 챙기고 생활도 사랑하는 챔피언이 인간적인 사랑을 받으며 올여름 네티즌들이 추구하는 스타가 됐다. 여자역도 최대급 챔피언이 된 리원원(李雯雯)은 바닥에서 잘 때의 동영상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여유 있게 우승을 차지한 뒤 그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보였고 경기장을 내려온 이 헤라클레스(大力士)가 순식간에 ‘리틀 원(小雯雯)’이 됐다. 그는 또 “모든 뚱뚱한 여자라면 누구나 꿈이 있다”고 외쳐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개성의 아름다움은 자신감에서 비롯되며 여러 가지 세부사항 속에서 존재한다. 중톈스(钟天使)와 바오산쥐(鲍珊菊)는 이번에 봉황 투구를 쓰고 경기장에 나섰다. 그것은 봉황의 열반을 의미하며 그도 그럴 것이 그녀들은 확실히 해냈던 것이다. ‘00후’가 평행봉 위에서 ‘캥거루 손사래’를 쳤을 뿐 아니라 이는 경기장에 있던 미국인 코치들도 흉내를 내도록 했다. 한편 IOC 위원들은 류양(刘洋)이 링 위에서 목을 돌리는 동작을 포착하고는 “어떻게 링 위에서 경기를 하면서 이렇게 쿨 하게 보일 수 있느냐”며 감탄을 연발하기도 했다. 여기서 더 쿨 한 사람은 37세의 뤼샤오쥔(吕小军)이었다. 해내외로부터 피트니스권의 ‘신’으로 추앙받던 그는 우승 직후 “그대들은 잘못 부르지 않았다”며 자신감으로 부르짖었다. 자신감은 스포츠에 대한 더 깊은 이해 그리고 승부에 대한 태연하게 대처 등에서 비롯된다. 네 번이나 올림픽 출전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우징위(吴静钰)는 5년 전처럼 울지 않았다. 이 ‘엄마’급 선수는 담담하게 웃었으며 “그것은 시간의 힘”이라고 했다. 그녀, 우징위는 여한이 전혀 없다고 했다. 수영장에서 몇몇 작은 꽃들은 비록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지만 여전히 기뻐하며 자신의 올림픽 데뷔전에 890점을 주었다. 미래가 그들만의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왕젠자허(王简嘉禾)의 말처럼 “우리는 운동하러 온 것이다. 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던 것이고 못 땄으면 돌아가서 열심히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배드민턴 코트에서 허빙자오(何冰娇)의 라이벌이 경기 중 부상을 당해 퇴장하자 길게 싸우지 않고도 이긴 이 소녀는 경기 후 눈물을 흘리며 할 수만 있었다면 상대와 끝까지 잘 싸우고 싶었다”며 멋 적게 이긴 경기에 대해 약간 불만을 토로했다. 배드민턴 여자복식에서 중국의 ‘판천(凡尘)’조는 결승전에서 졌지만 그들은 상대를 어루만져주는 자세로 나왔다. 경기 후 발표회에서 자이판(贾一凡)이 경기 과정의 ‘단락’을 이야기하기 시작, 이에 상대도 박수를 치면서 “‘판천’을 믿어 달라. 이제 ‘판천’은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것은 중국 선수들 개개인의 내심 바라는 마음이었고 그들이 항상 노력하는 방향이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경기장이 있고 승패에 관계없이 언제나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새로운 세대의 국민 우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 계속)
    • 스포츠
    2021-08-16
  • 중국 선수단 도쿄 올림픽 총 결산②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육상과 수영이라는 두 가지 기초 종목이 도쿄올림픽에 너무 많은 것을 기여했다. 수빙텐(苏炳添) 100m 준결승에서 9초83로 천하를 놀라게 했고 공리자오(巩立姣)와 류스잉(刘诗颖)이 차례로 ‘건곤일척(乾坤一掷)’이 되어 승리를 결정지었다. 그리고 장위페이(张雨霏)가 ‘접후(蝶后)’가 되었으며 왕순(汪顺)이라는 ‘앞세대 천리마(老骥)가 마침내 왕으로 군림했다. 또한 기록 돌파와 서프라이즈(惊喜)가 더욱 많은 종목에서 펼쳐졌다. 중국 선수단은 30개 큰 종목과 225개 세부 종목에 참가, 국외 세부 종목 중 가장 많은 종목에 투신하였으며 이 중 조정 여자 4인용 스컬(双桨)과 트램펄린(蹦床)의 여자 개인 종목에서 모두 13년 만에 금메달을 따냈다. 그리고 쑨이원(孙一文)이 중국 펜싱 사상 첫 여자 에페(重剑) 경기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여자 3인 농구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선수단 감독들의 눈에는 국가 보장과 치밀한 준비 그리고 사전의 적응 등을 성공의 열쇠로 꼽는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이번에도 비전통적 강점 중 중국이 잘했다. 중국 올림픽위원회가 선수육성과 기타 준비에서 뛰어난 것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4년 전 장위페이가 추이덩룽(崔登荣) 수하로 갈 당시 두 사람은 성격이 너무 달라 ‘화성과 지구에 충돌하는 것’처럼 마찰을 빚었다. 추이덩룽이 그린 ‘3년 올림픽 우승’ 청사진에 대해 처음에 장위페이는 전혀 믿지도 않았고 잘 협력하려고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3년 여간 성격, 기술과 심리 등 난제를 극복한 이들 사제(师徒)는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았고 추이덩룽은 ‘100m로 200m를 추진하는 것’으로 자신감을 높이게 하는 한편 장위페이를 올림픽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강력한 종목인 접영에서 금메달 1매와 은메달 1매는 물론 여자 자유형 4X200m 릴레이에서 동료들과 함께 장위페이는 세계기록도 깨뜨리며 우승을 차지했다. 그렇다면 이런 ‘장위페이’의 배후에는 ‘추이덩룽’같은 인물이 한 명씩 심지어는 여러 명의 ‘추이덩룽’이 포진, 그리고 이들 모두의 배후에는 또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중국배드민턴협회 장쥔(张军) 주석은 “올림픽이 1년 연기되면 조국이란 든든한 후원자가 있어 기지에서 정상적으로 훈련할 수 있어 컨디션을 잘 유지하고 올림픽 시뮬레이션(模拟赛)도 몇 번 할 수 있었다. 이는 다른 팀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좋은 성적 뒤에는 방역과 반 도핑이라는 두 개 전장에서의 완벽한 활약이 있었다. 중국 역도 선수 팀이 경기 중 미끄럼 방지용 파우더(防滑粉)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역도 팀에 따르면 이것은 팀에서 정한 많은 방역 세부사항 중의 하나라고 한다. 중국역도협회 주석 저우진창(周进强)은 도쿄 올림픽 참가 한 달 전에 중국은 3000여 자에 이르는 ‘참가자 방역, 출국, 응급 방안’을 만들어 출정의 전 과정을 담았다. 역도 팀은 전체 중국 선수단의 축소판이다. 경기 전 중국 선수단이 제안한 코로나19 전파 방지 대책, 도핑 사건 및 경기 풍격과 경기 규율에서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7일까지 완벽한 답안을 작성했다. 중국 선수단은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4개 종목의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합계로 금메달 38매 획득에 성공했다. 물론 경기장에서 이길 때도 있고 패할 때도 있는 법, 중국 선수단에서도 눈물과 서운함과 아쉬움이 있었다. 중국 여자 축구는 3전 2패 1무로조별 리그에서 탈락했고 유력했던 우승 후보였던 중국 여자 배구 역시 8강에 실패하는 사상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으며 중국 태권도 팀은 동메달 1 매만 따내는 데 그쳤다. 중국에서는 매 올림픽을 마칠 때마다 금메달이 장부에 기록되는 역사가 있다. 게다가 중국 선수단은 아직 큰 종목에서 더 이상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 승패를 떠나 중국 선수들의 풍채는 도쿄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겼다. 지난 2일, 중국 여자배구팀 감독 랑핑(郎平)은 중국 여자배구의 도쿄 올림픽에서의 최종전에서 선수들에게 “선수들 중에 아직 젊은 사람이 많다. 3년 후에는 파리 올림픽이다. 오늘 다시 출항하는 것으로 간주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중국 여자배구가 조별 리그에서 고전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엄연한 현실 앞에서도 중국 여자배구를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2019년 월드컵 우승 이후 중국 여자배구는 코로나19의 발생 기간 앞뒤를 합쳐 약 1년 반에 달하는 비공개 훈련을 거쳤다. 랑핑은 최근 9년간 중국 여자배구 팀을 이끌면서 맞닥뜨린 가장 큰 도전 중 하나가 바로 수준 높은 경기 여건이 부족한 상황에서의 장기적인 집중훈련으로 꼽았다. 중국 여자배구를 포함한 중국 선수단의 각 팀은 모두 폐쇄적인 훈련에서 시간을 보냈다. 실로 “올림픽을 위해 모든 사람이 열심히 노력한 점은 이번 결과에 관계없이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랑핑이 말한 바와 같았다. 3연패 후 중국 여자배구는 2연승을 달렸다. 이러자 랑핑은 선수들에게“사람들이 우리 여자배구에 요구하는 것은 매번 우승하고 매번 이겨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여자배구팀을 좋아하는 투혼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렇다. 바로 이런 정신이 모든 중국 선수들이 공유하는 속성이다.(다음 계속)
    • 스포츠
    2021-08-12
  • 중국 선수단 도쿄 올림픽 총 결산①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무려 17일의 여정을 거쳐 지난 8일 도쿄 올림픽은 마침내 그 정채롭던 막이 내렸다. 도쿄 올림픽에서 중국 선수단은 금메달 38매, 은메달 32매, 동메달 18매를 따내면서 미국에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했다. 7일까지만도 금메달 총수에서 미국에 앞서 1위를 지키던 것이 8일 하루 사이에 금메달 사냥에 실패해 미국에 1위 자리를 내 준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지만 중국 선수단의 금메달 수는 2012년 런던 올림픽과 맞먹으며 역대 해외 올림픽 참가 사상 최고 성적과 동률을 이뤘으며 메달로는 해외 올림픽 출전 사상 최고기록을 작성했다. 그리고 결과보다는 경기 내용에서는 많은 새로운 기적들이 창조되어 14억 중국 인민을 기쁘게 했으며 인민은 그것에 만족하게 된다. 수빙텐(苏炳添) 9초83! 준결승 1위! 새로운 아시아 기록! 아시아 선수 최초로 9초90대 진입! 남자 100m 준결승에서 총소리가 울리기 전, 수빙텐은 두 손을 합장하고 엄지손가락과 검지 손 가락으로 ‘1cm’를 나타냈고 경기 후에는 “조금만 더 잘했더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소병첨이 어느 정도 진보했는가? 이는 도쿄 올림픽에서 중국 선수단의 활약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불과 한 달 전 선수단은 도쿄에서 중국의 올림픽 성적이 수년간 계속 하락하는 추세를 억제하면서 금메달과 메달 랭킹을 1위로 올릴 것을 제안했다. 중국은 도쿄 올림픽 폐막 하루 전인 7일만도 금메달 38매, 은메달 31매, 동메달 18매로 1위를 지켰다. 금메달 총수는 런던올림픽 역대 해외 출전사상의 최고 타이기록을 작성했다. 5년간의 와신상담고 악전고투 끝에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올림픽 준비와 훈련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또한 도쿄 올림픽이 1년 연기된 데 따른 여러 가지 변수를 극복하면서 중국 체육인들은 사명을 걸고 분투하는 정신으로 완강하게 박투하고 용감하게 경쟁하는 훌륭한 전통을 살려 나라를 위해 영예를 떨쳤고 올림픽을 위해 빛을 발산하면서 뛰어난 성적표를 냈다. 경기장 밖에서는 또 중국 선수단이 방역과 반 도핑 영역에서 모두 완벽한 답안을 내 놓았다. 중국선수들은 자신감, 솔직함과 유머 그리고 개성과 패션에 이르기까지 경기장 안팎에서 높은 품위를 보여줬으며 보다 개방적이고도 포용적인 중국의 모습을 세계에 보여주면서 반년 뒤 올림픽이 ‘베이징 타임’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세계의 기대가 커지게 했다. 전 세계가 다시 오륜기 아래에 모여들 것이며 베이징 동계 올림픽은 인류의 운명공동체 이념 실천에 중국의 경험 그리고 중국의 지혜와 중국의 방안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도쿄 올림픽 첫 경기에서 중국 선수단의 양첸(杨倩)이 첫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2000년 여름 태어난 닝바오(宁波)의 처녀는 예선부터 결승전 마지막 총알까지 앞서든 뒤지든 시종일관 밝고 단호한 눈빛이었다. 이는 그녀의 손에서 안정감 있는 공기소총과도 같았다. 그녀의 계몽코치인 누리화(虞利华)는 “양첸은 어린 시절부터 큰 심장을 갖고 있었다”면서 “집중력, 자신감과 배짱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녀는 사격을 배운 지 11년 만에 올림픽 시상대에 올랐다. 중국 선수단의 올림픽 첫 금메달은 9년 만이다. ‘첫 스타트의 순항’은 분명 좋은 징조였다, 양첸의 차분한 플레이는 중국 선수단의 도쿄 매직쇼로 되게 했다. 7월 24일부터 8월 8일 도쿄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16일 동안 중국 선수단은 단 3일 외에는 매일 금메달 사냥에 성공했다. 중국이 해외 올림픽 참가 사상 처음 있은 일이다. 중국 선수단은 다이빙, 역도, 탁구, 사격, 체조, 배드민턴의 6대 강점 종목으로 선수단의 기본 진영을 구성, 도쿄에서 이 6대 강점 종목만 금메달 27매를 획득해 리우 올림픽 금메달 26매를 이미 넘어섰다. 도쿄에서 중국 선수단의 다이빙, 역도, 탁구 세 가지 종목은 모두 ‘드림팀’ 호칭에 손색이 없었다. 중국 선수단은 이상 세 가지 종목 중 단 금메달 1매만 빼앗겼을 뿐 이 세 가지 종목에서 각각 금메달 7매, 은메달 7매와 동베달 4매를 수확하는 데 성공했다. 세 드림팀의 실력은 모두 류궈량(刘国梁) 중국탁구협회 회장이 국가탁구를 평가한 그대로였다. 그것인 즉 ‘사랑스럽고 존경스러우며 영원히 자랑스러운 팀’으로 도쿄에서 팀의 얼을 지켰다. 리우 올림픽에서 부진했던 사격과 체조 역시 도쿄에서는 각각 금메달 4매와 은메달 3매를 따내는 쾌거를 이뤘으며 경기 전 심각한 상황으로 평가받았던 배드민턴은 5개 종목이 모두 결승에 올라 금메달 2매를 따냈다. 다음 11매의 메달로 올림픽 출전 사상 최다 메달기록을 세운 중국 사격팀은 금메달 4매 뒤에 모두 ‘00후’ 세대가 있었다. 중국 국가체육총국 사격양궁관리센터 주임 량순은 “옛날부터 영웅은 어릴 때부터 나타난다고 우리가 젊은이들을 잘 키우면 중국 사격 종목에서 막중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3일 쩌우징위안(邹敬园)이 남자 평행봉에서 우승할 때 꾸안첸첸(管晨辰)과 탕시징(唐茜靖)은 여자 평행봉에서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휩쓸었다. 이를 두고 중국 국가체육총국 체조스포츠관리센터의 무중이(缪仲一)는 격정에 넘쳐 “도쿄올림픽에서 우리는 부활전(翻身仗)을 치렀으며 우리가 이겼다. 우리는 완전히 한번 뒤집으면서 이겼다”고 부르짖었다.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회고하면 당시 중국 체조는 리우 올림픽에서 무득점에 그치며 강팀다운 면모를 회복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무중이와 중국 체조팀은 무거운 압력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주력 진영이 장기간 격리상황에 있으면서 경기가 뜸해졌기에 리듬 파악과 컨디션 조절은 유례없는 중대한 난제와 도전에 직면해 있어 도쿄에서 이 같은 성적을 거두기는 결코 쉽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 계속)
    • 스포츠
    2021-08-09
  • 중국 여자배구-이제 파리 올림픽에서 다시 보자!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6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중국 여자배구-이제 파리 올림픽에서 다시 보자!’란 제목으로 된 글을 실었다. 신화통신은 글에서 이제 중국 여자배구 선수들의 도쿄행은 끝났으며 앞으로 전국 축구팬들의 축복 하에 중국 여자배구는 또 다시 눈부신 여정을 밟을 것이라 믿는다고 전했다. 통신에 따르면 지난 4일, 도쿄 올림픽 일정을 마친 중국 여자배구팀이 조용히 귀국했다. 감독 랑핑(郎平)은 마침내 천근같은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게 되었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며 선수들 또한 모처럼 휴식을 취할 수가 있게 되었다. 중국 여자배구가 도쿄로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들의 올림픽 방문 기간이 이렇게 짧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스포츠란 항상 예측불허로 가득 차 있는 법이다. 우리가 잘 아는 중국 여자배구팀도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아쉬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팀 전체가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고 특히 8강 진출이 완전히 무산된 상황에서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에 연속 3-0으로 승리하며 팬들로 하여금 그 낯익은 중국 여자배구팀을 다시 보게 했다. 이별의 순간, 감독 랑핑은 많은 회포가 갈마들었다. “2013년 팀을 넘겨 받을 때 팀은 상대적으로 스럼프에 빠져 있었다. 그 뒤 여러 해 동안의 굴곡을 겪으면서 모두들 많이 진보하고 성장했으며 성숙됐다. 우리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모두 제패했고 세계선수권에서도 메달을 땄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노력에 정비례되며 얻은 것이 있었지만 이번만은 몹시 안쓰럽게 됐다.” 랑핑 감독이 두 번째로 중국 여자 배구대표팀에 합류한 뒤부터 시종 단결된 대가족과 같았다. 랑핑은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엄한 스승이었다. 그는 팀 전체를 이끌고 공동한 목표를 향해 공동으로 노력해 왔던 것이다. 지난 7월 19일 ‘여자배구 내 사랑(ID welovevolley)’으로 명명된 방송 코너에서 팬들은 “중국 여자배구팀은 5년을 기다렸고 우리도 5년을 기다렸다. 5년의 시간, 우리는 그대들과 함께 상심하기도 하고 그대들과 함께 웃기도 한다. 우리는 그대들이 무사히 돌아오시길 바라지만 더 늦게 돌아오시길 바란다. 랑핑 감독이 있으면 중국 여자배구의 복이자 우리 팬에게도 복이 된다. 승패를 넘어 진심으로 힘내라! 중국 여자배구여, 영원히 너를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격려했다. 랑핑 감독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여성 배구 팬들의 행복의 근원이었다. 대회 때마다 펄펄 날며 우승과 MVP(최우수선수상)를 거머쥔 주팅(朱婷)과 리우올림픽에서 사활을 건 류샤오퉁(刘晓彤)은 축구팬들로부터 중국 여자배구의 ‘복장(福将)’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 뒤에는 오른손 손목 인대가 파열돼 올림픽 준비를 위해 수술이 불가능하며 오직 보수적으로 치료할 수밖에 없다는 보통사람들의 상상할 수도 없는 주팅의 힘든 노력이 있었고 옌니(颜妮)는 어깨부터 허벅지까지 테이프를 붙이는 것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올림픽 여정이 반쯤 지날 때까지 견지하였다. 그리고 장창닝(张常宁)은 남모를 부상을 안고 이를 악물고 팀의 세계선수권 동메달 획득을 도왔는데…. 2020년 코로나19로 올림픽이 연기된 이후 중국 여자배구의 긴 폐쇄훈련은 말할 것도 없고 감독과 선수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흘린 땀이 때로는 보상을 받지는 못하지만 박투와 노력의 의미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여자배구의 정신은 결코 승패로 정의되지 않는 것으로 중국 여자배구는 언제나 ‘조국 지상과 단결 협력하고 완강하게 박투하며 영원히 패하지 않는다’는 정신을 시종 버리지 않았다. “경기장에서 일로순풍 할 수 없는가 하면 당신의 생활도 항상 순탄할 리는 없는 것이다. 안 좋을 때는 한 사람, 한 팀에 대한 시련이 더 그렇다. 나는 경기에서는 져도 사람이 져서는 안 되며 적어도 분투하려는 열망은 있어야 한다고 늘 선수들에게 말하면서 모두가 우리 여자 배구팀에 요구하는 것은 매번 우승하고 매번 이기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하는 것은 우리의 박투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여자배구가 도쿄에서 탈락했을 때 많은 팬들은 이들을 책망하기보다는 가족처럼 마음이 아파했고 아울러 너그럽게 격려해 주었다. 40여 년 동안 중국 여자배구가 바닥에서 분발하여 다시 태어나자 사람들은 이 팀의 불요불굴에 감동하였다. 이들은 “그대들은 정상에 올랐을 때도 이름을 알리지 않았고 슬럼프에 빠졌을 때에도 굴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정상까지 함께 하고 싶으며 여자배구 정신도 세대교체 역시 부추기면서 삶에 대한 ‘복장’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했다. 중국의 한 매체가 제작한 중국 여자배구 축하 영상이 ‘중국의 많은 도시 대형 스크린에서 방영돼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이와 더불어 현재 ‘전민복(全民福)이 여자배구팀을 축복한다’는 공모전을 열어 중국 여자 배구팀을 응원하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 스포츠
    2021-08-08
  • 中 첫 귀화 육상 선수, 도쿄 올림픽서 개인 최고 기록 달성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5일, 중국 올림픽위원회에 따르면 4일 오전 도쿄 올림픽 육상 여자 7개 종목에서 100m 허들과 높이뛰기 두 종목이 모두 펼쳐진 가운데 중국 최초의 귀화 육상 선수인 정니나리(郑妮娜力)가 100m 허들에서 개인 최고 기록인 96점을 기록했고 높이뛰기에서는 외할머니의 세계기록인 1m80에 3cm 앞선 978점을 기록했다. 귀화 선수인 정니나리는 지난 4월 12일에야 중국 대표로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고 6월 스페인 올라운드 챌린지에서 정니나리는 승점 6358점으로 여자 7종목에서 개인 최고기록을 세우며 중국 신기록을 세웠다. 귀화 전 캐나다 여자 7종목 1인자였다. 어린 나이에 육상 훈련을 시작한 정니나리는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대학의 여자 7종목 경기를 전능 소화하였으며 여자 7종목 경기 U-20 세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8년에는 캐나다 대표로 영연방대회에 출전해 준우승을 차지한 적도 있었다. 정니나리의 외할머니 정펑룽(郑凤荣)은 중국의 유명한 높이뛰기 선수로 일찍 제1회 전국체전 여자 높이뛰기 경기에서 우승하였고 1957년에는 세계기록을 세웠으며 1965년에는 전국체전에서 7종 경기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당시 중국이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기에 정펑룽의 올림픽 꿈은 이뤄질 수 없었다. 정니나리는 “중국 대표로 되어 올림픽에 나가 외할머니의 꿈을 이루겠다”고 했다. 정니나리는 또 어머니의 고향인 중국에 대한 애정으로 2018년 귀화를 신청했다. 2019년 6월 12일부터 귀화 절차를 밟기 시작한 정니나리는 더 이상 캐나다 대표팀에서 뛰지 않았다. 정니나리는 ‘尽心尽力’란 한자 네 글자를 몸에 새기고 올림픽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고 싶었던 것이다.
    • 스포츠
    2021-08-06
  • 中 도쿄 올림픽서 또 한번 ‘차이나 스피드’ 조명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5일 쟁쟁한 2개 팀이 중국 선수단을 위해 2관왕에 올랐다. 먼저 중국 여자 탁구가 3-0으로 일본을 완파하면서 올림픽 4연승을 따냈고 14살짜리 어린 명장 취안홍찬(全紅婵·14)이 10미터 다이빙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육상에서도 ‘차이나 스피드’를 재현, 남녀 400m 릴레이에서 동반 결승에 진출했다. 오후, 다이빙 여자 싱글 10m 결승에서는 췐훙찬과 첸유시(陳芋汐·16)가 동반 출전했다. 시합은 첫 점프부터 우승을 정해놓은거나 다름 없었다. 처음으로 세계대회에 참가한 췐훙찬은 다 섯번의 점프에서 세 번의 점프가 만점 처리되어 466.20점의 올림픽 다이빙 경기 사상 최고점을 기록하였다. 이 경기에서 첸위시는 은메달을 땄다. 저녁에 있은 여자탁구 단체전 결승전에서 중국 여자선수들은 개최국에 기회를 하나도 주지 않고 3세트까지 상대를 완전히 꺾어 버리면서 중국 선수단에 34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중국 홍콩 선수단이 이 경기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쑤빙톈(苏炳添)이 100m 결승에서 역사를 기록한 후 5일 ‘차이나 스피드’가 도쿄 신 국립경기장에서 재현했다. 중국의 남녀 릴레이 팀이 나란히 400m 릴레이 결승에 진출했다. 그리고 3단뛰기 결승에서는 주아밍(朱亚明)이 개인 최고기록인 17m57로 준우승을 차지했고 레슬링도 여자 자유형 53kg급에서 중국의 팡첸위(庞倩玉)가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한편 미국과 일본은 당일 경기에서 경승진출이 무산되었다. 미국은 이날 4×100m 릴레이 예선에서 릴레이 봉 교체 시 실수로 조 6위에 그쳐앞당겨 탈락하고 중국 관중들에게 익숙한 종목인 남자 110m 허들에서는 우승후보로 올해 미국 내 선발전에서 세계최고기록 12초81 세운 호로비가 13초09로 2위를 하였으며 런던올림픽 3위였던 자메이카 선수가 0.05초의 성적으로 우승했다. 일본의 강세 종목인 가라테는 개막 첫날 은메달 1개에 그쳤고 개최국으로서 반드시 우승해야 했던 남자 암벽 등반 종목에서는 난이도 실수로 4위에 그쳤으며 이 종목에서는 스페인의 18세 어린 선수 로페즈가 우승, 이는 올림픽 사상 첫 암벽등반 금메달이다. 또 다른 신규 증가된 보드경기에서는 이날 마지막으로 금메달이 탄생헸다. 호주 선수들이 이 종목에서 일본의 농단을 깨뜨리고 남자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로써 일본은 개최국 경기가 끝나면서 스노 보드 종목 중 3매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그리고 미국은 릴레이와 허들 종목에서 작은 실의에 빠졌지만 5일 육상, 복싱, 카누에서 금메달 4매를 수확했다. 금메달 순위에서는 중국이 금메달 34매, 은메달 24매와 동메달 16매로 여전히 선두를 달리고 있고 미국은 금메달 29매, 은메달 35매와 동메달 27매로 2위, 일본은 금메달 22매, 은메달 10매, 동메달 14매로 3위에 올라있다. 3위까지의 순위 구도는 변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 남자농구 준결승도 이날 종료돼 미국은 프랑스와 금메달을 쟁탈에 나선다. 미국은 90 대 89로 명장 루카 둔치치(lukaDoncic)가 있는 슬로베니아를 아슬아슬하게 눌렀다. 바흐 IOC 위원장은 이날 도쿄 하이노모리 워터 아레나를 방문해 3일 남자 조정 1000m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류하오(刘浩)와 정펑페이(郑鹏飞)를 찾았다. 바흐는 앞서 두 선수의 경기 실황을 지켜보며 그들의 투혼을 극찬하면서 그들이 다음 경기에서 더욱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를 축원했다. 바흐는 이날 IOC에서 우승자나 특별한 영예선수를 위해 제작한 도쿄 올림픽 모델 시계를 선물하였고 이 두 선수는 바흐에게 드래곤보트 모형을 증정했다. 이에 바흐는 드래곤보트는 팀워크와 똘똘 뭉친 문화를 구현한 것이라고 하면서 올해 올림픽의 격언에 ‘더욱 단합’이라는 글자가 추가된 만큼 드래곤보트는 올림픽 정신의 한 단면이라고 말했다.
    • 스포츠
    2021-08-06
  • 中, 남녀 육상 400m 릴레이 결승 동반 진출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5일 오전 도쿄 올림픽 육상경기장에서 중국 남녀 릴레이 팀이 400m 릴레이 결선에 동반 진출했다. 이날 경기는 먼저 여자 400m 릴레이 예선으로부터 시작됐다. 중국 여자팀은 2조 3차전에 량샤오징(梁小静), 거만치(葛曼棋), 황구이펀(黄瑰芬), 워이융리(韦永丽) 등 4명을 출전시켰다. 출발의 총소리와 중국의 제1주자 량샤오징은 출발이 좋아 제2주자 거만치에게 순조롭게 봉을 넘겨주었고 제3주자 황구이펀은 압력을 이기고 코너에서 스피드를 잘 유지했으며 마지막 제4주자 워이융리가 결승선까지 3위를 지켰다. 중국 여자 릴레이는 42초82로 조 3위를 기록해 결승에 올랐으며 결승에서 영국, 미국, 독일, 스위스, 자메이카, 프랑스와 네덜란드와 만난다. 남자 400m 릴레이 예선에서 중국 남자 릴레이는 탕싱창(汤星强), 셰전예(谢震业), 쑤빙톈(苏炳添), 우즈창(吴智强) 순으로 출전했다. 이번 대회에서 이들의 최종 목표는 올림픽 시상대에 서는 것이다. 중국 팀이 있는 B조는 주로 강팀들로 구성됐다. 이 중 금메달 획득 유력팀은 미국 팀이다. 이외 캐나다는 100m와 200m 모두 우수한 선수가 있고 이탈리아는 100m에서 ‘날아다니는 사람’이라 불리는 제이콥스가 있다. 중국 팀의 제1주자 탕싱창은 순조롭게 릴레이 봉을 제2주자 셰전예에게 넘겨주었고 셰전예는 직선 우세를 유지하였으며 제3주자 쑤빙톈은 코너에서 놀라운 속도를 보이면서 먼저 릴레이봉을 우즈창에게 넘겨주었다. 마지막 주자 우즈창은 캐나다 선수와 거의 동시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결국 중국은 37초916으로 캐나다를 0.002초차로 제치며 결승에 올랐다. 그리고 유력한 우승 후보였던 미국은 릴레이봉 교체 과정에서의 실수로 조 6위에 그치며 결승진출에 실패했다. 중국 남자 4×100 릴레이는 이탈리아, 캐나다, 자메이카, 영국, 독일, 가나와 일본을 상대하게 된다. 도쿄 올림픽 남녀 4×100m 릴레이 결승은 6일 저녁 도쿄 신 국립경기장에서 펼쳐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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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05
  • 中, 도쿄 올림픽 여덟 번 금-은 메달 싹쓸이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3일, 도쿄 올림픽 여자 평행봉 종목에서 중국의 구안첸첸(管晨辰·16)의 금메달과 탕시징(唐茜靖·18)의 은메달로 중국은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여덟 번째로 한 종목에서 금-은 메달을 싹쓸이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이 여덟 번이나 금-은 메달을 싹쓸이 한 종목과 날짜는 다음과 같다. 7월 29일, 천멍(陈梦)과 쑨잉사(孙颖莎)가 도쿄 올림픽 탁구 여자 단식 1 ,2위를 차지했다. 7월 30일, 트램펄린(蹦床) 여자 결승전에서 주쉐잉(朱雪莹)과 류링링(刘灵玲)이 나란히 금메달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그날 배드민턴 혼합복식 결승에서 1위와 2위는 왕이류/황둥핑(王懿律/黄东萍)조와 정스웨이-황야총(郑思维/黄雅琼)조가 차지했다. 탁구 남자 단식 결승에서는 마룽(马龙)과 판전둥(樊振东)이 금메달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8월 1일 다이빙 여자 싱글 3m 결승에서 스팅마오(施廷懋)와 왕한(王涵)이 나란히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8월 2일, 류양(刘洋)과 유하오(尤浩)가 체조 남자 링 결승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3일 다이빙 남자 3m 스프링보드 결승에서 셰시이(謝思埸)와 왕중위안(王宗源)이 우승,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체조 여자 평행봉 결승에서는 구안첸첸과 탕시징이 금메달과 은메달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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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04
  • 中, 금메달리스트 1위, 美에 무려 8매 차로 앞서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3일, 중국 선수단은 금메달 3매를 추가하며 금메달 총수는 32매를 기록했다. 총 금메달 수는 아테네의 금메달 수와 같은 32개로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51매와 런던 올림픽 금메달 38매를 뒤쫓으며 2위인 미국 선수단을 8매 차로 따돌렸다. 현재 미국의 금메달은 24매이다. 수영 분야에서 미국 대표단의 지배력이 떨어진 뒤 중국 대표단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육상 분야에서의 감각을 되찾아야 한다. 지난 3일에는 미국 대표단이 여자 멀리뛰기 결승과 남자 400m 허들 결승, 여자 200m 결승에서 각각 패했다. 다행히 무아신의 여자 800m 우승과 마리아나의 레슬링 우승으로 미국의 금메달 수는 24개에 달했지만 8개 차이로 중국 대표단에 밀렸다. 사흘 연속 금메달을 따지 못했던 개최국 일본 대표단은 지난 3일 드디어 금메달을 따냈다. 여자 복싱 페더급 결승전에서는 이레이 세나가 우승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체조 남자 철봉에서는 하시모토 다이키가 우승하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일본 대표단의 금메달 수는 19개로 미국 대표단과 금메달 5개 차이로 3위에 올랐다. 영국 대표단이 하루 만에 3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어 러시아와 같은 13개의 금메달을 기록하며 호주에 단 1개 뒤진 4위 호주와 격차를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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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04
  • 中 도쿄 올림픽 금메달 수, 리우 올림픽 추월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2일, 도쿄올림픽에서 중국 선수단은 금메달 5매를 따냄과 아울러 세계신기록 2개를 갈아치웠으며 올림픽 금메달 29매로 리우 올림픽에서의 금메달 26매를 넘어섰다. 이날 사격종목에서 중국의 장창훙(张常鸿)은 남자 50m 소총 3자세 결선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466.0점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웠고 리웨이훙(李越宏)은 남자 25m 권총 속사 종목에서 동메달을 추가, 이로써 중국 사격 팀은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 4매, 은메달 1매와 동메달 6매로 종합 1위를 지켰다. 중국 사격 팀은 또 금메달 1매, 은메달 2매와 동메달 4개였던 리우올림픽에서의 성적기록에 비해 멋진 ‘뒤집기 경기’을 펼쳤으며 총 11매의 메달은 중국 사격 팀 올림픽 출전사상 최대의 기록으로 되고 있다. 같은 날 마무리가 된 역도 경기에서는 여자 87㎏급과 87㎏ 이상 급에서 중국의 왕저우위(汪周雨)와 리위안위안(李雯雯)이 도맡았으며 남자 최대 체급의 두 종목 경기가 아직 진행되지 않았지만 중국 역도 팀은 도쿄에서의 모든 경기를 마쳤다. 이번에 출전한 8개 종목에서 중국 역도 팀은 금메달 7매, 은메달 1매를 따내 현재 금메달 2위인 에콰도르의 금메달 1매, 은메달 1매보다 크게 앞서는 등 중국 역도의 우세는 여전했다. 사이클 종목에서는 중국 스피드를 재현, 리우올림픽 우승자 중텐스(钟天使)가 파트너 바오산쥬(鲍珊菊)와 함께 사이클 여자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이 종목에서 중국은 타이틀 방어를 실현, 둘은 결선을 앞둔 1차 레이스에서 31초804로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여자 사이클 팀은 이날 독일이 리우올림픽에서 세운 세계기록을 4분07초307로 갈아 치웠다. 다음 중국 체조가 마침내 폭발적인 성적을 냈다. 류양(刘洋)과 유하오가 체조 남자 링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휩쓸었다. 두 선수는 리우올림픽에서도 이 종목 결승에 동반 진출한 바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4위와 6위에 그쳤었다. 배드민턴도 2일 모든 일정을 마쳤으며 중국은 은메달 2매를 수확, 올림픽 첫 경기를 치른 천칭천/자이판(陈清晨/贾一凡) 조는 인도네시아의 33세 노장 폴리와 파트너 라하유 조에게 패했다. 남자 단식 결승에서는 리우올림픽 챔피언이었던 32세 노장 천룽(谌龙)은 세계랭킹 2위인 덴마크의 안젤론에게 패했다. 이로써 중국 배드민턴 팀은 도쿄에서 금메달 2매, 은메달 4매를 수확하면서 역시 종합 1위에 올랐다. 카누 정수 경기가 시작되자 중국은 준결승에 모두 진출한 가운데 3일 남자 1000m 카누에서 메달 사냥에 나서게 된다. 2일 밤에 있은 여자농구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중국 여자 농구는 투혼을 이어가며 강호 벨기에를 74 대 62로 꺾고 3전 전승으로 조 1위가 되어 8강에 올랐다. 중국 여자배구는 2일 도쿄올림픽에서의 마지막 상대 아르헨티나를 3-0으로 꺾고 올림픽 일정을 모두 마쳤다. 경기 후 랑핑 감독은 “무한한 가능성과 미래가 있는 젊은이들에게 이번 올림픽 경험을 빨리 잊지 않기를 바라며 3년 뒤 파리에서 큰 활약을 펼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여자축구 준결승은 캐나다와 스웨덴이 각각 미국과 호주에 1-0으로 승리했다. 현재 중국 선수단은 금메달 29매, 은메달 17매, 동메달 16매로 계속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은 금메달 22매, 은메달 25매, 동메달 17매로 2위를 유지하고 있다. 1일 이후 일본은 금메달 추가가 없이 여전히 금메달 17매, 은메달 6매, 동메달 10매로 제3위에 놓여 있다. 도쿄 올림픽은 3일 체조, 육상과 복싱 등에서 26개의 금메달을 배출하게 되며 3일 체조종목이 전부 끝나고 올림픽에 처음 진출한 암벽등반 데뷔전이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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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03
  • 도쿄올림픽: 中 전반기 순위 선두, 후반기 경쟁 더 치열할 듯
    ● 철 민 도쿄올림픽 절반이 넘는 여정을 달려온 중국 선수단은 성적이 양호해 예기된 목표에 도달했다. 1일 중국 선수단 대변인은 현재 코로나19 핵산검출 양성이나 올림픽조직위에서 밀접 확인된 경우와 도핑 이상도 없다며 후반기 경기에서는 중국, 일본과 미국 사이의 금메달과 기타 메달 및 순위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 질 것이라고 밝혔다. 도쿄올림픽 339개 세부종목 중 지난 7월 31일까지 154개가 마무리됐고 중국 선수단은 이미 158개 세부종목의 경기에 참가했다. 중국 선수단은 이 중 126개 세부종목을 완주해 금 21, 은 13, 동 12, 도합 46개의 메달을 땄으며 8월 1일 오전에는 중국 육상선수 궁리야오(巩立姣)가 여자 포환던지기 우승을 차지해 금메달 수는 1매 더 추가됐다. 경기 일정이 과반이 지난 지금 중국은 금메달과 기타 메달에서 순위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변인은 “중국 선수단의 출발점이 양호하며 전반기의 결과를 놓고 볼 때 미국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면서“이는 중국 스포츠 전반 실력이 보다 강해졌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대변인에 따르면 전반 단계의 경기 중 중국은 다이빙, 역도, 탁구 등 전통적인 강세 종목이 계속 우세를 유지했고 배드민턴, 사격, 체조, 트램펄린 등 종목의 실력이 회복되었고 수영, 조정 등 기초 종목도 리우 올림픽 때보다 크게 향상되었으며 펜싱, 요트 등 종목 또한 모두 좋은 양상을 보였다. 단체 구기 종목은 아시아 주요 상대와의 대결에서 아직 우위를 점하고 있고 여자 3인 농구, 럭비와 수구가 맹활약하였다. 반면에 축구, 테니스, 로드사이클 등은 세계 최고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배구, 태권도, 유도, 양궁 등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도쿄올림픽 경기장에서 중국 선수들은 올림픽 정신과 중화의 스포츠 정신을 적극 고양해 과감하게 한계에 도전하고 자아계발을 실현하였으며 뛰어난 경기력과 강한 투혼을 보여줬다. 그리고 선수들은 규칙을 지키면서 심판과 경쟁 상대를 존중하였으며 승리에 교만하지 않고 패배에 굴하지 않는 중국 신세대의 씩씩하고 분발된 정신력을 보여주고 있다. 올림픽 기간 도쿄는 인파와 물류가 밀집되고 있으며 특히 선수촌 내 거주밀도가 아주 높다. 거기에 중국 선수단은 규모가 크고 각 종목으로 된 팀이 매우 많다. 그럼 어떻게 효과적으로 역학통제를 진행하고 있는가? 보도에 따르면 중국 선수단은 도쿄에 도착한 이래 각종 규정을 엄격히 준수하면서 매일 선수단 전원에게 건강정보 신고, 타액 채취, 훈련, 경기, 식사, 물 섭취, 잠자는 것 외에는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으며 잠재적 위험배제를 강화하고 매일 방역검사 통보의 업무기제를 건립하여 선수단 성원은 자아방호 의식을 더욱 제고했다. 현재 중국 선수단은 코로나19 핵산검출 양성이나 올림픽조직위로부터 이상 판정을 받은 경우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중국 선수단은 도핑방지 업무를 매우 중시하며 선수들에게 국제도핑검사기구의 요구에 따르라고 지시한 바가 있다. 최근 국제도핑기구(ITA)의 발표에 따르면 이미 150여 개 국가와 지역 대표단의 2000명이 넘는 선수가 도핑테스트를 받았다. 중국 선수단은 미국과 호주 다음으로 도핑테스트를 받았으며 현재까지 별다른 이상은 없다는 평가다. 다음 후반기의 경기에 대해 분석해보면 여러 상황의 충격으로 인해 도쿄올림픽이 1년 연기되고 개최국의 홈장 우세 등 이러저러한 요인이 발생하면서 세계 체육계에 판도변화가 심각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중국, 미국, 일본 3국 선수단의 금메달 수와 메달 순위 1~3위 다툼이 매우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중국 선수단은 역도, 다이빙, 탁구, 배드민턴, 사격, 육상, 수영, 체조, 레슬링, 카누 스프린트, 요트 윈드서핑, 트랙 사이클링, 스케이트보드, 암벽등반 등 99개 세부 종목 경기에 뛰어들게 된다. 각종목 경기에 대비하면서 중국 선수단은 전반 단계의 경기 중에서 발견된 문제점들을 분석하면서 만단한 준비를 갖추고 좋은 성적을 거두는데 전력을 기울이기를 기대한다. 필자는 동포투데이 논설위원임
    • 스포츠
    2021-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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